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ot Seoul

서울의 지도가 변하고 있다. 서울로 7017부터 창신동까지, 달라지는 서울에 대해 전문가들이 의견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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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에 보행의 낙수 효과를

몇 년 전부터 ‘재생’이란 화두가 여기저기서 봇물 터진다.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재생이라는 화두가 수면에 떠올랐고, 문재인 대통령의 50조 예산 확보 공약으로 ‘재생’이 시대의 화두다. 그런데 왜 재생일까?

시대가 요구하는 숙제가 있다. 도시라는 관점에서 보면 빈곤한 시절은 우리에게 ‘개발’을 요구했고, 개발이 정점에 이른 지금은 ‘재생’을 요구한다. 인구 감소가 예상되고 지방 도시의 구도심 쇠퇴가 시작된 지금 ‘재생’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하지만 개발에만 익숙해서인지 재생에 대한 인식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개발이 단순한 생각이라면 재생은 섬세하고 복잡다단한 생각이다. 재생의 대상은 다양하다. 해당 지역의 커뮤니티부터 지역 산업까지 도시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라면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과정 또한 녹록지 않다. 개발처럼 단선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이 드라이브를 걸어 한 방에 끝내는 개발과 달리 재생은 시민과 공공 그리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수많은 대화와 조율을 통해 조각해나가는 지난한 과정을 요구한다. 개발 스피드에 익숙한 우리에게 재생이 낯선 이유다.

서울시는 최근 재생 지역 30곳을 선정하고 본격적인 재생 지원에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그중 관심이 가는 지역은 창신동과 숭인동이다. 서울시 1호 재생 지역이기도 하지만 보행 활성화에 대해 하나 제안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전에 왜 보행 활성화일까? 서울시는 서울역과 세운상가 일대 재생을 위해 서울로 7017과 세운상가 보행 데크 복원을 추진해왔다. 보행 활성화를 성공적인 재생을 위한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본 것이다. 해외 사례를 둘러봐도 보행 활성화가 재생의 기초임은 틀림없다.

창신동은 벽화마을로 유명한 이화마을과 서울성곽을 경계로 마주 본다. 이쯤이면 창신동과 숭인동의 분위기를 살짝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좀 오래된 동네 풍경이랄까? 하지만 동네가 경사지에 있어 걷기에 좀 불편하다. 걷기 불편하다는 것은 보행의 감소로 사람들이 자연스레 교류할 기회가 줄어듦을 의미하고, 이는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에 치명적이다. 이뿐 아니다. 방문객들 역시 동네 즐기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처럼 보행이 어려우면 내외적으로 동네를 활성화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동대문역에서 서울성곽을 따라 낙산공원까지 에스컬레이터를 놓으면 어떨까? 동대문역에서 내린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낙산공원까지 올라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낙산공원까지 올라간 사람들이 내려오면서 자연스레 창신동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지 않을까? 다시 말해 보행의 낙수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까? 또 지역 주민들, 특히 어린이나 노약자들의 보행이 늘어나 주민 간의 커뮤니티가 조금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

앞서 이야기했듯 재생은 톱다운(Top-down) 방식의 계획을 현실화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상의해가는 과정이다. 필자 역시 재생을 이야기하면서 하나의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싶었다. 그것을 현실화하고 아니고는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토론을 통해서 결정할 일일 것이다. 수많은 갑론을박을 기대해본다.
-전상현(도시 컨설턴트, 〈서울, 도시의 품격〉 저자)

 

상상력이 필요한 강남 지하

강남 삼성역 일대에 대규모 개발이 예정되어 있다. 영동대로 하부에 철도 역사, 지하 버스 환승센터, 도심공항터미널, 주차장, 상업·문화시설이 여러 층을 이루고 층층이 쌓이며 규모는 잠실야구장 30배에 이른다. 작년에 이를 위한 타당성 조사 및 기본 계획 수립 용역을 위한 입찰이 있었고 올해는 실제 설계를 위한 국제 공모전을 준비 중이다.

도로 하부에 교통 시설을 마련하는 게 대수로운가 싶지만, 지상 바로 아래층은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될 공간으로, 기존 코엑스 지하상가 그리고 새로 개발될 현대자동차 사업 부지(구 한전 부지) 지하 공간과 연결되어, 이제껏 없던 거대한 지하 공간이 탄생할 예정이니 그 의미가 남다르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적지 않은 지하 공간 관련 용역을 발주한 바 있다. 그때마다 제일 어려웠던 부분이 지하 공간의 개발 또는 이용에 관한 당위성을 언급하는 부분이었다. 사실 지하 공간 개발을 두고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인간의 공간인 지상을 두고 굳이 지하로 내려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의견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란 근본적으로 인간을 중심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포함하고 있어, 이런 반론 앞에서 지하 공간 개발 이야기를 꺼내면 개발주의자로 몰리기 쉬워 조심스럽다. 하지만 도로와 철도와 인간이 얽히는 고밀도 개발 지역에서, 지하에 복잡한 교통 인프라를 다단으로 넣어 정리하고 지상은 최대한 인간의 공간으로 두는 아이디어는 꽤 매력적인 제안이 될 수 있다.

