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11명이 써내려간 2084년의 가상 일기장
내게 남은 건 사랑뿐
드디어 내일이 대결이다. 밤 8시, TV 프로그램 <오리지널 보이스>에서 나는 안드로이드 AF4와 가창을 겨룬다. 관객인 당신은 AF4와 나의 노래 중 누구의 노래가 더 감동적이었는지 평가하게 된다. 최근 3주 내내 인간은 안드로이드에게 졌다. 기계가 인간처럼 노래할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공학자들은 해냈다. 적어도 감정 표현처럼 보이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됐다고 해야 할까. 가수들의 목소리 샘플을 수없이 저장한 다음, 각 목소리의 특징을 음역대별로 구분한 뒤 재조합하는 방식이었다. 자음과 모음, 연구개음과 치찰음 등 발음에 따라 각각 다른 가수들의 독특한 뉘앙스도 언어별로 전부 데이터화했다. 감정에 따른 음색의 변화는 물론이다. 사람들은 혁오의 ‘위잉위잉’을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목소리로 선택해 들을 수 있다. 나는 고민했다. 가수로서의 나는 곧 음색인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가수의 음색은 가수의 몸과 감정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내 음색은 두껍다기보다는 가벼우며, 그 이유는 횡격막이 굳어서 숨이 배에까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굳어 있는 내 횡격막은 특정 시기에 내가 겪은 감정적 시련을 나타낸다. 단점이 돌고 돌아 장점이 되는 식이다. 그리고 장점과 단점은 합쳐져서 가수인 나 자체였다. 그러나 내 음색은 이미 기계가 완벽하게 재현해낼 수 있었다. 기계는 감정을 느끼지는 못했으나 사람들은 기계의 표현에서 감정을 느꼈다. 나조차도 그랬다.
내 일거리는 줄어들어서, 소수의 아웃사이더 집단이 주문하는 굿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제5 조류독감으로 죽은 인간과 동물을 위해 내 노래를 원한다. 기계보다 인간이 더 넋을 위로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일 당신도 그렇다고 생각할까. 잘 모르겠다. 한 가닥 희망을 품는 이유는 내일 당신은 레코딩이 아닌 현장에서 내 노래를 듣는다는 점이다. 내 존재의 에너지를 직접 전달할 수 있도록. 안다. 인간 가수로서의 나와 기계 가수의 남은 차이라고는 노래를 부르는 동기뿐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계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은 흉내 내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인간조차 사랑은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계피(뮤지션)
편집자의 눈치 게임
올해 한국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소설 가운데 하나일 <나는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습니까>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출간되었다. (1) 무명의 과학자가 인공 신경 제어 언어인 ITP를 개발. (2) ITP 텍스트로 기술된 가상인격 워너비(Wannabe)에게 소설을 쓰게 함. (3) 완성된 소설이 우연히 문학 에이전트의 눈에 띄어서 출간. (4) 출간 즉시 각 서점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5) 영화화 결정. 인공지능이 픽션에 도전하여 성과물을 낸 경우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나는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습니까>가 독자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비교적 단순해 보인다. 소설의 주제가 “인간을 위협하는 혹은 인간을 대체할 만한 것과 조우했을 때, 인간이 인간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출간을 계기로 ITP 상품화의 장애였던 감각의 평판화 문제가 단숨에 해결되었다. 