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리츠에서 펼쳐진 마티유 블라지의 첫 샤넬 크루즈 컬렉션
어린 시절 마티유 블라지는 프랑스 비아리츠 해변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버지가 피레네산맥 출신이거든요. 여름이면 비아리츠에서 해수욕을 즐겼죠.” 어린 마티유는 먼 훗날 자신이 같은 도시에서 샤넬 크루즈 컬렉션을 선보이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Chanel 2027 Cru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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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어제(4월 28일) 샤넬이 비아리츠 해변가의 시립 카지노에서 2027 크루즈 컬렉션을 선보였다. 모래사장이 연상되는 베이지색 카펫 위로 하우스가 축적한 역사와 마티유 블라지만의 ‘새로운 에너지’가 공존하는 쇼가 펼쳐졌다. 조개껍데기는 귀고리로, 산호와 불가사리, 말미잘의 촉수는 꼬임 장식으로 변주했다. 파라솔을 닮은 스커트와 ‘비치 타월’에서 영감을 받은 수트는 더없이 경쾌하고 가벼워 보였지만, 샤넬 특유의 ‘진중함’을 동시에 머금고 있었다. 에디터, 인플루언서, 스타일리스트는 물론 기존 ‘충성 고객’까지 샤넬 매장에 몰려드는 가장 큰 이유 역시 이런 양면성에 있다.

비아리츠는 샤넬 역사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장소다. 코코 샤넬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여름, 샤르베 셔츠를 즐겨 입던 연인 ‘아서 보이 카펠’과 함께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이 휴양도시에 도착했다. 블라지는 스페인과도 가까운 비아리츠가 당시 일종의 ‘피난처’였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지식인, 예술가, 귀족 등 부유한 이들이 비아리츠로 몰려들었죠. 그리고 가브리엘 샤넬은 그들과 교류하며 ‘꾸뛰르 매장을 오픈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1910년대 중반 비아리츠의 ‘사회적 혼합’, 그리고 가브리엘 샤넬이 스포츠웨어와 바스크 지역의 워크 웨어를 혼합하던 방식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이번 컬렉션을 완성했다고 덧붙였다.
블라지의 ‘리서치 보드’에는 아르데코풍 포스터 사진과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윈스턴 처칠 등 유명인이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진이 뒤섞여 있었다. 그 틈에는 신문지로 만든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의 사진도 보였다. 블라지는 1926년 미국 <보그>가 ‘리틀 블랙 드레스’라고 이름 붙인 그 전설적인 스케치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옷이 최초의 ‘리벤지 드레스’라고 생각해요.”

Chanel 2027 Cru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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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시작을 알린 것은 마티유 블라지 버전의 리틀 블랙 드레스였다. 깊이 파인 브이넥이 더해진 시프트 드레스로, 기하학적인 흰 스티치가 드롭 웨이스트 실루엣을 강조하는 디자인이었다. 블라지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원조’ 리틀 블랙 드레스를 직접 감상했다고 말하며, 드레스 뒷부분에 달린 커다란 리본 디테일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언급했다. 이번 크루즈 컬렉션에 반복적으로 등장한, 거대한 리본이 달린 클러치 백도 바로 그 디테일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마티유 블라지는 올해로 100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리틀 블랙 드레스가 ‘혁명’ 그 자체였다고 설명했다. 리틀 블랙 드레스가 노동계급(가브리엘 샤넬 역시 노동계급 출신)인 하녀의 유니폼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옷이 하이패션으로 변모한 거죠. 자신이 과거에 처했던 사회적 상황에 대한 복수인 셈입니다.” 가브리엘 샤넬의 복수는 대성공이었다. 리틀 블랙 드레스는 1926년이나 지금이나 모든 여성에게 변함없이 사랑받는 옷이다.

Chanel 2027 Cru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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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지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샤넬을 바꿔나가고 있다. 하우스의 창립자가 그랬듯, 특정 사회집단의 유니폼을 참고해 ‘모두를 위한 옷’을 제안하는 그 방식 말이다. 뉴욕의 한 버려진 지하철역에서 열린 그의 첫 공방 컬렉션이 완벽한 예다. 이번 크루즈 컬렉션에는 스트라이프 패턴 쿼터 집 스웨터, 빈티지풍 카키색 드릴 소재 스커트 수트와 백 등이 등장했다. 마티유 블라지는 쿼터 집 스웨터(그는 이번에도 남색 쿼터 집 스웨터 차림으로 걸어 나와 쇼에 참석한 게스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나 마린 스타일 스트라이프 패턴처럼 ‘평범한’ 옷을 선보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비아리츠에 머물며 스트라이프 패턴을 즐겨 입었던 파블로 피카소의 스타일과 선원들의 옷을 참고했던 가브리엘 샤넬이 그랬듯 말이다.
블라지가 이끄는 ‘뉴 샤넬’이 더 민주적이고 모두를 위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의 디자인이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던 트위드 수트의 핏을 수정해 더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최근 트렌드를 반영해 하이 웨이스트 팬츠와 크롭트 재킷 조합을 선보이고 있다. 누구에게나 어울릴 법한 이브닝 룩 역시 그의 시그니처 중 하나다.

Chanel 2027 Cru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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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가득한 방 안에서 게스트들은 1920년대풍 수영복, 수영 모자, 머메이드 드레스와 실크 스카프 드레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쇼는 그 외에도 볼거리가 넘쳤다. 비아리츠의 나무를 본뜬 격자무늬 레이스 장식 수트, 물고기의 비늘을 연상시키는 코트, 힐만 남은 샌들까지. 블라지는 프리뷰 자리에서 파란색 레진으로 만든 퀼팅 백을 자랑스럽게 꺼내 보이기도 했다. “방수 아이템이에요. 이 가방을 들고 수영도 할 수 있죠!”


Chanel 2027 Cru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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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막바지에 등장한 뉴스페이퍼 프린트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블라지는 자신보다 먼저 신문지를 패션으로 승화한 ‘선배’들을 언급했다. “신문지로 드레스를 만든 최초의 인물은 20세기 초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었죠. 스키아파렐리, 존 갈리아노, 장 폴 고티에는 물론 제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디자이너 페르 스푸크(Per Spook)도 있고요. 하지만 제가 뉴스페이퍼 드레스를 선보인 계기는 따로 있습니다. ‘저도 여느 남자들처럼 신문 읽는 걸 좋아합니다’라는 가브리엘 샤넬의 한마디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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