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움직임을 직조하는 디자이너, 알랭 폴
디자이너도 경력직 시대. 2025 LVMH 프라이즈 파이널 진출자 중 3개 브랜드에 물었다. 경쟁적인 패션계에서 이름을 알리고 브랜드를 키워나간다는 것에 대하여.
패션 위크 취재 중 신진 디자이너의 쇼를 직접 보러 가는 것은 ‘모 아니면 도’ 식의 도박에 가깝다. 그것도 실패할 확률이 8할에 가까운, 아주 위험한 도박 말이다. 2024년 9월은 내 생애 첫 파리 패션 위크였고, 그 첫 쇼가 알랭폴이었다. 역시 파리 패션 위크 공식 캘린더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신출내기’ 디자이너 브랜드였다. 다행히 내 도박은 성공적이었다. 오프닝 룩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했던 내 마음은, 쇼가 끝나자 ‘새로운 세대의 디자이너들에게 희망을 걸어도 좋겠다’라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약간의 긴장감이 맴도는 음악과 절제된 스테이지 디자인, 그리고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옷까지. 삼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지는, 흠잡을 데 없는 컬렉션이었다.

알랭폴은 의복과 몸, 그리고 움직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브랜드다. 여섯 살 때부터 열여덟 살 때까지 무용을 배운 창립자 알랭 폴(Alain Paul)은 “옷을 디자인하고 스타일링하는 것은 곧 몸을 무대 삼아 안무를 짜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의복을 바라보는 신선한 관점을 갖춘 것은 물론, 신예 디자이너 브랜드답지 않은 완숙미까지 느껴지는 알랭폴은 론칭 2년 만에 ‘패션계의 라이징 스타’로 거듭났다. 2025 봄/여름 컬렉션 이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LVMH 프라이즈의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됐고, 지난 6월에는 2025 안담 프라이즈 특별상까지 수상했기 때문이다. <보그>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옷을 선보이는 알랭 폴 디렉터와 움직임, 그리고 ‘좋은 옷’에 관해 이야기했다.
<보그> 독자를 위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알랭 폴(AP): 알랭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랭 폴이다. 옆에는 커머셜 디렉터이자 남편인 루이스 필립(Luis Philippe, LP)이다. 2년 전 함께 알랭폴을 론칭했다.
안담 프라이즈부터 LVMH 프라이즈까지, 신생 브랜드임에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브랜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체감하나?
AP 직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나와 루이스의 삶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 물론 알랭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1년 전과 비교해 훨씬 많아졌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변화가 피부로 와닿을 정도는 아니다.
LP 비즈니스적으로는 체감되는 편이다. 1년 사이 서울에 알랭폴을 취급하는 매장이 두 군데나 생겼다. 분더샵과 스페이스 무이다.
둘의 첫 만남에 관해 이야기해줄 수 있나?
LP 벌써 11년 전 일이다. 목요일 밤, 패션 위크 중 열린 파티에서 처음 만났다. 자연스레 연인이 됐고, 8년 전 결혼했다. 알랭은 비주얼과 관련된 모든 것을, 나는 비즈니스를 담당한다.
AP 나를 믿어주는 사람과 함께 브랜드를 만들어나갈 수 있어서 기쁠 뿐이다. 남편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인 루이스는 언제나 나를 100% 신뢰한다.
알랭은 오래전부터 개인 브랜드 론칭을 꿈꿔왔다고 들었다. 2023년이 적기라고 판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AP 2014년, 패션 스쿨을 졸업했을 때부터 간직해온 꿈이었다. 졸업 직후 경험을 쌓기 위해 베트멍에 합류했다. 3년 뒤 베트멍은 취리히로 본사를 이전했고, 나는 파리에 머무르기로 했다. 하필 루이스가 일하고 있던 부티크 콜레트(Colette) 역시 2017년 문을 닫으며, 둘 다 실직자가 된 김에 브랜드를 론칭할까 고민했다.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하지만 나는 버질 아블로의 루이 비통 팀에 합류했고, 루이스 역시 다른 곳에서 경험을 쌓게 됐다. 결국 그 결정이 옳았던 것 같다. 약 6년의 세월을 거치며 둘 다 조금 더 원숙해질 수 있었다.
뎀나와 버질 아블로는 최근 10년간 패션계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불러온 인물들이다.
AP 파리에서 공부하며 뎀나와 구람을 알게 됐고, 베트멍 론칭 직후 운 좋게 뎀나의 어시스턴트가 될 수 있었다. 베트멍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실루엣은 거리의 사람들이 옷 입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놨다. 그런 일은 1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다. 전에 없던 옷을 보며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그 변화에 어떤 식으로 적응하는지 관찰하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버질은 궁금증이 많은 사람이었다.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만든 관계를 바탕으로 일종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재능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에 의문을 품는 그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사람들은 왜 흰 티셔츠에 청바지 입기를 좋아할까? 그걸 럭셔리하게 풀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같은 식의 질문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루이스의 이력도 흥미롭다. 콜레트는 패션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편집숍이다. 콜레트에서 무엇을 배웠으며, 그때의 경험이 지금 당신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LP 콜레트에서는 매주 매장을 새롭게 꾸미는 것은 물론, 달마다 다른 아티스트와 협업해야 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맡으며 조금 더 다양한 분야에 궁금증을 갖게 됐다. 콜레트가 문을 닫은 이후 홀세일을 경험했고, 그때 쌓은 관계가 지금 알랭폴을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다시 알랭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열여덟 살 때까지 마르세유 무용 고등 국립학교에서 무용을 배웠다. 댄서가 아닌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AP 여섯 살 때부터 춤을 배웠고, 아홉 살 때 마르세유 무용 고등 국립학교에 입학했다. 발레와 무용을 배운 10년은 내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간이었다. 열일곱 살 때쯤 친구들과 안무를 짜며 후배 댄서들을 스타일링했다. 그때 옷도 자기표현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패션과 사랑에 빠졌다. 그 전까지는 통제된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패션이 조금 더 자유로운 형태의 예술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열여덟 살 때 무용이 아닌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했다.
LP 알랭은 여전히 춤을 사랑한다. 스튜디오를 빌려 2시간씩 춤을 추며 움직임을 탐구하는 시간을 갖곤 한다.
지금도 무용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댄서의 옷을 실용화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AP 지금도 춤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무용’이라는 단어 하나로 알랭폴을 요약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내 주요 관심사는 ‘움직임’이다. 피나 바우슈와 머스 커닝햄이 춤을 매개체 삼아 몸의 움직임을 탐구했던 것처럼, 나는 옷을 매개로 같은 작업을 하고 있다. 댄서들이 신는 신발을 현실적으로 재해석하고, 그들이 입는 웜업 팬츠에 스트리트웨어라는 코드를 주입하는 등 춤을 미묘하고 은근하게 레퍼런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결국 무용수의 움직임처럼 순수하면서도 어딘가 각 잡혀 있는 듯한, 감성적인 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LP 알랭은 입버릇처럼 “디자인이란 곧 안무를 연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이야기한다.
브랜드 웹사이트에도 적혀 있는 문구다. 안 그래도 흥미로운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AP 몸 위에 볼륨을 쌓고, 몸이 옷을 만나 발생하는 움직임을 연구하는 것. 그게 패션에 대한 내 접근 방식이다. 춤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얻기보다, 춤이라는 개념이 언제나 내 무의식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설명하는 편이 맞겠다.
움직임이라는 개념의 정의가 궁금하다. 몸을 움직이기 편한 옷을 뜻하나, 아니면 아름다운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옷을 의미하나?
AP 둘 다다. 테일러드 블레이저를 예로 들어보자. 잘 재단된 옷은 주로 딱딱하고 뻣뻣한 인상을 준다. 몸이 특정 자세를 취하게 만들고, 착용자가 특정한 방법으로 움직이도록 만든다. 반대로 비대칭 실루엣 드레스처럼 단지 입고 걷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되는 옷도 있다. 한 가지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원단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드레이프 드레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파리 브로큰 암에서 봤던 트렌치 코트가 생각난다. 바람에 휘날리는 듯한 모습의 칼라가 인상적이었다.

