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한 물건의 심리학
미니멀리즘이 만사형통은 아니다. 여전히 비워내지 못한 물건과 쓰레기 틈에 숨은 진짜 욕망과 해법을 정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낱낱이 파헤쳤다.

2012년에 인류학자 캐리 M. 레인(Carrie M. Lane)이 정리 전문가라는 직종을 연구하고 있다고 선언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샐리 필드(Sally Field)가 연기한 인물 노마 레이(Norma Rae)가 공장 바닥에서 ‘노조(Union)’라고 쓴 팻말을 들고 있던 영화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레인이 연구한 대상은 공장 바닥보다는 지하실 바닥에서, 자식을 출가시키고 홀로 남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을 처분하는 사람에 더 가까웠다. 레인이 만난 어느 정리 전문가는 자신의 의뢰인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 일을 떠올렸다. “이 장난감이 원하는 것은 뭘까요? 이 장난감은 어디에 있을 때 가장 큰 행복과 보람을 느낄까요? 이 짐 더미 밑에 깔려서 먼지를 뒤집어쓴 지금 과연 행복하다고 느낄까요?” 그로부터 10여 년 후 <예쁜 상자 그 이상: 전문 정리의 부상, 잘못된 삶의 방식을 증명하다(예쁜 상자 그 이상)(More Than Pretty Boxes: How the Rise of Professional Organizing Shows Us the Way We Work Isn’t Working)>이라는 책을 써낸 레인은 이제 정리 전문가가 대체 어떤 직업인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게 됐다. 출판계에 정리법 관련 책이 넘쳐날 정도로 정리 전문가라는 직업 역시 모두에게 익숙한 단어가 됐으니 말이다.
정리에 관한 책 리스트의 맨 꼭대기에는 곤도 마리에가 쓴 <곤도 마리에 정리의 힘>(2020)이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할 것이다. 마리에는 자신만의 정리법을 공개하며 모든 사물에는 ‘가미(Kami)’, 즉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철학적 관념을 전파했다. 그에 따르면 양말은 공처럼 말아서 보관해선 안 된다(“그렇게 해두면 양말이 정말 휴식을 취할 수 있을까요?”). 마리에는 독자에게 어떤 물건을 버릴지 결정할 때 스스로에게 “이것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하나?”라는 질문을 해보라고 조언한다. 그의 책은 미국에서만 1,400만 부가 팔렸으며, 그의 정리법을 조명하는 넷플릭스 시리즈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도 제작되었고, 사람들 사이에서 극도의 짜증(“이것이 과연 혁명이라고 할 만한가?”라며 패러디한 페이스북 글을 본 적 있다)과 더불어 비우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또 다른 베스트셀러인 마르가레타 망누손(Margareta Magnusson)의 <내가 내일 죽는다면>(2017)도 언급할 만하다. 망누손의 정리법은 스웨덴식 개념인 ‘되스테드닝(Döstädning)’에 기반하는데, 이는 내가 죽고 난 뒤 내 물건을 정리해야 할 가족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미리 짐을 정리한다는 개념이다. 망누손은 “당신 가족이 당신에 대해 나쁜 기억이 아니라 좋은 기억만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줄게요”라고 아주 직설적으로 설파했다. 팬데믹이 한창일 때, 집 안 정리는 미국인이 가장 즐기는 취미가 됐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시기를 대공황에 빗대어 ‘대비움’이라고 표현했다.) 그렇게도 수학을 싫어하던 미국인들이 갑자기 4박스 정리법(각 방의 모든 물건을 ‘놔둘 것’ ‘나눔할 것’ ‘버릴 것’ ‘다른 곳에 보관할 것’이라고 적힌 상자 네 개로 정리하는 방식), 20/20(20분 안에 20달러로 대체해 넣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버리기)’, 하나 들이면 하나 빼기(새로운 물건 하나를 들이면 갖고 있던 물건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2020년에 넷플릭스가 <The 정돈된 라이프>를 공개했을 때, 어느 비평가는 이를 “2020년의 가장 2020년다운 쇼”로 평가했다. 