이번 개발을 앞두고 바라는 점이 있다. 시민들의 생활 무대인, 지상 바로 아래층에 흔히 보는 지하상가는 이제 그만하길. 여의도 SIFC의 지하 3층까지 개발된 상업 시설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은 지하 상업 시설일 거다. 빛이 들어 지하에 있다는 느낌은 없지만, 그저 쇼핑몰일 뿐 새롭지는 않다.

우리나라 현 지하 공간의 평이함은 법, 제도, 경제적인 여건 등의 이유도 있지만, 아마 근본적으로 ‘지하 공간이 변해봤자…’ 하는 편견과 상상력의 부재가 빚은 결과물이다. 하지만 지하철 이용 인구가 하루 평균 700만 명이 넘는 서울에서 이 많은 사람이 한번쯤 거쳐 가는 지하 공간은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공공 공간이 되었다. 광섬유와 거울을 이용해 지상의 빛을 지하로 들이고 지하에 다양한 식재를 넣어 세계 최초로 지하 공원을 만든다는 뉴욕의 로라인(Lowline)처럼은 어떨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다음 세대의 비전을 제시할 만한 지하 공간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차현호(선진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이사, 〈서울 건축 만담〉 저자)

 

광화문광장에 보차 공존을

도시는 물건이 아니다. 뚝딱 만들어 쓰다가 휙 버려도 좋은 물건이 아니다. 도시는 도화지나 캔버스도 아니다. 시민이 뽑은 시장이라고 해서, 일을 맡은 계획가라고 해서 그림 그리듯 지우고 새로 만들 권한을 누구도 가질 수 없다. 도시는 천재가 만들어내는 발명품도 아니고 장사꾼이 사고파는 상품도 아니다.

도시는 생명체다. 사람과 수많은 동식물이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다. 도시는 볼거리가 아닌 삶터다. 도시는 허공에 지어진 게 아니다. 땅과 강과 언덕 위에, 자연과 생태의 바탕 위에 존재한다. 그래서 도시를 계획하고 건설하고 재생할 때 생명을 다루듯 신중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도시를 인격체로 보면 어떨까? 도시를 사람처럼 대하면 어떨까? 나를 키워준 부모, 키우는 자녀, 연인, 배우자처럼 생각하면 어떨까?

서울 광화문광장을 바꾸겠다고 한다. 의견이 분분하다. 세종문화회관 쪽 차도를 없애고 보행 광장을 확대하자는 의견도 있고, 최근에는 차도를 지하로 넣고 전체를 보행 광장으로 만들자는 제안도 나온다.

제발 오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문제를 풀어내는 게 명의고 현자다. 재개발하듯, 재건축하듯, 한 번에 크게 바꾸는 것보다 조금씩 천천히 바꿔가는 리모델링과 리디자인 방식이 더 현명하다. 너른 보행 광장이 생기는 거야 나쁘지 않지만, 차도를 지하로 넣기 위해 또 얼마나 큰 공사를 벌여야 할지 가늠이 안 된다. 비용은 또 얼마나 들 것인가? 층층이 역사가 묻혀 있는 서울의 땅 밑을 마구 파내는 것도 걱정이다.

보행과 차량을 분리하는 ‘보차 분리’보다 ‘보차 공존’이 더 좋을 수 있다. 보차 분리가 보도와 차도의 높이 차이를 주는 등 완전히 구분하는 방식이라면, 보차 공존은 보도와 차도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되 차량이 과속하지 못하도록 제어장치를 해놓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덕수궁길이 과거에는 차도와 보도가 구분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차도의 폭을 줄이고 곡선화해서 지나치게 속도를 내지 못한다. 대신 보도를 넓혀 자동차보다 사람 위주로 쓰고 있다고 해서 보차 공존 도로를 보행 우선 도로라고도 한다.

광화문광장은 현재 가운데 보행 광장과 양측의 차도로 나뉘어 있어 보차 분리 형태다. 광장 전체를 보도로 만들고 차량을 지하로 보내는 보차 분리보다, 지상의 차도를 줄여 보행 광장을 넓히고 지상에도 차도를 남겨두는 보차 공존 방식이 더 낫다. 지금처럼 주중에는 차가 다니게 하되, 주말에 차량 통행을 막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문제는 지하 차도를 새로 건설한다는 것이다. 지하 개발은 역사 도시에서 가능한 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화문광장은 최소한의 변경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는 지혜를 동원해 풀어야 한다. 백지에 그림 그리듯 맘껏 그리고 부수고 지을 일이 아니다. 광화문광장을 살아 계신 우리 아버지 얼굴이라 생각했으면 좋겠다.
-정석(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도시의 발견〉 저자)

 

서울로, 어디로?

