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 페리뇽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2026.06.30

돔 페리뇽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돔 페리뇽 레벨라시옹 2026에서 만난 한 잔에는 지금 우리가 바라는 작지만 큰 개념이 담겨 있다. 와인이 인간 문화에서 보여준 공유와 연결, 빈티지 2018의 안아주는 듯한 포근한 감각까지.

전 세계에서 온 관람객이 퇴장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저녁 8시. 나는 1층에 자리한 리처드 세라의 압도적인 대형 조각품 ‘The Matter of Time’을 지척에 두고 착석했다. 돔 페리뇽(Dom Pérignon)의 레벨라시옹(Révélations) 2026을 기념하는 디너 자리였다.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돔 페리뇽 빈티지 2018의 솔로 테이스팅을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와인을 시음할 때 향과 맛을 세세히 구별하기보다 즉각적으로 이미지를 떠올리는 편이다. 빈티지 2018은 오늘 관람한 리처드 세라의 조각 같았다. 4m가 넘는 묵중한 강철은 압도적이지만 그 사이를 걸으면 시간이 멈춘 듯하고 편안했기 때문이다. 뮤지엄 산에 자리한 제임스 터렐의 ‘호라이즌 룸(Horizon Room)’ 같기도 했다. 빛이 나를 포근히 감싸는 듯한 안정감이 빈티지 2018에서도 느껴졌다. 아마 지난 4월 한국에서 시음하고, 그날 낮에도 서브된 빈티지 2017과 풍미가 많이 다르기에 감상이 더 뚜렷했을 수 있다. 돔 페리뇽의 셰프 드 카브 뱅상 샤프롱(Vincent Chaperon)은 둘의 차이를 이렇게 언급했다. “제게 빈티지 2017은 ‘대비’로 이루어졌어요. 선, 각도, 방향, 원근감으로 정의되는 기하학적 구조죠. 빈티지 2018은 ‘연속성과 유동성, 응집력’이라 할 수 있어요. 분절되지 않고 감싸는 듯한 감각이죠. 그런 의미에서 고정된 이미지라기보다 하나의 경험에 더 가까워요.”

뱅상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빈티지 2018의 출시를 결심했지만, 이는 극적인 계시라기보다는 수년간 축적된 결과다. 포도나무를 심은 순간부터 포도를 얻기까지 최소 20년이 걸리고, 수확 후에도 돔 페리뇽은 10여 년에 걸쳐 관찰과 연구를 이어간다. 뱅상은 영화에 비유했다. “만약 중간에 나오는 장면만 본다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죠. 와인도 같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와인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고 성장과 변화를 관찰해야만, 어느 순간 즉각적으로 ‘이제 준비됐다’고 느낍니다. 포도 수확도 비슷해요. 모든 밭의 모든 구획(Parcel)을 평가하며 날마다 변화를 추적합니다. 수확기가 되면 약 3주에 걸쳐 포도를 집중 관찰하다 어느 순간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지금, 포도가 준비되었다.’”

뱅상의 말투가 전과 달리 약간 들뜬 듯했다. 연례행사인 레벨라시옹에서 만날 때마다 그는 차분한 시인이나 냉철한 건축가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 뱅상이 상기된 이유는 빈티지 2018이 개인적으로 특별하기 때문일 것이다. 셰프 드 카브가 된 이후 처음부터 온전히 빚어낸 첫 번째 빈티지다. “아주 특별한 순간이에요. 하지만 빈티지 2018의 출시보다 이 순간이 지닌 질(Quality of the Moment)이 더 중요해요. 완벽하다고 할 수도 없고 애초에 완벽할 수도 없지만, 우리는 정말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어요. 말하자니 쑥스럽지만 솔직히 자랑스러워요. 왜냐하면 우리가 함께하는 자리에서 특별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사람들의 움직임과 감정, 우리 사이의 연결, 이런 흐름을 느껴요.” 세계 최고의 샴페인 하우스에서 하나의 아카이브를 완성하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그에게 ‘일가를 이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 이들을 마주할 때면 격렬한 축하를 보내면서도 부러움과 자책감이 따라온다. 나의 분야에서 업적까진 아니라도 온전히 만족스럽게 한 챕터를 마무리한 적 있던가.

