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Vogue St – Can art change the world?
집에서는 거지처럼 지내다가 집 밖으로만 나오면 왕처럼 지낸다는 어느 파리지엥의 말이 생각난다. 여행객도 아마 마찬가지리라. 비좁고 비싸기만 한 호텔에서 나와 루우블, 그랑 팔레, 뮤제 도세이, 궁전을 개조한 수많은 뮤지엄과 튜레리 가든, 룩상부르그 공원 같은 노블 플레이스를 걷다 보면 말이다. 이 곳에서의 삶은 소유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의 혜택을 최대한 즐기는데 그 의미가 있다.
갤러리 페로탕, 그 곳에서 알게 된 아티스트 JR! 이런 걸 보고 문화적 횡재라고 하나? 갤러리 페로탕은 유명 숍 메르씨에서 코너를 돌아 600미터 거리에 위치해 있는 마레의 대표적 갤러리로, 파리의 유명 미술 중개인 엠마누엘 페로탕에 의해 창설되었다. 홍콩, 뉴욕 메디슨가에 분점이 있을 정도로 현대 미술 시장에 미치는 파워 역시 대단하다. 함께 일하는 아티스트들의 이름만 봐도 이미 이 곳에서 전시되었다는 것 자체가 현대 미술계에 중심에 있음을 증명한다.
자비에 빌한, 타카시 무라카미, 이반 아고트, 소피 칼, 패션 사진가 테리 리차드슨 그리고 우리나라 작가로는 박서보와 정창섭이 소속돼 있다. 누군가 한국의 대림 미술관 규모라 하는데 밖에서 보면 외관에 싸인 조차 없는 그저 누군가의 로프트로 보이는 입구가 전부이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나 주소 없인 찿기란 쉽지 않다.
JR! 그를 가리켜 그래피티 아티스트, 사진가, 어반 랜드스케이프 아티스트, 액티비스트, 무엇보다 도시의 심장을 송두리째 파헤치고 표현하는 휴머니스트라 부르고 싶다.
처음에는 그의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 상상력과 창작력을 요구하는 작업에 놀랐고, 두 번째는 비데오 아트나 사진 작업의 깊이와 완성도 진정성에 가슴이 띄었다. 세 번째는 나가는 길에 훔쳐 본 도록을 통해 그 간의 작업량과 스케일을 보고 놀랐다. 아니 감탄을 마지 않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게다가 1983년생, 불과 삼십 년 남짓한 생애! 이 십 년도 채 안 되는 작업 시간에 그가 완성한 업적과 그 수준은 그야말로 초 스피드로 도달한 최장의 거리라 표현하겠다.
고등학교 시절 JR 이라는 이니셜을 남기며 파리 변두리에서 친구들과 장난 삼아 하던 그래피티.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버려진 필름 카메라가 또 다른 표현의 가능성을 그에게 열어준다. 그 후 2005년 ‘레 보스퀫’이라 불리는 사건이 그의 플레이 그라운드에서 발생한다.
경찰의 추격으로 희생된 골목 친구들, 그들의 희생으로 인해 불러온 엄청난 시민 투쟁, 이 사건을 계기로 그의 카메라는 그의 심장과 연결된 눈이 되었다.
연대적 작업으로 각 시기마다 타이틀이 붙여지고 그의 카메라 렌즈는 아름답지 못한 이미지들을 쫓아 다니며 가장 아름답지 못한 장소들을 장식하기 시작한다. 초기의 ‘portrait of a generation’ 에서 이미 그의 시각적 스케일은 도시를 도배하기 시작한다.
2014년 파괴되고 붕괴된 버려진 게토의 단면 건물 실제 스케일에 해당하는 눈과 얼굴의 부위를 흑백으로 프린트 해서 붙인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그 이후 말레이시아로 떠나는 거대한 콘테이너 선박에 2500개의 사진 스트라이프를 붙인 ‘The women are heroes’ 프로젝트에선 여성의 인권을, ‘wrinkles of the city’에서는 버려지고 망가진 도시의 자화상을, ‘unframed와 inside’ 에선 그 곳에 사는 무명의 얼굴들을 표현했다. 버려진 도시의 벽은 물론이고 뉴욕 타임즈 건물 옥상 광고판에 붙이거나, 혹은 북극, 파리의 센느 강변, 도시의 한 블록에 해당하는 거리, 옥상 전면, 기차 전칸을 도배하기까지. 그의 눈이 달려가는 곳엔 그의 상상력이 함께했고 결과는 엄청난 스케일로 표현된 어반 아트의 탄생이다.
최근 들어 작업한 ‘발레’는 뉴욕 시티 발레단과의 코라보레이션으로 시작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작품 속의 우아하고 나약한 발레리나를 콘테이너 더미 한 가운데서 나비처럼 발견하게 되기까지 근간 그의 행보는 쉼표라곤 없다.
그가 지금까지 오로지 관심을 둔 사회와 인간을 향한 애정과 예술에 대한 순수한 관심은 결국 세계 곳곳에서 참여 예술로 동기화되어 아무 조건 없이 현실화 됐다. 또 함께한 아티스트도 페럴 윌리암스, 데이빗 린치, Blu까지 다양하다.
´당신이 무엇에든 어떤 분야이건 탑 200에 들어가고 싶으면 5000시간을 할애하라’고 한 제임스 알투셔의 말처럼 이 젊은 천재는 이미 그 시간을 훨씬 초월하여 말린 종이를 들고 전세계를 쉬지 않고 자신의 메시지로 도배해가고 있다. 확실한 한 가지는 그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그를 말릴 수 없으리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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