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천연색으로 빛나는 각양각색의 전시
‘색깔’이 탐구 대상이자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오래된 안료로 빚은 차분한 색부터 대기의 존재를 드러내는 흩뿌린 빛깔까지. 당신의 감각을 깨워줄 각양각색의 전시를 소개합니다.
격자 안 색의 시간
<조유정: 영원한 경이>
조유정 작가에게 색은 회화의 표현 수단이 아니라 회화를 성립시키는 근본 구조입니다. 5월 30일까지 OCI 미술관 1층 전시실에서 열리는 개인전 <영원한 경이>는 2026 OCI Young Creatives 선정 작가로서 펼쳐 보이는 자리로, 색의 물질성과 비물질성을 격자라는 질서 안에서 풀어놓아요. 전시는 컬러 차트와 수납장, 판화 세 형식의 신작으로 구성됩니다. ‘칼라차트’ 연작은 가로세로로 그어진 수십 개의 색띠가 한 칸 한 칸 반투명으로 교차하며 발색하는 구조인데, ‘2200 주황’(2026)에서는 50개의 빨강 안료와 44개의 노랑 안료가 겹치며 무려 2,200가지의 주황이 생성되죠. ‘빨강’이라는 한 단어로 통칭되는 수십 종의 안료를 각각 독립된 실체로 호명하려는 시도예요. ‘수납장’ 연작은 17세기 도메니코 렘프스(Domenico Remps)의 ‘호기심의 방’을 참조해, 한 가지 색을 둘러싼 광물과 식물, 박제 동물, 옛 그림까지 위계 없이 한 화면에 펼쳐 보입니다. ‘분홍 수납장’(2026)에는 직접 키운 장미와 작가 미상의 옛 그림, 산호와 큐피드 조각이 분홍의 계보를 따라 나란히 놓여요. 작가는 안료를 고를 때 현대의 합성 대체재 ‘휴(Hue)’가 아니라, 명칭과 성분이 동일한 천연 안료 ‘제뉴인(Genuine)’을 고집합니다. 연지벌레 형상은 코치닐 안료로, 청금석은 울트라 마린으로 칠하는 식이죠. 종이 위에 안착한 안료가 발현되는 찰나의 경이로움, 그 감각이 영원의 영역으로 스며드는 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장소 OCI 미술관 예매 무료 관람 인스타그램 @ocimuseum




카세인으로 빚은 몽환적 평온
<로사 로이: 고요한 작품들>
화려한 빛깔의 옷을 입은 여인들이 단호한 표정으로 서 있습니다. 5월 30일까지 갤러리바톤에서 열리는 로사 로이(Rosa Loy)의 개인전 <고요한 작품들(Silent Work)>의 풍경입니다. 로사 로이는 남편인 화가 네오 라우흐(Neo Rauch)와 함께 ‘신 라이프치히 화파(New Leipzig School)’를 이끌어온 작가로, 전시에서는 작업실과 일상을 오가는 고요한 루틴 속에서 길어올린 신작 19점을 선보입니다. 그가 지금 선사하는 생생한 빛깔은 흥미롭게도 과거에 많이 쓰이던 매체에서 비롯됩니다. 안료 결합제로 쓴 카세인은 프레스코화에 주로 쓰이던 오래된 안료였죠. 빠른 건조와 무광의 질감, 무엇보다 제한된 색조 안에서 화면 전체의 배색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로사를 매료했습니다. 깊은 초록과 옅은 노랑, 따스한 붉은 톤이 차분히 가라앉은 화면에는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의 자연 경외와 도로시아 태닝(Dorothea Tanning)으로 대표되는 여성 초현실주의의 몽환이 함께 깃들어요. 작가가 원예사로 일하던 시절의 기억이 밴 꽃 등의 식물, 시대도 장소도 특정하기 어려운 모호한 풍경 속에서 여인들은 능동적 행위의 주체로 그려집니다. “힘은 고요 속에 깃든다”는 작가의 말처럼 일관된 배색으로 빚어낸 고요한 색채가 위안과 안식의 에너지를 전달합니다. 장소 갤러리바톤 예매 무료 관람 인스타그램 @gallerybaton




산란하는 빛 속 감각의 궤도
<최혜경: 분사된 궤도>
색은 멈춰 있을 때보다 흐를 때 더 많은 것을 말하는지 모릅니다. 5월 12일 에브리아트 4층에서 시작된 최혜경 작가의 개인전 <분사된 궤도(Sprayed Orbits)>는 색이 분사되고 흩어지고 모이는 과정 한가운데로 관람객의 몸을 데려다놓는 전시예요. 중심을 이루는 ‘Sprayed Orbits’ 회화 시리즈는 두 원이 맞닿는 접점을 따라 원의 중심을 옮겨가는 수학적 알고리즘에서 출발합니다. 곡선의 궤적 위로 작가는 물감 입자를 분사하고, 입자는 스스로 흩어지고 모이며 천천히 쌓이는 색의 층과 우연한 흐름을 만들어내죠. 정확한 기하학적 질서와 통제할 수 없는 물성의 흐름이 한 화면 안에서 동시에 호흡하는 셈입니다. 회화의 곡선은 입체 작업 ‘홀론(Holon)’ 시리즈로 이어져요. 구면 기하학과 위상적 사고를 바탕으로 변형된 구는 모빌처럼 매달려 미세한 공기의 흐름에 반응해 천천히 돌아갑니다. 민트와 오렌지, 바이올렛과 핑크가 표면을 감싸는 작은 조각은 보는 각도와 시간에 따라 매번 다른 형상으로 나타나죠. 6.1m 길이의 벽화 ‘Geometric Echoes’(2026)와 어우러지며 전시장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궤도가 됩니다. 색이 입자가 되어 공간을 떠도는 풍경 속에서 관람객은 시선과 발의 위치에 따라 매번 다른 색의 대기를 마주하죠. 6월 10일까지. 장소 에브리아트 예매 무료 관람(일·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everyart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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