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연기와 이별한 사연에 대하여
매캐한 담배 연기를 낭만이라 여기던 일상과 이별한 사연. 금연 후 한층 맑아진 목소리로 온갖 낭독회를 기웃거리며 잊고 있던 꿈을 되찾았다.

여름의 태양이 이글거리기 시작한 6월 말 일요일 오전 11시, 친구와 홍대 골목의 어느 게스트하우스 앞에 서 있었다. 외국인들이 여행 가방을 끌며 오가고, 발밑에는 담배꽁초가 군데군데 깔려 있던 길에서 우리는 각자의 담배 파우치를 꺼냈다. 친구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우리 담배 끊자.” 나는 대답했다. “그래, 좋아!” 사실 별생각이 없었다. 싫다거나 ‘왜?’라는 물음이 더 이상하게 느껴져서 한 대답이었다. “한 대씩만 더 피우고. 이게 마지막이야.” 친구가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럴까?” 이번에도 별생각이 없었다. 우리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을 찍었다. “이제는 끊어야 할 것 같아. 술과 담배 중 하나는 그만해야지. 피곤해서 죽을 것 같다. 어제 너무 많이 피웠어.” 전날 친구를 집에 초대해 황혼부터 새벽까지 우리만의 파티를 벌인 참이었다. 맥주와 와인과 넷플릭스와 냉장고 뒤지기가 이어졌으며, 지하철 막차 걱정은 잊고 약간의 질펀함과 충분한 해방감이 넘실대는 걸스 나이트였다. 그 밤 내내 우린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갯짓을 교환하며 바깥으로 나갔다. 여름밤의 포근하면서도 서늘한 공기 속에 ‘후’ 하고 내뱉는 연기에 고민과 시름과 불안이 훌훌 날아갔다. 그런 다음 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콩나물국을 배달시켜 먹고 난 뒤 친구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면서 후미진 골목에 들어가 주말 파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담배를 피운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친구는 담배를 끊지 않았고, 나는 끊었다. 친구 따라 기획사에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정작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한 것은 내가 된, 얼떨떨하고 행복한 사연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 전까지 굳이 담배를 끊지 않은 이유는 흡연량이 적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균 하루에 두세 대를 피우고, 주말에는 거의 피우지 않으며, 술 마실 때만 몇 개비 더 피우는 편이었기에 담배 한 갑을 사면 일주일 혹은 열흘씩 갖고 다녀 담뱃갑이 너덜너덜해지기 일쑤였다. 흡연자가 설 자리가 점점 더 줄고, 담배에 집착하고 의존하는 것이 불편한 적은 있었지만 그래도 헤어질 결심으로 나아가진 않았다. 번역이라는 외롭고 진 빠지는 작업을 위해서는 매번 일정한 수준의 위로와 평안을 건네는 이 의리 있는 친구가 필요할 때가 많았으니까. 여태껏 100권 넘게 마감했는데도 번역은 매번 새롭게 어렵고 고되고 지난한, 출구가 없는 동굴 같았고 무기력과 우울까지 겹친 날에는 작업실 가기 전에 기댈 것이 있어야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 담배의 힘을 빌려 작업실에 도착하기만 하면 계획한 분량의 일을 하면서 재미와 의욕을 되찾곤 했다. 집중력이 떨어진 오후 4시 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공기를 쐬면서 몇 번만 연기를 내뿜으면 풀리지 않던 에세이의 마지막 문장이 그려지고 고민했던 단어가 떠올랐다. 담배는 영감과 같은 말이야. 글 쓰는 여자와 담배. 번역가와 담배. 그다지 나쁘지 않아. 크게 탈 나지 않아.