AP 마찬가지로 움직임을 포착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같은 칼라를 레더 재킷에 적용하기도 했다.
2025 봄/여름 컬렉션을 직접 보며 헬무트 랭을 떠올렸다. 컬러를 배치하는 방식, 시스루 소재, 그리고 몸을 구속하는 듯한 디자인의 오프닝 룩 때문이었다. 실제로 어떤 디자이너로부터 영감을 받는지 궁금하다.

AP 1990년대에 활약했던 디자이너들을 좋아한다. 특히 헬무트 랭처럼 순수하고 미니멀한 시선으로 패션을 바라본 디자이너들 말이다. 오프닝 룩에 대해 덧붙이자면, 신체의 변형을 표현한 조각가 에르빈 부름(Erwin Wurm)에게서 영감받았다.
많은 디자이너가 움직임의 중요성을 간과하곤 한다. 입었을 때보다 옷걸이에 걸려 있을 때 더 예뻐 보이는 옷은 셀 수 없이 많다. 좋은 옷이 갖춰야 할 요소를 세 가지 꼽는다면?
AP 첫 번째는 소재다. 좋은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최종 결과물과 소재의 무드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암홀의 디자인, 세 번째는 영속성이다. 좋은 옷이란 트렌드는 물론 시대와도 무관하다.
브랜드 론칭 2년 만에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알랭폴의 ‘넥스트 스텝’은 무엇인가?
LP 안담 스페셜 프라이즈 우승 상금을 활용해 이커머스를 론칭하기로 했다. 9월 1일 오픈을 목표로 열심히 하고 있다. 알랭폴의 옷을 구매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AP 다음 쇼에 대해 힌트를 주자면, 이번에는 샤틀레 극장이 아닌 야외에서 쇼를 선보일 예정이다. 브랜드 론칭 이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이벤트다. 기존 쇼와는 또 다른 에너지가 느껴질 거다.
지난해 <보그>는 2024 LVMH 프라이즈 후보 5인을 인터뷰하며 모두에게 “우승자는 누가 될 것 같은가?”라고 물었다. 알랭폴이 꼽는 2025 LVMH 프라이즈 최종 우승자는?
LP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바람은 있다. 알랭폴!(웃음)
2025 LVMH 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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