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 란제리 수다 삼매경

미스터 그레이에게 다양한 잿빛 타이와 고통의 붉은 방이 있다면, 순진한 아나스타샤에게 필요한 건 뭐?
그레이의 도구들을 무색하게 만들 섹슈얼한 란제리!
서울의 아나스타샤들을 위해 속옷 전문가들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수다 삼매경을 펼쳤다.

그레이의 취향보다 더 복잡하고 매력적인 여자들의 란제리 세상! 란제리와 스타킹은 모두 아장 프로보카퇴르, 제일 오른쪽 레이스 뷔스티에는 라펠라. 헤드피스는 모두 리나엔비, 별 모티브 주얼 장식 헤어밴드는 블랙뮤즈. 왼쪽부터 원석 장식 부티는 구찌, 왼손 팔찌는 피 바이 파나쉬, 레이스 부티는 마놀로 블라닉, 진주 목걸이와 팔찌는 피 바이 파나쉬, 하트 모티브 샌들은 크리스찬 루부탱, 초커 목걸이는 블랙뮤즈, 플랫폼 힐은 생로랑.

지난 2월, 밸런타인데이를 겨냥한 마크 제이콥스와 뉴욕 가죽 디자인 하우스 재나 베인(Zana Bayne)의 섹스 액세서리(정확하게는 새도마조히즘 도구) 협업 컬렉션은 다가올 유행을 감지한 발 빠른 시작이었다.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개봉일이 가까워짐에 따라 곳곳에서(속옷 전문 브랜드와 SPA 브랜드는 물론, 테스코 같은 대형 마트까지!) 영화 제목을 그대로 따다 붙인 속옷 컬렉션을 앞다퉈 선보였으니까.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끌리는 상술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바로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배경과 나쁜 남자의 치명적 매력을 고루 갖춘 미스터 그레이가 하늘거리는 깃털로 아나스타샤의 맨살을 간질이듯, 바쁜 일상에 가려져 있던 여자들의 로맨스를 자극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어느 날 당신만의 그레이가 나타나 아나스타샤보다도 더 따분한 인생을 핑크빛 로맨스로 채워줄 확률은 단 1퍼센트도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여기 세 명의 전문가-속옷을 겉옷처럼 입던 전직 패션 에디터, 남성지에서 선정한 최고의 모델, 여자들이 꿈꾸는 속옷 브랜드 매니저-들이 속닥이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극적인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Vogue(이하 V) 안녕하세요! 욕망의 란제리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분들이 모두 모였네요. 전직 <보그> 패션 에디터였던 황진선(이하 H) 님, 2011년 미스 맥심 최혜연(이하 C) 님, 그리고 아장 프로보카퇴르와 라장(아장 프로보카퇴르의 세컨드 라인)의 브랜드 매니저 변다애(이하 B) 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보신 분 계신가요?

B 전 봤어요. 남자 주인공의 실소를 불러일으키는(!) 대사와 행동들이 의외로 큰 거부감이 들더라고요. 사람들이 기대했던 장면은 예쁘게, 좋은 음악으로 포장했다고 생각하고요.

그러게요. 다들 보고 나면 배경음악 좋다는 얘기밖에… 안 보신 분들께 참고로 말씀 드리자면,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들이 좀 야하다고 느낄 정도예요. 수위 높은 영화는 어느 정도까지 보세요?

C <색, 계>나 <님포매니악>, 좀 수위를 높이자면 <사드 후작>도 좋아해요. 지금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사드 전시를 하고 있더라고요. 친구에게 도록을 사다달라고 부탁했어요.

흠, 전 사드가 섹슈얼리티 보다 인간의 어떤 면에 대한 이야기라서 좀 무겁게 느껴지던데요. 홍상수 영화 보는 기분이랄까….

가장 유명한 <살로 소돔의 120일>이 보편적이지 않은 건 확실해요. 그건 진짜 마니아용이라서.

사드 후작…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일단 성인인증이 들어가네요… 오늘의 주제, 사디즘인가요?
H 아, 저는 그저 잘만 킹 정도가 좋습니다. 예쁘게 포장된 섹슈얼리티 정도. 60~70년대 프랑스 포르노도 좀 좋고요. 옷을 예쁘게 입거든요.
우아하죠! 디올 속옷이 어울릴 것 같은!

디올 속옷! 갈리아노 시절까지만 해도 컬렉션에서 종종 볼 수 있었는데… 다들 란제리 취향은 어떠세요? 전 개인적으로 스텔라 맥카트니 란제리를 좋아한답니다.

저는 아예 할머니 속옷 같거나 아니면 완전히 섹시한 속옷! 브랜드로 보면 무인양품 vs. 펜트하우스(Penthouse)요. 가터벨트나 초커 목걸이, 스타킹 같은 ‘미장센’에도 신경 쓰는 편이죠.

H 에레스(Eres)를 좋아하지만 비싸서 자주 사 입지는 못하고, 스텔라 맥카트니와 프린세스 탐탐, 그리고 유니클로 면 팬티, 아장 프로보카퇴르 약간이요.

