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가판대가 인스타그램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습니다

2026.06.26

신문 가판대가 인스타그램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습니다

파리 여행을 가면 종종 마주하게 되는 풍경이 있습니다. 거리 모퉁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항상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문 가판대가 그 주인공이죠. 가판대 안으로 들어가면, 단순히 신문과 잡지를 넘어선 세계가 펼쳐집니다. 사탕도 있고, 관광객을 위한 에펠탑 모양 열쇠고리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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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손짓만으로 뉴스를 끝없이 스크롤링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언론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죠. 이런 시기에, 우리는 종이 매체의 중요성을 다시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속도는 종종 깊이 있는 사고보다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종이 매체는 여전히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죠.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고, 주제를 깊이 탐구하며,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게 이끌어주는 역할 말이에요.

신문 가판대의 역사

1940년대 파리의 신문 가판대. Getty Images

파리 최초의 신문 가판대는 1857년, 수도 한복판의 그랑 불르바르(Grands Boulevards)에 세워졌습니다. 샤틀레 극장(Théâtre du Châtelet )과 생미셸 분수 설계로 알려진 건축가 가브리엘 다비우(Gabriel Davioud)의 작품으로, 오스만 남작의 의뢰로 완성됐죠. 첫 가판대는 등장과 동시에 큰 성공을 거뒀고, 불과 2년 사이 파리 시내 곳곳에는 약 60개의 가판대가 생겨났습니다. 1859년부터는 그 모습이 더 진화하죠. 내구성이 뛰어나고 용도에 적합한 팔각형의 참나무 가판대로 말이에요. 시간이 흐르며 가판대는 파리 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파리의 가판대는 196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매일 아침 사람들은 즐겨 읽는 신문의 최신호를 사기 위해 가판대로 몰려들었죠.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중앙에 서 있는 가판대 주인은 수백 종의 신문과 잡지 등 간행물에 둘러싸여 있고요. 당시에 가판대는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교류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장소 역할도 했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슈퍼마켓에서 신문과 잡지를 팔기 시작하며 가판대는 큰 타격을 입었죠. 2000년대에는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되며 신문 판매량은 더욱 빠르게 감소했습니다. 2018년 들어 파리시는 남아 있는 가판대를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합니다. 상징적인 장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로 한 것이죠. 덕분에 가판대는 현대적으로 개보수되고, 더 기능적으로 재설계됐습니다.

서울의 신문 가판대

가판대를 도시 시설물로 여긴 파리와 달리, 서울에서는 ‘신문을 파는 영세 공간’ 정도로 인식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간이 시설에 가까운 가판대의 모습과 건축물 형태인 파리 가판대의 모습이 다른 것에서 이를 알 수 있죠.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가 1883년 창간됐고 연이어 <독립신문>과 <매일신문> 등이 등장했으나, 이때까지 신문만 따로 파는 가판대 같은 공간은 없었습니다.

서울 곳곳에 가판대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1950년대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전까지는 대부분 거리의 행상에게 구입하는 방식이었으나 서울이 급격히 도시화되고, 신문 발행 부수가 폭증하며 간행물을 모아 판매하는 가판대가 생겨난 것이죠. 지하철역 입구나 사무실 밀집지역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위치했는데, 현재의 편의점이나 카페만큼이나 많은 숫자를 자랑했습니다. 파리와 마찬가지로 서울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발행되는 신문을 사기 위해 가판에 모여드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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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90년대 이후 상황도 파리와 같이 변화합니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편의점과 서점에서 잡지와 신문을 다루기 시작하자 가판대의 간행물 판매량이 급감한 것이죠. 2000년대 들어 인터넷 뉴스가 등장하며 가판대는 물론, 신문 자체가 빠르게 사양 산업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 빠른 편이었기에 파리보다 더욱 가파르게 가판대가 사라졌죠. 파리와 달리 애초에 건축물 형태가 아니어서 더욱 대체되기 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도 가판대는 남아 있습니다. 지하철역 출구 근처나 관광지 주변 노점에서 신문을 파는 모습을 볼 수 있죠. 그러나 이제 신문보다 관광 상품이나 음료, 간단한 간식의 비중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가판대라기보단 조그만 상점에 가까운 셈이죠. 서울시는 지난해 가판대에 ‘서울시 표준디자인’을 도입하고, 외관을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소셜 미디어 시대의 신문 가판대

가판대가 파리와 서울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디지털화가 빠르게 이뤄진 2020년대에도 세계 여러 대도시에서 만나볼 수 있죠. 뉴욕의 어떤 가판대들은 소셜 미디어에 완벽하게 적응하며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 성공적인 융합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웨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카사 매거진스(Casa Magazines)’고요.

