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생존 건축의 시대
점이 선이 되고, 선과 선이 만나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환경 위기에 변모하는 건축부터 전설의 건축가들, 패션을 입은 파사드까지, 세계 각지의 건축 무한 육면각체를 탐방하다.

Ecological Turn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를 그리다 바벨탑을 올리고 도심 마천루 경쟁을 지난 지금, 생존 건축을 도모할 때다.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은 기후 위기에 맞서 변화를 촉구한다.
“바레인관과 스페인관은 꼭 보세요.” 2025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을 앞서 본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가 내게 이렇게 강조했다. 그의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이유는 일본관을 혹평했기 때문이다. “여러 아티스트와 협업한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건축이 보이지 않았어요.” 일본관은 건축가 아오키 준(Jun Aoki)이 큐레이팅을 맡아 AI 시대에 맞서 일본의 마(ま), 즉 사이, 틈, 여백이라는 개념을 설치 작품으로 구현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한국관은요? 그의 대답은 다음으로 미루겠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미술품이 전시된 자리에 올해는 건축이 들어섰다. 옛 조선소이자 무기고 아르세날레와 드넓은 녹지의 자르디니, 베니스 곳곳에선 격년으로 각 나라의 건축전이 열린다. 올해는 66개국이 참여했으며 11월 23일까지 열린다.
2025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은 ‘생존하려면 건축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전시 면면이 기후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극복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큐레이팅을 맡은 이탈리아 건축가 카를로 라티(Carlo Ratti)가 건축전을 소개하기 전 꺼낸 이야기도 기후였다. “지구 온도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로스앤젤레스의 산불, 발렌시아의 홍수, 시칠리아의 가뭄에서 보듯 우리는 맹렬히 공격받고 있습니다. 인간을 이끌어온 지식과 체제가 실패했기에 새로운 사고가 필요해요.” 건축의 태생 목적은 생존이다. 권력을 도모하는 신전이나 연인에게 바친 타지마할도 있지만, 우리는 혹독한 환경에서 나를 보호하고 사냥 나가기 전에 휴식하는 공간을 만들어왔다. 움집에서 아파트로, 사냥에서 출근으로 형태만 달라졌을 뿐이다. 환경 위기를 맞은 지금 ‘지구 생존’을 위한 건축의 고민이 시작됐다.
이번 건축전의 주제는 ‘지성적·자연적·인공적·집단적(Intelligens·Natural·Artificial·Collective)’이다. 다시 말해 자연, AI, 인간의 여러 집단이 상호작용해 기후 문제에 머리를 모아야 한다는 것. 건축가, 엔지니어, 수학자, 기후학자, 철학자, 예술가, 요리사, 작가, 농부, 패션 디자이너 등 750여 명이 참여해 300여 개의 프로젝트를 선보인 다학제 비엔날레였다. 카를로 라티는 이를 포인트로 짚었다. “현시대에 건축은 더 포용적이고 유연하고 역동적이어야 하니까요.”

아르세날레의 본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한여름 고속도로에 서 있는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에어컨 실외기 수십 대가 매달려 후끈한 바람을 내보내고 있었다. 스위스의 기후과학자 소니아 세네비라트네(Sonia Seneviratne), 기후 엔지니어링 회사 트랜솔라(Transsolar) 등이 협력한 설치 작품 ‘Terms and Conditions’다. “앞으로 당신은 이런 공기 속에서 살 겁니다”라는 경고였다. 첫 입장부터 주제가 몸으로 체감됐다. 전시는 참여자 750여 명이란 숫자에서 보듯 무수한 작품과 제안이 숨 쉴 틈 없이 이어진다. 하나하나 살펴보려면 사흘이 모자란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것은 하나였다. 환경!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은 본 전시 외에 각국이 각각의 파빌리온에서 전시를 선보인다. 독일관 역시 이 실외기 설치 작품과 비슷한 구성이었다. 파노라마 화면에 비친 도시가 갑자기 벌겋게 달아오르고 장내 온도도 올라갔다. 전시명은 ‘Stresstest’. 그곳에 5분 정도 있었을 뿐인데 스트레스가 쌓인다. 다행히 맞은편에 시어나무 세 그루를 심어놓은 스트레스 해소방이 있었다. 그들은 익숙해서 잊힌 기후 문제가 생생한 체험으로 각성되길 바랐다.

