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에 물든 낭만주의에 대하여

내가 처음 참석한 결혼식에서는 천둥 같은 트롬본 연주에 맞춰 춤추며 등장하는 아가씨들의 행렬이 장관이었다. 신랑은 멋진 왕자님, 신부는 아름다운 공주님이었다. 나는 열두 살이었고 ‘불새(달빛이 비치는 숲과 마법에 걸린 깃털이 등장하는 러시아의 동화적인 발레 작품)’ 속 화려한 결혼식 장면에서 나는 먹을 수 없는 케이크 한 접시를 들고 무대를 누볐다. 커버 걸 파운데이션과 선명한 레드 립스틱을 여러 번 덧바르고 오렌지색 가발까지 쓴 채, 발레 선생님이 바라는 대로 강렬한 무대조명과 잘 어울리는 메이블린 뉴욕 블러셔를 듬뿍 발랐다.
몇 년 후 발레를 그만두게 되었다. 시원섭섭했다. 그렇지만 그 핑크 파우더를 바르지 않아도 되는 것만큼은 다행이었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블러셔 때문에 빅토리아 시대의 폐결핵 환자나 광대처럼 보였으니까.
그 후 약 20년간 나는 블러셔를 요리조리 잘 피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핑크빛 볼이 신부 화장의 필수 항목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이것은 아마 오랜 시간 이어져온 로맨스와 여성적 미덕 간 연관성의 흔적일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 소설 속 발그레한 뺨은 여성이 ‘성’에 대해 알고 있지만, 적당히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문학평론가 루스 버나드 예젤(Ruth Bernard Yeazell)은 “수줍은 여주인공이 순수함과 에로틱한 경험 사이의 과도기, 즉 세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부끄러워하는 여성을 기리는 글에서 달아오른 볼을 언급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덧붙였다.
결혼식 준비로 런던의 여러 부티크에 친구들을 끌고 다니면서 비슷한 아이보리색 슬립 드레스를 보다 ‘그냥 재미 삼아’ 진주 단추와 레이스가 달린 화려한 드레스를 입어봤다. 거울을 보는 순간, 이 드레스는 나를 위한 것임을 알았다. 어쩌면 발레가 지닌 호화로움이 나도 모르게 로맨틱 뷰티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시절에 젖어든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로맨틱 뷰티가 다시 뜨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대에 비판받았던 로맨틱 코미디가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지 않은가. 에밀리 헨리(Emily Henry)의 소설 <우리의 열 번째 여름>은 넷플릭스 영화로 제작되어 올 초 개봉했으며, 현실을 잊게 해주는 영화 <너, 나 그리고 토스카나(You, Me & Tuscany)>는 4월에 개봉했다. 그리고 나탈리 포트만이 복잡한 연애사를 가진 부부 상담사 역을 맡은 레나 던햄 감독의 차기작 <굿 섹스>는 올해 말 공개된다. 에로티카(Erotica, 성애를 다룬 예술품)와 마법을 결합한 장르 로맨타지(Romantasy)는 위기에 직면한 출판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더 립트 보디스(The Ripped Bodice)’ ‘밋 큐트(Meet Cute)’ ‘블러쉬(Blush)’ 같은 로맨스 테마 서점이 성장하고 있다. 지난가을에는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로맨틱 뷰티의 아이콘 마리 앙투아네트 전시회에 많은 여성이 몰려들었고, 다이아몬드 리본과 레이스 깃, 앙증맞은 슬리퍼를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한 20대 여성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여왕의 섬세한 낫과 괭이(그녀가 개인 극장에서 사용하던 원예 소품)를 가만히 서서 감상할 때, 그녀의 친구가 몸을 기울여 새로 시작한 취미인 발레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말했다. “발레 슈즈에 리본을 꿰매는 게 제일 좋아.”
디자이너들은 런웨이에서 베이지색 미니멀리즘과 팬데믹 시대의 애슬레저 룩에 작별을 고하고 있다. 울라 존슨(Ulla Johnson)의 2026 봄 컬렉션에서는 흐르는 듯 유연한 패브릭과 깃털 장식이 포인트였고, 비부 모하파트라(Bibhu Mohapatra) 쇼에는 아이보리색 오페라 장갑과 두꺼운 진주 초커가 등장했다. 라반 무대에 오른 모델들은 풍성한 스커트와 플로럴 프린트 의상을 선보였다. 샌디 리앙 컬렉션에서는 스커트 주머니와 밑단에 더해진 수수한 리본 장식이 눈길을 끌었다. 헤어 스타일리스트 에바니 프라우스토(Evanie Frausto)는 모델들의 머리칼을 벨크로 롤로 말아 얼굴 앞쪽에 동그랗게 말린 곱슬머리 한 가닥이 흘러내리도록 연출했고, 메이크업 아티스트 찰리 리들(Charlie Riddle)은 베리 핑크 크림 블러셔를 얼굴 전체에 발랐다. 리들은 “모든 것이 은은하게 퍼지죠”라고 설명했다. 프로엔자 스쿨러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레이첼 스콧은 브랜드에 더 여성적인 시선을 접목했고, 메이크업 아티스트 파라 호미디(Fara Homidi)는 이 메이크업을 “솜털처럼 포근하다”고 표현했다.