1994년 모하메드 아흐메드(Mohammed Ahmed)는 시예드 칼리드 알리 와심(Syed Khalid Ali Wasim)의 도움을 받아 이 가판대를 인수했습니다. 30년간 운영해온 그들은 2024년, <아이코닉 매거진>의 창립자 헤말 셰스(Hemal Sheth)에게 이곳을 매각했죠. 긴 시간 운영되며 이 가판대는 약 2500종에 달하는 방대한 출판물을 다뤄왔습니다. 지금도 <뉴욕 타임스>와 <뉴스위크>뿐만 아니라 예술, 디자인, 패션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잡지를 구비해뒀죠. 물론 <보그> 에디션도 여럿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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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 가판대는 문화적으로 깊게 뿌리내려, 지역사회의 상징적 장소로 거듭났습니다. 긴 시간 한자리를 지키며 정체성을 지켜온 아흐메드의 유산을 셰스가 이어받아 현대화하고 확장시키는 데 성공했거든요. 현재도 패션 및 문화계의 유명 인사들이 최신 잡지와 신문을 사거나, 혹은 몇 분간 주인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이곳을 찾습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시대에도 아흐메드가 가판대 운영을 지속한 건, 그가 종이 매체의 힘과 잡지에 대한 독자의 애정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021년 그는 <더 굿 라이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죠. “종이 냄새요. 모든 잡지에는 고유한 향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사는 것이죠.”

카사 매거진스는 인스타그램에서도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잡지의 메카’라고 소개하며, 새로 입고된 잡지를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있죠. 종이 매체를 지키면서도, 디지털 시대의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대표 사례인 셈입니다. 셰스는 이를 바탕으로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를 연출합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최근 <뉴요커>였습니다. 1973년 이후 처음으로 NBA 우승을 차지한 뉴욕 닉스를 커버에 실었는데, 카사 매거진스는 쇼윈도에 이 잡지를 가득 채워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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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신문 판매원

다시 파리로 돌아가볼까요? 올해 초, 다양한 분야에서 공익에 헌신한 616명의 인물들이 엘리제궁에 모였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들에게 프랑스 국가 공로 훈장을 수여했죠. 그중 유난히 감격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 알리 아크바르(Ali Akbar)였죠.

아크바르는 사실 생제르맹데프레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지역의 유명 인사죠.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그는 파리의 거리 곳곳을 누비며 <르 몽드> 신문을 팔았습니다. 카페, 레스토랑, 길거리, 어디든 가리지 않았죠. 하루 평균 약 13km를 걸었다고 합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동료가 약 40명 정도였지만, 5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아크바르 혼자 남게 됐죠. 그의 얼굴과 목소리는 세대를 초월해 주민, 상인, 손님들에게 익숙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 역시 대학 시절 아크바르의 고객 중 한 명이었다고 하고요.

@karimmoutilarke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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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akbar_sgdp

아크바르가 받은 훈장은 단순히 개인의 영예를 넘어선 의미를 갖습니다. 언론 산업의 변화 속에서 사라져가는 직업을 묵묵히 이어온 한 사람의 삶을 기리는 것이기 때문이죠. 종이 매체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대에, 정보와 대중을 직접적으로 연결하고자 애쓴 이들에게 국가가 경의를 표한 셈입니다. 궁금해집니다. 과연 서울에서는 종이 매체가 다시 주목받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

김현유

김현유

프리랜스 에디터

세상사에 호기심이 많은 프리랜스 에디터입니다. 패션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트렌드 분석에 관심이 많습니다. <에스콰이어 코리아>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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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re Marain
사진
Instagram, Getty Images
출처
www.vogu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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