독일관의 관람객 모두가 고온에 시달렸지만, 사실 지금 기후는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누군가는 시원한 실내에서 일하는 동안, 누군가는 에어컨 실외기가 뿜는 열로 더 뜨거워진 야외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베를린 기반의 건축가 안드레아 파라구나(Andrea Faraguna)는 “쾌적한 기후를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큐레이팅한 바레인 왕국의 ‘히트웨이브(Heatwave)’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기계장치 없이 지열 우물과 파이프를 통해 실내 온도를 낮추는 설치물을 실물 크기의 프로토타입으로 보여줬다. 이미 실험을 통해 초당 200리터의 공기를 냉각해 49도의 온도를 31~32도로 낮췄다. 비엔날레 측은 “실현 가능한 모델이자 평등한 기후라는 주제”에 높은 점수를 줬다. 뙤약볕 아래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비명에 주목해, 쾌적함의 형평성과 공공복지 문제를 거론한 수작이다.

전시 방식이 신박한 국가관은 덴마크였다. 1932년 카를 브루머(Carl Brummer)가 설계해, 1958년 페테르 코크(Peter Koch)가 증축한 덴마크관은 개보수가 한창이었다. 큐레이터 쇠렌 필만(Søren Pihlmann)은 비엔날레 기간에 공사를 멈추지 않고 콘크리트와 돌이 파헤쳐진 바닥을 그대로 공개했다. 건축에서 개보수와 재사용의 중요성을 알린다는 취지였다. 실제 개보수 과정에서 나온 부자재는 다른 공사에 재활용되며, 흙과 아드리아해 어업에서 발견된 폐기물을 혼합해 시공하고 있다. “건축의 미래는 확장뿐 아니라 우리가 이미 가진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있어요.”

앞서 언급한 일본 건축가가 꼭 보라던 스페인관도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맥을 같이한다. 16개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건축물의 재사용, 지속 가능한 로컬 재료를 탐구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보단 기존의 것을 존중하고 개선해야 혁신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지속 가능한 건축 재료에서는 캐나다관과 벨기에관이 인상적이었다. 벨기에관은 건축의 미래는 식물에 달려 있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200여 종의 푸른 식물로 가득해 식물원 같았다. 조경가 바스 스메츠(Bas Smets)와 생물학자 스테파노 만쿠소(Stefano Mancuso)가 공동 큐레이팅한 ‘생명권 구축(Building Biospheres)’ 전시다. 이들은 식물을 단순히 장식 요소가 아니라 능동적인 파트너로 인식하고, 건축은 식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본 친환경 벤치 겸 정원 ’버트(Vert)’가 떠올랐다. 적참나무로 골조를 세우고 꽃과 덩굴나무를 심은 10m의 벤치를 첼시 예술대학 마당에 설치했는데, 주변 온도가 런던의 다른 지역보다 8도 정도 낮아졌다. 열섬 현상 완화에 식물이 얼마나 탁월한지 보여주는 시도였다. “열섬 현상을 해결하려면 나무 심기 말고도 추가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버트 제작자의 말이 생각난다.

캐나다관에 가니 하얀색 실험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외계 생명체 같은 녹색 기둥에 조심스럽게 물을 주고 있었다. 이름하여 ‘피코플랑크토닉스(Picoplanktonics)’. 건축 및 과학 단체인 리빙 룸 컬렉티브(Living Room Collective)는 남세균으로 코팅된 3D 프린팅 기둥을 만들었다. 남세균은 광합성을 해 탄소를 머금고 산소를 만들어내는 원핵생물이다. 캐나다관의 조명, 습기, 온도는 남세균의 성장을 촉진하는 데 최적으로 맞춰졌다. 이들을 활용하면 말 그대로 숨 쉬는 건축물이 가능하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건물이 슬쩍슬쩍 움직이는 상상도 해봤다. 내겐 애니메이션처럼 먼 얘기지만 이 생물을 돌보는 팀원들의 진지한 태도를 보면 상용화가 머지않아 보인다.


