‘더 에이트 쇼’ 독기에 비해 새로움이 없다
*이 글에는 <더 에이트 쇼>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반기 넷플릭스 기대작 <더 에이트 쇼>가 지난 17일 공개됐다. 시종 긴장감 넘치고 호흡이 빨라서 완주가 어려운 드라마는 아니다. 하지만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쇼의 오프닝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익숙하다. 재정 위기에 몰린 사람들이 의문의 초대장을 받고 게임에 참가한다는 설정은 <오징어 게임>을 연상시킨다. 그들의 방이 수직으로 연결되고, 먹거리가 엘리베이터를 통해 하달됨으로써 위층과 아래층 사이에 계급 구조가 발생한다는 설정은 <더 플랫폼>과 일치한다. 그 계급 구조에 따라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구도가 형성되고, 게임인데도 인간성을 잃고 서로 난폭하게 구는 상황은 <엑스페리먼트>와 겹친다. 성공한 창작물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범용화되는 건 흔한 현상이다. 하지만 관객이 원전의 충격을 기억하는 상황이라면 응용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원전을 잊게 할 만큼 새로운 무기가 없으니 작품이 옹색해 보인다. 한재림 감독은 <관상> <더 킹>을 연출했다. <비상선언>은 크게 흥행하진 못했지만 대한민국 톱 배우들을 멀티캐스팅했다. 그만큼 관객의 기대가 큰 창작자다. 그러니 야심을 좀 더 가져봤으면 어땠을까 싶다.
극 중 ‘7층(박정민)’은 일이 잘 안 풀리고 있는 영화감독이다. 후반에 가면 그가 투자자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투자자는 예술 할 생각 말고 상업적인 시나리오를 써내라는 입장이다. “관객은 이미 안다. 그냥 재미있는 걸 보고 싶은 거다.” 그에 대한 ‘7층’의 반응은 “관객을 무시하는 거 아니냐”다. 이 에피소드를 <더 에이트 쇼>에 대입해보면 씁쓸해진다.
저 설정이 사회와 인간성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관객이 예술적 비유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명백하고 낡아서 공허하다는 것이다. 재미 부분은 우아하게 표현하자면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제작진이 굳이 눈에 띄게 유사한 설정을 가져왔으니 관객 입장에서도 굳이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비슷한 컨셉의 성공작 <오징어 게임>도 불쾌한 긴장이 넘치는 작품이었다. 호불호가 갈렸고, 비유와 상징은 단순했고, 위악적이라 느낄 부분도 많았다. 그런 작품에서 시청자들이 가장 애착을 보인 캐릭터가 정호연과 이유미였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오징어 게임>의 목적은 참가자들의 입장에서는 돈, 돈을 지급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쾌락이었다. 거기서 돈으로 거래되는 건 참가자들의 시간이나 운 같지만 실은 인간의 존엄성이다. 정호연과 이유미 캐릭터는 자신을 희생해가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냈고, 그것으로 시스템을 무너뜨리지는 못했으나 지배자들의 통찰이 틀렸음을 증명해냈다. 하지만 <더 에이트 쇼>에는 그런 위안이 없다. 철저하게 인간 혐오로 가득하고, 모든 캐릭터를 나락에 떨어뜨려 욕보이면서 공감성 수치를 유발한다.
이 쇼의 등장인물은 모두 똥통에 갇혀 허우적거린다. 비유가 아니다. 참가자들이 지내는 독방에는 창문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카메라만 덕지덕지다. 이 작품은 누구에게도 품위를 지킬 기회를 주지 않는다. 가장 정의롭고 강인한 캐릭터는 이주영이 연기하는 ‘2층’인데, 그조차 전기 충격기를 맞고 오줌을 싸는 지저분한 상황을 맞는다. 그를 제외한 인물들은 모두 포악하거나 나약하거나 기회주의적이다.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도 문제다. 천우희가 맡은 ‘8층’은 <오징어 게임>에서 가장 논쟁적인 캐릭터였던 ‘한미녀(김주령)’를 연상시킨다. 8층은 게임 내 권력자이기 때문에 한미녀보다는 덜 비굴해 보인다. 하지만 섹스를 이용해 생존 도구로서의 남성을 획득하고 그것을 자기 욕구로 포장하는 ‘주체적 창녀’ 캐릭터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1990년대라면 몰라도 현재의 성 윤리로는 지지하기 어렵다. 속칭 ‘남미새’인 5층(문정희)은 작품에서 가장 답답한 반전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너무 뒤틀린 인물이라 그가 마초의 남근을 제거하는 장면도 여성 전반의 각성, 해방, 복수로 치환되기보다 ‘굿 포 유’ 정도의 감상만 준다. 인물들과의 이런 거리 두기는 모든 캐릭터의 전사가 충분히 깊이 그려지지 않은 탓도 있다.
후반에 이르면 고문 포르노에 가까운 묘사가 연속되고, 인물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그들의 고통과 망상을 표현하는 몽타주는 작품에 고급스러움을 더해줄 기회였으나 아쉽게도 저예산 실험극 같은 분위기에 그친다. 말초적 자극은 넘쳐나지만 감성은 공허하다 보니 인물들이 시스템을 파괴하고 탈출하는 결말조차 존엄의 쟁취나 연대의 승리가 아니라 기계적인 연출로 보인다.
극 중의 저 뺀질뺀질한 투자자라면 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관객이 원하는 ‘재미’, ‘자극’이란 이런 걸까? 극 중의 감독은 또 어떻게 여길까? 이만하면 관객을 무시하지 않은 걸까? 그들이 말하는 ‘관객’에는 여집합이 아주 많을 듯하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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