이 쇼에는 물건을 무지개색별로 정리하는 방식인 ROYGBIV 정리법(빨주노초파남보 정리법)을 신봉하는 미소를 가득 머금은 출연진이 대거 등장한다. 미니멀리즘을 기대하고 시리즈를 재생했을 모든 시청자에게 “물건이 좀 많아도 괜찮아”라고 안심시켜주는 확실히 미국스러운 쇼였다. 물론 별도 보관 창고를 마련해 그곳에 물건을 보관한다는 전제 아래 건넨 조언이었지만 말이다. 한때 청소와 이사 과정에서 부수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비우기는 미국 대중문화에서 어느새 중요한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미스터리 소설가 메리 제인 마피니(Mary Jane Maffini)는 ‘치명적으로 지저분한 사건’을 해결하는 정리 전문가가 등장하는 시리즈 <어수선한 시체(The Cluttered Corpse)>나 <죽음은 지저분한 책상을 좋아해(Death Loves a Messy Desk)> 같은 소설을 펴냈다. 영화 <크리스마스 인 디 에어>(2017)는 너무나도 바쁜 싱글 대디가 예쁘지만 지나치게 ‘깔끔 떠는’ 정리 전문가를 고용하면서 함께 짐을 비우다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남자 주인공은 예고편에서 “그의 일상을 정돈해주는 그 여자, 진정한 사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걸 증명하는 그 남자”라는 문장을 감미롭게 읊조린다. 다른 여러 시트콤에서도 집 정리에 관한 에피소드는 빠지는 법이 없다. <빅뱅이론>에서는 셸든의 정리 강박이 계속 등장하고, <모던 패밀리>에서는 완벽주의 성향을 지닌 클레어가 남편과 아이들에게 집 정리를 시키는 에피소드에서 스스로를 ‘잡동사니 아줌마(Mrs. Clutterworth)’라고 자학한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가 비우기를 원하는 건 아니다. 무슨 영문인지 정리 전문가들은 활기찬 기질과 ‘기부하세요’라고 적힌 발랄한 스티커를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 양극화된 여론의 중심에 놓여 있다. <디 애틀랜틱>의 한 칼럼니스트는 마리에가 어쩌면 트라우마 같은 반응으로 물건을 붙들고 사는지도 모를 난민을 배려하지 못한다며 비난했다. 또한 정리 전문가들이 집에서 스스로를 ‘나’답게 해주는 물건을 비우라고 장려함으로써 개인의 창의성을 해친다는 비판도 거세다. “잡동사니로 어지러운 책상이 어수선한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텅 빈 책상은 무엇을 의미하겠나?”라는, 정말 아인슈타인이 남긴 게 맞는지 의심스럽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명언도 한동안 SNS에서 이슈가 되었다. 마리에가 설렘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책은 버리는 게 좋다고 추천했을 때, 그것은 미국 시민사회나 최소한 영화 <유브 갓 메일>(1998)을 사랑한 모든 이들의 금기를 건드렸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 발언은 어마어마한 반발을 일으켰고, 결국 마리에는 책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발표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쓰레기 처리에 대한 논의는 학계로도 이어졌다. 학자 스콧 헤링(Scott Herring)은 20세기 초 도시 분열에 대한 인종차별과 계급주의 이론을 인용해 ‘잡동사니 패닉’이라는 개념을 우생학과 연결 지어 설명했다. 그는 저서 <수집광(The Hoarders)>에서 다음과 같이 되묻는다. “어째서 어떤 물질적인 삶은 칭송받고, 어떤 물질적인 삶은 매도되나? 도대체 누가 그것을 결정하나?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우리 사회에서 욕심이나 과도한 축적은 투자 포트폴리오 같은 더 정돈된 영역에서 훨씬 만연한데도 불구하고 대체 왜 잡동사니를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느냐는 것이다.
레인 또한 그가 ‘정리 산업 단지’라고 이름 붙인 수십억 달러 규모의 집 정리 사업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정리 전문가들에 대한 연구를 막 시작했을 때 나는 그들을 <리얼 심플> 잡지나 물건을 예쁜 상자에 담아 정리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열쇠라고 주장하며 성장한 정리 물품 브랜드 더 컨테이너 스토어의 인간 버전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런 인식은 레인이 현장 조사를 시작한 후 완전히 바뀌었다.
