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감정적 위안과 창의적 영감의 원천인 공존에 대하여

2023.02.20

by VOGUE

    감정적 위안과 창의적 영감의 원천인 공존에 대하여

    디자이너들은 그 어느 때보다 멘토십과 협업, 커뮤니티와 가족의 힘에 의지한다.
    함께 하는 작업은 감정적 위안이 될 뿐 아니라 창의적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북프랑스의 자택에서 메종 마르지엘라 아티저널 컬렉션을 디자인 중인 존 갈리아노.

    북프랑스의 자택에서 메종 마르지엘라 아티저널 컬렉션을 디자인 중인 존 갈리아노.

    JOHN GALLIANO

    닉 나이트가 메종 마르지엘라 아티저널 Co-Ed 2020 F/W 컬렉션 준비 과정을 촬영한 유튜브 영상은 역대 가장 훌륭한 패션 다큐멘터리 중 하나일 것이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요되는 시대에도 꺾일 줄 모르는 디자이너의 변화무쌍한 상상력과 열정적인 협업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영상에서 갈리아노는 자신의 파트너이자 아티스틱 이미지 디렉터 알렉시 로슈(Alexis Roche), 워크룸 디렉터 라파엘레 일라르도(Raffaele Ilardo), 모델 레온 데임(Leon Dame, 갈리아노는 그를 ‘강렬한 열정’ 그 자체라고 말한다), 헤어 디자이너 유진 슐레이만(Eugene Souleiman)과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라스(Pat McGrath) 그리고 1984년 센트럴 세인트 마틴 졸업 컬렉션 이후로 지금까지 갈리아노의 쇼를 위해 믹스 음악을 제작해온 제레미 힐리(Jeremy Healy)와 스튜디오에서 혹은 줌 비디오를 통해 상호 소통한다. 동시에 그의 Z세대 인턴들 또한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자극제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과 창의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영감의 원천입니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 날것의 창의성, 진정성과 투명성을 갈망하죠. 이런 교류가 조금이나마 자기표현과 세상에서 공유할 창의성의 발현에 계속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랍니다.” -Hamish Bowles

    맨해튼 집에서 포즈를 취한 에밀리 아담스 보디와 그녀의 피앙세 에론 오즐라. 그리고 오즐라와 함께 가구 회사 그린 리버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벤자민 블룸스타인(Benjamin Bloomstein).

    EMILY ADAMS BODE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한 가지 주제나 이야기를 중심으로 컬렉션을 만든다. 그렇지만 에밀리 아담스 보디에게는 각각의 의상이 나름의 고유한 이야기를 지닌다. 그리고 종종 그녀가 ‘평생의 친구’라 칭하는 전 세계 빈티지 딜러들과 공급업체로부터 공수한 원단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이 원단은 팀원들의 창의적 수작업, 즉 자수나 일러스트레이션, 패치워크, 퀼팅, 비딩과 그 밖의 수많은 미국 전통 기법과 짝을 짓는다. “보디 옷 한 벌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에밀리가 말했다. “각각의 옷은 수많은 손길을 거치고, 그 과정을 통해 고유의 독특함과 개성을 지니죠.” 이러한 특성이 소비자와 수집가에게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내면서 버튼다운 셔츠, 크로셰 니트, 재킷, 무엇이든 보디의 옷은 대대손손 물려주는 가보가 된다.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의 매장은 호기심 넘치는 행인들뿐 아니라 팬들이 몰려드는 장소가 됐다. “그들은 우리 매장을 통해 역사와 공예에 관심 있는 젊은 커뮤니티에 합류하기도 하죠. 사람들은 그 매장이 우리가 초창기 패션 위크 프레젠테이션에서 발산하던 에너지를 떠오르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녀와 자주 협업하는 인물이자 약혼자인 그린 리버 프로젝트(Green River Project LLC)의 에론 오즐라(Aaron Aujla) 덕분이기도 하다. “10년 전에 에론을 처음 만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창의적인 대화를 이어가고 있죠.” 보디가 덧붙였다. 그녀의 첫 패션쇼와 매장, 커플이 함께 사는 매력적인 마호가니 패널 장식의 차이나타운 아파트를 디자인한 것도 모두 그린 리버 프로젝트다. 보디는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협업으로 그 작업을 꼽는다. -Emily Farra

    르917 쇼룸에서 포착한 이한민과 신은혜.

