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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 포토 스튜디오 #5 스무 살의 초상

2026.05.01

  • VOGUE

보그 포토 스튜디오 #5 스무 살의 초상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으로 하루를 채워가는 나이. ‘스무 살’은 그렇게 시작된다. 자유는 곧 책임이 되고, 막연하던 꿈은 구체적인 방향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성년의 날’을 맞아 새로운 시작점에 선 스무 살의 독자들을 ‘보그 포토 스튜디오’로 초대했다. 촬영장에 들어선 여덟 명의 얼굴에는 설렘과 긴장이 겹쳐 있었다. 대학생, 재수생, 사회 초년생, 유학 준비생 등 각자의 출발선은 다르지만 이제는 스스로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아직은 색도 향도 또렷하지 않은 꽃망울이지만,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기에 이 봄은 충분히 아름답다. 스무 살, 만개를 앞둔 얼굴들을 포착했다.

송재이

화이트 플라워 레이어드 크로셰 베스트는 영앤생(Young N Sang), 시폰 블라우스, 와이드 진은 에이치앤엠(H&M).

“오늘 촬영 의상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제 패션 철학이 ‘첩첩익선’이거든요. 겹치면 겹칠수록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조끼와 블라우스를 매치해 조화로웠어요. 178cm의 큰 키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 모델로 화보 촬영을 해본 적이 있거든요. 그때부터 패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이자 저를 사랑하게 해주는 수단이 되었어요. 옷이랑 깊은 관계를 맺을수록 저를 잘 알게 되었거든요. 또 뭘 입어도 예뻐 보이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올해 숙명여자대학교 의류학과에 입학했어요. 직접 원단도 만져보고 패션 역사도 배우며 패션을 학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일매일이 설레요. 정확히 직업을 정하긴 이르지만 패션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확실해요. 그 꿈 하나를 가지고 고향 제주를 떠나 서울에 왔어요. 아주 어릴 때 서울에 한 번 와본 게 전부였는데, 혼자 이렇게 큰 도시에 오니 막연한 불안, 공포도 느껴요. 제 입학이 결정되고 부모님께서 한 달 내내 우시기도 했죠. 그래도 제가 ‘서울에 가서 훨훨 날아다녔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부모님께서 제가 대학에 와 기숙사 침대에만 누워 있을까 많이 걱정하세요. 그래서 혼자 서울 밤거리도 산책하고 처음 곱창도 먹어봤어요. 한강공원에서 생맥주도 마셨고요. 오늘은 <보그> 화보까지 찍다니.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즐기며 잘 지내고 있으니까 안심하시라고 <보그> 5월호가 나오면 제일 먼저 보여드리고 싶어요.”

조현범

크롭트 라이더 재킷과 비대칭 레더 팬츠는 본봄(Bonbom).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이 컸어요. ‘과잠’ 입고 돌아다니고,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연애도 하는 그런 모습이요. 그런데 지원한 대학에 모두 떨어지면서 재수생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크게 무너지진 않았어요.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거든요. 스무 살이 되면 더 열심히 살 줄 알았는데 막상 규칙이 없어지니까 더 흐트러지더라고요. 침대에 있는 시간도 늘고요. 그래서 아침 8시 30분에는 무조건 책상에 앉고, 낮에는 휴대폰을 거의 보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도 스무 살이 되고 나서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고 있어요. 친구 집에서 자거나 찜질방에서 밤을 새우는 일 같은 거요. 별거 아닌데도 꽤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어요. 진로는 아직 명확하진 않아요. 패션이나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걸 직업으로 선택하기엔 조금 막연하달까요. 취향은 꽤 즉흥적인 편이에요. 힙합을 듣다가 밴드 음악으로 넘어가고, 요즘은 하이퍼팝에 꽂혀 있어요.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 찾게 되죠. 패션도 그래요. 패션 위크가 끝나고 컬렉션 영상을 매일 찾아보며 <보그> 웹사이트도 구경했죠. 보그 포토 스튜디오도 홈페이지에서 뒤늦게 공고를 발견하고 지원 마감 마지막 날 밤 11시 59분에 제출했어요.(웃음) 요즘 가죽 재킷이 눈에 들어오는데, 캐롤 크리스찬 포엘 재킷은 목 부분 디테일이 독특해서 인상 깊었어요. 마르지엘라 퓨처 하이톱도 갖고 싶지만 가격이 부담돼 계속 생각만 하고 있어요. 이것저것 좋아하는 것이 많아 진로가 더 고민되지만 일단 올해 열심히 공부하려고요. 내년에는 과잠 입고 캠퍼스를 마음껏 누비고 싶거든요.”