크리스챤 디올 메이크업 크리에이티브 앤 이미지 디렉터 피터 필립스(Peter Philips)는 “조금 더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요”라며 조나단 앤더슨의 디올 데뷔 쇼에 더 자연스러우며 섬세한 표현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이 룩의 핵심은 다수의 날카로운 선으로 강조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이 블렌딩하는 데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시를 읽는 듯하죠”라고 덧붙였다. 필립스는 해 질 녘 에펠탑의 실루엣, 이른 아침 파리를 질주하는 모습, 미국의 시대극 로맨스 드라마 <위험한 관계>에 등장하는 미셸 파이퍼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발그레한 볼,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 그리고 금방 복숭아를 먹은 듯 윤기 나는 입술로 이를 표현했다.
패션 역사가 세레나 다이어(Serena Dyer)는 “역사적으로 세상이 산업화되고, 각박해지고, 두려운 느낌이 들 때 패션은 종종 부드럽고, 역사적이며, 지나치게 감성적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라고 말한다. 로맨틱 뷰티는 막연하게 퍼져 있는 재앙과 세계적 혼란으로부터 안식처를 제공하고 순수한 자연에 대한 환상을 즐길 기회를 준다. 패션 공과대학교 FIT 박물관의 콜린 힐(Colleen Hill) 큐레이터는 “19세기 초 낭만주의는 부분적으로 자연을 찬양하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자연 속에 있으면서 건강한 혈색이 도는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분명 그런 맥락의 일부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에 둘러싸이다 보니 디올 메이크업 아티스트 제이미 쿰스(Jamie Coombes)에게 메이크업을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추럴 메이크업도 진한 화장만큼 복잡해요.” 쿰스는 약 500가지 제품이 들어 있는 여행 가방을 들고 3층 아파트까지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그는 꼬박 30분 동안 미셀라 워터로 내 피부를 정돈하고 여러 가지 브러시로 보습 크림과 세럼을 톡톡 두드려 발라주었다. 그에 따르면 피부가 과열되는 것을 방지하고 내 피부 위에서 ASMR을 들려주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다음에야 파운데이션 뚜껑을 열었다. 이어 부드러운 황금빛 아이섀도를 바르고 마스카라를 칠했다. 블러셔를 꺼내는 순간, 나는 살짝 당황했다. 그는 위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볼 중앙(이미 붉어진 부분)이 아니라 광대뼈 위쪽, 눈 가까이에 발라야 한다고 했다. 결과는 원래 모습 그대로인 듯 보였지만 좀 더 예뻐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의 ‘파리(Paris)’ 필터를 씌우거나 르누아르가 그린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허리를 더 꼿꼿이 세우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쿰스는 내가 큐피드 같다고 말했다.
큐피(Kewpie) 인형 코스프레 같은 분위기가 날까 봐 걱정됐다. 그래서 나는 나누슈카(Nanushka)의 하운즈투스 패턴 바지와 마쥬(Maje)의 블랙 부츠, 베를린의 한 유니섹스 매장에서 산 크롭트 톱을 포인트로 균형 잡힌 옷차림을 하고 대학 동기 모임에 나갔다. 술집에 도착하는 순간 민망함이 밀려왔다. 15년 전, 이 친구들을 처음 만난 이후 메이크업 스타일을 바꾼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공들인 얼굴을 가리키자 친구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 유심히 쳐다봤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도 참 힘든 일이었다.
부슬부슬 비 내리는 런던 동부를 걸어 친구 니콜의 집까지 가는 동안 내 화장은 멀쩡했다. 모두가 내 볼 터치를 칭찬한 후, 니콜이 만들어준 독한 마티니 한 잔을 마시고 릴리 알렌(Lily Allen)에 대한 열띤 토론에 빠져 내 얼굴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렸다(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화장을 받으면 얼른 지우고 싶던 다른 때와는 너무 달랐다).
솔직히 말하면, 그 화장을 받은 후 블러셔를 일상 메이크업 루틴에 포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몇 가지 제품은 내 파우치에 자리를 꿰찼다. 그중 하나가 빅토리아 베컴의 ‘아이웨어 롱웨어 아이섀도 스틱’의 반짝이는 핑크색 셰이드 #발레다. 눈꺼풀에 쓱쓱 바르면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로맨틱 뷰티는 단순히 불안감에서 벗어나는 것뿐 아니라 성인이 일상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로부터 도피처를 제공했다. 다른 하나는 겔랑의 ‘키스키스 비 글로우 오일’이다. 이 제품은 유기적인 곡선이 돋보이는 용기에 담겨 있다. 그 안에는 편안함을 주는 요소가 있다. 약간 엉성하고, 약간 유치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글로스를 바른 건 중학교 1학년 때 이후 처음인 듯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사물함을 꾸미던 어린 시절 추억이 되살아났다. 도서관 구석에서 혼자 공부할 때 바르는 건 왠지 사치 같았다. 몇 시간만 지나면 사라질 거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도 나 자신을 아끼는 작은 행위처럼 느껴진다. VK
- 뷰티 에디터
- 신서영
- 글
- Alice Robb(미국 작가, 저널리스트)
- 사진
- Otto Masters, GettyImagesKorea
- 프롭
- Kiara Gour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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