    LE 17 SEPTEMBRE

    신은혜가 르917을 시작하는 데 가장 큰 용기를 준 건 남편 이한민이었다. 10년 넘게 내셔널 브랜드에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지난 2019년 6월 정식으로 합류했지만 사실상 그전부터 함께 일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매일 밤 신은혜는 이한민에게 낮 동안 쌓아놓은 질문과 고민을 퍼부었으니까. “집에 와도 일이 끝나지 않았어요. 모든 걸 가감 없이 공유하고 의논할 수 있는 상대는 남편뿐이었으니까요. 퇴근한 사람을 붙잡고 새벽까지 물어보고 토론하는 나날의 연속이었죠.” 2019 F/W 시즌부터 해외 판매를 시작하면서 신은혜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함께 하자고 했죠. 남편도 좋다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어요.” 이한민에게는 일종의 전환점이었다. 그는 유학 시절부터 회사 생활까지 쭉 이어온 액세서리 디자인 대신 남성복 디자인을 시작했다. 너무 익숙해져 틀에 박힌 일상처럼 느껴질 때쯤 새로운 시작과 같았다. 합류한 지 6개월 만에 첫 남성복 라인을 완성했고 론칭 직후 매치스패션에서 연락이 왔다. “남성복의 해외 판매를 시작할지도 정하지 못한 시기였죠. 서두를 생각은 없었지만, 제안을 받자마자 바로 해외 세일즈를 결정했습니다.” 둘이 각기 여성복과 남성복을 맡아 디자인하는 사무실에서는 매 순간이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고, 논쟁이 일어나며 품평회가 이루어진다. 때로는 경쟁자가 된 기분이 들 정도지만 가장 중요한 결정은 늘 저녁까지 남겨두던 예전에 비하면 모든 것이 신속하고 즉각적이며, 효율적으로 이뤄진다. 둘은 이제 온전히 퇴근 후의 삶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것은 르917의 성과와도 이어지는 듯 보인다. 언택트 시대에 사람들이 원하는 옷은 편안한 일상복이기 때문이다. “직접 해외에 가기도 어렵고, 온라인 쇼룸으로 판매를 진행하던 터라 걱정이 많았어요. 하지만 운이 좋았죠.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실루엣과 좋은 소재라는 특성이 시대적인 요구와 맞았으니까요.” 수많은 브랜드가 시류를 따라 라운지 웨어와 홈 웨어(때로는 기존 아이덴티티를 거스르면서)를 쏟아내지만 국내외 바이어들은 르917의 장점으로 가성비를 가장 높이 평가한다. 신은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보다 더 좋은 브랜드는 많아요. 하지만 이 가격대에서 가능한 한 최고의 품질과 디자인을 보여주기 위해 늘 노력한다고 자부합니다. 그게 우리의 DNA라고 말하고 싶어요.” 가상 공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지금, 부부는 오프라인 접점의 확장을 고민 중이다. 3월에는 비이커 청담 매장에서 팝업으로 쇼룸을 운영하고, 현대백화점에서도 판매를 시작한다. 가을에는 장충동의 한적한 주택가로 쇼룸과 사무실을 합쳐서 이사한다. “실제로 보고 만지고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늘리려고 합니다. 우리 옷도 결국 가상 세계가 아닌, 현실에서 입기 위한 옷이니까요.” -Borah Song

    프라다 2021 F/W 남성복 컬렉션 발표 직후 학생들과 온라인 담화를 진행한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

    MIUCCIA PRADA

    별이 클수록, 별빛을 나누기 더 편한 법. 미우치아 프라다를 보라. 그녀는 2021년 S/S 컬렉션을 시작으로 자신과 함께 프라다 컬렉션을 디자인할 라프 시몬스를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그리고 얼마 전, 그들이 함께 작업한 두 번째 결과물인 남성 컬렉션을 공개했고, 앞서 발표한 여성 컬렉션보다 더 호평을 받았다. 자신의 틀을 깨고 활력을 주입하려는 끝없는 열망을 바탕으로 쌓아온 프라다의 커리어에서 시몬스와의 협업은 패션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매우 인상적 선택이었다. 미우치아는 눈앞에 놓인 자신의 길만 바라본다면 결코 창의적으로 진보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녀는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의 도움으로, 뉴욕시 중심가에 있는 프라다 매장을 극적인 배경에 도발적으로 자신의 디자인을 선보이는 공간으로 탄생시켰다. 2012년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의상 연구소에서 열린 <스키아파렐리와 프라다: 불가능한 대화>전을 위해 영화감독 바즈 루어만(Baz Luhrmann)과 함께 작업했다. 밀라노의 폰다치오네 프라다에서 그녀가 소개한 수많은 예술가는 도시를 위한 선물과도 같으며, 그들은 지역 커뮤니티를 비롯한 그 이상의 사람들에게 현대 예술의 기쁨과 도전 과제를 알린다. 시몬스가 프라다에 합류하기 직전에 미우치아는 2021 프리스프링 컬렉션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5인의 비주얼 아티스트, 테렌스 낸스(Terence Nance), 요안나 피오트로프스카(Joanna Piotrowska), 마틴 심스(Martine Syms), 유르겐 텔러(Juergen Teller), 윌리 반데페르(Willy Vanderperre)와 협업했다. 작품에 담긴 의미를 오직 자신만 책임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믿음을 강조하며 아티스트가 각자 적절하다고 여기는 방식에 따라 컬렉션을 선보이게 하려는 시도였다. “일단 완성된 의상이 내 손을 떠난 다음에는, 그 옷은 사람들의 삶에 속하는 겁니다.” 미우치아가 말했다. “이 형식은 그 옷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제스처와도 같죠.” 하지만 바로 그런 개방성과 호기심이 그것들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녀의 것으로 만든다. -Mark Holgate

    경복궁 근처 은밀한 곳에 자리한 숍 아모멘토에서 포즈를 취한 이미경.

