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란이 있으면 배우라고 써야 하잖아요
근면·성실·최선. 급훈처럼 살아온 김서형. 평등 환상통을 치료하는 배우가 되다.
더 이상의 멘토는 원하지 않고, 내가 중심인 세대가 도래했다. 아프니까 청춘, 90년생이 온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척하지만, 결국 그 책을 팔고 강연하며 이득을 취하는 기성세대에게 소재로 착취당했음에 실망한 세대. 이제 자신에게 답을 찾는다. 습자지 같은 사회 시스템인지라 땅만 보고 살금살금 걷는 중이지만 그래도 고개를 들었을 때 바라볼 산은 필요하다. 듣기 싫은 잔소리나 더 듣기 싫은 조언 따윈 하지 않고 자기 삶을 사는 모습이 영감을 주고 환기가 되는 사람. 배우에서 찾자면 김서형이 그중 한 명이다. 김서형은 <SKY 캐슬>(2018~2019)의 ‘김주영 쌤’으로 급부상한 스타가 아니다. 성실함을 좌우명으로 26년 차를 맞았고,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소신 있는 발언을 해왔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작품 선택권이 커지면서부터 남자가 차지해오던 윗선 역할에 김서형이란 명패를 걸었다. 물론 성공의 의미를 직업이나 권력에서 찾는 것이 우습지만, 남자 배우가 앉았던 자리에 김서형이 있고, 성을 삭제하고 캐릭터 자체를 연기했다. 악역에선 (도덕성은 별개로 보자면) 욕망에 솔직한 행동력 있는 여성이었다.
이제 주도적으로 역할을 선택할 수 있는 위치이기에 어떤 작품이 등장할지 더 기대된다. 곧 선보일 <아무도 모른다>(2020), <모교>(2020), <미스터 주>(2020)에서도 장르마다 코미디나 스릴러를 가미했지만 주체적 여성으로 극을 주도한다. 그래서 우리는 ‘배우 김서형’ 외에도 ‘사람 김서형’에 더 열광하게 될 것이다. 그는 “캐릭터가 나를 멋진 여성으로 보이게 했다. 나는 불완전한 존재고, 다만 캐릭터들을 통해 배우며 성장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말처럼 김서형을 만나 느낀 특징은 겸손과 성실이다. 5년 후를 기약하지 않으며, 오늘에 충실한 사람, 배우는 사람, 성장하는 사람이라는 자세에서 출발한다. 당신을 멘토라 여기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을 때 김서형은 말했다. “부족한 사람인 제게 그런 힘을 얻는다니 고마워요. 이것도 하나의 직장 생활이라면 직장에서 우직하게 나아가는 사람으로서 좋은 영향을 끼쳤기를 바랍니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거 같군요.”
문득 행복한 때는 언제인가요? 우리 꼬맹이(반려견)를 보고 있을 때죠. 힘들다가도 기운이 나요. 작은 꼬맹이가 저를 지켜주는 것 같아요.
오늘도 촬영장에 함께 왔군요. 네 살 때부터 현장에 같이 다녔어요. 거의 함께 외출해요. 14년 동안 지내다 보니 서로의 감정을 고스란히 주고받죠. 사람도 나이 들면 어린아이 같아진다는데 이 친구도 그래요. 저는 꼬맹이보다 젊은데도 가끔 아픈데, 얘는 어떨까요.
반려견을 위한 좋은 일을 한다고요. 거창한 건 아니에요. 사람과 동물은 다를 바 없는데, 내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무지했죠. 지금이라도 깨닫고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잘 보살필지 고민해요.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과 비할 바 아니지만 임보(임시 보호의 준말)도 했고, 또 어떤 실천을 할까 고민이 많죠. 가까이 있는 것부터 지키고 싶어요. 환경도 그중 하나예요. 큰일은 못하지만, 텀블러를 들고 다녀요. 스태프들이 먹다 남긴 생수병이 있으면 집에 가져가요. 오늘도 촬영장에 먹다 남은 일회용 종이컵이 많아 마음이 쓰여요. 요즘엔 나라에서 일회용품을 쓰지 말자는 캠페인도 많이 하잖아요. 주위를 돌아보고 작은 실천이라도 했으면 좋겠어죠.
유년 시절에서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당연히 서리를 하면 안 되지만, 고구마 서리를 한 기억도 나고, 낚시하러 가시는 아빠를 따라나서던 기억도 나요. 무엇보다 걷는 것을 좋아했어요. 이문세 노래를 들으며 하루 종일 걸어 다녔죠. 강릉에는 코스모스가 많이 피었어요. 그 꽃길을 손으로 사악 훑으며 걷던 날도 생생해요.
