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의 절대 난제, 당신의 선택은?
머리를 묶느냐, 푸느냐. 손톱을 기르느냐, 자르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Up and Down
머리 묶기는 매일 반복되는 친숙한 춤과 같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바짝 올려 묶는 모습은 매혹적인 공연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모든 여성은 머리를 묶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 이는 일종의 의식인 동시에 현대무용의 면모도 지닌다. 전문 무용가가 아닌 사람에게 머리카락은 가장 유연한 신체 부위로, 변화를 주기 쉬울 뿐 아니라 시대와 문화, 사회적 지위 같은 섬세한 코드에 따라 날마다 연출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서구권에서는 풀어 헤친 머리칼을 자유롭고 길들지 않은 여성성과 연관시켰다. 이브와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욕망을 상징하는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으며, 풀어 헤친 머리칼은 종종 남성의 영혼을 현혹하는 덫으로 비유되기도 했다.
머리카락의 이런 야생적인 성정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정성 들여 꾸며야 했다. 그래서 머리칼을 곱게 빗어 집게나 머리 망으로 감싸고, 매듭이나 리본으로 묶는가 하면 가발로 덮기도 했다. 시대에 따라서는 그러지 못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말이다. 중세 시대에는 머리 모양을 매만지는 행위를 단순히 외모를 꾸미는 행위로 보지 않고 허영심의 증거, 더 나아가 자연을 거스르는 악마적인 행위로 간주했다.
또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든 여성성은 오랫동안 죄악시돼왔다. 이 풍조는 1990년대 프랑스에서 인기를 끌던 헤어 제품 브랜드가 내세운 슬로건, ‘내 머리는 내 마음대로’를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게 한다. 펑크족의 모히칸 머리부터 <블랙 팬서>의 아프로 머리에 이르기까지 몸과 장식의 매개인 머리카락은 사회질서에 순응하기도 하지만, 드러내거나 은연중에 그 질서에 반항하는 불온한 것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근대 서구 역사에서는 세련되고, 부드럽고, 순수한 헤어스타일을 찬미해왔다. 덫이나 장애물에 빗이 가로막히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머리를 선호한 것이다. 따라서 그렇지 못한 곱슬머리나 지글거리는 악성 곱슬머리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비교적 최근만 해도 곱슬머리 여성들은 본인에게 맞는 헤어 제품이나 미용사, 머리 장식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동양권에서 미용학적 관점으로 바라본 머리 모양의 변천사도 흥미롭다. 머리 모양은 여성의 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훌륭한 도구였으나 조선 시대에는 통치의 수단으로 유교 사상을 도입해 유교적인 윤리 규범을 일상생활에 적용하고 생활 풍습을 규제함으로써 신분과 역할에 따라 정해진 스타일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머리 단장은 여인들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를테면 머리를 치장하는 장신구를 의미하는 ‘수식’은 얼굴과 가장 가까운 부분으로 눈에 가장 먼저 띄는 위치에 있었기에 단순히 머리를 꾸미는 장신구의 성격을 뛰어넘어 상징성과 실용성, 아름다움을 두루 갖춰 시대를 반영하는 미의 산물로 여겼다. 또한 유교적 규범을 지키던 조선 시대에는 예교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치장할 수 있었던 머리 장신구가 유일한 장식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여인들의 섬세하고 여유로운 미의식은 머리 장신구를 통해 자신의 미를 표현했고, 머리 모양 또한 다양하게 발전했다.
이처럼 머리카락은 외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요소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평범했던 여성이 안경을 벗어 던지고 머리를 푸는 순간 화려한 선망의 대상으로 변신하는 연출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목도했나? 잘 관리된 긴 생머리의 힘도 막강하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배우 전지현의 교복 나이트 입장 장면과 걸 그룹 뉴진스의 청량한 데뷔 무대를 떠올리면 단번에 이해가 될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머리를 우아하게 올려 묶음으로써 매춘부에서 상류층 여성으로 탈바꿈한다.