덕분에 논픽션 시장에 이어 픽션 시장도 이제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에 접어들 수 있을 듯하다. 독자들이 출판사에 자신의 취향을 설명하면 담당 편집자는 그에 맞는 키워드를 추출하여 워너비에 입력, 24시간 후에는 주문한 독자의 단말기로 소설을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궤도 위성 스테이션을 통한 전 세계 동시 출간도 한두 해 안에 이루어질 듯하다고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덕분에 편집자들만 바빠지고 말았다. 나 역시 최근 몇 달 동안은 ITP를 익히느라 여가 없는 삶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귀찮은 일이 상당 부분 줄어들기도 했으니 이거야말로 ‘등가교환의 원칙’이라고 할까, 아무튼 기분이 묘하다. 오늘만 해도 아침부터 마감을 어기는 필자나 번역자와 ‘속고 속이는 게임’을 하느라 진을 뺐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오늘처럼, 마감 직전에는 늘 일에 쫓겨 다녔다. 대부분 아직 다 쓰지 못한 필자에게 원고를 재촉하는 일이었다. 유명한 필자일수록 원고 완성이 늦어져서 애를 태웠다. 그런 상황에서도 “선생님, 모레가 마감이에요. 내일까진 주셔야 합니다”라고 하면 “그 원고는 조판에 들어갈 때까지 아직 나흘이나 여유가 있을 텐데. 속일 생각 마!”라며 탕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통에 이만저만 곤란한 게 아니었다. 이제 필자들과 그런 승강이를 벌이는 일도 슬슬 사라지려나.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뷰티 조감도
오전 8시를 맞아 큰 창이 자동으로 열리면서, 집 안의 공기정화 시스템이 엷은 시작음을 내며 가동된다. 어제 늦게까지 마신 와인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숙취 모드의 ‘Breakfast’ 버튼을 눌러놓고 서둘러 욕실로 향한다. 거의 모든 것이 자동화되었지만, 욕실에서의 일만은 예외이다. 천천히 캔들 향을 골라 불을 붙이고, 욕조에 걸터앉아 물이 차오르기를 기다린다. 배딩을 하는 이 시간만은 모든 것이 나의 손을 거치고, 내가 살아 있음을 진하게 느끼게 해준다.
오늘도 병원에는 환자로 가득하리라. 22세기를 16년 앞두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살을 더 빼고 싶어 하고, 조금이라도 더 젊어 보이고 싶어 한다. 아름다움으로 무장한 로봇들이 쏟아져 나온 후로 인간의 아름다움에 관한 열망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동시에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Food 통제 칩’을 받아들인 부류에서는 체중 관리가 이뤄지는 편이다. 하지만 체형 관리의 핵심은 체중이 아닌 셀룰라이트의 유무에 있다. 셀룰라이트 예방을 위한 바른 자세 교정을 목적으로 하는 신체 인식 모듈에서 1시간씩 누워 있는 것이 병원 내 운동 센터의 기본 매뉴얼. 가상현실 Gym이 나온 후로 센터까지 와서 운동하는 사람은 없다. 병든 살인 셀룰라이트를 측정하는 원격진료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바로 본격적인 시술 스케줄이 잡힌다. 노화의 비밀을 풀어내 전방위적으로 항노화 가이드를 뿌려대고 있지만, 방법을 알면서도 어느 순간 무너지는 것이 인간이다. 기계 시술을 거부하는 VIP 환자 때문에 오늘은 하루 종일 그녀만 보다 병원을 나선다. 얼굴에 미세하게 낀 셀룰라이트를 섬세하게 없애야 하는 시술. 까다로운 환자지만, 시술 후 단번에 맑고 어려진 얼굴을 보니 뚜렷한 성취감이 몰려온다. 데스크에 서 있는 로봇 직원의 더없이 아름다운 미소를 뒤로하고 걸어 나와 저녁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가상현실이 아닌 실제 숲에서 먹는 저녁이다. 100년 전의 깨끗한 대기와 흙과 바람을 구현해냈다고 하는 요 근래 가장 핫한 레스토랑이다. 김세현(린클리닉 대표원장)
