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Life and Time

2017.02.27

by VOGUE

    Life and Time

    자전적인 이야기로 영화 같은 음악을 들려주는 자이언티.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된 아버지의 동그란 안경을 앨범 제목에 새긴 〈OO〉으로 돌아온 그가 써 내려간 건 평범한 한 남자의 특별한 인생이다.

    1990년 여름, 김기창과 김해솔. 어린 아들은 종종 아버지의 튼튼한 등 위에서 잠들곤 했다.

    1990년 여름, 김기창과 김해솔. 어린 아들은 종종 아버지의 튼튼한 등 위에서 잠들곤 했다.

    자이언티의 노래는 반전 없는 영화 같다. 어느 잊힌 골목의 작고 허름한 극장에서 혼자 보는 영화. 한낮의 극장 안은 무덤만큼 조용하고, 눅눅한 팝콘 냄새가 밴 낡은 의자에선 가끔 삐거덕 소리가 난다. 스크린에서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잘생긴 배우도, 자극적인 장면도, 숨 막히는 스릴도 없다. 그저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 한순간을 시시콜콜 늘어놓을 뿐이다. 시시한 일상이 모여 특별하게 완결되는 우리의 인생처럼 말이다. 지난 2월 1일 자정 공개된 자이언티의 새 앨범 <OO>은 영화 <시네마 천국>을 연상시키는 영사기 필름 소리로 시작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물론 자이언티다.

    “어릴 때 살던 동네가 여기랑 비슷했어요. 고모네 집도 바로 이 근처고요.”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 나타난 그가 말했다. 과거와 현재가 미로처럼 얽힌 익선동의 오래된 가게들 중엔 그의 고모가 2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칼국숫집도 있다. “음악을 시작한 열아홉 살 때, 첫 키보드를 산 곳도 낙원상가예요. 근데 여기도 많이 변했네요.” 옛날식 빨간 벽돌집과 근사한 카페가 이웃한 좁은 골목길은 맛집 탐방에 나선 젊은 블로거들로 북적거렸다. 한껏 차려입은 관광객들 틈에 낀 터줏대감 어르신들은 스마트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그들을 가끔 쳐다보며 길가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였다. 서로 다른 두 세대가 뒤섞인다. 자이언티는 모처럼 밖에서 만난 아버지와 이 기묘한 길을 나란히 걸었다.

    샛노란 터틀넥과 핑크색 실크 셔츠는 뮌(Münn), 와이드 팬츠는 엠포리오 아르마니(Emporio Armani), 선글라스는 카렌 워커(Karen Walker at Optical W).

    샛노란 터틀넥과 핑크색 실크 셔츠는 뮌(Münn), 와이드 팬츠는 엠포리오 아르마니(Emporio Armani), 선글라스는 카렌 워커(Karen Walker at Optical W).

    자이언티에게 아버지와 함께 하는 촬영을 제안한 건 그의 노래 때문이다. 일기 쓰듯 자신의 이야기를 노랫말로 옮기는 그에게 있어 가족은 가장 중요한 음악적 화두이자 삶의 중심이다. 그의 음악 활동의 전환점이 된 곡, ‘양화대교’엔 택시 기사였던 아버지가 등장하기도 한다. “처음에 그 노래 듣고 진짜 감동했죠. 회사 차고지가 강남이라 그런지 퇴근길에 해솔이랑 통화를 하면 우연찮게도 성수대교 아니면 양화대교였어요. 옛날 생각 하니까 눈물도 좀 나고. 그런 게 있었죠.”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아버지와 아들은 닮은 듯도 하고 다른 듯도 하다. 눈이 작고 피부가 하얀 자이언티와 달리 김기창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목소리나 걸음걸이도 시원시원하다. 또 날씬한 체형과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슷하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 법. 노래 솜씨는 아버지의 유전자다. “저도 노래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노래방 안 간 지가 10여년이라 지금은 자신 없지만 제가 군대 훈련소에 있을 땐 가수였습니다. 하하.” 자이언티의 아버지가 말했다. 아들을 위해 잠시 출연한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피처링까지 소화하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그는 사진가의 카메라 앞에서도 어색함이 없었다. 스웨그가 넘친다고나 할까. 아버지는 이제 아들을 닮아간다. 힙합 뮤지션을 자식으로 둔 부모답게 즐겨 듣는 노래도 힙합, 패션 스타일도 힙합이다. 캐주얼한 패딩 조끼에 스냅백을 쓰고 온 그는 자이언티의 노래는 물론 아들이 속한 비비드 크루 멤버들의 신곡도 매번 꼭 찾아 듣는다고 했다.

    잠옷처럼 부드러운 실크 셔츠와 와이드 팬츠는 우영미(Wooyoungmi), 스니커즈는 컨버스(Converse), 선글라스는 KTZ(KTZ at Handok).

