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조승우, 그리고 백윤식의 아우라
윤태호 작가의 미완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내부자들〉은 배우들의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아우라가 느껴진다. 이병헌과 조승우, 그리고 백윤식까지! 저마다의 확고한 연기 스타일을 구축해온 이들이 한 프레임 안에서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숨 막히는 드라마가 시작된다.
세 배우의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감돌던 대형 물류 창고는 이들의 존재만으로도 꽉 찬 느낌이었다. 먼지 섞인 차가운 공기는 어느새 후끈해졌다.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부정과 비리를 날카롭게 파헤친 윤태호 작가의 미완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은 복수심에 불타는 정치 깡패 안상구를, 조승우는 성공을 향한 야망으로 가득한 검사 우장훈을, 그리고 백윤식은 펜 하나로 정치판을 쥐고 흔드는 논설주간 이강희를 연기한다. ‘충무로의 어벤져스’라 할 만한 이 쟁쟁한 배우들의 캐스팅 소식에 우민호 감독은 며칠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웹툰을 원작으로한 첫 영화 <이끼>는 물론 드라마 <미생>이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때도 한번도 촬영장을 찾지 않았다는 윤태호 작가조차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현장을 방문할 정도였다. “그 에너지가 놀라웠습니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을 눈으로 확인한 작가는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럴 만도 했다. 현재까지 공개된 짧은 예고편만 봐도 숨이 막힐 정도니까. 그건 화보 촬영 현장 역시 마찬가지다. 범죄영화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다는 말에 배우들은 스스로 하나의 드라마를 만들어갔다. 그저 카메라를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수만 가지의 이야기가 담겼다. 모두가 숨죽인 채 이들의 움직임을 좇았다. 사방이 어둠에 잠길 때까지 이 놀라운 무언의 연극은 계속됐다. 조명이 완전히 꺼진 후에야 배우들은 긴장을 풀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병헌은 열흘 전 사막에서 돌아왔다. 영화 <내부자들>이 크랭크업 한 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알 파치노, 안소니 홉킨스와 함께 저예산 법정 스릴러 영화 <비욘드 디시트>에 출연했다. 그리고 다시 60년대 서부영화의 고전 <황야의 7인>을 리메이크한 동명의 영화 촬영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아무리 제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고는 하지만 서부 영화를 찍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어린 시절 <주말의 명화>에서 보았던 서부 개척 시대 카우보이들은 그야말로 진짜 사나이의 표상이었고, 소년들의 영웅이었다. 약탈자들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거친 총잡이들은 말을 타고 황야를 누볐다. 또 한 편의 전설적인 서부영화 <석양의 무법자>를 오마주한 김지운 감독의 만주 웨스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중국의 대평원을 오가며 활극을 펼친 바 있는 이병헌은 루이지애나 주의 황량한 시골 마을에서 또 한 번 뜨거운 모래바람과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그때도 진짜 고생했지만 기후로 따지면 이번이 훨씬 심했어요. 어마어마하게 더운 데다 습하기까지 해서 새벽 6시에도 밖에 10분만 서 있으면 온몸이 땀으로 쫙 젖을 정도였죠. 액션 신을 찍을 땐 스턴트맨 몇 명이 기절해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어요.” 빌리 록스 역할을 맡은 이병헌은 이 무자비한 사막에서 덴젤 워싱턴, 크리스 프랫 등 할리우드 스타들과 뒹굴며 꿈만 같은 여름 한 철을 보냈다.
