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본격적으로, 복고적으로

2016.03.17

by VOGUE

    본격적으로, 복고적으로

    윤종신, 조정치, 하림, 뮤지션 세 명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온 프로젝트 그룹명 ‘신치림.’ 세 남자가 설레는 여정을 앞두고 있다. 여정에 함께할 음악은 각자의 복고 향수를 녹여낸 편안한 포크. 힘 닿는 데까지 할 수 있는 활동을 다 하겠다는 다짐은 기본이다.

    조정치의 니트 카디건은 꼼 데 가르쏭 옴므 플러스(Comme des Garçons Homme Plus), 셔츠는 라 피규라(La Figura at The Studio K),팬츠는 랙앤본(Rag&Bone at Bleecker), 슈즈는 락포트(Rockport), 윤종신의 수트는 타이 유어 타이(Tie Your Tie at Lansmere),데님 셔츠는 랙앤본, 포켓에 장식한 타이핀은 벨앤누보(Bell&Nouveau), 코사지로 연출한 부토니에는 더 스튜디오 케이(The Studio K), 슈즈는 로딩(Loding), 하림의 트렌치코트는 꼼 데 가르쏭 옴므 플러스, 팬츠는 라 피규라, 선글래스는 썬데이 썸웨어(Sunday Somewear), 슈즈는 로딩.

    윤종신이 오랜만에 가수 활동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의 매니저는 ‘본격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런데 윤종신 혼자가 아니라 후배들과 함께하는 활동이다. 이름하여 ‘신치림.’ 휴대폰 너머로 그 이름을 희미하게 들었을 때, 이 무슨 감도 안 잡히게 당황스런 팀명인가 싶었다. 신이 내린 음악이란 소린가, 신명 나는 숲이 어쨌다는 소린가? 윤종신, 조정치, 하림, 뮤지션 세 명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온 프로젝트 그룹명, 신치림. 셋은 Mnet <디렉터스 컷>이라는 프로그램을 함께한 사이다. 전국을 여행하며 게스트들과 옛 가요를 마음 가는 대로 바꿔 부르던 음악 방송이었다. 목포에 가면 ‘목포의 눈물’을 여러 버전으로 부르고, 춘천에 가면 ‘춘천 가는 기차’를 부르며 놀았다. 방송과 상관없이 셋은 각자의 자리에서 분주했다. 윤종신은 꽤 오랫동안 우리에게 가수보다는 작곡가, 예능인, 혹은 심사위원이었다. 조정치는 기타리스트이자 2010년에 솔로 앨범을 발매한 적 있는 싱어송라이터다. 하림은 최근 몇년 동안 대중가요계를 떠나 자유롭게 자신만의 시도를 감행했다. 그리고, 이제 얼마간은 ‘신치림’이다.

    윤종신은 2년 전부터 온라인상에서 자신을 ‘월간 윤종신 발행자 및 편집인’이라고 소개해 왔다. 그가 2008년 11집 앨범을 끝으로 앨범 형태를 버리고 한 달에 하나씩 디지털 싱글을 내겠다 했을 때, 그건 놀라우면서도 미심쩍은 장담으로 들렸다. 정기간행물을 찍어내듯 곡을 낳겠다니, 얼마나 파격적이고 새로운가. “그 방법이 먹히겠다 싶어서 결심한 게 아니에요. 그저 자구책이었어요. 2~3년 만에 앨범을 하나 내고 판매량을 봤더니, 이건 답이 없더라고요. 릴리즈하는 방식을 바꿔보자 마음먹었죠. 누가 안 들어주더라도 일단 매달 음악을 꺼내놓고 보자고.” 맞다. 가수 이름값과 앨범 판매량이 꼭 비례하는 건 아니다. 오늘 촬영을 위해 모인 스태프들이 윤종신의 노래들을 하루에 몇 번이나 듣는지 고백했을 때도 그는 소리쳤다. “아니, 이렇게 듣는 사람이 많은데 왜 그렇게 안 팔렸던 거야!”