    잠옷처럼 부드러운 실크 셔츠와 와이드 팬츠는 우영미(Wooyoungmi), 스니커즈는 컨버스(Converse), 선글라스는 KTZ(KTZ at Handok).

    늘 그래왔듯 자이언티는 이번에도 앨범 공개를 앞두고 부모님에게 먼저 노래를 들려드렸다. 아버지의 평은 정확하다. “해솔이 엄마랑 새벽 2시까지 전 트랙을 몇 번씩 들었어요. 내 아들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참 좋더군요. 곡마다 색깔이 뚜렷하고 전보다 완성도도 더 높아진 것 같고. 그중에서도 ‘영화관’이랑 ‘바람’이 참 마음에 와 닿아요.” <OO>의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해”라던 그 노래 ‘노래’는 음원 발매와 동시에 라디오 채널을 틀기만 하면 나오는 유명한 노래가 됐다.

    <OO>은 정규 2집, 미니 혹은 EP 앨범 같은 타이틀이 없다. 그냥 ‘새 앨범’이다. “사이즈가 좀 애매해진 부분이 있죠.” 이번 앨범은 7곡의 신곡과 인스트루멘털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다른 곡도 많았어요. 그런데 작업 막바지가 되면서 앨범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해지니까 다른 것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어요. 그냥 은근슬쩍 저 혼자 정규 2집이라고 생각하려고요.“ 단순히 곡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이번 앨범은 첫 번째 트랙 ‘O’로 시작되는 1집 앨범 <Red Light>와 하나의 시리즈처럼 연결된다. 1집 재킷 일러스트에서 영상 카메라를 들고 서 있던 그는 이번 앨범 재킷 사진에선 안경만 쓰고 있다. 카메라라는 필터가 사라진 셈이다. 전보다 시야가 확장된 느낌이다. 수록곡 역시 좀더 일상과 맞닿아 있다. 멜로디는 한결 편안해졌고 노랫말은 보편적인 감성을 담고 있다. 탁자 위에 잔을 내려놓고 물 따르는 소리, 통화 중의 신호음, 아침 새소리, 서툰 휘파람, 영사기 필름 소리 등 우리 주변의 소리가 음악과 섞이기도 한다.

    스트라이프 패턴 재킷은 김서룡(Kimseoryong), 니트 베스트는 우영미, 레더 팬츠는 코치(Coach), 선글라스는 가렛 라이트(Garrett Leight at Handok).

    스트라이프 패턴 재킷은 김서룡(Kimseoryong), 니트 베스트는 우영미, 레더 팬츠는 코치(Coach), 선글라스는 가렛 라이트(Garrett Leight at Handok).

    “사실 OO은 어디 갖다 붙여도 의미가 통하거든요. 안경뿐 아니라 저기 탁자 옆의 전기 콘센트, 자동차 바퀴가 되기도 하고, 여자 가슴이 될 수도 있고요. 어디에나 있죠. 나한테도 있고, 너한테도 있는 그런 거. 한동안은 이번 앨범을 놓고 제 음악을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2013년 1집 이후 자이언티를 둘러싼 상황은 180도로 달라졌다. ‘양화대교’는 자이언티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비슷한 상품을 원하는 시장의 요구가 생겼다. 덩달아 그에 대한 대중의 기대도 커졌다. “그러니까 거기서부터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마음껏 보여주고 싶은데, 사람들이 원하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그가 찾은 방법은 더 솔직해지는 것이다. 공감은 두 번째 문제다. “저 자신에게 좀더 집중하고, 솔직한 이야기로 저 스스로 떳떳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 이 떳떳함이 중요한 것 같아요.”

    흰색 퍼 장식의 오버사이즈 코트는 쿠시코크(Kusikohc), 선글라스는 르 스펙스(Le Specs at Optical W).

    흰색 퍼 장식의 오버사이즈 코트는 쿠시코크(Kusikohc), 선글라스는 르 스펙스(Le Specs at Optical W).

    이번 앨범은 그가 YG 산하의 더블랙레이블로 소속사를 옮긴 후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제 1년 정도 됐죠. 확실히 배우는 게 많아요. 매일 회사원처럼 출퇴근하며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직접 보고 사람들과 계속 일을 꾸미고 있어요. 제가 진짜 좋아하는 프로듀서들이 모두 소속된 회사이기도 하고요. 그런 뛰어난 분들이 내 옆에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죠. ‘바로 건넌방에 그가 있다!’ 이런 느낌이오.” 자이언티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더블랙레이블의 수장 테디뿐 아니라 전부터 같이 작업해오던 쿠시, 피제이, 서원진도 같은 소속이다.