반면 <내부자들>은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현실보다 더 실제적이다. 이번 영화에서 이병헌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안상구는 전라도 깡패다. 지금껏 숱한 작품을 해왔지만 사투리 연기는 그도 낯설다. “사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설프게 하느니 차라리 사투리 설정을 없애는 게 낫지 않을까 감독님과 상의도 했고요. 일단 선생님을 하나 붙여달라고 해서 며칠 동안 레슨을 받고 결정하기로 했는데 하다 보니 또 할 수 있을 것도 같더라고요. 하하. 동시녹음 기사님이 전라도 출신이라 테이크마다 조언해주셔서 큰 도움이 됐습니다.” 물론 엄청난 노력의 결과겠지만, 티저 영상 속 이병헌의 사투리 연기는 전혀 어색함이 없다. 할리우드에서도 손꼽히는 배우들과 영어로 대사를 주고받아온 그에게 사실 사투리 연기쯤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영어 연기는 진짜 너무 힘들어요. 〈황야의 7인>을 찍을 땐 에단 호크한테 특별 강의를 받기도 했죠. 마지막 신의 대사가 제일 길었는데, 그 친구 차 안에서 계속 연습하고 그랬거든요.” 에단 호크와 이병헌은 동갑내기 친구라고 했다. 상상만 해도 멋진 그림이지 않은가. 별천지 같은 할리우드 생활을 들려줄 때의 그는 정말 다른 세상 사람 같다.
이번 영화에선 조승우가 좋은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마침 조승우의 외가가 전라도였다. 뜻밖이지만 두 사람이 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저도 데뷔한 지 15년이 넘었으니까 오다가다 인사 정도는 드렸죠. 하지만 정식으로 말을 나눠본 적은 없었어요. 제가 좀 낯을 가리는 데다 술도 안 좋아해 술자리 같은 데서 친해질 기회도 없었고. 그러다 영화로 딱 만났는데, 와! 어릴 때 TV에서 봤던 멋진 영화배우가 제 눈앞에서 연기를 하니까 그거 감상하느라 첫 테이크는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첫 촬영은 감옥에 수감된 안상구와 우 검사가 면회실에서 만나는 장면이었다. 이병헌을 청춘스타로 만들어준 드라마 <내일은 사랑〉을 가족들과 함께 시청했던 추억이 있는 조승우에게 이병헌은 그야말로 스타 중의 스타였다. “레디, 액션! 하는데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저도 배우임에도 말이죠. 형은 남자가 봐도 멋있는 배우예요.” <내부자들>의 캐스팅이 확정되고 난 후, 이병헌은 아내와 함께 조승우의 뮤지컬을 보러 갔다. <헤드윅> 10주년 공연이었다. “너무 재미있게 봤어요. 영화 <말아톤>이나 <타짜>를 보긴 했지만, 솔직히 조승우 씨의 연기를 관심 있게 지켜본 적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같이 해보니 보통 잘하는 배우가 아니더군요. 여우처럼 잘해요. 깜짝 놀랐어요.” 3개월여 동안 촬영을 하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이병헌이 집으로 그를 초대한 것만도 벌써 수차례다.
조승우가 보는 이병헌은 그저 연기밖에 모르는 천생 배우다. “그냥 영화인이에요. 다른 사람이 볼 땐 한류를 몰고 온 주인공이고, 할리우드에서까지 활동하는 엄청난 스타잖아요. 그런데도 관심 있는 건 딱 연기밖에 없는 거예요. 자기 연기에 대한 집중력이 대단해요. 현장에선 모니터 앞에만 앉아 있고, 짜증 내는 걸 한 번도 못 봤어요. 저는 원래 잘 투덜대는 편인데, 대선배가 그렇게 성실하게 연기하고 있으니 한참 후배인 저로선 찍소리도 할 수가 없죠, 뭐.” 아이처럼 두 다리를 구부려 모아 의자 위로 올리며 조승우가 말했다. 화보 촬영 현장에서도 두 사람의 스타일은 극명하게 다르다. 촬영에 앞서 오늘 입을 의상을 하나씩 미리 피팅해본 이병헌은 마지막까지 꼼꼼히 모니터를 체크하고, 조승우는 오케이 소리가나기 무섭게 밖으로 달려 나간다. 인터뷰를 할 때조차 이병헌은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 단어 하나까지 신중하게 골라 사용하는 그에 비해 조승우는 제집처럼 편한 자세로 거침없이 대화를 이어나간다. “전 뭘 미리 막 준비 안 해요. 대사도 달달 외워가는 편이 아니고. 좀 날라리 같이 하죠. 어차피 현장에서 조율하다 보면 많이 바뀌니까. 어떤 테이크가 더 나은 것 같다, 그런 얘기도 안 해요. 제 연기를 누가 알겠어요? 감독님이 오케이면 오케이지.” 대신 그는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감독과 얘길 나눈다. 배우들과의 리허설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리고는 이병헌의 표현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여우처럼 기가 막힌 연기를 해낸다. 그건 조승우의 그 유연함 덕분일 것이다.