힘들 때 그 기억을 떠올리며 위로받겠군요. 지금도 힘이 되어주죠. 아름다운 기억들이니까요. 영화 <봄>(2014)을 찍을 때 제가 들판을 걷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유년 시절이 자주 떠올랐어요. 촬영장은 고향이 아닌 전주였지만, 엄마의 아늑한 품처럼 편안했어요.
인생 캐릭터로 <봄>의 정숙을 꼽았고, 자신이 정숙의 모습을 갖고 있다고 했죠. <봄>을 다시 보며 어떤 점일지 눈여겨봤어요. (어떤 점일 것 같았나요?) 정숙은 결과물이나 피드백이 없어도 꾸준히 헌신적이잖아요. 그런 성실함이 아닐까 싶었어요.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잘 버티는 사람. 기다릴 줄 아는, 나름의 지구력이 비슷하지 않을까요.
<아는 형님>에서 발랄하게 춤추는 모습도 김서형의 일부라고 했죠. 역시 지구력의 일종이죠. 노래방에서 술 한 모금 안 마시고 몇 시간을 춤추고 놀 수 있어요. 이전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는데, <아는 형님>은 <SKY 캐슬> 이후라 반전이 더 컸나 봐요.
이성이든 동성이든 상대를 만나면 무엇을 보나요? 잘 모르겠어요. 어릴 때는 한두 마디 나누고, 하루 지내보고, 사람을 단정 짓곤 했어요. ‘이 사람은 더는 만나지 말아야겠다, 이 사람은 괜찮네, 곁에 둬야지’라고 쉽게 여겼죠. 지금은 그러지 않아요. 쉽게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니까. 그래서 이 질문에는 모르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군요.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의 방영을 앞두고 있어요. 차영진이란 형사는 “단순히 센 캐릭터가 아니라 감성적이고 성장하는 인물이라 끌렸다”고 말했어요. 차영진의 어떤 부분이 대중에게 다가갔으면 하나요? 차영진은 아픔이 있음에도 꿋꿋이 살아가는 형사죠. 아이들을 맞닥뜨리면서 어른이 되어가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철이 안 들잖아요. 계속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해야죠. 저라는 사람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성장해요. 그 캐릭터를 해내기 위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되뇌거든요. <SKY 캐슬>의 김주영 선생님도 그랬어요. 만약 내가 김주영이었다면 괴로움을 이겨내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겨내고 살아가는 김주영을 표현해내면서 내게 없던 면을 키울 수 있었죠. 저는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보다 작품 속에서 성장해가는 듯해요.
김서형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나요? 완성은 없는 것 같아요. 주어진 것, 믿는 것들에 성실할 뿐이에요.
좌우명을 물었을 때도 성실함이라고 했죠. 다들 성실히 살고 있죠. 다만 저는 좀더 자신을 붙들어 흐트러지지 않으려 해요. 물론 아무 생각 없이 TV를 틀어놓고 앉아 있을 때도 있죠. 하지만 연기할 때는 그러지 않아요. 대중의 눈에는 비슷비슷하게 ‘쎈’ 캐릭터일지라도, 그 경계가 달라 보이게 하려고 나를 계속 독려해요.
1994년 KBS 공채 탤런트 이후 26년 차입니다. 산에 오르고 있다고 가정하면 어느 지점일까요? 잘 모르겠어요.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고, 지금도 올라가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한 번에 온 사례는 아니잖아요. 다섯 걸음, 열 걸음 뗀 적도 없고, 한 걸음씩 왔죠. 오늘 <보그>와 촬영해서 기분이 좋다 해도 이게 26년의 종착지는 아니잖아요. 1월에 영화 <미스터 주>를 개봉하고 3월에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가 방송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지만, 저는 여전히 한 걸음씩 내디딜 거예요.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룬 여성을 인터뷰하다 보면, 큰 목표를 세우기보다 오늘에 충실하려 한다는 답변을 듣곤 해요. 저는 5년, 10년 계획을 잡지 않아요. 길을 가다 갑자기 다칠 수 있고, 사람 일은 모르잖아요. 막연히 먼 계획보다 한 발씩 가다 보면 오래 일하는 연기자가 돼 있겠죠. 다만 저는 반성의 시간을 갖곤 해요. 짧게나마 수첩에 하루를 돌아보는 메모를 해요. 일기까진 아니고 그날 뭘 했는지 간단히 적죠. 수첩을 모아놨는데, 한 번씩 들여다봐요. 과거에 치우치는 게 아니라, 올 한 해 내가 뭘 했는지 기억을 끄집어내는 거죠.