    더블랙레이블의 큰집이라고 할 수 있는 YG엔 지드래곤도 있다. 지드래곤은 이번 앨범에 피처링(‘Complex’)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저도 무슨 생각으로 피처링을 부탁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될 거라곤 기대도 안 했거든요. 그런데 흔쾌히 하겠다는 거예요. “For You~!”라고 엄청 달콤하게 말씀해주셔서 그날 잠을 못 잤어요.” 자신의 2집 <쿠데타>에서 ‘너무 좋아’의 피처링을 해준 자이언티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지드래곤은 한껏 정성을 기울였다. 이번 앨범의 피처링 아티스트는 딱 두 명뿐이다. 자이언티는 “제일 멋있는 사람들이랑 같이 있고 싶었다”고 했다. ‘미안해’를 함께 한 빈지노는 자이언티가 가장 좋아하는 래퍼다. “감각적이잖아요. 음악뿐 아니라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도 감각이 뛰어나고. 그처럼 다양한 멋을 알고 있다는 걸 그냥 음악으로 느낄 수 있게끔 풀어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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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언티가 세상에 나와 맨 처음 만난 제일 멋진 남자는 아버지, 김기창 씨다. 아버지가 갖고 온 옛날 앨범 속엔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그의 단단한 품에서 잠든 작은 아이가 있다. “얘는 젖먹이일 때 내 배 위에서 잤어요. 애가 순하니까 가만히 자는거야.” 자신의 등 위에서 가물가물 잠이 든 아들의 사진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의 팔뚝만하던 갓난아이는 개울가에서 아버지와 파리채 낚시를 하는 소년으로, 졸업식 꽃다발을 들고 활짝 웃는 청년으로,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휙휙 성장했다. 그와 달리 아버지의 모습은 거의 그대로다. 흰머리와 주름살만 늘었다.

    자이언티 아버지의 옆모습. 아들은 아버지의 과거를 살고,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산다. 코트와 터틀넥은 가먼트 레이블(Garment Lable), 페도라는 키지마 타카유키(Kijima Takayuki at Cabinets & Manhattans).

    자이언티 아버지의 옆모습. 아들은 아버지의 과거를 살고,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를 산다. 코트와 터틀넥은 가먼트 레이블(Garment Lable), 페도라는 키지마 타카유키(Kijima Takayuki at Cabinets & Manhattans).

    부자가 오늘처럼 같이 사진을 찍은건 거의 처음이다. “휴대폰으로도 같이 찍은 적이 없어요. 일단 제가 사진 자체를 잘 안 찍거든요.” 자이언티의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낀 채 코트 자락을 휘날리는 아버지는 오늘 익선동 최고의 패셔니스타다. “제가 안경을 끼기 시작한 게 아버지의 선글라스였어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는데 그걸 쓰고 무대에 오르니 노래하기 편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아버지의 안경이 제 아이덴티티가 됐죠.” 아들의 현재는 아버지의 과거와 잠시 오버랩되고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아버지는 음악이라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인생의 트랙을 통과해가는 아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우면서도 늘 안쓰럽다.

    2017년 현재. 자이언티의 니트 톱과 팬츠는 닐 바렛(Neil Barrett), 금색 실크 셔츠는 87MM, 스터드 장식 구두는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아버지의 롱 코트는 쿠시코크(Kusikohc), 피케 셔츠는 펜디(Fendi), 화려한 패턴의 팬츠는 코치(Coach), 구두는 벨루티(Berluti), 파나마 햇은 캉골(Kangol), 부자의 선글라스는 스틸러(Stealer).

    2017년 현재. 자이언티의 니트 톱과 팬츠는 닐 바렛(Neil Barrett), 금색 실크 셔츠는 87MM, 스터드 장식 구두는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아버지의 롱 코트는 쿠시코크(Kusikohc), 피케 셔츠는 펜디(Fendi), 화려한 패턴의 팬츠는 코치(Coach), 구두는 벨루티(Berluti), 파나마 햇은 캉골(Kangol), 부자의 선글라스는 스틸러(Stealer).

    한 남자의 일생 중 몇몇 부분을 발췌한 옴니버스 영화와 같은 이번 앨범의 마지막 이야기는 ‘바람’이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2년 전 어느 날 마침 작업실에 있던 기타리스트 서원진과 함께 토해내듯 부른 노래다. 걱정 없이 동네를 뛰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 그는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바람과 자신의 바람 사이에서 깊어지는 고민을 한 줄기 노래의 바람에 실어 날려 보낸다. 자이언티의 바람은 소박하다.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정말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경제적으로 부유하단 뜻이 아니라 행복이오. 사랑하는 부인과 가정이 있고,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힘이 있고, 자기 일에서도 멋있는 사람. 그런 성숙한 남자들이 부러워요. 물론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 수도 있겠죠. 전 강한 남자이면서도 가정적이고, 건강한 사람이고 싶어요. 그리고 제 자식에겐 우리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길 바라요.” 그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바람은 ‘해솔’이라는 이름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처럼 밝고, 소나무처럼 굳세고 푸르러라.” 어떤 바람보다 따뜻한 바람이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이미혜
      스타일리스트
      한종완
      헤어 스타일리스트
      태현(미장원by태현)
      메이크업 아티스트
      미애(미장원by태현)
      장소
      익선동 ‘동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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