존재 자체로 영화에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내는 백윤식은 어떤가. 빨간 ‘빤스’ 한 장만 달랑 두른 채 엽기적인 고문을 당하던 민머리의 안드로메다 왕자(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강 사장)와 서슬 퍼런 호랑이(영화〈관상>의 김종서), 고뇌하는 지식인 사이를 태연하게 넘나들 수 있는 배우는 아마 백윤식이 유일할 것이다. 어떤 황당무계한 캐릭터라도 그가 연기하면 그럴듯한 사실감이 생긴다. 짙은 쌍꺼풀과 형형한 눈빛, 예민해 보이는 콧날, 우아한 머리칼과 주름. 그리고 이 모두가 모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관록의 배우는 어쩌면 정말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이번 영화에서 백윤식과 첫 호흡을 맞춘 이병헌은 그 기묘하던 경험에 대해 말했다. “마주 보며 연기할 때는 ‘어? 이거 연습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힘이 다 빠진 상태로 그냥 웃으면서 편하게 말씀을 하세요. 왜 저렇게 하실까 처음엔 의아했죠. 그런데 화면으로 다시 보니 그 장면이 정말 파워풀하더군요. 저게 바로 진짜 내공이구나 싶었죠.” 마치 취권을 하듯 백윤식은 기이한 리듬으로 힘의 강약을 조절한다. 그리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 그 농축된 감정을 주머니 속의 휴지 버리듯 편하게 툭 터뜨린다. 그 한 방의 강도는 원자폭탄급이다. 고수가 아니면 감히 흉내도 내기 힘든 심오한 연기다.
커피를 권하자 백윤식은 가지고 온 유자차가 있다고 했다. “지난주부터 감기 증세가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딱 차에 탔더니 우리 매니저가 따끈따끈한 유자차를 준비해주더라고. 아주 센시빌리티하게. 얼마나 고마운지.” 근사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당연한 일상처럼 스포츠 클럽을 다니며 배우로서 자신을 관리해온 백윤식은 여전히 허리 사이즈 30의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젊은 친구들처럼 만화도 좋아한다. “난 신문이 익숙한 지면 세대니까 웹툰이란 건 접근할 기회가 없었는데, 우민호 감독이 단행본으로 나온 <내부자들>을 한 권 줬어요. 아주 재미있게 봤어요.” 지난해 그가 출연했던 <내일도 칸타빌레> 역시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내부자들>의 촬영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드라마 속에선 셀카에 열을 올리는 철없는 마에스트로 프란츠 슈트레제만으로, 영화 현장에서는 온갖 권모술수로 정치판을 주무르는 이강희로서 백윤식은 한동안 이중생활을 했다.
조승우와는 두 번째 만남이다. 전작 <타짜>에서 끈끈한 정을 나눈 스승과 제자는 이번 영화에서 대립각을 세운다. “이번에는 미묘했죠. 검사와 언론의 논설주간이니까.” 이강희는 <돈의 맛>의 윤 회장이나 <그때 그 사람들>의 김 부장, 혹은 그가 연기해온 여러 사기꾼들처럼 권력과 돈을 좇는 세속적인 인간이다. 그러나 회의를 모른다는 점에서 여태까지의 낭만적 신사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백윤식은 이강희를 단순한 악인으로 규정짓지 않았다. “현실적인 인물이지. 요즘 다 그렇잖아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짓, 이런 짓, 저런 짓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변이적인 언행이 나오기도 하고. 남들이 볼 땐 부정적인 사회 구성원이겠지만 이강희 입장에선 자기 목적과 또 본인이 생각하는 대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활용하는 거니까. 한쪽 시선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어요.” 백윤식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며 최대한 영화에 대한 말을 아꼈다. 아직 완성본을 못 본 상태이기도 했다. “아마 감독이 편집하면서 애 좀 먹었을 거예요. 일설엔 1, 2부로 나눠 개봉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얘기도 있어요. 물론 농담이지만 그 정도로 아까운 장면이 산재한다는 거예요. 그만큼 재미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하하.”