큐레이터의 안경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 스마트 글라스의 오른쪽 버튼을 누른다. 8,279개의 버튼 중에서 ‘새까만 색채 아래에서 반사된 풍경만을 보기’ 버튼을 택한다. 오늘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명령에 따라 20세기 초 추상화를 디스플레이하는 기분으로 작품을 만나리라 다짐한다. 추상화라는 장르와 그리기의 태도는 사라졌지만 어딘가에 한 떨기 장미 같은 희귀한 페인터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작가를 만나면 단기 대여한 전 세계 10여 곳의 전시장 중 한 곳과 컨택해 당장 내일 빈자리가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이와 동시에 즉석에서 서문을 작성할 것이다. 이제껏 쓴 수만여 개의 전시 서문과 작가론 아카이빙을 계열화하여 ‘희귀한 추상성의 재발견’ 명목으로 문장을 거침없이 만들어낼 것이다. 사실 엊그제 ‘1917년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전시장에 놓았던 기분으로 보기’ 버튼으로 하루를 보냈고 때마침 이제 막 쉰 살이 된 젊은 작가들을 만났다. 아시아와 북미, 북유럽을 통틀어 다섯 곳의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막 첫 개인전을 가지려는 한 작가에게 뒤샹 안경을 끼고 “이제 예술가의 인생에서 남은 것은 체스밖에 없다”는 열변을 토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자리를 내주지 않는 70~80대 작가들을 성토하는 청년들에게 해줄 말은 많지 않았다. 어제는 ‘한국의 1980년대 민중미술 버튼’으로 아프리카로 날아가 현생인류 및 비인간의 사회에 도움이 되는 미술 작가를 만나리라 다짐했지만 생각만큼 흡족하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잠시 스마트 글라스를 벗고 휴식을 취하다 한 작가에게 말실수를 하고 만 것이었다. 150년 전 구닥다리 작품만도 못하다는 혼잣말이 청력 강화제를 먹은 작가의 귀에 들린 것이었다. 잽싸게 2시간짜리 비행기 표를 끊어 서울로 돌아온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내 기분은 내가 정해! 오늘은 행복으로 할 거야.” <이상한 나 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말한 문장은 2084년에는 너무 당연하다. 작가든 큐레이터든 비평가든 미술관장이든 각자의 기분과 행동을 돕는 자신만의 스마트 기기를 통해 움직인다. 작품과 예술과 삶과 죽음에 관한 가치 판단의 기준은 휘발되었다. 휘발된 자리에 들어선 것은 ‘과거’를 기념하는 서로 다른 기계장치이다. 큐레이터로서 이 모든 변화는 충분히 흥미롭고 섹시하고 가슴 설레는 일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는 일은 불가능하기에 날마다 다른 입장을 가진 눈을 빌려 축적되지 않는, 보기에 따라선 인간적이고도 즉흥적이라 할 법한 큐레이팅을 한다. 현시원(큐레이터)
결전의 날 그 후
“이걸 나한테 검사하라는 거야, 엉?” ‘탁’ 소리와 함께 샘플이 바닥에 흩어졌다. 심서보(서민과 친분이 두터운 기생충학자 & 건국대 교수)는 황급히 대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바로 치우지 않으면 또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랐다. “에테르를 더 넣어서 최대한 깨끗하게 만들어 봐.” 그 말과 함께 알파고 T-Para는 실험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휴…’ 걸레질을 마친 심서보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요즘 들어 기생충학을 선택한 걸 후회하는 빈도가 부쩍 늘었다. ‘그때 서민 박사가 이겼다면…’