심지어 검진상에서도, 체감상으로도 건강에 (아직) 이상이 없었다. 주말마다 5km 정도는 가뿐히 뛰고, 10km 마라톤 대회도 정기적으로 출전한 영향이 있었나? 5년 동안 거의 쉰 적 없이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요가를 했다. 술은 즐기는 편이었지만 절제할 수 있었다. 중간에 금연 기간이 길었기에 스모크 프리(Smoke-free)의 자유로움이 뭔지도 잘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때가 된 것도 같아 이왕 말이 나왔으니 대단한 결심이나 의지 없이 한번 해보자 싶었다. 어찌 될지 모르지만 시도는 해보자. ‘Give it a try!’
보건소 방문이나 금연 보조제의 도움은 어쩐지 귀찮게 느껴졌기에 ‘큇나우(QuitNow)’라는 금연 앱만 다운받았다. 첫날과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하루 종일 담배 생각이 나 애가 탔다. 설상가상으로 몇 차례 큰 위기가 찾아왔는데, 금연 결심 첫 주에 시작된 장마가 특히 그랬다. 담배와 함께해온 기나긴 세월 속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 있다면 비나 눈이 동반된 끽연이었으니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오후에 혼자 산책을 하다가, 한겨울 함박눈이 쌓인 공터에 서 있을 때 느긋하게 태우는 담배가 선사하는 낭만과 고독과 호젓함을 놓치기 싫었다. 이번에도 여름밤의 그치지 않는 빗소리가 나를 그 촉촉한 감성의 세계로 이끌었으나 한 번 참으니 두 번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런 후 달리기하는 작가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호프집에서의 뒤풀이가 무르익을 무렵 흡연자인 편집자와 일러스트레이터가 서로 사이좋게 나가는 뒷모습을 목을 길게 빼고 쳐다보았다. 나도 데려가줘. 저들과 같이 길가에 서 있고 싶어!
금연 2주 차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울컥 짜증과 분노가 올라왔고 급격히 우울해지는 시기도 찾아왔다. 감정 기복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내동댕이쳐지기 직전이었고, 한번은 친구에게 전화해서 일주일 전 만났을 때 서운했던 일에 대해 따지기도 했다(이후 금단증상의 일부였다며 사과했다). 금연 3주 차는 검색창에 ‘금연 3주 차 증상’이라 치고 공감될 만한 사연을 찾아 읽으면서 버텼다. 그렇게 한 달을 넘겼을 때 이대로 성공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담배를 끊었다고 당당하게 선언하기 시작했고, 편집자와 작가와 번역가 친구들의 금연 체험을 수집했다(역시 이 업계에는 동지가 많다). 금연 후 어쩌다 담배를 다시 피워도 맛이 없기 때문에 저절로 끊게 되더라는 경험을 듣고 계속해서 버텨보고 싶어졌다. 다행인 것은 흡연욕은 강렬하게 솟구치긴 하지만 빈도도 줄어들고 무엇보다 욕구가 지속되는 시간이 무척 짧았다는 것이다. 나쁜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져 심란하고 혼란스러운 날, 열심히 준비한 북 토크를 망친 것 같은 날, 그럴 때면 나를 말없이 달래주던 옛 연인이 그립기도 했지만 그래도 딱 5초만 참고 다른 생각으로 돌리면 잊혔다. 나는 생각보다 매정했고, 칼같았고, 미련 따위 두지 않는 멋진 사람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00일이 지났다. 금연의 장점이 새록새록 체감되는 순간이 있었지만 극적인 변화를 겪은 것은 아니었다. 피부가 맑아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됐을 때에도 피부는 관리의 문제라고 여겨 크게 귀담아듣지 않았다. 러닝할 때 아무래도 숨이 덜 차다고 느끼긴 했지만 기록이 일취월장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연초 담배를 방금 피우고 온 사람에게서 나에게는 결코 나지 않길 바라는 냄새를 확연히 느꼈다. 