한번 눈이 높아지면 내려가기 힘들어서…. 일단 고가의 레이스 취향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제 취향보다 상대방의 취향을 고려하는 편이에요.

‘상대방’이 속옷에 대해 구체적인 취향을 가진 경우가 그렇게 많나요?

초반에는 모를 수 있지만 관계가 오래 지속되다 보면, 저 같은 경우 매장을 함께 방문하면서 알게 되기도 하고, 웹사이트에 올라온 신상품도 보여주고 대화하면서 알게 되는 거죠.

저는 속옷에 대해 한 가지 취향을 가지기 보다는, 그때그때 바꿔 입을 수 있도록 다양한 버전으로 갖추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 말인즉, 상대방의 다양한 취향을 수렴하신다는 뜻?

상대방이 남편 한 명뿐이라….

여태까지 쭉 하나는 아니시잖아요….(쿨럭)

(저도 쿨럭) 

에헴, 제 상대방은 스텔라 맥카트니 취향이긴 한데, 가끔은 센 것도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20대 학생이고 주 활동 지역이 홍대라서 고가의 브랜드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지만, 상대방 취향을 고려하죠(초반에는). 그리고 속옷이 애티튜드를 좀 다르게 만드는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쁜 속옷을 입으면 왠지 부주의하고 싶다던지(브이넥 라인 톱을 입고서 은근슬쩍)…

H ‘부주의’ 좋네요….

저는 좀더 당당해지는 쪽. 아무리 옷을 잘 입어도 란제리가 마음에 안 드는 날은 뭔가 자신감이 부족해져서.

H,C (동시에)맞아요!!

우스갯소리지만, 우리 직원들한테 이렇게 얘기해요.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는데, 정말 멋진 의사가 네 옷을 벗겼을 때 짝짝이 혹은….

할머니 속옷 입은 날 쓰러진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

아줌마 팬티면 어쩔 거냐, 항상 준비해서 다녀라,라고요.

V 실제로도 대다수의 남자들이 여자들의 속옷에 신경 쓰는지 궁금하군요. 여러분의 경험상 어떤 스타일을 가장 선호하던가요? 

H 저희 남편은 그때그때 다른데…. 제일 좋아하는 건 스텔라 맥카트니풍의 너무 야하지 않으면서 그냥 맑고 예쁜, 가끔 소녀 같은 것 70퍼센트, 아주 가끔 블랙 통과 속이 비치는 레이스 브라 20퍼센트, 그리고 아예 장난스러운 보이 쇼츠 10퍼센트.

C 약간씩 다르지만 대부분 하얀 레이스 속옷? 역시 청순과 섹시를 겸비한 보편적 섹시함이요. 거기에 실제로 착용한 걸 보기 쉽지 않은, 판타지 요소가 풍부한 가터벨트나 레이스 밴드 스타킹 이런 거 있으면 좋아하던데… 25세 기준이긴 하지만요.

B 전 사실 딱히 말씀 드릴 수가 없는 게, 어느 남자가 감히 저에게 란제리를 논할까 싶어요. 아무래도 5년 넘게 란제리를 다루다 보니, 제 스스로가 워낙 다양하게 보여주게 돼서 정작 그들의 취향은 모르겠어요. 많이 물어보긴 하는데, 정확하게 이런 게 좋다,라는 말은 안 하고 그냥 다 예뻐,라고 하는 경우도 많고…. 하지만 저희 매장에 오는 남자 손님들을 보면 대부분 취향이 확실해요. 오히려 함께 온 여자 손님이 부끄러워할 정도로요.

 

V 야한 속옷을 직접 사러 오는 남자 분들은 외모가 어때요? 완전 궁금!

B 진짜 멋쟁이들이 많아요. 이미 구두, 시계, 옷은 다 끝내고 넘어온 포스랄까. 서스펜더와 스타킹을 함께 사는 경우도 많고.

H 그러고 보면 예전엔 스타킹과 가터벨트가 늘 세트였는데!

C 그리고 뷔스티에도!

H 그때가 낭만적이었던 것 같아요.

 

V 특별한 느낌이긴 하지만, 비실용적일 것 같아요. 요즘에도 유효한가요?

B 제 경우엔 서스펜더보다 홀드업을 많이 착용해요.

H 홀드업이 뭔가요?

B 서스펜더로 고정하는 게 스타킹. 흘러내리지 않도록 밴드 안쪽에 실리콘 처리가 돼 있어서 서스펜더 없이 신는 걸 홀드업이라고 하죠.

H 아하, 초야에 순결의 상징이었던 그거. 그래서 남자들이 손에 넣고 싶어 하던 바로 그거구만….

 

V 섬세하고 복잡한 란제리의 세계란! 그럼 가터벨트와 코르셋 둘 다 있으신 분 손 번쩍!!

B 저요. 전 직업이라….

C 저요! 전 취향이라….
H 전 아직….

V 저도 아직… 착용감은 어때요? 답답할 것 같아.

C 답답하다기 보단, 노구를 이끌고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기분이랄까…. 섹시한 속옷인즉슨 승부 속옷이니까.