영국관이 말하는 환경은 접근법이 조금 달랐다. 식민주의 역사가 환경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며, 반성과 회복 가능성을 말한다. 기획부터 케냐 나이로비 기반의 건축 스튜디오 케이브 뷰로(Cave Bureau)와 함께했다. 먼저 우람한 신고전주의 양식이던 영국관을 케냐 마사이족의 전통 가옥 형태로 꾸몄다. 황토색 외관에 곶감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장식이 독특했는데 마사이 여성들이 직접 만든 구슬이었다. 전시 주제는 ‘Geology of Britannic Repair(GBR)’로, 역사를 리페어(수선)하려는 노력에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관은 영국관을 특별히 언급했다. 케냐의 노예 동굴을 재현하고, 천장에는 케냐의 독립일과 영국의 탄소 배출 데이터를 결합한 별자리를 수놓았다. 회한만 있진 않다. 아프리카의 우주탐사를 바라는 설치물로 새로운 미래를 그리고, 바이오플라스틱과 균류를 활용한 건축 재료도 선보인다.

그리고 한국관. 한국관은 올해 설립 3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해에 한국관을 실물로 처음 봤을 때, 푸른 나무 사이로 볼록 나온 원통형 유리가 산뜻했다. 하지만 사각의 반듯한 여타 파빌리온과 다른 한국관이 작품 설치에 난도가 높다는 어려움이 종종 제기됐다. 이는 한국관의 태생에서 비롯된 구조다. 1986년 처음 비엔날레에 한국이 참여할 때는 이탈리아관의 한쪽 벽면을 빌렸다. 이후 백남준 작가가 나선 덕분에 한국은 독일관과 일본관 사이, 관리사무소와 화장실로 쓰이던 자리를 배정받았다. 원래 있던 나무를 해치지 않고 시민에게 개방한다는 조건으로 한국관을 올리게 된다. 한국관 설계는 건축가 김석철과 베니스 건축대학교 교수였던 프랑코 만쿠조가 맡았다. 이번 한국관은 태생에 집중한다. 곳곳에 관련 아카이브 사진을 걸었다. 전시명은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란 가사의 전래 동요에서 따온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이다. 건축 기획자 그룹 CAC(Curating Architecture Collective)의 정다영, 김희정, 정성규가 공동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김현종(아뜰리에 케이에이치제이), 박희찬(스튜디오 히치), 양예나(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 이다미(플로라앤파우나)가 참여했다. 한국관은 땅에서 약간 띄워서 설계했는데, 양예나 작가는 그 건물 밑에 오가는 생명체들의 풍경을 영상으로 전송한다. 이다미 작가는 한국관에 자주 들르는 길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패브릭 작업을 선보였다. 오랜만에 개방된 옥상에는 김현종 작가가 돛 모양의 작품 ‘새로운 항해’를 설치했다. 처음엔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큰 주제와 다른 항로인 듯했으나, 30년 전 현지 생태계를 존중하며 설계해야 했던 한국관의 태생과 역사에 집중한 것이니 환경과 맥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다른 국가관도 여러 방향을 보여줬다. 스포츠 바의 사회적 포용성을 조명한 네덜란드관, 공동체와 환대의 공간인 포치의 건축적 의미를 풀어낸 미국관 등이 있다.

해가 저물 즈음, 나는 전시장 뒤쪽에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 주문했다. 베니스 운하의 물을 인공 습지로 정화하고 자외선으로 소독해 내린 커피였다. 카페에 보란 듯이 전시된 운하의 누런 물때를 보고 주문을 잠시 망설였으나 역시 이탈리아산 에스프레소는 후회 없는 맛이었다. 디자인 스튜디오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Diller Scofidio+Renfro)의 이 운하 카페(Canal Café)는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카페를 나와 수백 년을 이어온 베니스의 고혹적인 건물 사이를 거닐다 산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2019년 홍수로 수위가 180cm를 넘기며 폐쇄됐다. 해수면 상승과 지반 침하로 인한 베니스의 침수 위험은 더 커질 것이며, 언젠가 이곳이 가라앉을 거라 우려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은 그 전에 건축이 윤리적 책임과 지속 가능한 방식을 모색하길 기원했다. 결국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남긴다. (VK)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포토
-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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