레인은 직접 정리 전문가 과정을 밟기로 하고 관련 훈련 기관에 등록해, 그곳에서 정리 전문가라면 갖춰야 할 무자비함으로 서류를 가차 없이 파쇄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50명 이상의 정리 전문가를 인터뷰하는 것 외에도 조수를 자처해 그들과 함께 현장에서 일했다. 환경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레인은 재활용 비닐봉지로 제작한 드레스만 입는 정리 전문가와 나란히 로스앤젤레스 정리 어워즈 레드 카펫도 밟았다. 정리 관련 시민 위원회 회의에도 참석했다. 정리 전문가, 사회복지사, 소방관이 모여 수집광을 상대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함께 구상하는 자리였다. 또한 레인은 의뢰인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물건도 정리해보았다. 그 과정에서 아들이 어릴 때 입던 옷을 중고로 내놓기 위해 정리하며 ‘가슴에 실제 고통을 느꼈으며’, 읽지 않고 쌓아놓기만 했던 <뉴요커> 잡지 더미를 분리배출할 때는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느낌(정말 이래도 되나?)과 속 시원한 느낌(잘 가라, 부담만 안겨준 것들아)’을 동시에 느꼈다고 고백했다.
연구를 이어가던 중, 레인은 정리 전문가 서비스를 요청한 많은 이들이 그랬듯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수많은 사실을 발견했다. 그중 하나는 정리 관련 직군이 대부분 더 높은 급여 혹은 더 많은 유연성을 제공하는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에게 자영업의 어려움은 끊임없는 정리 해고의 위협보다 훨씬 견디기 수월한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서비스를 신청하는 의뢰인들은 이들에게 무척 익숙한 존재들이었다. 바로 직장에 다니면서도 여전히 집을 정리할 임무를 떠안고 살아가는 여자들, 정리 전문가들 역시 한때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버겁지만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그 부채감을 매일같이 감당하며 살아가는 여자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애초에 그 모든 고생과 자기희생을 헛되지 않게 해줬어야 마땅한 일회용 소비재의 바다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레인은 정리되지 않은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불안정한 태도, 충족감을 느끼지 못할 때 우리가 스스로에게 채워 넣는 것들, 예쁜 상자에서 꺼낼 시간조차 없는 물건을 계속 사게 되는 기현상이 모두 뒤섞인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존재로서 그들을 관찰했다.
산업화로 잔뜩 양산된 잡동사니 이전에는 싸구려 장식품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는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 탓인 게 거의 분명하다. 당시에는 쓸모없는 수집품으로 가득한 집이 산업화로 누릴 수 있게 된 사치를 전시하는 세련된 집으로 여겨졌다. <하퍼스 바자> 같은 잡지는 한가롭게 앉아서 실내장식에 신경 쓸 돈과 여유를 갖춘 이른바 ‘응접실족’의 비위를 맞춘 기사를 게재하기 위해 애썼다. 외모에 신경 쓰는 여성이라면 개처럼 생긴 도어 스톱이나 갖가지 깃털, 조개껍데기, 말린 꽃, 헤어피스(다양한 인모로 만든 장식 중에서 이왕이면 땋은 것을 선호했다)를 살 법하기 때문이다.
이런 응접실 문화를 비판한 사람들은 영국 사회주의자이자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미술공예운동을 일으킨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에게 영감을 받은 개혁가들이 많았다. 모리스는 쓸모없고, 무엇보다도 보기 흉한 대량생산 장식품 때문에 진짜 예술이 집 밖으로 밀려났다고 역설했다. 그의 생각은 혁신주의 시대가 태동할 무렵 미국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대중이 소박함과 절제(당시 금주운동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었다)를 거의 종교 수준의 열정으로 강조하던 시기였다. 소설가이자 사회 개혁가 샬롯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은 <여성과 경제학(Women and Economics)>(1898)에서 여성이 소유물의 무게에 짓눌려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성 가정부가 “자신의 한정된 거주 공간을 한정 없는 물건으로 가득 채웠고, 그 사람의 일은 그 물건의 시중을 들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고, 여성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모든 물건을 버리고 현대의 간소화된 미학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새로운 압박을 마주했다. 반(反)장식주의자였던 샬롯 웨이트 칼킨스(Charlotte Wait Calkins)는 저서 <주택 계획 및 가구 제작 과정(A Course in House Planning and Furnishing)>(1916)에서 “소파 쿠션 위에 놓는 사진 같은 물건은 전부 부적절하다. 장미 가시, 테니스 라켓, 파이프, 깃발, 인디언 머리 같은 것들 위에 머리를 기대선 안 될 일”이라고 썼다.
