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의 델핀 아르노와 나눈 패션 미래

지상 최대 패션 왕국의 공주가 파리에 머물고 있다. 이름은 델핀 아르노.
LVMH 그룹 아르노 회장의 딸이자 현재 루이 비통의 부사장.
그녀가 올해 시작한 LVMH 프라이즈가 반향을 일으켰다.
젊은 디자이너들을 위해 최고의 혜택을 준비한 델핀 아르노와 <보그 코리아>가 나눈 패션의 미래.

디올에 이어 루이 비통에서 경력을 쌓고 있는 델핀 아르노. LVMH 그룹의 실세이기도 한 그녀는 라프 시몬스, 니콜라 제스키에르를 스카우트하는 데 크게 힘을 보탰다. 아울러 LVMH 어워드가 그녀에 의해 기획됐다.

올해 첫 회를 맞은 LVMH 프라이즈. LVMH 그룹이 젊은 디자이너들을 발굴해 양육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프로젝트다. 전 세계에서 40명의 전문가들을 초대해 후보 디자이너들을 평가하는 쇼룸을 연 뒤, LVMH 그룹 디자이너들과 경영진으로 구성된 10명의 심사위원단 최종 심사를 거쳐 한 명을 선정했고, 런던에서 활동 중인 여성복 디자이너 토마스 테이트가 수혜자로 호명됐다. 그러나 한 명만으론 아쉬워 특별상 수상자 두 명이 추가로 발표돼 총 수상자는 세 명. 토마스는 30만 유로(약 4억2,000만원), 특별상 수상자들은 각각 10만 유로(약 1억4,000만원)를 부상으로 받았고, 1년간 멘토링을 받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신인 발굴 프로젝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되는 지금, <보그 코리아>는 최강의 권력을 기본으로 최대의 명예를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선사하는 인물을 만났다. LVMH 아르노 회장의 딸이자 루이비통 부사장 델핀 아르노. 그룹의 실질적 후계자로 거론되는 델핀은 현재 그룹의 핵인 루이 비통 브랜드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디올의 라프 시몬스는 물론 루이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 역시 그녀의 입김으로 스카우트됐다는 건 다 아는 사실). 프랑스 부유층 특유의 새침함과 폐쇄적이며 까다로울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그녀는 대화를 나누는 내내 더없이 상냥하고 친절한 태도를 취했다. 매끄러운 화법과 온화한 미소마저 잃지 않던 그녀가 LVMH 프라이즈의 시작 배경과 철학에 대해 지적이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Vogue Korea(이하 VK) LVMH 프라이즈가 개최된다는 사실에 패션계 전체가 흥분했다.

Delphine Arnault(이하 DA) 무척 흥분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2013년 11월에 론칭했고, 40세 미만으로 두 차례 이상의 컬렉션을 발표한 남성복이나 여성복 디자이너를 위한 프라이즈로 국적 제한은 없다. 서류는 LVMH 웹사이트를 통해 접수받았는데, 1,200명이 지원해 깜짝 놀랐다.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도 아닌데 입소문이 퍼진 것 같다. 세계 곳곳에서 지원했다. LVMH 프라이즈는 파리나 유럽에서 패션쇼를 열지 않는 디자이너도 지원이 가능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캣워크쇼를 연 적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저 컬렉션을 제작한 경력이 있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내부적으로 1,200명 가운데 30명을 선별한 후, 지난 3월 LVMH 본사에 쇼룸을 열었다. 혹시 그때 당신도 와서 봤나? 이틀간 진행된 쇼룸에 패션계 유명 인사들이 다수 방문했다. 카린 로이펠트, 고드프리 디니(<르 피가로> 에디터) 같은 기자, 그리고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래스, 사진가 패트릭 드마쉴리에, 아트 디렉터 파비앙 바론, 스타일리스트 마리-아멜리 소베, 도버 스트릿 마켓의 에이드리안 조프(레이 카와쿠보의 남편), 삭스 피프스 애비뉴의 매리게이 맥키 회장 등등. 전문가단의 명단은 인터넷에 ‘LVMH 프라이즈’를 검색한 뒤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다.

VK 이미 웹사이트에 들어가봤는데, 그야말로 리스트가 굉장했다.

