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소니아 리키엘의 새 안주인, 줄리 드 리브랑

2016.03.17

by VOGUE

    소니아 리키엘의 새 안주인, 줄리 드 리브랑

    파리지엔 시크를 대표하는 소니아 리키엘 하우스에 마담 리키엘의 정신을 계승할 안주인이 등장했다.
    <보그>가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 줄리 드 리브랑을 파리에서 만났다.

    소니아 리키엘의 새로운 안주인이 된 줄리 드 리브랑. 그녀를 파리 생제르맹에 있는 본사에서 만났다.

    뭉근한 근성이 패션계의 미덕으로 떠올랐다. 패션 스쿨을 갓 졸업한 ‘초짜’ 디자이너들 대신, 오랫동안 무대 뒤에서 묵묵히 일하던 디자이너들이 뒤늦게 빛을 발하고 있는 것. 최근 구찌는 리카르도 티시와 조셉 알투자라 대신, 12년간 ‘직장인 디자이너’로 일해온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수장으로 ‘승진’시켰다. 구찌 중역진의 의도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맥퀸의 사라 버튼, 발렌티노의 키우리&피촐리 듀오처럼 튀지 않고 성실히 오래 일해온 디자이너들의 성공 케이스를 염두에 뒀을지 모른다. 3월 파리에서 처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에르메스 쇼를 선보일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 역시 셀린과 더 로우 등에서 차분히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현재 오스카 드 라 렌타를 물려받은 피터 코팽 역시 니나 리치 이전에 루이 비통을 비롯한 유명 브랜드에서 내공을 키웠다.

    그 비슷한 디자이너 명단에 새 이름이 추가됐다. 소니아 리키엘의 새 아티스틱 디렉터 줄리 드 리브랑(Julie de Libran)이 주인공이다. “디올 시절의 지안프랑코 페레, 지아니 베르사체, 10년 넘게 호흡을 맞춘 미우치아 프라다와 루이 비통의 마크 제이콥스까지. 매우 훌륭한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했어요.” 오뜨 꾸뛰르 쇼가 한창인 1월 말 파리의 소니아 리키엘 본사에서 만난 드 리브랑은 자신의 이력을 당당히 전했다. 90년대 초, 밀라노 마랑고니 스쿨을 졸업한 뒤 빅 하우스에서 차례로 경력을 쌓았다. 지아니 베르사체가 사망하던 날에도 그녀는 베르사체 아틀리에를 지켰고, 미우치아 프라다와 그녀의 남편인 파트리지오 베르텔리를 지금도 패션 선생님으로 모시는 중이다. “여러 디자이너들과 일하며 다양하게 패션을 다루는 방식을 배웠어요. 특히 미우치아 프라다는 누구보다 교양이 넘치고 늘 주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여인이죠. 그녀야말로 현대 여성들이 무엇을 원하고 기다리는지, 늘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스승이죠.”

    줄리 드 리브랑은 패션계 또 다른 흐름의 주인공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지금이야말로 여류 디자이너들의 전성시대. 미우치아 프라다와 레이 카와쿠보를 필두로 피비 파일로, 스텔라 맥카트니, 사카이의 아베 치토세로 이어지는 여성 디자이너들이 2015년 패션을 이끌고 있다. 드 리브랑은 지난해 9월 파리에서 첫선을 보인 소니아 리키엘 컬렉션으로 이 영광스러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사실 소니아 리키엘이야말로 현대 여성 패션의 선두 주자가 아닌가. 학생 혁명이 한창이던 1968년 마담 리키엘은 파리 생제르맹 거리에 첫 번째 매장을 열면서 ‘여자가 디자인한 여자 패션’을 선언했다. “소니아 리키엘은 파리 여성들을 위한 브랜드입니다. 물론 70년대생인 저는 책으로 접했지만, 당시는 패션을 비롯해 문화와 예술 전반에 혁명이 시작되던 때입니다.” 드 리브랑은 리키엘 하우스의 기본이 새로운 여성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파리지엔 시크’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그때 생겨난 거죠. 마담 리키엘은 과거의 유순하고 연약한 여성에 반기를 들었어요. 당당하고 활동적이며 독립적인 여성상을 몸소 창조해냈습니다.”

    소니아 리키엘이 생제르맹 데프레의 영웅으로 떠오를 때쯤, 엑상프로방스와 아비뇽 사이에 자리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드 리브랑은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하면서 패션을 맛봤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지만, 어머니를 통해 정통 파리의 멋을 경험한 것. “어머니는 굉장한 멋쟁이였어요. 샤넬과 이브 생 로랑을 입고 캘리포니아 해변을 거닐 정도였죠. 어머니를 통해 패션의 매력을 깨달았어요.” 소니아 리키엘에 대한 첫 추억도 어머니에게서 비롯됐다. “어머니는 70년대 초반에도 소니아 리키엘을 입으셨어요. 특히 어머니가 움직일 때마다 몸을 타고 유연하게 움직이던 모헤어 스웨터는 정말 끝내줬죠. 여성적인 멋과 활동적인 아름다움이 동시에 담겨 있었으니까요.” 아직도 어머니 품에 안겼을 때 느껴지던 부드러움과 향수 냄새까지 기억하는 디자이너가 꿈꾸듯 말했다.