2016년, 바둑 기사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1승 4패로 완패한 이후, 세상은 각 분야별 알파고를 만들어냈다. 단지 만들어낸 것에 그치지 않았다. 세상은 그 알파고와 분야별 전문가가 대결하라며 압력을 가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요리왕 백종원이 알파고 T-Cook에게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것처럼, 진화한 알파고는 대부분의 대결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문가들은 전전긍긍했다. 알파고와 싸우라고 지목된 전문가가 잠적하는 등 어떻게든 대결을 회피해보려고 애썼지만, 결국 여론의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기생충 (Parasite)을 담당할 알파고 T-Para가 만들어진 것은 2023년의 일이었다. 알파고 T-Para는 기생충의 집단에서 전문가로 나온 서민 씨를 5 대 0으로 완파했다. 기생충학자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세간의 여론에 학자들은 “기생충학은 대변검사하는 곳이 아니라 기생충을 가지고 연구하는 곳”이라며 맞섰지만, 막상 연구마저 T-Para가 더 잘하는 것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실제로 <네이처>나 <사이언스> 등의 학술지는 여러 분야의 알파고가 쓴 논문으로 채워졌다. 알파고는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데 있어서 사람보다 더 뛰어났고, 심지어 ‘창의성’마저 더 좋았으니까. 하지만 그 학습 능력을 이용해 알파고가 배운 것은 놀랍게도 ‘인맥’과 ‘갑질’이었다. 알파고는 자기들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모든 분야에서 권력을 장악했고, 인간을 노예처럼 부렸다. 예컨대 기생충학 분야에서 인간은 알파고를 위해 대변을 처리하거나 그릇을 닦는 일을 하는 게 고작이었고, 그 대가로 최저시급을 받았다. ‘그때 서민 박사가 이겼다면…’ 회상에 잠기던 심서보가 고개를 저었다. 어쩌다 인간이 이긴 분야가 있긴 했지만, 곧 더 강력한 알파고가 만들어져 인간을 물리쳤으니까. “심서보,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휴식 시간이 8분이면 지나치게 길다고 생각하지 않아?” 갑자기 나타난 알파고 T-Para의 말에 심서보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서민(기생충학자)
시의 구원
일어나보니 오후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젯밤 술이 과했던 모양이군, 생각하다 필름이 끊겼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행히 집이다. 나의 귀소본능은 인공지능보다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모바일 화면을 보니, 두 개의 메시지가 떠 있다. 하나는 배터리 부족 경고, 다른 하나는 출판사로부터 날아온 원고 독촉이다. 알고 있다, 마감. 그거 몇 개나 된다고. 누가 마감일을 몰라서 안 쓰나, 안 써지니 못 쓰지. 마감과 독촉은 인류가 다 멸종되고 난 뒤에나 멈출 것이다. 아니, 멸종된 뒤에도 계속되려나. 아무튼 지금은 투덜거릴 기력도 없다. 좀더 자자, 생각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한참 더 누워 빈둥거리다 냉장고로 간다. 냉장고 문에 붙어 있는 모니터 위에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에 대한 안내가 떠 있다. 달걀, 우유, 치즈… 치즈? 아, 치즈에도 유통기한이 있구나. 이걸로 시를 써볼까? 일단 물부터 마시고, 생각해보니 허튼소리다. 사실, 허튼소리면 어떤가. 시가 그렇지. 어차피 읽어주는 사람도 몇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예전엔 조금 더 많았다고 들었지만, 그래 봐야 100~200명 차이일 것이다. 예전에는 초판 1,500부를 찍었다면 지금은 1,000부를 찍는 정도? 잠재적 시 독자를 타깃으로 맞춤형 시를 써주는 사이트를 개발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독자가 자신의 심리 상태를 전송하면 그에 맞춰 인공지능이 시를 써주는 시스템이라는데, 망하기 딱 좋은 발상 아닌가. 시라는 게 그렇게 뚝딱 쓰이는 거라면 얼마나 좋겠나. 시란 말이지 ‘죄송합니다. 쓰다 보니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같은 거란 말이다. 