    윤종신은 <슈퍼스타 K> 출연진을 비롯해 능력 있는 후배와 세션을 두루 불러 정말로 매달 음악을 내놨다. 홍보는 ‘노래 나왔습니다’라는 트위터 멘션 하나로 끝. ‘본능적으로’처럼 히트한 곡도 있고(비록 강승윤이 큰 역할을 했지만), 김그림이 부른 ‘니 생각’이나 슈퍼주니어의 규현이 부른 ‘늦가을’처럼 발라드의 힘을 보여준 곡도 있다. 그렇게 곡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연말엔 번듯한 앨범 하나로 내놓을 수 있었다. <행보 2010> <행보 2011>이라 이름 붙인 앨범은 음악인 윤종신의 기록이자 그의 기획과 구성을 엿볼 수 있는 결과다.

    윤종신이 공일오비의 ‘텅빈 거리에서’를 부른 때가 1990년이다. 가수든 배우든, 추락하지 않고 20여 년을 이어온 건 경이로운 일.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윤종신은 스스로 바닥을 쳤다고 표현한 시간들을 거쳤다. 특별히 한 일 없이 ‘체제 유지’만을 위해 번 돈을 증발시켰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벌였다가 ‘망했다.’ “잘 날렸어요. 제가 군대 가기 전에 ‘환생’을 발표했는데, 제대 후 팬덤도 많이 와해됐다는 걸 알았죠. 그것도 잘 깨진 일 같아요. 그제야 제가 자유로워졌거든요. 이상적인 모양새는 가수가 팬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팬덤이 가수를 따라오는 거예요. 사실 저는 범국민적인 가수도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좋은 점은 20년을 활동해도 소모되지 않았다는 것. 예능 때문에 윤종신을 알게 된 사람들이 역으로 음악을 찾아주니 팬층도 몇 번 교체됐죠. 한 사람을 20년 동안 계속 본다고 생각해보세요, 질리잖아요.”

    윤종신은 하림이나 조정치 정도의 후배들이라면 지금보다 이름이 더 알려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보석 같은 후배들과 팀을 꾸린 거다. 음원이 공개될 ‘D-Day’는 2월 7일이다. “우리 음악을 뭐라고 해야 하지….” “되게 촌스러워요.” “중간중간 60년대 느낌도 나요.” 셋은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흘렸다. 신치림 음악은 한마디로 포크다. 여러 마디로 하면 ‘각자의 복고 향수를 녹여낸 편안한 음악’이다. 이들은 각자 옛 것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윤종신은 가요를 만들 때 주로 매끈하고 세련된 매무새의 음악보단 적당히 복고 정서가 깔려있는 곡을 만들어 왔다(그는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음악이 정통 발라드라고 말한다). 하림은 일제시대 음악으로 극을 만들어 ‘천변살롱’이라 이름 붙이고 퍼포먼스 공연을 이어간 적도 있다. 조정치야 기타 한 대에 목소리만으로 간결하게 음악 할 수 있는 포크 가수. 윤종신은 신치림 음악이 이제껏 대중가요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스타일이라고 했다. 명심하자, 포크송엔 세시봉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전례가 없으니 더 설명하기가 힘든걸요.” 이 전례 없는 음악의 뮤직비디오들엔 곡마다 다큐멘터리 영상이 붙는다. 음악을 설명하다 말고 꽁트를 선보인다는데…. 한 시간 분량의 뮤직비디오 9편을 제주도에서 몰아 찍어왔다니, 활동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매니저도 예고했지 않은가, ‘본격적’이라고.