홍보팀이 휴대폰에 담아온 5분짜리 편집 영상은 확실히 자신감을 가질 만했다. 번뜩이는 칼날처럼 살아 움직이는 말들에 감탄하자 이번엔 조승우가 손으로 말하는 시늉을 하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구강 액션이라고들 그러죠. 대사가 아주 휘황찬란하거든요.” 전설의 프로야구 선수 최동원의 실화를 다룬 영화 <퍼펙트 게임>에서 ‘경상도 싸나이’의 의리와 뚝심을 보여준 조승우는 이번 영화에서도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요번엔 좀 달라요. 우장훈처럼 서울로 올라온 경우엔 보통 사투리가 변형되잖아요. 지방 출신인 걸 티 안 내려고. 그래서 남도도 북도도 아닌 족보 없는 사투리를 써요.” 조승우가 영화에 모습을 비친 건 꽤 오랜만이다. 특별 출연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암살>을 제외하면 구혜선 감독의 저예산 영화 <복숭아나무> 이후 3년 만이다. 이번 작품 역시 출연 제안을 받고도 세 번이나 고사했다. “거울을 봤는데, 검사 역할을 하기엔 제 얼굴이 너무 어려 보이더라고요. 제가 낄 판이 아닌 것 같았어요.” 배우는 태평한데 오히려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잘 맞을 것 같은데 왜 안 하느냐는 얘길 진짜 많이 들었어요. 내가 객관성을 잃어버린 건가 싶기도 하고 고민이 되긴 했죠.” 결정적으로 마음을 돌린 건 우민호 감독과 대면한 후였다. 그는 감독이 보여준 성의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우직하고 무데뽀적인 우장훈 검사의 모습이 감독님 얼굴에서 딱 보이더군요. 우검사는 원래 원작엔 없는 캐릭터거든요. 저렇게 밀어붙이면 되겠다 싶어 그 자리에서 하겠다고 했어요. 이렇게 훌륭한 배우들과 좋은 스태프들이 참여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잠시 스크린을 벗어나 있는 동안 그는 뮤지컬에 집중했다. <헤드윅>과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가 모두 10주년을 맞으면서 기념 무대에 올랐고, 현재는 11월부터 시작되는 또 다른 뮤지컬 <베르테르>의 15주년 공연을 준비 중이다. <베르테르> 역시 오래전 그가 출연했던 작품이다. 영화 <말아톤>의 ‘백만 불짜리 초원이 다리’가 탄생하기도 전이었다.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한 달 남짓 공연하고 13년 6개월 만에 처음 하는 거거든요. 생소하죠. 제 감성도 그때랑 다르고.”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더 이상 ‘젊은’ 베르테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제목에서 ‘젊음’이 사라져버렸어요. 그냥 베르테르! 서글프더라고요. 큭큭. 뭐 같이 하는 엄기준 형도 이제 40대니까 그게 맞죠. 양심적으로.” 아직 <맨 오브 라만차>의 공연이 한 달이나 남은 상황에서 <베르테르> 연습이 시작된 탓에 요즘 그는 인생을 통틀어 가장 바쁜 시간을 보냈고 있다. 목소리도 잔뜩 쉰 상태였다. “죽음의 스케줄인데요, 공연이 있는 날은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연습을 하고 바로 신도림으로 이동해 저녁 공연을 해요. 11시에 끝나서 집에 오면 12시가 넘죠. 완전 기절하는 거예요. 어제도 그렇고. 계속 그 생활을 반복하고 있어요. 공연이 없는 날은 아침10시부터 밤 10시까지 12시간 연습하고. 이걸 ‘텐투텐’이라고 하는데 뮤지컬계에선 지옥의 연습으로 통해요.” 뮤지컬 연습 때문에 제일 늦게 도착한 조승우를 남겨두고 먼저 화보 촬영 현장을 떠난 백윤식은 마지막으로 그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건넸다. 궁금증이 일었다. “아까 무슨 얘길 하시던가요?” “별건 아니고요. ‘조낸’ 고생하고 제작 보고회 때 보자꾸나! 하하.”