아침마다 외출하기 직전 현관에 진열된 향수를 계절과 날씨에 따라 바꿔가며 뿌리는데, 그 향기가 결코 오염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흡족했다. 보디 로션과 혼연일체 되는 산뜻한 기쁨도 만끽했다. 음식점이나 카페에 가면 두리번거리며 흡연 구역부터 찾고, 대화의 행간에서 담배 피울 틈을 엿보던 습관도 사라졌다. 가방과 주머니가 가볍고, 외출하기 간편해졌다. 새벽에 깨지 않고 잠을 푹 자는 날이 늘었다. ‘금연’ 팻말 앞에서 눈치 볼 일 없이, 구차해질 일 없이, 아직도 나의 과거 흡연 사실 자체를 모르고 계신 부모님 앞에서 떳떳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깨닫게 됐다. 자존감도 상승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내 일상에 더 큰 활력을 가져온 것이 있었으니, 금연을 시작한 순간에는 결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목소리였다. 나는 목소리가 꽤 좋은 편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서부터 깨닫게 된 매력이다. 저음까지는 아니지만 음성이 높지 않고, 온화함이 밴 성숙한 여인의 목소리라고 부끄럽지만 묘사해본다. 담배를 끊고 난 후 몇 개월이 지나면서 목이 칼칼하거나 따가운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어로는 ‘Clear the Throat’라고 하는, ‘큼큼’ 하면서 목을 가다듬는 일이 사라졌다. 미세하게 허스키하게 변해가던 목소리가 다시 미세하게 맑은 소리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톤이 F# 장조에서 G장조로, 반음 정도는 확실히 높아진 것 같기도 했다. 피부로, 아니 귀로 매일 느껴지는 변화였다.
초등학생 때 나는 국어 시간이나 사회 시간이면 ‘제발 선생님이 나를 지목해서 책을 읽으라고 시켰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아이였다. 함께 방송을 했던 황정민 아나운서는 초등학교 때 낭랑한 목소리를 칭찬받으며 아나운서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하던데, 나는 그 정도로 주목받지는 않았지만 반 친구들을 조금은 더 집중하게 하는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고 자부한다. 대학 졸업 후 KBS 라디오 2FM에서 방송 작가로 활동했는데, 내가 속해 일하던 <유열의 음악앨범>에 ‘동화 읽어주는 남자’라는 코너가 있었다. 당시 막내 작가였던 나는 라디오 부스에 들어가 단역을 연기했다. 대사는 한 줄일 때도, 열 줄일 때도 있었다. 내 목소리나 연기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딱히 할 사람이 없어서 주어진 역할이었지만 영광스럽게 여겼고 가능한 한 많이 맡고 싶었다. 잘하고 싶었다. 번역가가 된 후에 수년을 묵언 수행을 하며 책상에서만 일하던 중에 한 출판사에서 어떤 일본 작가의 에세이를 일부 낭독해서 음원을 보내면 오디오 북 낭독 기회나 소정의 상품을 준다고 해서 지원한 적도 있었다. 연락은 없었다. 또 다른 출판사의 유명 작가 소설을 작업실에서 마이크까지 설치해 몇 번이고 읽어서 음원을 보냈다. 이번에도 무소식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갈망이 있었다.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갈망. 낭독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 내 목소리의 쓰임새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기왕이면 내가 쓴 글을 누군가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고 싶은 마음. 큰 욕심은 아닌 것 같았지만 기회가 오지 않고 자신도 없었던 일. 유튜브라도 해볼까 싶어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아이폰으로 녹음을 해본 적도 있긴 했다. 누구에게 들려줄 용기는 없었지만 두 번 정도 읽은 책의 글귀와 흰 페이지를 비추던 창가의 햇살까지 기억하고 있다.