    구심점은 윤종신이지만, 신치림의 사령관은 하림이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하림과 윤종신은 군대에서 만난 사이. “음악 색깔에 대해선 하림에게 다 맡겼어요. 하림이처럼 절대적 신뢰를 보낼 수 있는 인물이 있으면 개성 강한 뮤지션들이 모인다 해도 걱정 없죠.” 윤종신이 하림을 치켜세우자 잠시 훈훈한 대화가 오갔다. 그 짧은 대화의 끝은 이랬다. “부담스럽습니다. 저는 그저 형님의 감을 믿는 거죠.” “우리 안 되면 다 네 탓이라고.” “형님….” 하림은 몇 개의 명곡으로 회자되는 가수다(물론 검색 전쟁에서 닭고기 브랜드 ‘하림’을 앞지를 날은 멀어 보인다). 아직도 라디오에서 곧 잘 들리는 ‘출국’이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여기보다 어딘가에’ 등은 사실 수년 전에 나왔다. 그는 2004년 2집 앨범을 낸 후 ‘삐쳐서’ 활동을 그만뒀다. 애초 기획사라는 시스템 안에서 음악을 시작할 아티스트가 아니었다. 하림이 1집과 2집 발매 사이에 아일랜드 여행을 다녀온 건 음악에 키를 쥐어준 경험이자 방황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지금 우리가 연상하는 하림의 음악이란 낯설고도 흥미로운 민속음악이다. “나는 가수인가, 연주가인가, 아니면 작곡가인가. 흑인음악을 하는 사람일까, 월드뮤직을 하는 사람일까, 끊임없이 갈등했어요. 원래 월드뮤직에 관심이 있었는데 아일랜드에 갔다가 관심이 폭발한거죠. 그리고 2005년부터 인디 활동을 시작했어요.”

    윤종신의 재킷과 셔츠는 라 피규라(La Figura at The Studio K), 하프 팬츠는 프레드 페리(Fred Perry), 롱삭스는 아메리칸 어패럴(American Apparel), 로퍼는 락포트(Rockport), 조정치의 재킷은 존 바바토스(John Varvatos), 셔츠는 라 피규라, 하프 팬츠는 빈폴(Beanpole), 롱삭스는 아메리칸 어패럴, 안경은 썬데이 썸웨어(Sunday Somewear), 보타이와 로퍼는 벨앤누보(Bell&Nouveau), 하림의 블레이저는 라 피규라, 하프 팬츠는 프레드 페리, 안경은 뷰 디씨(Vue DC).

    다 큰 30대의 모험과 탐색의 날들이 이어졌다. 하림과 ‘집시 앤 피쉬오케스트라’라는 팀은 어디를 가든 그곳을 공연장으로 만들었다. 대낮의 카페에 비치는 자연광은 스포트라이트였고, 앰프도 필요 없었다. 정해진 공연장을 벗어나 이곳 저곳 떠돌다 보니 하림에겐 이상한 소문들이 따라 다녔다. 오늘 촬영에 참여한 한 스태프는 하림에게 대구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지 않냐고 확신에 차 물었다. “대구에서 옷 가게라니요. 지방 공연 갔다가 제 팬이 운영한다는 옷 가게에 몇 번 간 적은 있지요. 어느 날은 동네 부동산 아저씨가 저를 찾아와서 ‘저 가게가 당신 거라며?’ 물었어요. 홍대 카페를 돌며 공연을 많이 했거든요. 게이라는 소문이 있질 않나….” 하림은 요즘 1년짜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여러 분야의 예술인들을 모아 음악이 있는 퍼포먼스를 이어가는 프로젝트다. 하림에게 신치림은 철저히 ‘가요 프로젝트.’ 피리 종류인 휘슬과 카주, 현악기인 드렐라이어나 시타 등 그가 다루던 진기한 악기 소리들은 신치림 음악에서 철저히 배제했다. 대신 기타를 메인으로 삼은 어쿠스틱한 사운드가 들려올 것이다. 윤종신도 기타를 든다.