현대 여성은 정리정돈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많은 여성이 비서나 ‘오피스 와이프’로서 사무직에 진출하기 시작했을 때, 덜 지저분한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과 다름없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는 “여성의 손길이 사무실의 지저분함을 말끔히 없애다”라는 헤드라인이 실렸다. 하지만 전후 찾아온 제조업 호황은 미국 주부들에게 또 다른 딜레마를 안겼다. 주부들은 집에서 자잘한 장식품을 싹 치워야 한다는 듯한 압박을 느꼈지만, 밖에서는 트랜지스터 라디오, 재봉틀, 믹서 같은 새로운 종류의 물건이 계속 눈에 밟혔다. 이제 거실로 변한 과거의 응접실에서도 신문물인 텔레비전에 나오는 광고 덕분에 계속 소비의 압박을 받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장식품 역시 다시 당당히 집 안으로 귀환했지만 여자들은 오피스 와이프 역할을 도맡느라 너무 바빠서 그것들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1960년대에 미국인들이 야드 세일(집 앞마당에 여는 중고 장터)이라는 걸 고안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20세기 내내 사람들은 아직 비움과 정리를 외부에 위탁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대체 누구에게 위탁한단 말인가? 레인은 “보수를 받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정리하는 사람은 늘 존재해왔다. 무급으로 일하는 주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집사, 하녀, 가정부, 비서, 경영 컨설턴트,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경우에 잡다함을 비우고 정리하는 것은 그 직업에 수반된 수많은 업무의 ‘일부’였지, 직업은 아니었다.” 1974년이 되어서야 집 정리 전문가라는 직업이 지면을 통해 공개적으로 알려졌다. 그해 9월 <타임스>는 보수를 받고 부엌 캐비닛부터 서류 캐비닛에 이르는 모든 것을 정리해준다는 스테파니 윈스턴(Stephanie Winston)이라는 여성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기사 헤드라인은 “골치 아픈 지저분함을 말끔히 없애주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1978년 윈스턴이 첫 번째 저서 <정리하기(Getting Organized)>를 출간했을 때 그를 다시 소개하면서 “윈스턴은 글보다는 사람들의 생활을 정리하는 게 훨씬 더 수익성이 높다고 밝혔다”는 식의 글을 실었다. (당시 윈스턴의 보수는 하루 200달러였다.) 윈스턴은 정리 일의 유일한 어려움은 이 일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라는 것을 밝혔다. 의뢰인 중 한 명이 “개념이라고 볼 수 없었던 일을 사업화했다”며 칭찬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레인이 인터뷰한 또 다른 정리 전문가 스탠돌린 로버트슨(Standolyn Robertson)도 경력 초기에 자신이 정확히 어떤 일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로버트슨은 1970년대 플로리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다음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질문을 받았다. “이런 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죠.” 그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로버트슨이 예를 들면 부엌 정리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누군가 그건 그냥 아내가 되고 싶다는 말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로버트슨은 다시 설명해야 했다.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일이 다 끝나면 집에 가는 그런 일로서 대하고 싶다고요’라고 말했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이었죠.”
<워싱턴 포스트>가 윈스턴을 최초의 정리 전문가라고 명시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시작한 여성은 더 있었다. 그중 하나는 남편이 비영리단체에서 일한 탓에 아이 셋을 키우기에는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던 워싱턴 D.C.의 주부 바바라 헴필(Barbara Hemphill)이었다. 헴필은 “식탁 위에 서류가 한가득 쌓여 있어서 몇 달 동안 식탁에서 밥을 못 먹고 있다거나, 영수증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해 소득세 신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정리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신문에 7달러짜리 광고를 냈을 때, 맨 처음 연락해온 사람들은 딴 수작을 거는 남자들이었다. 그때까지 파일 정리를 위해 사람을 고용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헴필의 광고가 다른 뭔가를 은밀히 돌려 말하고 있다고 여겼다. 1975년, 맥신 오데스키(Maxine Ordesky)는 잡지 <로스앤젤레스>에 스스로를 ‘창의적인 정리 전문가’라고 소개하는 광고를 실었다. 그리고 연락한 남성에게 오데스키가 자신의 보수를 말하자 남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말 그것만 받는 게 맞다면 당신은 제가 생각하는 그런 일을 하는 분이 아니군요.”