    줄리 드 리브랑의 첫 번째 소니아 리키엘 컬렉션. 하우스를 대표하는 스트라이프와 68년 학생 혁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완성했다. 왼쪽 위는 그녀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기 위해 쇼를 찾은 친구 소피아 코폴라와 마담 리키엘의 딸, 나탈리.

    리키엘 하우스에서의 데뷔 컬렉션을 준비할 때 떠올린 이미지는 그녀가 꿈꾸는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케이트 모스, 샬롯 갱스부르, 프랑수아즈 아르디, 그리고 마린 백트가 그녀의 ‘영감 보드’에 올라 있던 주인공들이다. “이곳으로 출근한 이후 한동안 아카이브를 탐구했어요. 지난 40여 년 동안 마담 리키엘이 이룩한 것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죠. 그렇다고 과거에 의존해 디자인을 하진 않았어요. 자료실의 문을 닫고 제 주변의 여성들을 떠올렸죠.” 맨 먼저 그녀가 흰 도화지에 그린 것은 리키엘의 스트라이프. 하우스를 대표하는 스트라이프는 레이스 드레스, 스웨터, 모피 재킷 등 다양한 버전으로 등장했다. 매력적인 니트 모피, 가죽 조깅 팬츠, 핀스트라이프 팬츠 수트, 카키색 밀리터리 스타일도 데뷔쇼에 온 여성들을 흥분시켰다. 쇼장에 초대된 친구 소피아 코폴라(코폴라가 파리에 살 때 같은 유치원 학부모로 만나 친해졌다)는 이렇게 말했다. “줄리는 자신이 실제로 입을 만한 옷을 디자인합니다. 그리고 여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정확히 이해하고 있죠.” 드 리브랑은 <보그 코리아> 인터뷰 도중 에피소드를 한 가지 들려줬다. “컬렉션을 선보인 다음 날 난생처음으로 칼 라거펠트를 만났어요!” 그리고 라거펠트는 패션 선배로서 후배에게 근사한 조언을 전했다. “당신의 컬렉션은 이번 파리 패션 위크 최고의 컬렉션이고, 두말할 것 없이 ‘소니아 리키엘다운’ 컬렉션이었다.” 늘 동경해온 디자이너이자 하우스 창립자의 친구가 건넨 한마디는 어떤 칭찬보다 그녀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하우스와 함께할 제 미래에 확신을 안겨주었죠.”

    드 리브랑이 꿈꾸는 미래는 지금 다양한 계획으로 가득하다. 먼저, 데뷔쇼를 선보인 소니아 리키엘 본사 매장의 변화부터다. “저는 이곳이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예술 작품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작은 서재가 있을 수 있고, 아가씨들이 테라스에 앉아 책도 읽을 수 있는 레스토랑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아주 포근한 여자들의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뜻밖에도 그녀는 아직 하우스 창립자인 소니아 리키엘 여사를 만나지 못했다(마담 리키엘은 회사 지분 80%를 홍콩 회사에 매각했다). 마담 리키엘도 드 리브랑의 계획을 들었다면 박수를 보내며 환영했을 것이다.

    25년이 넘도록 디자이너로 일한 후 처음으로 하우스의 수장이 된 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뜨거운 관심과 스포트라이트를 맘껏 즐기고 있다(데뷔쇼가 끝난 뒤 모델들과 당당히 걸어 나와 인사하는 모습은 그녀가 준비된 스타임을 증명했다). 또 자신의 작업을 패션계가 주목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를 들뜨게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다는 거죠! 전 생제르맹에 살거든요.” 그녀가 농담을 던지며 웃었다.

    드 리브랑은 가끔 본사 맞은편의 카페 드 플로르의 소니아 리키엘 테이블(이 카페가 단골인 마담 리키엘에게 헌정한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여전히 누벨바그를 상영하는 낡은 극장과 보물 같은 책이 숨어 있는 서점, 그리고 아름다운 앤티크 아이템이 가득한 빈티지 숍까지. 이 거리가 간직한 이야기와 앞으로 펼쳐질 또 다른 이야기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패션계는 줄리 드 리브랑이 들려줄 패션 이야기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Julie’s List

    Daily Uniform 청바지, 스웨터, 남성용 블레이저
    Shopping Must 준야 와타나베, 도버 스트리트 마켓 런던
    Secret Shop 마레 지구의 아제딘 알라이야 아울렛
    Best Gift 아르마냑(Armagnac) 브랜디 ‘Single N°4’
    Bookstore 북마크(BookMarc), 7L, 라 윈(La Hune)
    Perfume 친구인 다니엘라 앙드리에(Daniela Andrier)가 만든 인퓨전 드옴므 프라다(Infusion d’Homme Prada)
    Beauty Secret 조엘 시오코(Joelle Ciocco)의 윤곽 마사지와 뷰티 제품
    Restaurant 파리의 르 뒤 파리(Le Duc Paris), 말리부의 노부(Nobu)
    Holiday 몰디브
    Best Bar 파리의 로즈버드(Rosebud)
    Museum 파리의 사냥과 자연 박물관(Musée de la Chasse et de la Nature)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손기호, 현지 진행 / 정혜선(파리 통신원)
      포토그래퍼
      Tomde Peyret
      사진
      James Cochrane, Courtesy of Sonia Ryk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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