신유진

비대칭 턱시도 미니 드레스는 제이백쿠튀르(Jaybaek Couture), 핀턱 셔츠와 타이는 제이백(Jaebaek), 벨트는 본봄(Bonbom).

“중학생 때 팬데믹을 겪었어요.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뭘 원하는 걸까’ 처음 고민하게 됐어요. 학교 밖에서 더 다양한 걸 해보고 싶었죠. 자퇴를 고민하며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 동안 입시 위주 공부를 잠시 멈추고 프로젝트 형식의 수업을 하는 ‘오디세이학교’를 추천하셨어요. 1년 과정 중 절반은 오디세이학교에 다니고, 이후 다시 일반고로 돌아갔다가 자퇴를 결정해 대안 학교를 2년 다녔어요. 그곳에서 제가 몰랐던 세상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어요. 스무 살이 되면 당연히 대학에 진학할 거라고 여겼는데, 요즘은 세상이 훨씬 넓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꼭 대학에 가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중이에요. 책 읽기 동아리와 뜨개 모임에 참여하고, 청년센터에서 ‘직업 말고 내:일 찾기’ 같은 강의도 듣고 있어요. ‘기후 위기 심리학’이라는 주제로 공모전에 참가한 경험도 있는데, 그 과정이 꽤 흥미로웠어요. 만약 대학에 진학한다면 글로벌 경영이나 디자인을 전공해보고 싶어요. 스무 살이 된 만큼, 그동안 무서워서 시도하지 못한 일도 하나씩 해보려고 해요. 저는 심해 공포증이 있는데, 언젠가는 스쿠버다이빙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성년이 된 기념으로 자신에게 배낭여행을 선물하고 싶어요. 세계 육지 면적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율이 0.07% 정도라고 하더군요. 우리나라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직접 보고 싶어요. 카메라로 뉴질랜드의 자연을 담거나 핀란드에 가서 오로라를 꼭 볼 거예요.”

조언빈

레이어드한 롱 슬립 드레스와 오간자 미니 드레스는 민주킴(Minjukim).

“어린 시절부터 저는 다른 선택을 해왔어요. 중학교 2학년 때 공교육이 저와 잘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부모님과 상의 후 일주일 만에 자퇴를 결정했습니다. 이후 대안 학교, 유학원, 온라인 수업, 홈스쿨링 등 다양한 교육 환경을 경험했어요. 지금은 온라인 수업을 기반으로 서울에서 3학기를 마친 뒤 뉴욕·홍콩·모스크바 등에서 1학기씩 체류하며 공부하는 태재대학교에 재학 중이에요. 지난 시간 저는 단순히 좋은 성적을 받고, 이름난 대학, 직장에 가는 게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좋아하는 것을 가치 있는 아이디어로 구현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죠. 교육 혁신가이자 가치 창조 예술가가 되는 게 꿈이에요. 또 가족의 일대기를 소설과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지난해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가족들과 재밌게 봤거든요. 우리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6·25전쟁을, 어머니는 광주 민주화 운동과 마이클 잭슨의 내한, 첫 스마트폰의 등장을 목격하셨어요. 저는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1위와 팬데믹을 경험했고요. 모두 역사를 몸소 마주했고 그 안의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게 결국 격동의 한국 역사이자 모든 한국인의 삶이고요. 사람들이 웃고 울고 감사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꼭 이루고 싶은 목표 중 하나예요.”

김채현

블루 플리츠 맥시 드레스는 포츠 1961(Ports 1961).

“스튜디오에서 헤어, 메이크업을 받다 보니 고등학생 때 뷰티과에서 실습하던 기억이 나요. 메이크업, 헤어, 네일, 피부 미용까지 다 배우는데, 막상 해보니까 재미가 없더라고요. 남을 꾸며주는 것보다 저 스스로를 꾸미는 걸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진로를 다시 고민하게 됐어요. 그러다 반려동물 관리사가 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찾아 생물산업학부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좋아했거든요. 학생 때는 교복 입는 것도 귀찮고 아침 일찍 등교하는 것도 힘들어 ‘빨리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막상 스무 살이 되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자유로워서 오히려 막막한 느낌도 있어요. 누가 어느 정도는 정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이제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게 아직은 조금 버겁게 느껴져요. 그래서 요즘은 대학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어요. 그래도 좋아하는 건 분명해요. 반려동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거요. 언젠가는 강아지 유치원을 직접 운영해보고 싶어요. 큰 마당이 있는 공간에서 강아지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이원정

컷아웃 디테일 재킷과 화이트 블라우스, 슬립 스커트 장식 트레이닝 팬츠는 푸시버튼(Pushbutton), 목걸이와 귀고리는 스와로브스키(Swarovski).