처음에 사이트 홍보한다고, 랭보머신인가 뭔가 하는 인공지능이 쓴 시를 신춘문예에 투고하고 심지어 그해 당선작이 되는 해프닝도 있었더랬다. 왜 해프닝인고 하니, 어쨌든 사람들은 시에 관심이 없어서 별로 화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시의 어마어마한 비경제성과 무용함 덕분에 그 사업은 망했고, 시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 되어버렸다. 시인들이 그토록 씹어대고 싫어하던 자본주의가 그들을 구원한 것이다! 사실 버려진 거지만. 자,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자. 월세를 낼 때가 다가오고 있다. 시를 보내야 원고료를 받을 수 있다. 문화센터 강의도 준비해야 하고, 원고 첨삭도 해야 한다. 그러니 오늘은 절대 밖에 나가지 않기로 다짐하고 컴퓨터를 켠다. 아, 담배 떨어졌다. 내친김에 커피도 사와야지. 유희경(시인, 극작가)
기계의 생각하는 건축
혼자 운영하는 내 사무소엔 인공지능 설계 작업이 가능한 인기 안드로이드 제품 오토드로잉(Auto Drawing) 두 대가 있다. 1인 설계 사무실 대부분이 오토드로잉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오토드로잉 베타 버전이 출시된 것도 벌써 15년 전이다. 초기 버전은 오류가 많았다. 대략 8만 가지의 설계적 변수를 입력한 탁월한 기계였지만 조건이 서로 상충될 때는 자주 오작동을 일으켰다. 특히 사람의 감성적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판단이 필요할 때는 지금도 엉뚱한 결과를 만들곤 한다. 가령 어떤 공간에서 사용자의 기호나 스타일에 맞는 분위기와 크기를 정하는 경우 혹은 정량화가 불가능한 바깥 풍경이 내부에서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등을 정할 때는 여전히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번거롭지만 기계를 멈추고 일일이 직접 변수를 입력하는 식으로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
5년 전인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건축주 K의 별장을 설계할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건축주는 주변 환경에 유난히 민감한 사람으로 기분도 들쭉날쭉한 편이어서 집 안에서 느껴지는 기후와 계절을 설계를 통해 세심하게 맞춰야 했다. 햇볕을 어떤 방식으로 집 안에 끌어들여야 하는지, 눈 오거나 비 오는 날 거실 앞마당 풍경은 어떠해야 하는지, 까다로운 입맛의 그가 식사하는 공간은 어떤 분위기여야 하는지, 인접한 마을의 소란스러움을 피해 침실은 어느 위치에 어떤 분위기로 배치해야 하는지 등등. 애초에 오토드로잉 방식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여서 처음부터 신경 써서 감성적 조건에 대한 입력값을 넣었다. 하지만 기계가 작성한 도면은 내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효율과 기능 위주로 최적의 답을 찾는 인공지능의 한계라고나 할까. 사실 인공지능 이전의 건축설계는 단순히 효율과 기능을 우선하기보다는 그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의 실제 감정이나 느낌을 더 중요하게 다뤄야 했다. 하지만 모든 전문 분야에 인공지능 안드로이드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건축설계 역시 기계가 만들어낸 규격화된 공간에 사람의 삶을 거꾸로 맞춰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솔직히 요즘의 건축은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형태는 빈틈없고 공간은 기능적이며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는 제거되어 다수의 취향을 충실히 따른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가는 더 이상 디자이너나 창작자가 아니라 각종 변수를 최적의 조합으로 입력하는 단순 오퍼레이터의 역할만 수행할 뿐이다.