최근에 수첩을 펼치고 어떤 생각을 했나요? 어떤 해는 작품 하기도 모자랐고, 어떤 해는 아쉽기도 했죠. 과거에 치우치기보다는 ‘내가 그랬나 보다, 앞으로는 잘되겠지’라는 마음이에요. 매일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잖아요. 어떤 날은 불행에 지독하게 빠져보려고도 해요. 직업 때문인 것도 같아요. 반복적으로 감정을 준비해놔야 기회를 맞이할 수 있으니까요.
<아무도 모른다>에서 배우 류덕환과 연기합니다. 그에게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내가 저 나이 때는 저렇게까지 했을까 싶어요. 덕환 씨는 성실하고 멘탈이 강한 데다 유쾌하죠.
함께 연기하는 배우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받나요? 영향을 받는 편이 아니에요. 김주영이든 차영진이든 그 역할에 얼마나 충실한가가 더 중요하죠. 삶에 답이 없는데 연기에 답이 있을 수 없잖아요. 제가 그 캐릭터를 3개월, 6개월 연기하면서 어떻게 정답을 연기하겠어요. 그저 이것이 답인 것 같다는 마음으로 했던 연기를 대중이 보고 시청률로 나오죠. 답에 가깝고자 열심히 캐릭터를 잡고 현장에서 순발력도 발휘하려고 하죠. 촬영장에도 늘 20~30분씩 일찍 가요. 그 공간에 적응하려고요. 제가 연기를 열심히 준비해왔지만 공간이 어떨지 모르니 그런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죠. 이렇듯 연기는 저의 문제지 상대 배우와는 큰 상관없는 것 같아요.
<봄>의 조근현 감독은 “서형 씨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 같다”고 했는데요. 이에 대해 동의한 기억이 납니다. 어느 분야든 타고난 지점과 노력이 함께 있어야죠. 감독님 얘기에 이렇게 응해도 될지 모르지만, 본능이 더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해요.
목소리(발성과 발음)로도 기억되는 배우예요. “캐릭터마다 목소리를 만들어내고 연습한다”고 했는데요. <아무도 모른다>에선 어떤 목소리를 준비 중인가요? 차영진은 경청하는 인물이죠. <SKY 캐슬> 김주영은 속사포처럼 마디마디 강하게 끊었다면, 차영진은 상대가 말할 수 있도록 편안함을 주는 목소리를 내려 해요.
자신은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 어느 편에 속하나요? 좋으면 좋다, 이건 안 된다는 식의 표현은 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불필요한 말을 잘 안 해요. 그래서 현장 매니저는 자기를 안 예뻐한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웃음).
<여고괴담> 시리즈의 리부트인 <모교>에서 주인공 교사 노은희 역을 맡았습니다. <여고괴담>은 한국 공포영화의 유일한 시리즈기도 한데요. 작품의 선택 이유가 궁금합니다. 왠지 모르게 시나리오가 당길 때가 있어요. <모교>는 하루 만에 읽고 다음 날 연락드렸죠. 많은 얘기를 할 순 없지만 사회적 이슈는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여성의 서사를 잘 풀어낸 작품이에요. 무엇보다 제가 새롭게 표현할 부분이 있었죠. 1월에 개봉하는 <미스터 주>도 분량과 상관없이 그런 지점에서 선택했어요. 시청률이 얼마냐, 관객이 얼마나 들었느냐의 문제는 제 몫이 아니고, 그저 연기에 최선을 다할 뿐이죠. 저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영상이 함께 떠올라요. 파노라마처럼 필름이 지나간다고 해야 할까요. 이렇게만 나온다면, 하는 기대로 작품을 선정해요.
<미스터 주>는 코미디 장르라 좋았어요. 김서형의 코믹 연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시나리오를 보며 코미디 한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이성민 선배와 동물의 로드 무비에 저는 엉뚱한 직장 상사로 나와요. 이런 장면은 이렇게 풀어야 맞겠구나 싶어서 한 연기인데, 보신 분들은 코믹 연기라고 하더군요. 그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느낀 부분이 잘 표현됐구나, 영화가 잘 나왔겠네’라고 생각했죠.