서울시가 야심 차게 추진해온 프로젝트 ‘서울로 7017’이 드디어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주변 상인들의 반대 등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낡은 서울역고가가 철거 대신 산책과 휴식의 장소로 시민들에게 돌아왔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또 도시 산업화의 속도전 시대를 멈추고 성찰적 도시 문화를 열었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 ‘서울로 7017’은 70년대 만든 고가가 ‘2017’년에 ‘17’개의 주변 도로와 연결돼 ‘새로운 길’로 탄생함을 뜻한다고 한다. 5월 20일 개장한 이래 안전사고도 있었지만 2주 만에 100만 시민이 방문했다.

그러나 구경꾼 숫자만으로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로 디자인에 “역사 문화를 담았다”고 하지만 도시의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이 없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서울역고가 주변부의 ‘장소적 역사성’에 대한 섬세한 연결보다는 꽃과 나무를 심은 ‘정원’과 화분, 승강기, 매점, 족욕탕, 방방놀이터 등 눈요기에 치중한 듯하다. 반면 서울로는 ‘서울역과 광장’ 그리고 ‘옛 한양도성 성곽과 남산’ 등 핵심 구간의 연결은 부차적으로 간주한 인상이다. 예를 들어, 다리로 이은 대우재단 건물을 통한 남산 둘레길 연결은 ‘시늉’일 뿐 엄밀히 말해 ‘길의 흐름’을 고려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서울역과 일제가 한양성곽을 허물고 세운 남산육교와 조선신궁이 있던 남산에 대해 그 어떤 역사적 치유도 고려하지 않았다. 만일 장소적 역사성을 진정 고민했다면 서울로는 남산육교를 승강기가 아니라 ‘흐름의 길’로 이었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식민 통치의 상징으로 도쿄역과 쌍둥이로 지어진 서울역의 ‘물신적 경관’에 대해서도 성찰과 치유책을 반영해야 했다. 서울로는 지난 2011년 국가보훈처와 서울시가 후원해 서울역 광장에 세운 ‘강우규 의사상’과의 연결점도 없다. 이는 서울로가 1919년 신임 총독 사이토에게 폭탄을 투척한 ‘항일의 장소’로서 서울역 광장에 대한 고려보다는 역사를 단지 도시 마케팅의 수단쯤으로 여긴 ‘타자적 시선의 계획’임을 방증한다.

만일 개선한다면, 공모에서 2등을 한 설계안(조성룡 작)처럼 서울로 교각 상판을 다층 구조로 입체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흐름의 길’이 남산육교 옆 건물과 접점을 이뤄 서울로와 연결돼야 한다. 이는 남대문시장으로 보행자 유입과 상권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서울역과 광장의 경우, 현재처럼 승강기와 계단이 아니라 광장과 서울역 뒤편 서부역으로 갈라져 내려가는 흐름을 둔 새로운 연결체로 개선해야 한다. 이는 한편으로 광장으로 이어져 지하철 입구와 만나고, 광장의 강우규 의사상과 주변이 서울역의 물신성에 대해 ‘대척점’를 형성하도록 재조직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 연결체는 서울역 뒤로 돌아 보행자가 롯데마트는 물론 경의선과 KTX 플랫폼까지 갈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애초에 서울시는 2014년 12월 ‘서울역고가 국제현상설계’로 공모를 추진했다가 2015년 2월 ‘서울역고가 7017 계획’으로 명칭과 지침을 변경해 언론에 발표했다. 이후 급박한 준비 기간을 거쳐 네덜란드 건축디자인 회사 MVRDV의 대표인 건축가 비니 마스의 안이 선정되었다. 그러나 MVRDV는 몇 해 전에 용산역 앞 주상복합 설계안에서 뉴욕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참사 장면을 연상시키는 끔찍한 설계안(The Cloud)을 내놔 ‘반인륜적’이라는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랬던 그들에게서 서울역고가의 역사성에 대한 치열한 해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주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심사 과정에서 서울역고가를 진지하게 해석해낸 한국 도시 건축가의 출품안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만일 서울시가 역사를 고려했다면 이런 안의 장단점을 꼼꼼히 살펴 최선책을 융합해내는 신중한 노력을 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서울시는 깊이 있는 해석 대신에 서울역고가를 ‘빈 도화지’ 삼아 족욕탕까지 갖춘 ‘유원지’를 그린 당선작을 선정했다. 더구나 기존 고가에 특별한 하중도 없는 공중 정원을 꾸미는 데 교각 보수 비용을 당초의 두 배나 증액해 600여 억원을 투입한 것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이 모두가 비니 마스의 지명도에 편승해 득을 보려 한 누군가의 사적 욕망의 결과라는 뒷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서울은 근본적인 역사적 성찰 대신에 정치공학적 야심과 도시 건축과 공공 디자인의 욕망이 결탁해 황금 알을 낳는 ‘마술 쇼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이 점에서 서울로는 앞서 눈요깃감 프로젝트로 진행된 청계천 복원 사업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역사를 빙자해 ‘역사 없는 서울로’ 이끌고 있는 이러한 ‘야심과 욕망이 어디로’ 갈지 현명한 시민적 통찰과 함께 앞서 제기한 문제점에 대한 재고와 보완을 요청한다.
-김민수(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디자인 역사문화전공 주임교수,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