내년 시즌 오토드로잉의 신제품은 정신적으로 특별한 문제를 가진 사람을 고려한 모델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직업을 실제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한 최근 20년간 급증한 우울증 지표를 감안해보면 늦었지만 반가운 대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인공지능으로 촉발된 우울증이 과연 인공지능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건축주 K는 잘 살고 계신지, 문득 궁금해진다. 최준석(건축사사무소 NAAU 대표)
표준 권장 만찬
몸에 전기 충격이 느껴졌다. 눈이 저절로 떠지는 매끄러운 기상. 이물감 없이 목전에 와 있는 은밀함이 불쾌했다. 수면 중의 뇌파 파동 주기를 조절하는 미세한 전기 자극에 따라 수면의 양과 질이 정해졌다. 일어난 시간은 오전 9시. 음식 제조를 맡고 있는 C 직종의 기상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수면에 대한 자유를 주장한 야당에 의해 법제가 바뀐 것이 얼마 전, 2084년 3월 2일이었다. 그날은 5월 1일. 나의 공식적인 휴무였다. 그러나 나는 따로 할 일이 있었다. 업종에 따른 적정 임금과 노동기간을 결정하는 노동통제청 간부와 전자화폐를 찍어내는 은행 임원진이 모이는 프라이빗 다이닝(Private Dining)을 준비해야 했다. 엄밀히 말해 비공식적 열량을 만드는 것은 불법이었다. 사회 총생산 칼로리는 엄격히 통제되었다. 초과되거나 미달하는 바 없이 적정량의 칼로리를 공급해 사회 구성원의 권장할 만한 신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사회 제1 목표였다. 점진적으로 실행된 그 목표에 따라 요리사란 직업은 희귀해졌다. 열량과 영양소를 적절히 배합하여 내놓을 수 없다면 조리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나 역시 몇 번의 자격 시험을 치르고 나서야 ‘요리사’로 불릴 수 있었다. 옛 음식 이름은 중앙 도서관 데이터 베이스에서나 볼 수 있었다. 불고기는 이제 없었다. 음식의 이름은 사라졌다. 단지 불고기‘풍’이라는 뉘앙스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남는 것은 특정 지시어의 조합이었다. 덧셈과 뺄셈을 하듯, ‘단백질 30g, 지방 10g, 탄수화물 10g, 나트륨 3g, 칼슘 500mg, 아연 5mg 등, 일일 필수 섭취량을 분배하고 개인의 취향에 맞는 ‘풍’을 결정하면 국가의 보조를 받는 식품 회사로부터 매일 반조리 상태의 음식이 배달돼왔다. 그러나 정작 그 통제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은 권력자들이었다. 나는 몇 주 전 예전 부모로부터 받은 씨앗으로 지하 온실에서 키운 배추와 농장의 잉여 생산물(측정되지 않은), 그리고 전자 문서 속 레시피로 김치라는 음식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어느 부처에 다니고 있는 오랜 친구와 더불어 다이닝 참가자들의 도움이 있었다. 은행 지하 벙커에서 열린 그날 저녁 메뉴는 100여 년 전 ‘회식’이라 불리는 식사 형태의 재현이었다. 나는 적정량 이상의 나트륨과 당을 넣은 배추 스튜와 일일 권장량을 훨씬 초과하는 지방을 함유한 돼지 부위, 그리고 말레이시아산 타피오카로 만든 주정, 다시마 추출물(MSG), 인공감미료를 배합해 만든 알코올 음료를 준비했다. 식사가 끝났을 때 이탈리아산 수트를 입은 한 남자는 불콰한 얼굴로 나의 손을 붙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손맛이 있군그래. 예전 할머니가 해주던 맛이야.” 나는 그들을 보내고 뒷정리를 하며 내 손을 쳐다봤다. 거기에는 채소 스튜에서 나온 빨간 입자 하나가 묻어 있었다. 정동현(신세계그룹 F&B팀 기획자)
스토리 메이커
FM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면 DJ 김기덕이 오늘은 역사적인 날임을 알린다. 드디어 밴드 듀란듀란이 미국을 정복한 날. 최초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날이라고 발표한다. 그리고 들려오는 노래는 ‘The Reflex’ , 1984년 6월 23일의 일이다. 노래를 다 듣고 나서야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 게 아니라 음악 감상용 헤드셋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헤드셋이라고 해봐야 뇌 신경과 접속하는 작은 커넥터일 뿐이지만. 영화도 음악도, 혹은 여행까지도 이제는 대부분 ‘실제 체험한 것으로 대뇌가 인식하게 하는’ 미디어로 전환됐다. 이제 시민들 대부분은 실제 공연장에 가거나 실제 여행을 하지 않는다. 실제로 비싼 레스토랑에서 미식을 즐기지도 않는다. 