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커치, 흑백의 마술사
작가의 집이나 아틀리에를 방문하는 것은 단지 전시회를 통한 접근과는 다르다.
예술가의 벌거벗은 삶을 보고 필터를 거치지 않은 느낌 그대로 작업의 철학을 깨닫는 특별한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미셸 커치(Michel Kirch)의 작업은 페이스북에 오른 뉴스피드를 통해 2년 전 처음 접한 바 있다.
‘이슬람 어느 외지에서 본 듯한 흙벽이 삼면으로 둘러쌓인 막다른 골목을 배경으로 길 가운데 바퀴 하나, 공중에 인물 하나가 부드럽고 정제된 몸짓으로 줄타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이 흑백의 분말을 뿌린 듯한 정제된 순간은 마법처럼 오묘한 미궁의 세계로 모든 보는 이들을 끌어들인다. 이 한 장의 사진이 바로 미셸을 꼭 인터뷰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파리에서 차로 1시간 조금 더 걸리는 베르사유 외곽, 그의 집이 자리한 마을은 신비로운 작업을 하는 예술가가 살 법한 분위기였다. 겨울 안개로 그득했으며 현실보다는 조금 더 매혹적인 동네였다.
조금은 고지대에 있는 주거 및 작업 공간에서 걸어 내려와 우리를 맞이하는 그의 첫인상은 언뜻 그가 재현한 작업 ‘플라스틱’ 화면 속 잔잔한 바다의 표면 같았다. 서서히 다가서며 인사를 하자 그와 마주친 눈에서 이중으로 표현된 바다 가운데 뚫린 투명한 문, 모든 것을 상상하고 통찰하며 예견하는 마술사 같은 예술가의 예리한 무엇을 느낄 수 있었다.
미셸 커치는 메스(독일 접경의 북부 프랑스 도시) 태생으로 유대교 랍비인 아버지 밑에서 절제되고 정도를 지키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청소년기엔 오르간 연주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 배경 속에서도 경전을 공부하던 그는 늘 자유로운 영혼의 새가 되어 강이나 산, 들판으로 날아가곤 했다.
메스의 어릴 적 놀이터였던 모젤 강변과 군 시절을 보낸 알프스 샤모니의 자연은 결국 그를 길 위의 삶으로 이끈다. 이후 모로코 사하라의 한겨울과 예루살렘에서 보낸 4년을 시작으로 끝없는 질문과 해답을 찾아 길을 나선다.
얼마간의 세월을 부유하며 수많은 아날로그 흑백사진을 안고 돌아온 그는 의사라는 직업인으로 멈춘 삶을 시작한다. 인터뷰 중간, 그때 찍은 사진이 담긴 사진집을 들추자 숨이 멎을 듯한 감동이 엄습했다. 곧 출간될 흑백 아날로그 사진집이었다.
의사 가운을 입고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어느 날 찾아온 미국인 손님의 한마디!
“당신은 사진을 찍어야 해요!” 그 한마디로 그는 다시 카메라를 메고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답을 찾았다.
그는 컴퓨터 합성이란 기법을 통해 아날로그 사진으로 초현실적인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그에게 표현을 위한 방법은 이제 완전히 도구일 뿐이다. 아무런 장벽이 없다. 최근작 ‘새로운 바벨(New Babel)’과 ‘정원(Le Jardin)’에서 볼 수 있듯이 자연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동안 깨달은 생태학적 존재들이 주인공이 되었다. 면밀한 형태로 자연이란 배경 속에 현상적이고 정치적인 주제와 엉킨 채 거대한 서사를 담아낸다. 의사였기에 가능한 치밀한 관찰과 철학적 고민이 어우러지며 완성된 것이다.
의사에서 방랑자로 삶의 미스터리를 우주적 꿈으로 변화시켜온 그는 분명 현대에 걸맞은 마법사다. 여느 마법사들이 그러하듯이 관찰자를 과장, 혼돈, 위기 상황을 통해 작업에 참여하게 한 뒤 방관자처럼 떠나는 모습 또한 여느 마법사와 다를 바 없다.
매해 컨셉추얼한 흑백사진으로 유수의 예술 단체와 학술회의 그랑프리를 수상한 미셸.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상은 고양이와 대학에 다니는 딸과의 식사, 정원 가꾸기, 작업실에서의 밤샘 등으로 가득하다.
그가 이루는 오케스트라의 현란한 꿈과는 대조적인 소박한 둥지를 벗어나는 길, 잘 자란 대나무 숲에서 서사시 한 편이 흘러나온다. 모든 꿈은 쉬지 않고 도전하는 투철한 정신에서 비롯됨을 시인은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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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 박지원(디자이너), Michel Kirch
- 에디터
- 우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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