B 정말 눈이 튀어나올 만큼 당겨주면 없던 골반이 생기고(허리가 잘록해져서) 등살에 영혼까지 끌어모아 글래머가 아니 될 수 없답니다.

H 말만 들어도 농염해지는 기분… 속옷을 제대로 갖춰 입는다는 건 뭔가 특별한 의식인 거죠. 입거나 벗을 때 시간이 걸리고, 뭔가 중요한 절차를 거치는 뭐 그런 느낌.

C 기분만큼 실제로도 특별해지는 건 확실해요. 코르셋을 입고 촬영한 적이 있는데, 진짜 등 뒤에 끈을 당기면 허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가늘어지면서 호흡 곤란이… 어쨌든 효과는 드라마틱해요!

B 일례로 브랜드 행사했을 때, 한 고객 분이 코르셋 입은 걸 보고 와, 저분 몸매 엄청 좋구나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평범한 란제리로 갈아입으니 그냥 사람 몸이더라고요. 그 정도로 효과가 굉장하죠.

 

가려져 있다고 해서 속옷이 가려져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속옷으로 이성에게 어필한 에피소드 있으신가요?

C 전 아까 말씀 드렸던 대로… 브이넥 라인 톱을 입고 ‘부주의’ 했습니다. 에헴.

B 전 브라, 팬티, 서스펜더가 가느다란 스트랩으로 복잡하게 연결된 속옷 위에 얇은 겉옷을 입었죠. 상대방이 우연히 등 뒤에 손을 댔을 때, 만져지지 않아야 할 곳에 스트랩이 막 만져지겠죠? 엄청 궁금하겠죠? 손대는 순간 일단 놀라서 손을 떼고 얼굴을 보죠.

 

V 와, 내숭이 장난이 아니네요.

H 완전 멋져!

C 유익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B 처음이 힘들지 막상 시작해 보면 별것 아닙디다(먼 산을 바라보며).

 

V 그러고 보니 요즘 10대, 20대 초반 젊은 친구들은 오히려 아메리칸 어패럴 같은 데서 파는, 덤덤한 남자용 속옷도 입는다고 하더군요.

C 맞아요, 복서 브리프 같은 것.

H 예전에 일본에 갔을 때 귀여워서 산 적이 있어요. 남편 반응도 좋았고요.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한번씩 입고 즐길 정도는 괜찮은 것 같아요. 재밌고 귀엽네, 딱 그 정도.

B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죠. 조던 운동화 신은 여자 좋아하듯이. 어릴 때 해볼 만한 것 같네요.

H 속옷에도 기분전환과 TPO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처럼 한 사람과 오랜 시간을 보낸 경우엔 여러 가지 분위기를 시도할 필요도 있고요. 완전 성인용의 섹시한 버전부터 가벼운 것까지. 겉옷과도 잘 어울려야 해요. 전 가끔 레이스만으로 된 브라에 그냥 셔츠 확 풀어헤치고 입고 싶다는 생각 가끔 하거든요. 막상 그게 말처럼 쉽진 않지만…. 속옷이 겉으로 나오는 게 예뻐 보여요. 그게 레이스면 더 좋고.

 

V 브라가 비치게 입거나, 허벅지까지 찢어진 스커트는 어때요?

H 알투자라나 보테가 베네타풍이라면! 미니 말고 무릎 길이 알투자라 스커트로, 가운데 슬릿이 쭉 들어간!

C 너무 노골적인 것 보다는 역시 은근한 게 더 섹시해요.

H,B (동시에)그렇죠~.

 

V 노골과 은근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C 이것 봐! 날 좀 봐! 어떻게 생각해? 이런 것보다 어머, 보여버렸네… 뭐 이런 거?

B 저 역시. 내가 작정하고 보여주는 게 아니라, ‘원래 디자인이 그러해서 보이는 것일 뿐, 난 노출한 게 아니다’처럼 보이는 것.

H 전 미드 <슈츠(Suits)> 즐겨 보거든요. 로펌이 배경이라 섹시할 게 하나도 없는데 끝내주게 섹시한 거예요.

B,C (동시에)수트-포르노!

H 하하하. 여자들은 힙 라인이 드러나는 펜슬 스커트 입고, 유행이 뭐든 신발은 무조건 하이힐. 허리 쫙 편 채로 가슴을 내밀고 걷는 걸 보는 순간 이거다, 싶더라구요. 가장 섹시한 남자가 수트 잘 입는 남자인 것처럼 여자의 룩도 결국엔 노출이 아니라 여성스러운 몸의 곡선을 살리는 옷차림이 섹시하다고 생각해요.

B 가장 큰 매력은 자긍심! 자긍심 없는 사람은 여자든 남자든 다 매력 없어요.

H 옳은 말씀. 라거펠트 가라사대, “당신이 우아하지 않다면 그 어떤 우아한 옷도 당신을 우아하게 만들지 못한다”라고 했거늘.

C 우와, 근사해!
B 단, 자긍심은 있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은 없는 걸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