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년들은 왜 향수에 집착하는가
때로는 저돌적이고, 순수하며, 예민한 감수성으로 대표되는 청소년기. 10대 소년들이 향수 월드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요즘 10대 ‘소년’들의 관심 분야는 놀랍게도 이렇다. 스트리밍 콘텐츠, 소식과 간헐적 단식, 그리고 향긋한 향을 온몸에 입는 것이다. 쉽게 믿기지 않겠지만 적어도 투자은행 파이퍼 샌들러(Piper Sandler)가 실시한 ‘2024년 10대 심층 평가’에서 그 사실은 명백히 드러난다. 미국의 청소년(남성 비율 54%)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의 향수 소비는 전년 대비 26% 증가했다. 미국 알파 세대(만 12~14세) 44%, 그리고 Z세대(만 15~17세) 57%가 향수를 사용한다고 전한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민텔(Mintel)의 2024년 향수 보고서가 이를 뒷받침한다.
영국에서도 이 트렌드는 뚜렷이 나타난다. 영국의 향수 편집숍 ‘더 프래그런스 숍(The Fragrance Shop)’은 자사 소비자의 48%가 남성이며, 이 가운데 Z세대가 전년 대비 70% 증가했다고 전했다. 경쟁업체인 ‘더 퍼퓸 숍(The Perfume Shop)’을 비롯해 파이퍼 샌들러, 뉴욕의 소비자 트렌드 조사 기업 스페이트(Spate)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이 두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대표 브랜드는 바로 디올과 라반, 장 폴 고티에다. 이쯤 되니 분위기에 변화가 일고 있는 건 분명하나, 무엇이 이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지 궁금해진다.
“10대 소년들이 향수에 집착하기 시작한 건 최근 부상한 독특한 현상이죠. 의심할 여지 없이 여기엔 ‘틱톡’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더 프래그런스 숍의 CMO 레이첼 골비(Rachel Goalby)는 말한다. “12~13세 남짓의 남자아이들이 매장을 찾고 있어요. 부모님과 함께 오거나 따로 모아둔 용돈을 들고요. 한 번에 럭셔리 향수 2~3개를 구매하기도 하죠.” 젊은 남성 연령층을 직접적으로 공략하는 것은 향수에 특화된 인플루언서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흐름이다. 180만 팔로워를 보유한 18세 틱톡커 자틴 아로라(Jatin Arora, @TheCologneBoy)는 럭셔리 향수의 원료를 설명하는 ‘언박싱’ 영상을 공유한다. 15세의 트리스탄 로드리게스(Tristan Rodriguez, @ThatFragranceKid)는 톰 포드, 입생로랑 뷰티, 불가리 향수를 40만이 넘는 팔로워 앞에서 리뷰했고, 틴에이저로 보이는 익명의 계정(@SuperrScents)은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향수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 세 계정은 모두 ‘고가’에 초점을 맞춰 그들이 각각의 향수를 뿌려야 하는 때와 장소, 명분에 대해 팔로워를 교육하면서 자신들만의 향수 컬렉션을 수집한다.
“전통적인 마케팅 방식과 달리, 이 10대 인플루언서들은 스마트폰이라는 수단을 통해 향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개발한 겁니다.” 파이퍼 샌들러의 뷰티·웰니스 부문 애널리스트 코린 울프마이어(Korinne Wolfmeyer)가 전했다. 라반의 부회장 제롬 르룹(Jerome Leloup) 역시 이런 분위기에 깊이 동감한다. “틱톡은 향수에 대한 실제적 대화가 이뤄지는 장소입니다. 무엇보다 크리에이터들이 잠재적 구매로 이어지는 후각적 체험에 대해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죠.” 이런 강력한 구매 패턴은 입증되고 있다. 발렌티노 뷰티 ‘본 인 로마’, 장 폴 고티에 ‘르 말’이 틱톡에서 붐을 일으키는 중이다. 이 향수들을 다루는 수많은 리뷰 영상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280만 건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한 콘텐츠도 있다. 더 프래그런스 숍에서 두 제품은 각각 173%, 93% 매출 성장을 달성하기도 했다.