역사적으로 정리는 가족을 위한 봉사의 일환이자 주로 여성에 의해 집 안에서 행해지던 일이었다. 레인은 말한다. “이와 같은 세 가지 특징은 새롭게 알려지기 시작한 직군이 인기를 끌기에는 썩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요소가 아니었다.” 정리 분야의 선구자들은 그들이 하는 일이 엄연한 직업이며, 그에 걸맞은 보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인식을 높이기 위해 그들이 잘하는 일을 했다. 바로 조직(Organizing)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1984년, 캘리포니아에서 여러 여성의 주도로 정리 전문가 협회가 결성됐다(후에 설립된 전국 정리 전문가 협회의 전신이 되는 조직이다). “이 끈기 있는 여성들은 캘리포니아 업종별 전화번호부 담당 기관과 3년이나 씨름한 끝에 전화번호부에 ‘정리 전문가’ 항목을 만들어냈다.” 레인의 증언이다.
윈스턴과 다른 정리 전문가들이 일으킨 여론은 사람들이 정리를 커리어로 받아들이는 데 일조했다. 1980년대 초, 두에인 엘진(Duane Elgin)의 대표 저서 <단순한 삶>(2011) 같은 출판물과 함께 미니멀리즘 미학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칭송하는 운동이 급부상했다. 그러나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던 1980년대에 깔끔하고 정돈된 삶은 인기를 얻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미니멀리즘을 주장했던 완다 우르반스카(Wanda Urbanska)는 잡지 <O>에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처음 하기 시작한 1992년에는 사람들이 저를 정신 나간 광신도로 여겼어요.” 그리고 Y2K 트렌드가 처음 등장할 때쯤, 사람들은 지난 세기말에 그랬던 것처럼 짐을 비워 새로운 문화와 미래를 위한 공간을 창조하고 싶어 했다. 2000년에는 잡지 <리얼 심플>이 ‘삶의 모든 면을 단순하게 정리하는 아름답고 실행 가능한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등장했다. 이 잡지는 창간되기도 전에 15만 명의 구독자를 끌어모으며 이슈가 되었다. 추정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제자리에 놓이지 않은 가정용품을 찾느라 매년 평균 2.5일을 허비한다. 또한 주택 보유자의 3분의 1 이상이 차고가 잡동사니로 가득 차서 주차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밝혔다. 또한 미국인 중 11%는 창고를 임차해 쓰고 있다. 레인은 “현재 미국에 있는 물품 보관 시설의 수는 스타벅스, 맥도날드, 던킨도너츠, 피자헛의 모든 지점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1973년 약 139㎡였던 일반적인 미국 주택의 규모가 2023년에는 약 205㎡로 커지면서 발생한 일이다. 다시 말해, 집은 넓어졌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물건을 둘 공간은 부족해졌다는 이야기다. 자주 인용되는 또 하나의 통계는 평균적인 미국 가정에 30만 개의 물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정확히 따지기는 어렵지만(이 수치는 정리 전문가 레지나 라크(Regina Lark)가 2014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각 가정에 마구잡이로 쌓인 잡동사니의 양을 어느 정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정리 산업의 지지자와 회의론자 모두 소비 지상주의가 이 총체적 난국의 원흉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구입한 물건이 몇 년 만에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 되도록 유도하는 패스트 패션계와 기술은 지구상 천연자원에 대한 지속 불가능한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동시에, 값싼 물건에 대한 물밀듯 몰아치는 수요는 비인간적인 근무 환경을 조장한다. 그리고 정리 전문가들을 향한 비판은 분명 누구라도 이런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어긋난 혐오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정리 전문가들을 과도한 소비를 추구하며 과도하게 많은 돈을 쓰는 ‘부자병’의 연장선에 있는 존재처럼 여긴다. 정리 전문가를 고용할 정도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이 이 지경이 된 원인임을 겨냥하면서 말이다.