배우 틸다 스윈튼과 큐레이터이자 패션 역사가 올리비에 사야르(Olivier Saillard)가 공동 창작한 퍼포먼스 ‘하우스 오브 제스처(House of Gestures)’를 보면서도 비슷한 상념이 이어졌다. 구겐하임 미술관에 들어선 틸다는 끊임없이 옷을 갈아입으며 몸짓과 존재감, 변화를 표현했고, 무언극이 이어지는 동안 모두 숨을 죽였다.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 그렇듯 ‘진심’으로 차 있었다.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할 때도, 돔 페리뇽을 음미할 때도, 관객을 코앞에 두고 극을 이어갈 때도. 틸다야말로 배우를 넘어 예술가란 칭호가 어울린다. 그녀와 돔 페리뇽은 ‘창작은 끝없는 여정(Creation is an Eternal Journey)’이란 철학에 공감하며 깊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돔 페리뇽 빈티지 2018은 셰프 드 카브 뱅상 샤프롱이 온전히 빚어낸 첫 번째 빈티지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레벨라시옹 2026에서 틸다 스윈튼과 올리비에 사야르가 몸짓과 존재감, 변화를 퍼포먼스로 표현했다.

같은 날 낮에는 빌바오의 카레라스 무히카 갤러리(Carreras Mugica Gallery)에서 ‘장소(Place)’를 주제로 한 프리 아상블라주 2025(Pré-Assemblages 2025) 토크와 전시가 열렸다. 프랑스 아티스트 클로딘 드레(Claudine Drai)는 돔 페리뇽에서 떠오른 즉각적인 이미지와 단어로 조형 작품과 시를 창작했다. 그녀는 와인을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낯선 시선이 오히려 새로운 발견을 도왔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안다는 자만심과 선입견에 많은 것을 놓치곤 하니까. 뱅상은 발견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고 반복과 재현, 익숙한 영역에 머무르려 하죠. 하지만 진짜 위험한 것은 뭘까요? 기후, 포도나무가 변해가듯이 자연은 늘 스스로 재창조하고 변화하죠. 그래서 자연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요. 주말이면 저의 사적인 관찰의 결과물, 그러니까 꽃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내기도 합니다.(웃음)”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늘 미지의 것들에 둘러싸여 있어요. 다만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고, 볼 수 있을 때 존재합니다.”

돔 페리뇽이 새로운 빈티지를 공개하는 방식은 문학과 철학, 미식, 예술을 아우른다. 이날도 조형 작품, 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그들에게 지속 가능성은 매번 거론되는 질문이다. 뱅상은 이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돔 페리뇽이 가려는 방향과 개념이 맞닿는다고 했다. 그들이 ‘실험적인 포도밭’을 만든 이유다. 때론 ‘가든 빈야드(Garden Vineyard)’라 부른다. 전통적인 포도밭과 정원의 중간 형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포도나무를 환경에 통합된 존재로 인지하고, 자연스럽고 균형 잡힌 방식으로 바라보고자 해요. 핵심 아이디어는 ‘100년을 위한 식재’입니다. 더 이상 단기적인 효율성이나 생산성을 기준으로 결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과거와 현대사회 전반은 즉각적인 결과와 효율성에 기반해 결정을 내려왔어요. 그렇게 하면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죠. 우리는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려고 합니다. 이 공간이 5년이나 10년 후가 아니라 100년 후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떠올려요. 식재의 선택, 재배 방식, 토양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이 긴 시간을 기준으로 하죠. 포도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단순히 나를 위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다음 세대를 위한 행위예요. 그것은 책임의 감각을 완전히 바꿉니다.” 또한 가든 빈야드에는 다양한 포도나무가 들어설 것이다. “포도나무는 원래 수천 년 동안 다양한 문명에서 재배되었고, 끊임없이 적응해온 식물이에요. 본래는 나무를 타고 자라는 덩굴식물이었죠. 이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요. 포도나무는 늘 다른 존재와 연결되는 식물이라는 것이죠. 또한 와인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의 문화에서 종교처럼 정신적, 사회적 교류의 일부로 존재해왔습니다. 본질적으로 공유와 연결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지금 애타게 찾는 연대는 와인 한 잔에도 담겨 있었다. VK

경고 :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김나랑

김나랑

피처 디렉터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매번 배웁니다. 집에 가면 요가를 수련하고 책을 읽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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