럭셔리 향수는 패션처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패션보다 오히려 가격대는 합리적이며, 성별의 경계도 모호하다. “그들은 운동화를 수집하듯 향수를 모으고, 자신만의 진열대를 만들어 그날의 분위기, 기분, 스타일에 맞는 향수를 모으고 있어요.” 영국 화장품 협회(British Beauty Council)의 밀리 켄달(Millie Kendall)이 설명했다. 이토록 향수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고, 럭셔리 향수가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진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무너뜨리는 데 소년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물론 그저 틱톡 하나만으로 충분한 매출을 확보할 수는 없다. “알파 세대는 그들이 선택한 제품과 브랜드에 갖는 기대치가 굉장히 높습니다. 뷰티 월드에서 더 많은 공정성, 다양성, 포용성을 보고 싶어 하죠.” 민텔의 글로벌 뷰티 & 퍼스널 케어 애널리스트 앤드류 맥두걸(Andrew McDougall)은 말하며 소년층을 공략하는 브랜드는 출신 배경이 다양한 모델, 브랜드 앰배서더를 활용해 모든 피부와 모발, 체형을 아우르는 제품일수록 인기가 높다고 짚어낸다.
10대 소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라반의 ‘원 밀리언’ 향수는 소셜 미디어 가운데서도 틱톡에 주목하고 있다. 풀 메이크업을 한 채 로봇 모양의 이 향수를 들고 춤추는 소년들의 영상을 브랜드 공식 계정으로 직접 공유하며 젊은 층에서 강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음을 입증한다. 샤넬 뷰티 ‘블루 드 샤넬’의 향을 시각적으로 ‘이미지화’한 티모시 샬라메, 새로운 차원의 남성상을 제시하는 입생로랑 뷰티 ‘마이셀프’ 향수의 얼굴인 오스틴 버틀러는 남녀 불문하고 ‘틴에이저’에게 선호도가 높은 인물들이다. 뮈글러는 ‘에일리언 가디스’의 모델로 윌로우 스미스를, 발렌티노 뷰티는 ‘본 인 로마’의 앰배서더로 앤워 하디드를 선정했고, 구찌 뷰티 ‘길티’ 향수의 광고 캠페인에는 엘리엇 페이지, 에이셉 라키가 등장한다. 남성적이고, 한마디로 ‘섹스어필’한 매력이 강렬한 기존 남성 향수 모델과는 다소 다른 양상을 띤다. 이들은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확고한 개성, 뛰어난 패션 감각과 본업을 훌륭하게 소화하는 능력까지 고루 갖췄다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이토록 모델의 개인적 ‘재능’에 초점을 맞추는 현상은 특히 10대 남성 소비자층을 공략하는 데 더없이 똑똑한 처사로 평가된다. 사회적으로 부정적 인식이나 차별성을 지키는 데 핵심이 된다는 것이다. “종종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실제 나이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성숙하게 꾸미거나, 신체적으로 변화하도록 소년들을 부추기는 사회현상이 있죠. 이를 조장하지 않는 브랜드일수록 호감을 얻는 겁니다.” 글로벌 트렌드 예측 기업 WGSN의 통찰 전략가 브리엘 사기스(Brielle Saggese)는 오늘날의 유행을 이렇게 해석한다. 게다가 이들이 향수를 구매할 때 부모를 동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이 두 소비자층 모두를 만족시키기도 한다.
물론 모든 럭셔리 브랜드가 뛰어들 만큼 ‘대호황’이라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향수 카테고리는 소년들에게 비교적 새로운 영역이지만 다양한 노트를 실험하고, 기분을 전환하는 향기를 검증하고, 럭셔리 향수의 복제품을 비난하며 자기 관리를 통해 자신감을 찾는 경험의 과정이 어느 정도 지나면 합리적인 가격대의 대안을 원하거나 한층 높은 가격대의 하이엔드 향수로 진입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엄청난 잠재력 하나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 소셜 미디어의 영향만큼 이 흐름의 바탕에는 ‘자기 관리’의 활성화가 있으며, 향을 통해 정신 건강을 개선할 수 있다고 간주하는 소비자의 믿음이 있다고 민텔 보고서는 분석한다. 젊은 세대 가운데 상대적으로 유행에 둔감했던 어린 소년들 사이에 이런 생각은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애널리스트인 울프마이어는 이 흐름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스킨케어 루틴에 대한 젊은 남성의 관여도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어요. 웰니스 열풍에 따라 이제 향수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며, 향기와 내적 에너지의 밀접한 관계를 소년들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감을 찾고 싶어 하는 10대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수단이죠.”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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