DA 안나 윈투어는 물론 <보그> 인터내셔널 에디터로 일하게 된 수지 멘키스 등 패션계의 유명 인사들도 찾아줬다. 1차 후보로 선정된 디자이너들에게는 대단한 홍보 효과였다. 전문가단이 각각 10명의 베스트 리스트를 뽑았다. 그런데 명단을 취합해보니 12명. 네 명이 동점이었다. 이 중 한 명이 브랜드를 접게 돼 결국 11명이 최종 후보가 됐다.

 

VK 어떤 심사 과정을 거쳤나?

DA 5월 28일, LVMH 그룹에 소속된 디자이너들(니콜라 제스키에르, 마크 제이콥스, 칼 라거펠트, 라프 시몬스, 피비 파일로, 리카르도 티시, 움베르토 레옹)과 경영진(LVMH 그룹 패션 사업부 CEO 피에르 루셀,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고문 장-폴 클라베리), 그리고 나를 포함한 심사위원단이 모였다. 11명 최종 후보자들은 약 10분간 심사위원단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최종 심사까지 몇 시간이 소요됐고, 우리는 위층에 올라가 아버지(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와 함께 식사했다. 다시 우리는 각자 디자이너들을 심사하기 시작했다.



토마스 테이트의 아방가르드하고 컬러풀하며 독창적인 재단의 옷이 LVMH 어워드의 우승작. 이를 위해 마크 제이콥스, 니콜라 제스키에르, 칼 라거펠트, 라프 시몬스 등이 최종 심사를 맡았다. 특히 라프 시몬스는 이 어워드를 위해 델핀 아르노에게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VK 그 결과 최종 수상자가 토마스 테이트인가?

DA 훌륭한 재능을 지닌 디자이너들이 많아 한 명만 선택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두 명의 특별상 수상자를 추가로 선정했다. 그 가운데 한 팀은 인도 출신의 자매 디자이너인(런던 칼리지 오브 패션 졸업) 미우니쿠(Miuniku),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후드 바이 에어(Hood by Air)다. 정말이지 무척 흥분되는 과정이었다. 그룹 내 디자이너들과도 따뜻하고 설레는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랄까? 그래서 내년에 열릴 두 번째 프라이즈에 거는 기대가 모두 크다.

 

VK LVMH 프라이즈는 어떻게 기획됐나?

DA 나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나는 늘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우리 그룹에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업계 선두주자로서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고 그들을 양육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내가 디올에서 일하던 시절(작년 9월 루이 비통으로 오기 전 12년간 디올에서 일했다) 라프 시몬스가 이 프로젝트의 기본 골격을 구성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그의 아이디어는 디자이너 위주로 심사위원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러니 미래를 책임질 젊은 인재 선출에 있어 그들보다 더 적절한 심사위원이 또 어디 있겠나!

 

VK LVMH 프라이즈의 심벌이 크리스챤 디올에서 비롯됐다고 들었다. 디올의 라프 시몬스가 이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했다고 하니 꽤 흥미로운 연결고리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LVMH 그룹에게 중요한 이유는 뭔가?

DA 젊은 디자이너들은 일찍부터 우리 그룹의 문화와 철학 속에 깊게 관여돼 있었다. 아버지는 그룹 내 중요한 하우스 브랜드의 수장으로 젊은 디자이너들을 거침없이 스카우트했다. 마크 제이콥스가 루이 비통을 맡을 땐 34세였다. 리카르도 티시가 지방시에 입성한 지 10년이 됐는데, 올해 40세가 됐으니 30세 때 그룹에 합류한 셈이다. 또 얼마 전 J.W. 앤더슨을 로에베 수장으로 영입하는 등 수많은 사례가 있다. 그룹의 중심에는 늘 젊은 디자이너들이 포진해 있었고,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다. 그리고 ‘미래의 제품’을 개발하는 일은 결국 디자이너의 몫이다.

 

VK 당신은 ‘디자이너들이 미래다’라는 메시지를 자주 전하고 있다. 디자이너들 역시 자주 들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될 테니까. 하지만 디자이너들이 마주칠 현실은 녹록지 않은데다, 재정적 골격을 견고하게 건설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 무슈 디올도 재력가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중차대한 결정 앞에 놓였거나 재정적 구조에 대해 고민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겠나?