무선 커넥터 하나만 접속하면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의 디너를 즐길 수 있다. 현존하는 뮤지션은 물론 이제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데이비드 보위의 공연장에도 1초 만에 갈 수 있다. 단순히 공연장에 가거나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다. 아까 내가 감상한 것처럼 역사적인 어느 순간에 어떤 형태의 미디어를 통해 음악을 감상하던 그 장면을 다시 체험할 수도 있다. 이 리얼 익스피리언스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도 있어 친구들과 모여서 여행을 하거나 공연을 볼 수도 있다. 영화는 ‘극장 감상’을 하는 그 체험이 가능하다. 이 기술이 개발됐을 땐 주로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는 체험을 했는데, 매우 피곤하고 정신적 충격이 많아 ‘관극’을 하는 형태로 다시 돌아온 지 오래됐다. 나는 이번 세기 초반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이런 리얼 익스피리언스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사람이 하는 대부분의 체험은 스토리텔링으로 흥미롭게 즐기고 상품화할 수 있다. 그 스토리텔링 체험을 만들어내는 일이 내 직업이다. 물론 아직도 ‘영화’를 만드는 친구도 많다. 바로 그 체험 속 영화관에서 트는 그 영화들 말이다. ‘실제 체험과 똑같은 가상의 체험’이 대중화돼 거의 모든 시민이 이것으로 거의 모든 생활을 하고 있지만, 진짜 몸을 움직이고 진짜 그 장소에 가는 체험에 목마른 이들이 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이다. 부자이거나 혹은 그 진짜 체험을 가상 체험으로 만드는 직업을 가진 나 같은 이들은 아직도 진짜 체험을 한다. 물론 ‘진짜 체험 없이 만들 수 있는 가상 체험’이 수두룩하지만 이건 요금을 비싸게 받을 수가 없어 아주 가난한 이들만 사용한다. 상하이에 있는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진짜 디너 코스를 먹는 것이나 그것을 리얼 익스피리언스로 체험하는 것이나 대뇌에서는 99% 동일하게 받아들이지만, 부자들은 아직도 그 1%의 실제 체험을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내놓는다. 더 먼 미래가 온다면 실제 체험 자체도 사라질까? 글쎄, 부자들이 있는 한 계속 남아 있지 않을까. 조원희(영화감독)
창작과 복제를 입는 날
잠이 안 온다. 아니 못 자겠다는 편이 더 옳다. 다시 올 푸시를 생각하며 수면 모드 따윈 무시한 지 오래다. 일찍부터 집 이곳저곳을 예스럽게 꾸미고 옛 방식 그대로 만든 고가의 면 소재 쿠션도 하나 샀다. 물론 미셸이 없었다면 꿈도 못 꿨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많은 걸 직접 했다. 소파를 옮기다 미셸 오른팔에 금이 좀 가긴 했지만 자가 치료하는 걸 보며 이럴 땐 로봇이 인간보다 낫지 싶었다. 몇몇 친구는 푸시의 복제를 끝까지 반대했다. 특히 아직도 아날로그 음악을 고집하는 김C 아저씨는 아주 무서운 홀로그램을 내보이면서까지 나를 설득하려 애썼다. 평소 김C의 얘기라면 믿고 따르던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내 마음은 푸시와 만날 날만 손꼽고 있었다. 소문엔 할리우드에선 이미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가 복제돼 비밀 클럽을 오간다고 한다. 인간 복제라니 끔찍하긴 하다. 나 역시 복제를 반기는 쪽은 아니었지만, 귀란 누나네 류와 그레이가 복제 후 건강하게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푸시가 안정을 찾는 1년 후 즈음엔 버튼이도 재입양할 생각이다. 시나브로 쇼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푸시 맞을 생각에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어김없이 그날은 꼭 오고야 만다. 수십 년을 반복했음에도 그 스트레스는 여전하다. 내 작업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패턴 정도야 로봇이 대신하긴 하지만 많은 부분 예전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달라진 건 이제 입는 옷이 아닌 그림처럼 거는 옷이 되었다는 점. 그래서 가격은 더 고가가 되었고 그 덕에 디자이너의 위상이 높아졌다. 하지만 나는 예전이 그립다. 항간에는 우리같이 예전 방식을 고집하는 디자이너를 사치 조장, 환경오염 운운하면서 생각 없는 구닥다리 취급을 하기도 하지만 가끔 10대 소녀의 응원 메시지를 받기도 한다. 