모두의 체형이 다르듯 두상도 다르다. 그래서 각자 어울리는 머리는 따로 있다. 나 역시 평생을 함께할 ‘인생 머리’를 서른 중후반에 찾았다. 바야흐로 2022년 여름, 북프랑스 그랑빌에서 화보 촬영 중 크루였던 헤어 스타일리스트 한지선이 내게 말했다. “주현, 머리 한번 봐줄게. 여기 잠깐 앉아봐.” 당시 어깨에 닿는 중단발이던 내 머리는 이른 새벽 파리에서 그랑빌로 가는 일정으로 ‘뷰티 디렉터’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사정없이 뻗쳐 있었다. 하지만 부끄러움도 잠시, 일평생 모르고 지낸 과찬이 이어졌다. “어머, 완전 제니 두상이네!” 동양인의 두상은 대체로 납작한 형태를 이룬다. 하지만 블랙핑크 제니는 일명 ‘콘헤드’로 알려진다. 정수리가 가파르게 위로 솟은 듯한 형태로 후두부의 볼륨이 꽉 찬, 쉽게 말해 달걀형 두상이다. 잔머리 하나 없이 완벽하게 뒤로 넘긴 로우 번 헤어가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것도 알고 보면 두상 덕분인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내 머리의 디폴트값은 로우 번이 됐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려면 그 또한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준비물은 의외로 단출하다. 날렵한 꼬리빗과 에코 스타일의 워터 베이스 젤(헤어 스타일리스트 가베의 강력 추천 제품으로 뭉치거나 굳을 염려 없다) 두 가지면 어디서나 변신할 수 있다. 5:5, 2:8, 7:3 중 그날의 기분에 따라 가르마를 타준 다음 손바닥에 덜어낸 젤을 꼬리빗에 묻힌 뒤 머릿결을 따라 쓱쓱 빗어주고 고무줄로 묶으면 끝. 일타 강사의 마음이 이런 걸까? 한지선 실장은 흐뭇한 얼굴로 “제품 사용 흔적을 최소화하는 게 팁”이라고 덧붙인다. “하드 타입 젤이나 왁스를 이용해 바짝 당겨 묶는 스타일이 부담스럽다면 브러시 후 한데 모아 묶어주고 가벼운 텍스처의 워터 스프레이로 고정해보세요. 초보자도 손쉽게 내추럴 올백 헤어를 완성할 수 있답니다.”
그런데 사실 머리를 묶는 이유는 흘러내리는 머리칼에 방해받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의식하거나 남을 유혹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더 실용적인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머리 묶기, 이 친숙한 안무는 본 공연을 펼치기 전에 여는 ‘서막’과도 같다. 더군다나 오늘날 우리에게는 프라다의 실버 집게 핀, 셀린느의 아세테이트 빗, 미우미우의 가죽 헤어밴드, 샤넬의 실크 스크런치 같은 다양한 무기를 선택할 자유도 있다. 매일 아침 화장대부터 사교적인 저녁 자리까지, 주어진 무대 위에서 우리는 저마다 다른 춤사위로 자신만의 세계를 선보인다. 때로는 욕심이 앞선 나머지 조금 어색해 보일 때도 있지만 말이다. 얼마 전 <보그> 디지털 에디터가 내게 미래에도 고집할 패션 원칙을 물어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미래에도 고집할 헤어 원칙은 무엇인가요?” 이주현 <보그> 뷰티 디렉터
Long and Short
어린 시절 나를 돌봐주던 베이비시터는 반투명의 긴 핑크 아크릴 네일을 붙이고 다녔다. 다섯 살 소녀였던 내게 그것은 화려함의 전형이었다. 그녀가 치즈를 구울 때, 앞머리에 수박 향 헤어 무스를 손가락으로 빗질하며 바를 때, 남자 친구와 통화하며 전화선을 배배 꼴 때, 나는 그녀의 손을 보고 있는 게 즐거웠다. 심지어 그녀가 부러진 네일을 반창고로 붙여야 할 때도, 나는 네일을 붙인 여성, 즉 형용할 수 없이 근사한 어른을 바라보며 황홀해했다. 그러면서 내 손톱에 딸기를 붙이거나 빨간 고무찰흙으로 손톱을 만들며 그녀를 따라 하곤 했다.
한편 어머니와 그녀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클린 걸’이었다. 최소한의 소품으로 우아하면서도 편안하게 꾸미는 여성을 일컫는 최신 뷰티 트렌드로, 당시는 그런 미적 특이점에 대해 이런 명칭이 붙기 한참 전이었다. 남성들이 장악했던 1980년대 예술계처럼 그들은 실용성을 위해서나 여성성 때문에 빅 리그에서 뛰지 못하게 됐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꼼데가르송의 루스핏 정장을 입었고 손톱을 바짝 깎았다. 어머니는 늘 2주에 한 번씩 손톱을 매끄럽게 정리하고 투명 매니큐어를 발랐다.