작년에 담배를 끊고 목 상태가 이전보다 좋아졌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 자주 다니던 동네 책방에서 전문 성우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낭독하는 모임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열 명 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맥베스>를 돌아가며 읽었는데, 나는 학창 시절로 돌아가 내 차례에 대사가 적을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맥베스>의 유명한 대사인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일 뿐.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고 종종거리고 돌아다니지만, 얼마 안 가 잊히고 마는 불행한 배우일 뿐. 인생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와 같아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엔 아무 의미도 없도다”를 주변 공기를 의식하며 최대한 천천히 읽어 내려갈 때의 희열이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가 난 후에는 또 다른 동네 책방에서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낭독 모임 공지가 올라왔다. 서둘러 신청했고, 어느 가을 금요일 저녁 빙 둘러앉아 한강의 시를 한 편씩 낭독했다. 모임을 이끈 이상엽 아나운서의 시 낭독은 황홀했는데, 타고난 목소리도 분명 중요하지만 속도와 강약과 감성이 낭독의 맛을 살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을 소리 내 읽고 싶다는 욕구는 점점 더 커졌다. 나의 번역서와 내 글을 좋아하는 친구가 우리 집에 오면 내 번역서를 한 권씩 가져다 서너 페이지 정도 읽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혹은 고전을 빌려서 침대맡 스탠드를 켜놓고 혼자 침실에서 읽어 내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안나 카레니나> 1권의 70여 페이지까지를 소리 내어 읽었고 신형철과 박완서의 글도 읽었다. 소리 내어 읽은 텍스트는 손으로 매만지듯 더 감각적으로 다가와 내 몸 어딘가에 더 오래 살아남았다.
대중 앞에서 낭독하는 기회도 찾아왔다. 송섬별 번역가와 함께 했던 레슬리 제이미슨의 <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 북 토크에서는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단을 낭독하면서 마무리했는데, 신중하게 고르고 연습도 한 뒤 최선을 다해 낭독했다. 작가가 강조하려는 메시지에 내가 느낀 감동을 담아 또렷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 북 토크에 관객으로 참여한, 나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지만 끝내 담배를 끊지 못한 친구가 내 목소리를 칭찬했다. “나 담배 끊고 다른 건 몰라도 목소리는 좋아졌다니까. 그렇지 않니?” 나는 화답했다. 온갖 고초를 겪은 후에 가까스로 목소리를 찾은 인어 공주라도 된 양 감격한 말투로. 이런 기회를 가끔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번역하고 글을 써야겠다고도 다짐한 밤이었다.
실은 담배를 끊지 않았어도, 이전부터 낭독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취미로 삼거나 기회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친구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나 혼자 있을 때 몇 페이지 정도 소리 내어 읽는 건 언제든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금연을 시도했고, 나름대로 성공을 했고, 근거가 있건 없건 목소리가 좋아졌다고 느꼈기에 이 활동에 한 스푼 정도 자신감이 더해진 건 사실이다. 언젠가 내가 쓴 책의 오디오 북을 녹음해보고 싶은 꿈도 있는데,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내 안의 목소리가 내게 다음과 같이 속삭일 것이다. 나는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이 맞다고. 왜냐하면 갖고 태어난 것을 소중하게 아끼고 관리해서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내가 더 이상 골목 구석에서 담장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앞으로도 그 중독 생활이 재개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도 없다. 내게는 분명 중독에 취약한 구석이 있고 이 외의 다른 나쁜 습관들 또한 내 책상 위 포스트잇처럼 나의 육신과 영혼에 여전히 덕지덕지 붙어 있으며, 그것들이 알아서 스르르 떨어지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를 스쳐간 모든 중독과 집착과 사랑과 결핍과 애증에 대해 기록해보고 싶고 이제는 그 기록에도 집착하는 중이다. 스티븐 킹도 말하지 않았나. “강박적인 요소가 어떤 사람을 작가로 만드는 데 우선적으로 기여합니다. 그 모든 것을 글로 적게 만드니까요.” 이제 글을 쓰고 싶은 것으로도 모자라 목소리까지 들려주고 싶어 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나 역시 이제까지 동경했던 수많은 작가들처럼 표현하고 드러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인간임을 인정한다. 그런 사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고운 새틴 원단으로 크리스털 구슬을 공들여 닦아내듯이 아무리 작은 재능이라도 정성스럽게 갈고닦아서 진실하고 투명하게 보여주고 싶다. 노지양 번역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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