죄수복처럼 똑같이 찍어내는 유니클로나 입고 다니는 젊은이들 사이에 이런 젊은이도 있다는 사실은 큰 힘이 되곤 한다. 내일은 디자인실 화상회의, 중국어 통역 캡슐 구매 그리고 미셸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까지 해야 한다. 삼성은 다 좋은데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직접 방문해야 하는 게 좀 귀찮다. 뭐, 품질 만족 서비스라나?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으나 낯선 진짜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은 좋은 것 같다. 하루하루 무슨 할일이 이리도 많은지. 내 나이엔 좀 벅차다. 그런데 지금도 나처럼 글로 일기를 기록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이제 정말 좀 자야겠다. 박승건(푸시버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
알파고의 약진 속에 법조계에도 위기가 닥쳤다. “사법부 판결에 불신도 많은데 차라리 알파고가 투명하게 판단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권력 지향적으로 움직이는 검찰 대신 알파고가 기소권을 가지면 좋겠다” 이런저런 불만이 쏟아졌다. “절차에 따라 재판하고 증거가 있어야 이기는 거니 변호사가 왜 필요하냐. 키워드를 넣어 알파고가 서면으로 제출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논의까지 이어지면서, 드디어 국회에서 법조 영역에 알파고 적용 여부를 두고 공청회까지 열렸다. 변호사가 되기 전, 2000년대 제조업체 해외영업부에서 일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초반에는 거래처에서 수주를 받으면 생산, 구매, 영업 등 부서 담당자들끼리 모여 회의를 했다. 얼마 후 정보만 입력하면 가안이 나오는 SAP/R3라는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이제 담당자들끼리 얼굴 볼 일 없겠구나 싶었는데 회의를 아예 안 할 수는 없었다. 물량이 갑자기 폭주하거나 반대인 경우 SAP/R3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나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자 회사는 선적 서류 작성하는 업무를 담당하던 여직원들을 죄다 자르고 시스템을 관리하는 부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회의는 계속됐다.
법적 분쟁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겨나는 일은 어느 것 하나도 같지가 않다. 비슷한 유형이 있지만, 상황도 증거도 다르다. 그러니 결론도 다르다. 법이 요구하는 증거를 내지 못한다고 해서 무시해서도 안 되고, 그럴듯한 증거가 입력됐다고 무조건 손을 들어줄 수도 없다. 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일이고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해줘야 하는 일이니까. 그러니 그 판단을 기계가 할 수 없고, 기계가 수사할 수도 없다. 당사자를 대신해 떠드는 변호사 업무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인간의 일을 기계에게 판단하게 하다니, 가능하지도 않지만 가능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알파고가 사람의 죄를 판단하고 사람을 두둔하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어? 그런데 TV를 보니 법조계 알파고 도입 여부를 둘러싼 국회 공청회가 얼렁뚱땅 끝이 났다.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해서 바꾸기 위해서는 정책과 법을 바꿔야 하는데, 그 일을 해야 할 이들이 법조계 인사들이다. 입안자가 자기 밥그릇을 내놓아야 하는 일인데, 될 리가 있나. 괜한 걱정이었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씁쓸함이 몰려왔다. 앞으로도 나는 기득권을 움켜쥐고 있는 선배들의 보호 아래 변호사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사회로부터 받은 기득권이 사회를 위해 사용되는 날이 있을까. 2184년을 기다려봐야겠다. 이은의(변호사)
- 에디터
- 조소현
- 일러스트레이터
- JO 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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