브루클린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노을빛으로 장식되거나 노란색 페인트를 배경으로 ‘주의’를 외치는 몬스터 트럭의 깊이 파인 바퀴 자국과 더불어 포토샵 처리된 긴 손톱이 네임 플레이트 귀고리와 팀버랜드 워커만큼 탐나는 액세서리로 부상했다. 당시 어머니는 “아크릴 네일은 너무 조숙하다”고 비난하며 성인용으로 쓰이지 않은 선에서 내가 원하는 컬러를 고를 수 있는, 다소 구체적인 규칙을 정했다. 다시 말해 베이비 블루, 밝은 금속성 청색은 가능하지만 빨간색, 산호색, 심지어 핑크색은 절대 고를 수 없었다. 그러다 20대를 보내면서 점차 밝은 색상에 꽂혔고 뉴욕의 밸리 네일(Valley Nails)과 배니티 프로젝트(Vanity Projects) 등 유명 네일 살롱의 단골손님이 됐다. 나는 그곳에서 가짜 루비가 박힌 길고 뾰족한 네일을 시술받는 옆자리 뮤지컬 댄서를 질투 어린 눈빛으로 지켜보곤 했다.
그렇지만 지난여름 파업으로 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나는 대부분의 오후 시간을 드러그스토어에서 보냈다. 엄지손톱에 여러 컬러를 테스트하며 서서히 내게 네일 전성기가 찾아왔다. 그저 길면 길수록 더 좋았다. 이것은 조이 크라비츠의 ‘캣 우먼’, 스스로를 ‘갱스터 낸시 시나트라(Gangster Nancy Sinatra)’라 칭한 라나 델 레이의 영상, 자신의 네일 아트를 니플 패치와 매치한 릴 킴(Lil’ Kim)의 영향일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네일 모양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며, 핀터레스트를 검색했다. 그러면서 광란의 파티 참석을 위해 베를린으로 향했던 모티시아 아담스처럼 보이는 1970년대 셰브런, 중세풍의 다채로운 패턴, 작은 꽃무늬, 레드 글리터, 블랙 힐 등을 찾아보며 네일 아트에 심취했다. 손끝을 치장하는 것만으로 매일 이메일을 보내는 단순한 행위가 이벤트처럼 느껴졌고, 책을 펼칠 때마다 어김없이 손 셀카를 찍었다. 더군다나 그날의 옷차림 혹은 자신의 특징을 잘 부각시키는 데 ‘네일’만 한 것이 없지 않나.
그렇지만 애정은 늘 식기 마련이다. 파업이 끝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게 됐을 때, 나의 화려한 손톱은 재빠른 타이핑, 서류함의 종이를 찾고 넘기는 일, 오전에 신속하게 반려견 목줄 매기, 청바지 단추를 끼우고 운동화 끈 매는 일 등 모든 측면에서 장애물이 될 게 뻔해 보였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고, 샐리 한센(Sally Hansen)의 광고 속 ‘비포(Before)’ 사진에서 본 것처럼 손톱이 하나둘씩 깨져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인 <보그> 에디터가 내게 거드름 피우는 새침한 여자를 칭하는 ‘미스 탱(Miss Thang)’처럼 일주일 살기를 제안했고, 난 기꺼이 받아들었다. 결국 나는 다름 아닌 셀러브리티 네일 아티스트 미셸 클래스(Michelle Class)로부터 매니큐어를 받았다. 그녀가 제안한 것은 최근 릴리 알렌에게 해준 매트 그레이 코핀 셰이프의 네일이었다.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 거의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장된 매력을 시도해보고, 그다음 네일 페티시스트가 추구하는 새 스타일을 접목하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손톱 속살이 비치는 부분까지는 누드 톤, 여기에 톨토이즈셸 팁과 골드 아크가 섞인 색다른 아몬드 모양의 젤 네일은 그 어떤 것보다 최고였고 가벼웠으며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일할 때는 여전히 불편했다. 그 손톱 때문에 내 동료들이 힘들어했고, 글을 수정할 때 평소보다 15분 정도 더 걸렸다. 이 상태로 문자메시지를 쓰는 것보다 ‘미안해요. 지금 손톱을 붙여서’라는 말로 시작하는 음성 메모를 전송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했다.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다. 과도기를 보내고 안정기에 접어든 지금은 가끔 네일을 연장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 불편함을 잊게 할 만큼 기분 전환에는 손톱 치장만 한 게 없기에. 그렇다면 날렵한 실용성과 감각적 과잉의 대결에서 어느 쪽이 승리했을까? 지금은 짧은 손톱이 런웨이에서 대세일지 모르지만, 미셸은 “긴 네일을 고수한 사람들은 언제나 팁을 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그들에게 유행이 아니라 삶의 방식인 셈이다. 나는 한 스타일만 고집하는 대신 두 가지를 아우르는 선택을 할 것이다. 짧은 네일이 오드리 헵번이라면, 긴 네일은 소피아 로렌이다. 요즘 인물로 비유하자면, 나탈리 포트만과 카디 비 중 당신의 선택은? 그런데 잠깐, 꼭 한 명만 선택하란 법 있나? 레나 던햄(Lena Dunham) 칼럼니스트 (VK)
- 일러스트레이터
- 손정민(헤어), 캐롤라인 저믈리(Caroline Zurmely, 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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