DA 크리스챤 디올에 관해 얘기하자면, 1946년 하우스를 설립하기 직전 그는 마르셀 뷔삭이라는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비즈니스맨을 찾아갔다. 마르셀은 무슈 디올이 브랜드를 시작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시작했다. 디올은 아주 주술적인 인물이었기에 늘 어떤 ‘징후’를 찾았고, 그걸 믿었다. 열여덟 살 소년에게 어느 점쟁이가 예언하길,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인물이 될 테고, 그게 다 여자들 덕분이다”라고 했단다. 또 그의 어머니는 “크리스챤! 어떤 일이 있어도 너의 이름을 매장 간판에 올리지 말거라. 우리 가문의 이름을 매장에 걸게 할 순 없다”라고 신신당부했다. 마르셀의 후원으로 디올은 애비뉴 몽테뉴 30번지에 매장을 열었고, 그 거리에서 한 가운데 구멍이 뚫린 별을 발견했다. 디올은 그것을 행운의 상징이라고 믿었다. 어떤 면에서 선지자였던 것이다. LVMH 프라이즈의 심벌은 디올이 발견한 바로 그 가운데 구멍이 뚫린 별이다. 토마스 테이트에게 컨템퍼러리 아티스트 장-미셸 오토니엘이 디자인한 트로피를 건네며 디올의 행운이 그와 함께하길 기원했다.



뉴욕의 후드 바이 에어와 함께 자매 디자이너 미우니쿠가 LVMH 어워드의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보그> 편집장들을 비롯한 패션계 유명 인사들이 LVMH 어워드를 위한 쇼룸에 들러 젊은 디자이너들을 격려했다.

VK 흥미진진하고도 행복한 패션 스토리다. 트로피와 함께 건네받은 상금으로 토마스는 그 행운까지 함께 받았을 것이다.

DA 재정적인 상금도 아주 중요하지만 사실 토마스에게 더 중요한 건 우리가 그에게 제공할 1년간의 멘토링이다.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그의 수많은 질문에 답할 것이다. 가령 ‘옷을 어디에 팔아야 하나요?’ ‘가격은 어떻게 책정하는 게 좋죠?’ 혹은 ‘제작비는 어느 선이 적절할까요?’ ‘신발이나 가방 등을 통해 컬렉션을 더 다양하게 확장하는 게 좋을까요? 그렇다면 신발과 가방은 어디에서 만들어야 하죠?’ 등등 수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갈 것이다. 젊은 디자이너들을 위해 그룹에서 꾸린 이 팀은 그가 앞으로 1년간 결정해야 하는 여러 선택에 대해 조언하게 된다. 두 명의 특별 수상자들도 마찬가지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있다. 중요한 사실은 끝없이 질문의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게 내 조언이다!

 

VK 토마스 테이트는 준비된 듯 보였다. 26세인데도 자신의 브랜드를 발전시키는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으니까. 이 멘토링은 그에게 어떤 의미로 발전될까?

DA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그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30만 유로를 지원하고 그를 위해 전용 팀을 제공하는 것이다. ‘토마스 테이트’라는 브랜드에 직접적으로 투자하거나 그의 회사에 참여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순수하게 그를 도울 뿐이다.

 

VK 1차 후보들을 위한 쇼룸 풍경이 궁금하다. 디자이너들을 만나보니 어땠나?

DA 젊은 디자이너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여 있으니 정말 굉장했다. 그들 중 일부는 패션의 미래를 책임질 주요 인물로 성장할 것이다. 쇼룸을 둘러보니 패션의 미래가 밝게 여겨졌다. 쇼룸에 온 디자이너들은 에너지와 젊음이 넘쳤다. 다양한 나라와 문화가 공존했으며, 여성 디자이너들이 많다는 사실도 눈에 띄었다. 디자이너들과 직접 만나 그들이 자신의 브랜드를 위해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들었다. 몇몇 디자이너의 작업은 아직 완성도가 떨어져 보였지만, 대체적으로 아주 중요한 순간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VK 당신이 직접 디자이너들을 만나고 그들 컬렉션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건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내년에도 쇼룸은 계속되나? 