여자 배우는 남자 배우와 받는 질문부터 다르다고 토로하곤 합니다. 극한 예를 들자면 피부 관리 같은 질문이죠.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있나요? 어릴 때 저조차 “여배우니까 예쁘게 찍어주세요, 조명 잘 잡아주세요, 반사판 하나 더 대주세요”라고 말한 적 있어요. 촬영감독님이나 감독님이 먼저 그렇게 말한 적도 있고요. 당시 현장에서는 “여자니까 그렇게 해줄게”라기보다 열심히 촬영하겠다는 의미로 들렸죠. 문제는 제 입에서도 ‘배우니까’가 아니라, ‘여배우니까’라고 나온 거죠. 내가 무의식적으로 여자라는 성별에 갇힌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질문부터 시작하고 싶어요. 타인에 의한 여자인가, 스스로 갇혀버린 여자인가. 우리는 가정에서부터 남녀 구분을 습득해서 사회에 나오죠. 저도 알고 모르고를 떠나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자라왔죠. 벗어나려고 해요. 참고로 저는 설거지와 청소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여자라서가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일이죠. 하지만 누군가 억지로 오랫동안 시킨다면 거부 반응이 일겠죠. 이 문제는 여러 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이 말씀도 드리고 싶어요. 제가 태어난 70년대보다 지금은 공평과 평등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와요. 남녀 구분이 아니라 불합리한 일을 겪는 사람들, 약자의 지점으로도 확장해야 해요. 지금 사회는 우리의 많은 가능성을 제재하고 있거든요. 그것에서 불평등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많은 이가 여성이 주체인 작품이 드물다고 말합니다. 예전에도 그런 질문을 몇 번 받아봤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질문하지 않더라고요. 제가 힘을 가진 역할을 많이 해서 그런 듯해요. 주로 남자들이 맡았던 힘과 권위가 있는 윗 선을 연기했죠. 저를 보고 “소신 있다, 멋진 여자다”라고 하는 건 이 캐릭터들 덕분이에요. 저는 그저 이런 위치의 사람이라면 직원을 어떻게 대할지, 검사라면 상대 변호사와 어떻게 싸울지 배우로서 연구하고 표현한 것이 팬들이 좋아하는 지점이었을 것 같아요. 앞서 제가 캐릭터를 통해 성장한다고 했듯, 그런 역할 고민이 20여 년 동안 쌓이면서 여배우가 아니라 배우여야 한다는 생각도 만들어진 것 같아요. 좋은 캐릭터들을 만나면서 이전보다 나은 사람이 된 거죠. 시나리오를 읽으며 ‘와, 이 여자 멋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할까’ 재미있어요. 불완전한 내가 이 캐릭터를 만나 좀더 멋지게 표현된다고 할까요.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소심하고 나약한 채로 남아 있을 거예요.
연기를 통해 사람 김서형이 성장한다고 봐야겠군요. 하지만 연기를 준비하면서 많이 헤매요. 김주영을 하면서도 꽤 힘들어했어요.
<SKY 캐슬> 초반 7~8회까지는 링거를 맞으며 연기했어요. 김서형은 김주영처럼 대단하지 않으니까요. 그걸 쫓아가려다 다치죠. <이리와 안아줘>(2018) 때는 특별 출연임에도 정말 힘들었어요. 기존 악역들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와 빈틈을 남겨놓고 연기했어요. 이 여자가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 타당성을 부여해야 그 역할을 해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리와 안아줘>의 박희영은 미칠 것 같은 거예요. 너무 힘들어서 아직도 떨쳐지지 않는데 김주영을 하라고? 고민했죠.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매번 잘할 수 없는데, 왜 나한테 매력적인 만큼 힘든 역할,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역할을 줄까 싶었죠.
그럼에도 결국 해냈잖아요. 해낼 수밖에 없죠. 직업을 물으면 배우라고 답해야 하잖아요. 대단하지 않은 내가 이 캐릭터를 대단하게 만들기 위한 자기 소비를 해갈 수밖에요. 모든 배우들이 그렇지만, 이렇게 연구하고 공부하는데도 한 단계 올라가기가 쉽지 않아요. 저는 내년을 불안해하지 않아요. 오늘을 불안해하고 내일 정도를 불안해하죠. 다들 ‘와, 결국 이 배역을 완성했네’라고 말하지만 완성이란 있을 수 없어요. 그저 저는 성실하게 나아갈 뿐이죠.
직업에 회의가 들 때도 있나요? 힘든 만큼 그 과정이 내놓는 결과가 좋기 마련이니까요. 사실 결과와 과정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과정이에요. 성실함으로 닦아온 과정은 참으로 소중하죠. 몸소 겪어본 분들은 아실 거예요.
대중은 배우 김서형 하면 <아내의 유혹> 신애리, <SKY 캐슬>의 김주영 등을 떠올립니다. 인기와 별개로 배우가 강렬한 캐릭터들을 지닌 건 행운인데, 어떤가요? “그 신애리가 그 김주영이었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뻤어요. 두 캐릭터가 대중에게 깊이 자리 잡았고,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 줄 몰랐을 만큼 다채로웠다는 거죠. 저는 신애리와 김주영 사이 10년 동안 많은 역할을 해왔어요. 그 10년이 잘 쌓여 그럴 수 있었다고 봐요.
김서형에 대한 세상의 오해는 뭘까요?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데요? 제가 배우라는 일을 하고 있어서 오해도 있겠죠. 김서형이라는 사람은 몰라도, 배우 김서형에게 갖는 오해에는 제가 가타부타 말할 일은 아닐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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