    하림은 예전부터 조정치의 존재를 먼 발치에서 알고 있었다. 한영애, 강산에, 뜨거운 감자 등의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했으니 그 이름이 한 곳에만 머무를 순 없었다. 하림은 질투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뉘앙스로 말했다. “정치가 종신이 형이랑 붙어먹을 줄은 몰랐지.” 윤종신은 ‘월간 윤종신’에 함께할 뮤지션을 찾다가 김C에게서 조정치의 이름을 들었다. “형, 요즘엔 조정치야.” 그 한마디 이후로 윤종신과 김C는 연락두절이지만, 조정치는 윤종신의 곁에서 함께할 음악을 도모한다. 이 다소곳한 팀 막내는 윤종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말했다. “종신이 형이 이제 잘만 하면 차도 바꾸고 집도 살 수 있다 그랬어요….” 다시 말하지만, 신치림의 시작엔 후배를 끌어주고 싶은 윤종신의 속내가 짙게 배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후배들이 뭐 하나 손댈 곳이 없는 아티스트들이라 셋은 만남만으로 윈윈할 수 있는 관계다. 신치림이 쓰는 악기에서 메인이 되는 기타 파트는 철저히 조정치 몫. 형들은 그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한 적이 없다. 하림이 ‘요런 느낌이야’ 방향을 던지면 조정치는 집에 가서 혼자 다 작업해 온다, 띵가띵가. 여기에 하림이 노랫말을 써서 윤종신에게 ‘컨펌’ 받으러 가면 윤종신이 말한다. “괜찮은데?” 작업, 완료.

    78년생, 신치림에서나 막내지 조정치도 30대 중반이다. 예상 외로 그는 음악의 자양분을 대부분 90년대 가요에서 얻어왔다. 그가 솔로 앨범에서 들려주던 노래는 재생 버튼만 누르면 아늑한 어딘가로 피신시켜 주는, 일상의 단면 들이었다. 조정치를 소개하던 작은 레이블 회사는 그의 이름 앞에 ‘가수 정인의 오랜 연인’이란 수식어를 잊지 않고 붙였다. 그래야 그들이 ‘넌 뜨겁지가 않아’ 하며 듀엣곡을 부를 때 더욱 귀를 쫑긋거릴 수 있으니. “공부 잘하게 생겼다는 오해를 어릴 때부터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공부는 시도해 본 적도 없어요. 아실지 모르겠는데, 학생이 공부를 안 하면 시간이 되게 많아요. 그래서 기타만 쳤죠.”

    공부 대신 기타를 붙든 결과 ‘요즘엔 조정치’로 불리는 남자, 월드뮤직을 파고들었지만 이번 프로젝트가 잘 되면 다시 가요계로 복귀 할 거라는 남자, 그리고 20년 동안 대중가요계를 몸소 겪어온 남자가 모였다. 그 만남에 너무 진중한 의미를 부여한다면 신치림 음악이 당신을 배반할지 모른다. 의도적으로 헐겁게 만든 노래는 당신의 편안한 시간을 위함이다. 옛날 음악을 불러온 듯한 소리는 그 안에서 재미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윤종신은 요즘 음악과 지난 음악을 비교하며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미 ‘꼰대’가 돼버린 예전의 신세대는 과거의 음악이 더 우월했다고 윤색해 버린다. 아이돌 음악을 혐오하는 대중들이 80~90년대 음악을 칭송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느 시기에든, 현재를 사는 뮤지션은 앞서 음악을 했던 뮤지션에게 콤플렉스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건 음악과 산업의 패러다임이 다른 두 시대를 모두 경험한 자의 얘기다. 하림은 그렇게 현재의 음악도 인정하고 껴안는 윤종신을 보며 ‘대중문화’가 중요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신치림이 들려줄 음악도 결국 대중가요의 테두리에 있다. 그러니 이들은 좋은 음악 만들어서 찾아 듣는 사람의 품 안에만 음악을 안겨줄 생각이 없다. 앨범이 나오면 그때부터 스케줄 전쟁이다. 본격적으로, 복고적인 음악이 울려 퍼지도록!

      에디터
      피처에디터 권은경
      포토그래퍼
      강혜원
      스탭
      스타일리스트 / 윤인영, 헤어/신동민, 메이크업/권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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