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기쁨, 슬픔이 에러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2026.05.07

기쁨, 슬픔이 에러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악뮤의 신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이 사랑받는 건 우리가 눈물을 억눌러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슬픔과 애씀, 고통이 활짝 펼쳐진 세상에 초대합니다.

슬픔을 쫓아내지 않아도 되는 곳
<이은경: 수도꼭지 연대기>

감정 역시 관리해야 할 ‘자본’이 된 자본주의 세상에서, 이은경 작가는 마음껏 울어도 되는 모두의 눈물 피난처를 마련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듯 울먹이는 얼굴과 이미 너무 울어 퉁퉁 부은 얼굴 등 여러 우는 얼굴이 도감처럼 펼쳐지죠.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거대 얼굴 ‘울지 마세요’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관람객이 아래에서 위로 작품을 올려다보면 본래 우는 얼굴이 미묘하게 찌그러진 억지 미소로 변하는데, 이는 슬픔을 어떻게든 중단시키려는 ‘웃픈’ 시도이자, 감정을 숨겨야만 하는 현대인의 초상과도 닮았어요. 또한 폭포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재현한 ‘호곡도’는 관객에게 카타르시스적 쾌감을 선사하고, 자동 기계 장치인 ‘태평양같고 활화산같은’은 얼굴들이 서로 마주 보게 함으로써 고립된 개인이 타인과 연결되는 찰나를 상연합니다. 말보다 눈물이 연대의 접착제가 된 이 ‘눈물 공동체’에서, 함께 운 뒤 찾아오는 기쁨까지 느껴보세요. OCI미술관의 2026 OCI YOUNG CREATIVES로 선정된 이은경 작가의 이번 전시는 5월 30일까지 이어집니다. 장소 OCI미술관 예매 무료 관람 인스타그램 @ocimuseum

이은경, ‘더 있어줘도 됐는데 그걸 몰랐어’, ink and watercolor on hwaseonji 34.8×27㎝, 2026. OCI미술관 제공
이은경, ‘호곡도’, oil on paper 57×1140cm, 2026, detail (3). OCI미술관 제공
이은경, ‘호곡도’, oil on paper 57×1140cm, 2026, detail (13). OCI미술관 제공
이은경, ‘호곡도’, oil on paper 57×1140cm, 2026. OCI미술관 제공
이은경, ‘태평양같고 활화산같은’, mixed media, 210×470×210cm, 2026, 3. OCI미술관 제공

또렷해진 재난의 풍경
<미시적 재난>

지구 반대편 전쟁 소식에 어떤 생각이 먼저 드나요? 사상자 걱정? 아니면 주식 걱정? 2 인전 <미시적 재난>의 참여 작가 양하는 재난의 참상을 축소하고, 외면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폭로합니다. 최근작 ‘사람들이 0.1%의 애정만 더 있다면’에는 폭발로 인한 버섯구름을 현대인의 눈에 윤색된 알록달록한 젤리로 묘사하죠. 동시에 버섯구름이 튀어나올 듯한 화면 구성은 타인의 재난을 우리 코앞까지 들이밀며 이 일이 먼 남의 일이 아님을 알리고, 조금이라도 애정을 갖기를 촉구합니다. 한편, 유리 작가는 개인의 재난을 견디기 위한 시각적 대응책을 제시해요. 평소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선을 긋던 작가는 ‘달력 제작자’라는 가상의 페르소나를 호출, 달력이 연상되는 작품을 통해 다양한 시간의 특징을 가시화하죠. 격자무늬 위 덧댄 천이나 실은 지난 날과 남은 날을 잇고, 또 어떤 날의 사건은 매주 점점 더 큰 파장을 일으키며 한 달 내내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촛불처럼 지나간 시간과 재난은 돌이킬 수 없기에, 유리 작가가 격자로 질서를 부여하고 레진 조각에 붙잡아둔 시간의 풍경은 무력감에 맞설 새로운 동력이 됩니다. 5월 23일까지. 장소 oaoa 예매 무료 관람 인스타그램 @oaoa_gallery

양하, ‘사람들이 0.1%의 애정만 더 있다면_4’, gouache, oil, and acrylic on canvas, 80×50cm, 2026, ©oaoa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양하, ‘그럼 도대체 가까운 곳은 어디지?_4’, gouache, oil, and acrylic on canvas, 40×40cm, 2026, ©oaoa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유리, ‘지난 날과 남은 날을 잇는 일’, acrylic, oil, silk fabric, and thread on canvas, 97×193.9cm, 2026, ©oaoa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유리, ‘한 달’, acrylic and oil on canvas, 97×193.9cm, 2026, ©oaoa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유리, ‘30 일-잠정적 형상들’의 설치 전경, ©oaoa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무가치했던 것들이 빛나는 순간
<Sprue>

권용주 작가는 누락된 ‘애씀’의 시간을 조각으로 드러냅니다. 전시 제목 ‘스프루(Sprue)’는 거푸집의 주입구를 뜻하는 단어로 쇳물을 부은 후 굳으면 버려지는 잉여물이죠. 작가는 현대 산업이 효율성 논리로 소외시킨 육체노동을 스프루에 비유해 예술의 주인공으로 복원합니다. 골동품 상점의 구리 조각이나 쓰고 남은 에어캡, 공터의 나뭇가지 등 스프루처럼 쓰임의 유효기간이 지난 물건들은 브론즈라는 영구적인 물질로 다시 태어나요. 그리고 제작 과정 중 쇳물이 팽창하며 발생한 잉여물을 제거하거나 연마하지 않음으로써 사라졌던 노동의 흔적을 재현하죠. 터치 한 번에 다음 날 아침 원하는 물건이 배송되는 세상은 무엇에 의해 지지되고 있을까요? 알고리즘에 가려져 있던 실패와 인내의 시간을 마주해보세요. 5월 17일까지. 장소 IAH 예매 무료관람 인스타그램 @iah_seoul

'Sprue' 전시 전경. IAH 제공
'Sprue' 전시 전경. IAH 제공
'Sprue' 전시 전경. IAH 제공
김성화

김성화

프리랜스 에디터

<보그> 컨트리뷰팅 에디터로 전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잡지 <오디너리>와 기내지 <아시아나>에서 여행과 문화, 미식을 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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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OCI미술관, OAOA gallery, IAH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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