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반 아쉐 “꽃과 럭셔리는 아주 유사해요”
옷을 넘어 꽃으로 향하는 크리스 반 아쉐의 미학.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 크리스 반 아쉐(Kris Van Assche)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한 번만 훑어봐도 그가 꽃에 대해 어느 정도로 관심이 지대한지 알 수 있다. 50만 명에 달하는 팔로워를 보유한 그의 인스타그램에 그는 거의 매주 튤립과 장미, 또 다른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한 화려한 꽃다발과 함께 거울 셀카를 포스팅한다. 유년기부터 키워온 그의 꽃에 대한 열정이다. “일곱 살 때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 늘 엄마에게 꽃을 사드리곤 했어요. 초콜릿을 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죠. 상자에 담긴 작은 난초 정도가 제가 살 수 있는 전부였어요. 그때부터 40년 동안 꽃을 샀어요. 할머니는 성대한 파티나 아름답게 꾸민 테이블을 좋아하셨는데 종종 꽃꽂이를 부탁하곤 하셨죠. 만약 제가 패션에 빠지지 않았다면 분명 플로리스트가 됐을 거예요.”
고요함에서 비롯된 진정한 힘을 가진 크리스 반 아쉐는 패션계에서 손꼽히는 패션 하우스 두 곳에서 아티스틱 디렉터로 일했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는 디올 옴므,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벨루티. 당시에도 그는 컬렉션 실루엣과 런웨이 디자인에 꽃을 즐겨 사용했다. 2016 디올 옴므 S/S 시즌에서 모델들은 ‘스노우 페어리’라는 2,000송이가 넘는 장미 덤불로 장식된 런웨이를 걸었을 뿐 아니라 꽃을 통해 새로운 도시인 코드를 연출했다. 꽃을 진정한 패션 액세서리로 만든 디자이너들은 요즘도 여전히 꽃에 사로잡혀 있다(보테가 베네타는 최근 패션쇼에서 종이가 아닌 가죽으로 잎사귀를 만든 부케 형태의 액세서리를 선보였다). “저에게 꽃과 럭셔리는 아주 유사해요. 생존을 위해 럭셔리한 옷이나 꽃은 필요하지 않지만 이 둘 모두 일상을 훨씬 더 기분 좋게 만듭니다. 세상에는 가혹함과 폭력이 만연하죠. 저는 아름다움, 즐거움,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드는 작은 특별함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크리스 반 아쉐는 최근 벨기에 패션 하우스 세락스(Serax)의 꽃병 컬렉션을 디자인했고, 갤러리 프랑수아 라파누르(François Laffanour)와의 협업을 통해 처음으로 직접 디자인에 손을 댔다. “15~20년 전부터 이 갤러리와 알고 지냈습니다. 협업은 세 번째인데 실제로 작품을 디자인한 건 처음이에요.” 2017년 디올 옴므 때는 노구치(Noguchi) 조명을 재해석했고, 2년 후 벨루티에 있을 때는 피에르 잔느레(Pierre Jeanneret) 가구 복원 작업을 프랑수아 라파누르와 함께 했다. 이번에는 그가 모든 것을 맡았다. “2년 전, 패션과 협업에 대한 책을 완성한 후, 프랑수아는 제게 모험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가 작품을 디자인하거나, 포르쉬르손(Port-sur-Saône)의 포도르(Fodor) 제련소에서 청동 작품을 제작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청동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크리스는 프랑스 동부에 있는 이 제련소를 찾아갔고, 그곳의 장인 정신에서 영감을 얻었다. “패션에서 벗어나 잠시 쉬는 건 좋았지만, 열정적인 장인들과 함께 작업하던 시절이 금세 그리워졌죠.”
그는 작품 14점으로 구성된 꽃병을 재해석하며 자연스럽게 식물학에 대한 자신의 취향을 탐구하기로 했다. 꽃병은 두 가지 색상의 일곱 가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 8점씩 만들었다. “형태를 보며 꽃이 필요 없는 꽃병으로 구상했어요. 공예 작업을 통해 재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외관은 다소 파격적인 접근법을 선택했다. 그는 청동에 래커를 칠했는데, 고귀한 소재에는 보통 하지 않는 작업이다. “광택이 나는 내부를 더 잘 드러내기 위해 래커를 칠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부는 다른 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반짝반짝 윤이 나지만 가장자리는 더 중립적인 상태를 유지합니다. 이 작품에서 외부는 무광택에 래커칠로 마감했고, 내부는 광택이 납니다.” 꽃의 상징성은 금세 명확해졌다. 처음엔 꽃 색깔에 매료된 벌은 곧 꽃의 본질을 깊이 탐구한다. 관람객도 다름없이 호기심 많은 벌처럼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크리스 반 아쉐가 디자인 분야 진출을 즐겼다면 그것은 일련의 오브제를 만드는 것이 패션 컬렉션을 디자인하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사용되는 소재와 재료는 정반대지만 말이다. “직물과 마찬가지로 소재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섬유로든 모든 것을 만들 순 없습니다. 늘 예기치 못한 뜻밖의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때로는 포기할 때가 있지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다가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점이 이 과정을 흥미롭게 만듭니다.” 옷을 만들 때처럼, 그는 먼저 종이에 꽃병을 스케치했다. 하지만 캔버스에서 원본 모형을 제작하는 대신 3D 프린팅을 사용해 부피, 개구부, 비율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조정했다. “간단히 말해 과정은 매우 유사하고 소재만 다를 뿐입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꽃병이지 옷이 아니거든요.” 컬러 선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제 방식은 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반영돼 있습니다. 이 꽃병 중 하나를 정장 위에 입는 코트나 리버서블 코트로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쪽 면은 벨루티에서 디자인한 것처럼 핑크색 안감이 있는 블랙 코트를 연상케 하죠. 검은색 안감이 있는 주황색 코트는 디올에서 선보인 디자인이 떠오릅니다.” VK
- 글
- Alexandre Marain
- 사진
- Jérémy Barniaud, Mark Co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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