고생이라면 이병헌도 할 말이 많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거의 내내 오른팔에 의수를 부착하고 나온다. 한쪽 다리마저 없는 원작의 안상구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액션까지 소화해야 하는 배우의 입장에서 그로 인한 불편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원작과 달라진 점은 신체 조건뿐만이 아니다. 영화 속 안상구에겐 유머 감각이란 게 있다. “사건 전개가 워낙빡빡하니까 관객들이 쉬어 갈 수 있게끔 웃음을 유발하는 인물이 하나 필요할 것 같더군요. 감독님에게 그런 얘길 했더니 한 달 동안 다시 대본을 수정해 안상구 캐릭터에 코믹한 뉘앙스를 가미하셨어요.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허술하고 엉뚱한 인물로 살아났죠.” 이병헌식 코믹 연기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익살맞은 광대 하선을 통해 살짝 맛본 적 있지만, 이번엔 훨씬 본격적이다. 일단 외모부터 범상치 않다. 뽀글거리는 아줌마 파마머리를 한 이병헌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쌈박질을 하다 엉망진창이 된 얼굴로 산발한 채 허겁지겁 밥을 먹는 이병헌은?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폐인이 된 모습은 또 어떤가? 이병헌은 낄낄대며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해둔 현장 사진을 보여줬다. 촬영 틈틈이 누군가 대신 찍어준 것들이다. 촌스러운 헤어스타일로 온몸엔 문신을 잔뜩새긴 안상구는 같은 깡패라도 영화 <달콤한 인생〉의 선우와는 극과 극이다. 이번 영화에서 이병헌은 그야말로 거침없이 망가진다. “안상구의 인생 자체는 어쩌면 <달콤한 인생〉의 선우와 비슷할지도 몰라요. 스카이라운지의 통유리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보며 기분 좋게 섀도복싱을 할 때의 선우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죠.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그가 생매장을 당하는 상황에 이르는 것처럼 안상구 역시 천국과 지옥을 맛보는 인물이죠. 가장 화려한 순간부터 밑바닥으로 추락하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어요.” 이 변화무쌍하고 파격적이기까지 한 연기 변신을 누구보다 즐긴 건 이병헌 본인이다.
<내부자들>은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과 그 부조리한 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는 점에서 최근 개봉한 천만 영화 <베테랑>과도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베테랑>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왕과도 같은 권력을 누리는 재벌을 비판했다면 <내부자들>은 부패한 정치판을 겨냥한다. 하지만 서도철 형사와 같은 정의의 사도는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미생〉의 장그래가 끝내 미생으로 남는 것처럼, 윤태호의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오히려 영화는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기는한가?”라고 되묻는다. 주인공들은 슈퍼히어로 만화에나 존재하는 정의라는 환상 대신 움켜쥘 수 있는 성공을 꿈꾼다. 각자의 방식으로 맹렬히 달려온 자들의 욕망이 충돌하는 이번 영화에서 세 배우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팽팽하게 맞섰다. 영화 속 그들처럼 모든 것을 걸었다.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목적은 하나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배우로서의 정점! 저마다의 확고한 연기 스타일을 구축해온 이들이 한 프레임 안에서 만났을 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숨 막히는 대결이다. 판은 이미 짜였다. 진짜 ‘꾼’들의 싸움이 시작됐다.
- 에디터
- 이미혜, 스타일 에디터 / 손은영
- 포토그래퍼
- Lim Han Soo
- 스타일리스트
- 이한욱(조승우), 김미현(이병헌)
- 헤어
- 김승원(백윤식, 조승우), 민영일(이병헌)
- 메이크업
- 류현정(백윤식, 조승우), 김정남(이병헌)
- 세트 스타일링
- 최서윤(D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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