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베스트셀러가 된 시집

서점가의 이상 징후다. 시집 이 팔린다. 죽은 장르라 여겨지던 시집은 어떻게 다시 베스트셀러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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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2년 만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책이 있다. 박준 시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인데, 지난해 가을 <비밀독서단>에 소개된 것이 이유였다. 방송에서 소개된 이후 3만5,000부가 나갔다. <비밀독서단>에서 소개된 시집으로는 8년 전 출간된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도 있는데, 이 역시 출간 일주일 만에 7,000부를 찍었다. 갑작스러운 시집 판매 호조에 대해 두 시인이 원래 ‘잘나가는’ 시인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동아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박준의 시집은 방송 전 1만5,000부, 심보선의 시집은 해마다 7,000~8,000부씩 나갔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말이 줄어드는가… ‘시집 불패’ 시대”라는 제목으로, 시집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는데,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

일단 SNS의 부상에 이유가 있다. 2년여 전 시인 김선우와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 블로그와 트위터를 통한(이제는 여기에 페이스북이 더해져야겠지만) 시의 소비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맥락에서 뚝 떼어 아포리즘처럼 가장 그럴듯한 시구 부분만 재생산되는 상황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라고. 그때 김선우의 대답은 이랬다. “이렇게라도 시적인 문장들이 유통되고 있다는 것, 블로그에 시를 옮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보니 ‘시적인 문장들’이라는 표현이 재밌게 느껴진다. 알랭 드 보통은 <공항에서 일주일을>이라는 책에서, 호텔의 메뉴판이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 같은 데가 있다고 재치 있게 지적한 적 있는데, 아름다운 단어가 적당히 맞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시적이다’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깊은 산에서 직접 채취한/ 자연산 송이버섯의 향을 살린/ 사프란 향이 가미된 리조토”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SNS를 통해 퍼져나가는 ‘명언류’의 말은 굳이 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실명을 가린 트위터리안이 정치에 대해 던진 촌철살인의 한마디, 출근길에 겪은 웃긴 얘기 같은 것도 간략하고 쉽게 요약된다면 아주 먼 곳으로 퍼져나간다. 이애란의 ‘백세인생’이 2015년을 놀라게 한 깜짝 히트곡이 된 이유는 트로트의 재부상 때문이 아니라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가사가 찍힌 이애란의 공연 장면을 캡처한 사진 때문이었다. 한눈에 관심을 끌고, 더불어 옮겨 담기 좋은 것. SNS 시대의 문장 소비법이다.

그렇다 보니 진짜 대중적으로 파급력이 있는 시인은 따로 있다. SNS 독법을 아예 시 창작에 적용한 하상욱이나 김동혁 같은 이들이다. 앞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같은 시집이 방송에 소개되기 이전에도 1만5,000부 팔렸다면서(그 후 두 배가 넘는 판매고에도 불구하고) ‘원래 잘 팔리던 시집’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거나, 그들을 한숨짓게 만드는 일일 수 있는 것이 바로 2013년 출간된 하상욱의 <서울 시>가 15만 부나 판매된 ‘사건’이다. 그의 근작 <시밤: 시 읽는 밤>도 인기를 끌었는데, ‘시팔이’를 자칭하는 그의 시는 이런 식이다. <겨울왕국>의 인기에 대해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지”라고 썼는데, 사랑에 대한 시가 가장 많다. “연애의 결론이/ 결혼이 아니라/ 연애의 과정에/ 결혼이 있기를”이라든가, “서로의 단점도 받아주던 우리가/서로를 받아줄 수 없게 돼버렸네” 같은 시다. 2015년에 10년 치 욕을 들은 한국 문단에서는 하상욱의 시는 시로 치지 않겠지만, SNS의 ‘좋아요’를 통해 소통하는 세대에게 하상욱은 인기 많은 젊은 시인이다. 그의 시 창작 강의에서는 SNS에서 눈길을 끌 수 있는 방식의 시 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글 배우’를 자칭하는 김동혁은 손 글씨로 쓴 자작시를 담벼락 같은 곳에 붙인 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 인기를 얻었다.

하상욱 얘기를 들은 30~40대라면 바로 누군가 ‘유사한 예’를 떠올릴 것이다. 1992년 출판계를 휩쓸었던, 150만 부가량(추정)이 판매된 원태연의 데뷔 시집이다. 이제는 ‘사랑한다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웃음과 함께 회자되는 이 시집의 제목은 <넌 가끔다가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였다.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너를 사랑해> 역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1992년에는 최영미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도 출간됐는데, 2015년 말 개정판이 나온 이 시집은 지금껏 50만 부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지금, TV 예능 프로그램부터 지인들끼리의 술자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웃으며 외우고 있는 문장은 원태연의 저 두 시집 제목이다. 한 문장으로 ‘올킬’하는 압도적 힘이 있으니까. ‘순문학’에 더 가까운(등단이라는 문단 인증 절차를 거친 시인들의) 시집을 쓰고 읽는 이들에게 원태연의 시는 설탕과 MSG 범벅이 된 길거리 떡볶이처럼 보일지 모른다. 나 역시 그렇게 손사래 치며 원태연 시집 근처에도 안 가던 사람이었다. 그런 나조차 저 두 시집의 제목은 외우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시의 부상을 견인했다고 말해지는 박준과 심보선 시집의 인기는 어디까지나 <비밀독서단>의 방송이 계기였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심보선 시집의 경우 시 좀 읽는 사람이라면 이미 한 권쯤 갖고 있고 한 권쯤 선물로 주었을 법한 인기작이지만, 심보선이라는 이름을 알던 사람의 열 배쯤 되는, 그의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이 TV 프로그램을 통해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알았다. 이것은 시의 힘인가, TV의 힘인가?

SNS를 통해 옮겨지는 시를 보면 대체로 ‘한눈에 들어오는 시’가 많다. 시가 길수록 확산 효과가 떨어진다는 말이다. 시의 인기가 돌아왔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나는 ‘문장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하는 게 맞다고 본다.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캐치프레이즈, 재미있는 데다 때로 반전의 맛도 있는 한눈에 들어오는 문장의 시대. 어디에 옮겨 적고 싶은 혹은 아는 척할 때 써먹기 좋은 ‘한 줄’이 없다면 무엇이든 사랑받기는 힘들다. 2015년의 한국 소설가라고 말할 법한 장강명의 책 중(2015년에만 세 권의 책이 출간됐다) <한국이 싫어서>가 가장 ‘유명’한 이유는 그 소설이 가장 잘 쓰였기 때문일 수 있지만 그보다 제목이 화끈해서는 아닐까. ‘헬조선’이 최고의 유행어가 된 해였으니까. 일단 길고 복잡해 보이는 것으로 ‘노잼’ ‘TLDR(Too Long; Didn’t Read)’ 같은 말이 따라붙는 시대가 도래했다. “말도 안돼”.(하상욱 시 ‘겨우 수요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