“초등학교 때 처음 갔던 뉴욕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언젠가 거기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그 마음으로 열심히 유학을 준비했고,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 합격해 올여름 출국을 앞두고 있어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그래픽 디자인을 중심으로 공부할 예정이에요. 그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했거든요. 회화, 캐릭터 디자인, 애니메이션, 제품 디자인까지 다양하게 작업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특히 잘하는 친구들의 작업을 볼 때마다 제 한계를 느껴 흔들리기도 했죠. 그래도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아직 스무 살이 된 기분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어요. 합격 발표를 기다리느라 불안한 시간이 더 길었거든요. 4월 1일에 합격 소식을 들었는데, 하필 그날이 만우절이라 처음엔 ‘장난 아닌가?’ 싶어 한참을 못 믿었어요. 같은 날 ‘보그 포토 스튜디오’ 참여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이 와서 더 헷갈렸고요.(웃음) 몇 번이나 메일을 다시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실감이 났어요. 저는 안정적인 걸 선호하는 편인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를 낯선 환경으로 밀어 넣는 선택을 자주 해온 것 같아요. 유학이라는 결정도 그렇고요. 뉴욕에 가게 되면 주말마다 지하철을 타고 도시를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어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MoMA에도 꼭 가보고 싶고요. 언젠가는 전공을 살려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보려고요. 그 전에 오늘 집에 돌아가서는 그동안 촬영을 앞두고 참아온 ‘엽기 닭발’부터 먹을 생각이에요.”

조수빈

힙 버슬 디테일의 뷔스티에 스커트는 규리킴(Gyouree Kim), 부츠는 아카이브 앱크(Archivépke).

“올해 3월부터 헤어 숍의 스태프로 일하고 있어요. 대학에 가는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선택이죠.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학창 시절부터 무용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보다 제 삶을 책임질 수 있는 기술을 하나 갖고 싶었어요. 헤어 디자이너는 상대의 이미지는 물론이고, 자신감을 높여주는 직업이기에 매력적이라 느꼈고요. ‘미용업계는 경력 싸움’이라는 말을 듣고 전문대에 진학하는 것보다 취업하는 게 빠른 길이라 판단했어요. 전남 장성이 고향인데 취업하면서 자취방을 구해 상경했죠. 사실 취업하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도 해본 적이 없어서 사회생활 자체가 처음이에요. 스무 살이 되면 바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봐요. 하나하나 다 배우고 있어요. 그래도 이전처럼 모든 걸 부모님께 기대지 않으려 노력하고요. 처음 며칠은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롭기도 했는데, 요즘은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어요. 일하고 교육받느라 종일 숍에 있거든요.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없죠. 헤어 염색을 배우고 있는데, 어렵지만 재밌어요. 제 꿈이요? 고객이 꾸준히 찾아주는 헤어 디자이너요. 손님이 없으면 디자이너도 없다고 여기거든요.”

장윤호

퍼플 스카잔 재킷과 폴로 셔츠, 치노 팬츠는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중학교 때까지 사격 선수로 활동했어요. 하지만 교통사고 이후 수전증 때문에 더 이상 총을 잡을 수 없게 되었죠. 큰 절망감을 느꼈어요. 방황하던 때도 있었는데 제 위로 형이 두 명 있거든요. 올곧은 형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학교 축제에 모델로 섰는데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그 경험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서 모델연기학과에 진학했죠. 지금은 고향 청주를 떠나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청주에서 나와서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와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게, 제가 최근 마주하는 ‘처음’의 경험이에요. 또 자취를 하면서 ‘뭐든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우리 세 형제를 키운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도 조금이나마 체감하게 되었고요. 이런 것들을 제외하면 아직 10대일 때와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느껴요. 그래도 제 20대는 새로운 것으로 가득했으면 좋겠어요. 아직 한 번도 해외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는데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외국에도 나가보고 싶고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질 샌더 런웨이에도 꼭 서보고 싶어요. 먼저 아주 가까운 꿈은 모델 에이전시에 들어가는 거예요.” VK

    컨트리뷰팅 에디터
    유승현, 김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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