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샌더가 공개한 삶과 미니멀리즘
칼 라거펠트와 함께 손꼽히는 독일 출신의 전설적인 디자이너가 자신의 삶을 책에 담았다. 우리가 경건한 마음으로 부르는 이 디자이너의 이름은, 질 샌더.
질 샌더(Jil Sander)가 훌륭한 디자이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녀가 미니멀리즘의 대가로 평가받는 것에 대해선 논의가 필요하다. 미니멀리즘을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 의미를 축소하고, 심지어 그저 단순한 것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질 샌더의 디자인에 단순함은 없다. 물론 그녀가 만든 의상은 결코 과하지 않고, 시각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코트가 몸에 완벽하게 맞으려면 독창적인 패턴 구조가 필요한 법이다. 우리는 순수주의 디자인이 지닌 복잡성에 대해 질 샌더와 이야기를 나눴다.
좋은 재단이란 무엇입니까?
창작 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경험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죠. 우선 패턴 제작자와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스케치를 합니다. 아이디어는 피팅 단계에 들어가기 전까진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아이디어가 발전하는 건 원단, 재단 및 테크닉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으니까요. 수년에 걸친 끊임없는 작업을 통해 이에 대한 직관을 얻었고 모든 기술적 트릭을 터득했지만, 실제로 ‘마법’이 일어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영감은 늘 현대미술에서 얻었어요. 패션계에서 재단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까요?
혹은 리뷰와 비평이 미학에 너무 치중하고 있나요?
많은 사람이 주로 색과 장식을 보고 옷을 구입해요. 그걸 입었을 때 비로소 입체적인 재단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차립니다. 재단은 의복 형태를 구성하고, 착용자에게 공간적 존재감을 부여합니다. 또한 옷이 착용자의 개성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는 미학으로 이어지게 만들죠. 소셜 미디어에서 벌어지는 패션 토론은 이런 측면에 가치를 적게 부여하곤 합니다.
질 샌더 의상은 탁월한 재단으로 완벽한 핏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별한 기술이나 누군가의 가르침이 있었습니까?
여성용 바지가 거의 개발되지 않았던 1960년대 초반, 우리는 바지 한 벌을 만들기 위해 몇 주를 보냈습니다. 그 결과는 언제나 매우 개인적입니다. 당시 감정을 표현할 새로운 것을 다시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요. 이런 과정에는 항상 패턴 제작자가 함께해야 합니다. 소통이 없는 프로세스는 손이 없는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과 다를 게 없죠.
커리어를 돌이켜봤을 때 특별히 자랑스러운 작품이 있다면?
모든 디자인의 창의적 도전은 현대성입니다. 기존 비율은 더 이상 쓸모없어지고, 모든 컬렉션에는 새로운 솔루션이 필요하죠. 이번에 출간한 책 <Jil Sander by Jil Sander>에서는 이런 세부 사항에 초점을 맞춰 자세히 다뤘습니다. 대부분 어깨에서 결정됩니다. 긴장감은 디자인이 밋밋하고 평범해지지 않도록 해주고요. 예를 들면, 주름을 접어서 비대칭을 만드는 방법을 책에 소개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3차원이 된 원단이 착용자의 몸 주위에서 눈에 띄게 움직이도록 만들 수 있죠.
재단 작업이 까다롭던 옷이나 소재가 있었나요?
아마도 구조적인 형태에 적합한 펠트 원단이겠네요. 펠트는 가볍게 보이도록 만드는 게 어렵습니다. 끝단이 두껍고 둥글게 말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최첨단 기술을 사용해야 했죠. 실크나 벨벳 등 깃털처럼 가벼운 직물에서 입체감을 끌어내는 것 또한 그만큼 어렵습니다.
테일러링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컬렉션 혹은 의상을 꼽자면?
예전에는 코트였습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조각인 동시에 형태를 바꾸기 쉽다는 것이 이유였죠. 요즘에는 다양한 도전을 시도할 수 있는 재킷과 블루종을 살펴보고 있어요.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John Neumeier)의 발레 <모차르트 338>과 함께한 협업도 특별했습니다(1984년 함부르크 발레단이 초연한 작품으로, 질 샌더가 의상 디자인을 담당했다). 의상이 움직임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했고, 격렬한 신체 활동을 방해하지 않아야 했거든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디테일 작업, 숙련된 장인의 기술, 뛰어난 재능 중 좋은 재단을 좌우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세심한 작업과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좋은 품질의 클래식 제품을 얻을 순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클래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흥미롭고 상징적인 새로운 것을 디자인하고 싶어요. 아직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매력적인 비율, 전형적이지 않은 형태를 가능케 하는 원단, 그리고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디테일을 여전히 찾고 있습니다.
언젠가 질 샌더의 패턴 구조를 화려하다고 묘사한 적 있습니다. 디테일에 화려함이 있는 패션을 미니멀리즘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인가요?
질 샌더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닙니다. 모든 디자인은 극도로 정교하고, 우리 손을 거친 재단이 전부 새로운 창조물입니다. 복잡다단한 수많은 결정이 한데 뭉쳐 미니멀하게 느껴지는 가벼움을 낳는 것이죠. 성공적인 건축물에서도 이 같은 모순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장인과 최고급 재료를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방향을 정하고 자신을 찾아올 수 있는 차분함과 단순함을 발산합니다. 정신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죠.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순수함’입니다. 집중력을 방해하는 것이 전혀 없다는 의미입니다. (VK)
- 글
- Kerstin W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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