DA 그럴 예정이다. 사람들이 디자이너들을 직접 만나는 건 중요하다. 디자이너에겐 재능과 작업, 제품도 중요하지만, 대중에게 자신의 옷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도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VK 한국은 지금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젊은 디자이너들을 배출하고 있다. 그들 역시 창의성과 상업성 사이에 갈등 중이다.

DA 그건 누구나 겪는 고민이다. 둘 안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자신만의 아주 강력한 시각이 있어야 하고, 독특한 제품력과 차별성, 그리고 판매에 적극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 안에서 타협점을 찾는 것 역시 중요하다. 참, LVMH 프라이즈 1차 선정자 30명 중 한국 디자이너 세 명도 포함돼 있었다.



우승자와 특별상 수상 두 팀, 그리고 아홉 팀의 최종 후보자들. 아토, 자크무스, 시몬 로샤 등 총 12팀의 쟁쟁한 디자이너들이 포진돼 있다.

VK 맞다! 패션 칼럼니스트 사라 무어와 사적인 자리에서 그들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LVMH 프라이즈의 전문가 패널로 참여한 그녀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영국과 미국을 제외하고 한국 디자이너가 가장 많았다”고 했다. 사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 나라를 구분하는 게 아니고, 디자이너마다 교육 배경이 다 다르니 굳이 국적을 따지는 건 불필요해 보인다. 그런데도 한국 패션계에 꽤 힘을 보태는 사례인 건 분명하다. 당신은 한국 패션에 대해 알고 있나? 

DA 한국을 몇 번 방문했는데 무척 인상 깊었다.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시장이다. 최종 후보 30명엔 계한희, 이정선, 김민주가 포함돼 있었다. 계한희는 아주 컬러풀했고, 다른 디자이너들은 미니멀하거나 실험적이었다. 세 명 모두 전도유망한 디자이너들이다. 내년에는 더 많은 한국인들이 지원하면 좋겠다.

 

VK 당신은 LVMH 프라이즈의 기획자인 동시에, LVMH라는 거대 패션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다. 그런 당신이 보기에 젊은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DA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제품이다. 그리고 제품에 대한 독특한 시각. 그게 또한 중요하다. 그 다음으로 젊은 디자이너들이 브랜드를 개발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중요한 건 파트너다. 내가 믿을 만하고 나를 도울 수 있는 적당한 인물을 찾아야 한다. 그건 친구나 매니저일 수 있다. 두 사람은 한곳을 바라봐야 하고, 그의 재능을 비즈니스로 구축하며 회사로 설립하는 동시에, 그의 비전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

 

VK LVMH 프라이즈는 젊은 디자이너를 위한 프로젝트인 동시에 패션학도들을 위한 수상 부문도 있다. 수상자들은 그룹 내 여러 브랜드에서 인턴으로 활동하게 된다고 들었다. LVMH 프라이즈에 지원하는 디자이너와 달리 학생들에겐 어떤 부분을 기대하나?

DA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세 명의 학생이 선정돼 그룹 내 디자인 스튜디오 세 곳에서 일하게 된다. 이 역시 LVMH 프라이즈의 중요한 일부다. 이번에 그들은 각각 지방시, 디올, 셀린에서 1년간 인턴으로 일하게 됐다. 모두에게 무척 흥분되는 일이 될 것이다.

 

VK 학생들의 심사 과정은 어땠나? 그들의 포트폴리오도 보고 직접 인터뷰도 했나?
DA 당연히!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이 작업한 드로잉이나 일러스트를 보고 어느 하우스에 적합할지 찾는 일이었다. <보그 코리아>가 학생 수상자들을 만날 생각은 없나?

 

VK 기회가 된다면! 수많은 패션학도들이 있지만 모두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진 못한다.

DA 학생들은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 그들에게 디올, 지방시, 셀린 같은 빅 하우스에서 일할 기회는 일생일대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들이 브랜드에 입사해 일하고 싶은지, 혹은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은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그건 나중에 결정할 일이다. 현재는 이 수상을 통해 얻은 경험을 충분히 누리는 것. 내 임무는 그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고 가장 좋은 조화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일이다.