레인은 정리 전문가를 고용한 사실이 심각한 사회적 병폐를 내포하는 경우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전 사회계층에서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그만큼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 주목했다. 이들은 너무 바빠서 물건을 정리할 여유가 없을 뿐 아니라, 너무 바빠서 인생을 즐길 여유도 없다. 이들은 소설을 쓰는 대신 몰스킨 노트를 사고, 여행을 즐기는 대신 여행 포인트를 적립한다. 그리고 결국엔 먼지를 뒤집어쓰는 신세에 처할 비움에 관한 책을 산다. (그리고 그걸 찾아내기 위해 정리 전문가를 고용한다.) 정리 전문가라는 직업이 막 자리 잡아가던 시기에, 일부 전문가들은 스스로를 잡동사니 치료사로 소개했다. 레인은 그보다는 ‘자본주의 치료사’라고 하는 게 더 부합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 “정리 전문가는 방대한 소유물을 정리하는 동시에 그 물건에 대한 감정, 그 물건을 다루는 데 소모되는 노동을 정리해나가려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아주 특별한 종류의 치유를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레인의 책 <예쁜 상자 그 이상>에 등장하는 가슴 아픈 사연 중에서 레인이 ‘희망 쇼핑’이라고 일컫는 현상이 있다. 바로 사람들이 ‘먼 미래에 도전해보고 싶은 활동이나 되고 싶은 모습을 상징하는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다. 한 정리 전문가는 지나치게 많은 독일어 학습 카세트테이프를 보유한 의뢰인의 경우를 언급했다. 해당 의뢰인을 맡은 정리 전문가는 어차피 사용하지 않고 있으니 테이프는 전부 기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으나 의뢰인은 단칼에 거절했다. “제가 네덜란드에 있는 국제적 기업에 채용돼서 그곳으로 발령이 나면, 가기 전에 미리 독일어를 공부해야 하거든요. 그러면 정착하기가 훨씬 수월하겠죠.” 그러나 그 남자는 오래전에 은퇴한 상태였다.
또 다른 일화에서, 레인과 함께 근무했던 한 정리 전문가가 회사를 막 관둔 로렌이라는 여자에게 고용됐다. 레인은 로렌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현관문 옆에서 액자가 가득 담긴 쇼핑백 더미를 발견했다. 대부분 가격표도 떼지 않은 것들이었다. 침실로 향하려면 그 액자들을 헤치고 가야 했다. 정리 결과 총 40개가 넘는 액자가 발견됐는데, 종류는 천차만별이었다. 로렌은 이제 퇴사했으니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거고, 언젠가는 그 액자에 자신의 그림을 걸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리 전문가가 그 집에 40개나 되는 액자를 걸 공간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자, 로렌은 몇몇은 친구들에게 나눠줄 거라며 반박했다. 그러나 정리 전문가도 물러서지 않았다. 전문가는 그 친구들의 이름을 포스트잇에 적어서 액자에 붙여보라고 제안했다. 그러자 로렌은 그 친구들은 ‘아직 내 인생에 들어오지 않은’ 친구들이지만 이제 퇴사해서 여유 시간이 많아졌으니 앞으로 생길 거라고 대답했다.
<예쁜 상자 그 이상> 도입부에서 레인은 “이 책은 정리하는 법에 대한 책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힌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책을 읽으며 정리에 관한 팁 한두 개는 얻을 수 있다.) 레인의 책을 읽다 보면 온갖 낭비에 맞서는 정리 전문가들이 옆집 사람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이들은 리얼리티 TV 쇼나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맥없는 영화 속에 묘사된 정떨어지는 완벽주의자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이 엉망이 된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길 바랄 뿐이다. 나는 두께는 얇지만 지적인 면에서 결코 얄팍하지 않은(역시 작은 공간을 넓게 쓰는 법을 깨친 사람답다) 레인의 책을 읽으며 내버려진 쓰레기에 둘러싸여 사는 삶도 어떤 면에서 가치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우리에겐 ‘9 to 6’가 실제로는 ‘8 to 7’이 되어버린 삶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상기시킬 뭔가가 필요한 게 아닐까? 퇴근 후 여가 생활을 위해 구입했지만 한 번도 쓰지 못한 붓 같은 것 말이다. (VL)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글
- JENNIFER WILSON
- 일러스트
- MAX GUTHER
추천기사
-
뷰 포인트
루이 비통의 확장된 '삶의 예술'
2025.05.27by 김나랑
-
아트
우리는 취약한 존재기에 서로 기울지
2025.06.02by 하솔휘
-
패션 아이템
어릴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찍찍이 샌들'이 지금은 예뻐 보이는 이유
2025.06.02by 안건호, Teresa Romero Martinez
-
웰니스
Z세대 음료로 떠오른 말차, 맞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2025.05.30by 김현유, Ranyechi Udemezue
-
뷰 포인트
나는 계속 달리고 싶다
2025.06.06by 류가영, 김나랑
-
아트
텅 빈 눈동자의 소년은 어떤 청년으로 자랐을까, '필요와 불필요 사이의 공간'展
2025.05.22by 하솔휘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