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벌’ 오세득의 낭만 시대

요리사들의 신성한 주방에 호기심 가득한 말괄량이 아가씨들이 나타났다.
요리 실력은 기본, 맛깔스러운 입담과 개성적인 스타일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스타 셰프 오세득의 음식 너머의 이야기들.

플라워 패턴의 화려한 원피스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뱅글과 링은 모두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파나쉬(Panache). 

플라워 패턴의 화려한 원피스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뱅글과 링은 모두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파나쉬(Panache).

오세득(Oh Se Deuk)

“혹시 전에 운동하셨어요?” “씨름이요, 씨름. 엄마랑 입씨름만 한 30년 했죠.” “요즘 제가 자주 먹는 거요? 칼로리 바란스. 살 빼야 하거든요.” 서래마을 ‘줄라이’의 오너 셰프 오세득은 본인만의 독자적인 유머 세계 속에서 산다. 현실에서나 방송에서나 한결같다. 저 당당함! 역시 ‘오재벌’다운 자세다. “비싼 재료를 사용한다고 최현석 셰프가 놀리는 거죠. 재벌은 절대 아닙니다.” 본인은 부정하지만 요즘 그의 행보를 보자면 어딘가 진짜 재벌 같은 풍모가 느껴진다. 일단 제주도에 4만8,000평(15만8,677㎡) 규모의 녹차밭이 있다. 농업회사법인 ‘모루농장’이다. 그리고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블랙 스미스를 인수했다. “농장에서 직접 기른 신선한 작물로 요리한 음식을 테이블까지 제공한다”는 게 ‘블랙 스미스 바이 줄라이’의 모토다.

“‘모루농장’은 농민들을 살리기 위해 만든 회사예요. 예를 들어 작년에 양파 파동이 났잖아요? 그럼 우리가 수거해다 전 매장에 푸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다 흡수하려면 아무래도 규모가 더 커져야만 했죠.” 마찬가지 이유로 홈쇼핑도 시작할 계획이다. “백립처럼 집에서 쉽게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이 될 거예요. 물론 부담이 커요. 왜냐하면 저희 어머니를 포함해 홈쇼핑에서 먹을거리를 구입해 성공했다는 분이 없으니까. 하하.”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는 식(食)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기본 권리인 의식주를 갖고 장난치는 회사들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그는 나쁜 옷이나 집은 최소한 사람을 해치진 않지만 나쁜 음식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음식만큼은 제대로 하고 싶어요.”

덕분에 그의 하루 일과는 제법 분주하게 돌아간다. 서래마을 줄라이에 매일 출퇴근함과 동시에 가끔 방송을 하고, 청담동과 강남, 제주 등에 흩어져 있는 ‘블랙 스미스 바이 줄라이’ 매장을 한 번씩 돌아본다. 주기적으로 녹차밭도 관리한다. 그 역시 제주도의 영농조합원이기도 하다. “제주는 식재료가 매우 풍부해요. 한라산을 중심으로 반지름 50km 안에 모든 게 다 있잖아요? 아직도 캐내야 할 게 많아요.” 오세득이 자연과 농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줄라이’를 오픈하고 좋은 식재료를 찾아 스쿠터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던 2007년 무렵부터다. 당시만 해도 한국식 식재료를 서양 음식에 이용하는 셰프가 드물었고 원산지를 표기하는 식당도 거의 없었다. 오세득은 몇 발짝 앞서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객기였죠. ‘줄라이’가 생길 때만 해도 이곳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장사를 목적으로 한다면 목이 좋아야 했지만, 그땐 그런 곳에 비싼 임대료를 내느라 음식에서 그 값을 빼는 대신 정말 괜찮은 음식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저절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거라고요. 그러자면 좋은 재료가 필요했어요.” 오세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아이폰을 꺼낸 그는 그 결과물이 담긴 영상을 자신 있게 보여줬다. 푸른 녹차밭에선 건강한 돼지들과 닭들이 각자의 소리로 꽥꽥대며 한데 어울려 뛰놀고 있었다. “우리 농장의 일꾼들이에요. 산양은 잡초를 뜯고 닭은 벌레를 잡아먹고, 돼지는 땅을 뒤집어엎으며 밭을 일구죠. 우선 얘들이 먹어야 하니까 유기농으로 키울 수밖에 없어요.”

사실 그가 요리사의 길에 들어선 계기는 단순했다. 최고의 요리사가 되겠다는 야심 찬 포부나 인류의 먹을거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 따윈 없었다. 데스 메탈에 심취해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크래쉬의 노래들을 불러젖히던 그가 요리사가 된 건 순전히 첫사랑 때문이었다. “고교 시절 좋아하던 여자 친구에게 ‘이 다음에 크면 맛있는 요리를 해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래서 조리과에 입학하고, 미국으로 요리 유학까지 떠났다. 어떻게 보면 그에겐 요리가 곧 첫사랑인 셈이다. 말 대신 맛으로 느끼는 대화이기도 하다. “요리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제가 요리사 되는 걸 반대하던 아버지가 친구분들과 함께 제 레스토랑을 찾아줄 때예요. 여기엔 이제 저를 이해한다는 뜻이 담겨 있잖아요. 어떤 멋진 말보다 중요한 건 이런 것 같아요.” 그에게 요리는 일상이다. 식도락이라는 말처럼 기쁠 때 먹으면 더 즐겁고, 허기지고 힘들 때도 먹으면 기운이 나는 것. 오세득은 요리를 대단한 것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거창한 의미를 찾을 필요 있나요? 요리는 이미 우리 삶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