VK LVMH 프라이즈의 또 다른 심사 과정을 통해 인턴을 뽑았으니, LVMH 프라이즈는 물론, 그룹 소속 브랜드에게도 의미 있는 실험이 될 것 같다.

DA 물론이다. 각각의 브랜드에 젊은 인재들이 합류, 그들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제공받을 수 있다. 우리에게도 특별한 기회다. 다양한 인종, 문화, 재능, 시각이 모인 아주 흥미진진한 공간이 될 수 있다.

 

VK LVMH 프라이즈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당신은 그룹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DA 2013년 9월부터 루이 비통 부사장을 맡아 모든 제품을 책임지고 있다. 비통 안에서의 남성복과 여성복의 모든 세계, 그러니까 가죽 제품부터 기성복, 신발, 액세서리, 주얼리까지 모든 제품의 비즈니스 영역을 총괄하고 있다. 디올에서 근무할 때는 라프 시몬스의 채용에 관여할 수 있었다. 나는 의견을 제시했고, 아버지와 디올 CEO인 시드니 톨레다노가 최종 결정을 내렸다. 루이 비통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와 비통 CEO인 마이클 버크가 최종 결정을 통해 니콜라를 고용했다.

VK 루이 비통은 올해 160주년을 맞아 모노그램을 재해석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에 처음 보도된 그 프로젝트 기사에서 당신의 사진을 봤다.

DA 지난 연말, 니콜라를 비롯해 다 함께 모노그램을 자축할 방법을 논의했다. 단순히 1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모노그램은 그 자체로 루이 비통의 아이콘이자 하우스에 중요한 의미를 지녔으니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여섯 명의 서로 다른 분야의 아이코노클래스트(iconoclast, 펑크 룩 등으로 대변되는 인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흐름을 창조하는 인물들)들에게 모노그램에 대한 의견과 생각을 물으면 어떨까, 하는 발상에서 시작했다. 그 결과 각 분야 최고의 ‘천재’ 여섯 명과 의기투합하게 됐다. 모두 ‘Mind & Hand’로 작업하는 인물들이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사진가 신디 셔먼, 디자이너 레이 카와쿠보, 산업 디자이너 마크 뉴슨, 슈즈 디자이너 크리스챤 루부탱! 연말 프로젝트로 10월 15일 매장에 출시된다. 무척 흥분되는 프로젝트다.

 

VK 루이 비통처럼 정통성을 지닌 브랜드가 고객과 소통하는 방식은 브랜드 역사에 초점을 둔 채 동시대적이어야 한다.

DA 물론이다. 그리고 제품들 역시 환상적이어야 한다.

 

VK 그렇다면 당신에게 루이 비통의 아카이브 중 최고는?

DA 오, 대답할 수 없다. 최고의 아이콘들이 많으니까! 비통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브랜드의 정수는 ‘여행과 여정(the voyage, the travel)’이다. 루이 비통은 13세에 가족을 떠나 1854년 파리에 정착해 하우스를 설립했다. 그는 혁신가였다. 그 정신은 브랜드의 중심이 된다. 그게 우리의 역사이자 전통인 동시에 장인정신이며, 최고 품질을 지향하는 브랜드 철학이다. ‘알마’와 ‘스피디’ 백처럼 잘 알려진 제품은 물론, 여행용 가방인 ‘키폴’처럼 루이 비통 역사와 늘 함께하는 놀라운 아이콘들이 많다. 최근에는 가죽 가방 ‘카푸친’을 재론칭했는데 이 역시 성공적이었다. 또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캣워크에 올린 ‘쁘띠 말르’가 드디어 매장에 진열되기 시작했다. 루이 비통 하우스로선 아주 흥분되는 시기다.

 

VK 대단한 역사를 지닌 브랜드 위에 젊은 디자이너를 세워 새로운 전성기를 시작한 지금, 당신에게 혁신이란 어떤 의미인가?

DA 모노그램 축하 프로젝트 역시 혁신을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다. 혁신은 회사를 지속시키는 원동력이며, 그 정신은 모든 제품에 반영된다. 혁신은 하우스를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매일 혁신을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