    AMOMENTO

    “숍 아모멘토를 시작할 때부터 패션 브랜드 아모멘토도 항상 있었죠. 물론 초기에는 슈즈, 재킷, 셔츠, 팬츠 정도로 소소한 컬렉션이었지만요.” 이미경은 편집매장 아모멘토와 패션 레이블 아모멘토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매장의 바잉 셀렉션을 검토하고 의상에 사용할 부자재를 직접 고르기 때문에 각기 독립적으로 일하는 두 팀의 사무실을 부지런히 오가면서 일해야 한다. “어쩔 수 없어요.” 이미경이 웃으며 말했다. “아직까지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게 느껴져요.” 2015년에 론칭한 아모멘토의 첫 오프라인 쇼룸은 통의동 카페 MK2가 위치한 작은 골목이었다. 길을 가다가 쉽게 들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음에도 사람들이 주소를 들고 찾아오고, 뉴욕의 바이어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으며, 해외 바이어가 매장을 방문해 홀세일을 제안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긍정적인 결과가 있었죠.” 2017년 가을 니드 서플라이(Need Supply,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9월 사업을 중단한)를 시작으로 센스(Ssense), 라 가르손느(La Garçonne), 프랭키샵(Frankie Shop) 등 주요 온라인 스토어와 전 세계 도시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아모멘토를 판매하고 있다. 우아하고 단순한 실루엣, 작은 디테일에 디자인을 가미한 일상적인 옷은 동시대 20~30대 여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입니다. 개인적으로 오브제나 가구 하나를 살 때도 오래 고민해서 사는 편이죠. 금세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건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예측할 수 없는 소비자를 상상하는 대신, 자기 자신의 기준과 취향에 절대적으로 의지한 덕에 편집매장 아모멘토와 레이블 아모멘토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후퇴한 적이 없다. 온·오프라인의 수많은 기업이 비즈니스를 포기하는 팬데믹 시대에도 말이다. 첫 쇼룸만큼 한산한 곳에 숨은 숍 아모멘토에서는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협업이 이루어지고, 그 프로젝트 역시 이미경의 개인적인 흥미에서 비롯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것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2019년 여름엔 티하우스 토오베(Tove)와 함께 티 세리머니 클래스를 진행했고, 지난해 8월에는 매장에서 요니드로잉(Yonidrawing) 카와요니 작가의 전시를 열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코로나 시대에 집에서 연말을 보내는 이들을 위해 ‘홈 스위트 홈’이라는 제목으로 내추럴 와인 숍 폼페트 셀렉시옹(Pompette Sélection)과 협업으로 내추럴 와인과 와인 잔을 판매하기도 했다. 모든 프로젝트는 이미경이 팀원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북돋우면서 완성한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걸 경험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 느꼈던 그 뿌듯함과 감동을 팀원들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Borah Song

    최근 버질 아블로의 협업과 지원이 패션, 아트, 스포츠의 세계와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오프화이트 2020 F/W 컬렉션 쇼 백스테이지의 버질 아블로.

    VIRGIL ABLOH

    버질 아블로는 기회와 문제 해결의 차이를 잘 안다. 그는 패션 장학금 펀드(Fashion Scholarship Fund)와 파트너십을 맺고 조성한 ‘포스트 모던’ 장학금 펀드(‘Post-Modern’ Scholarship Fund)를 통해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젊은 흑인들에게 기회와 문제 해결을 동시에 제공한다. 이 펀드를 발표하기 전에 오래 함께한 파트너 기업으로부터 100만 달러(그의 개인 기부액은 15만 달러)를 이미 모금했지만, 펀드의 주요 목적은 100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활용 가능한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거친 누군가가 언젠가 루이 비통이나 오프화이트에서의 내 자리, 내 역할을 이어받았으면 좋겠어요.” 아블로가 말했다. 7월에 이 펀드를 발표한 후, 아블로는 줌을 통해 장학금 수령 여부와 상관없이 전 세계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그리고 아블로의 기운을 북돋운 것은 젊은 흑인 디자이너들을 웨일스 보너의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Grace Wales Bonner), 피어 오브 갓의 제리 로렌조(Jerry Lorenzo) 등 존경받는 인물들과 연결해주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 문을 열고 있어요. 내게 나오는 것이든 다양한 배경을 가진 다른 젊은 디자이너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든 멘토십이라는 요소는 정말 중요해요. 젊은 디자이너 상당수가 흑인이고 대중적 브랜드를 운영하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재정적 지원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죠. 하지만 대부분 정보의 접근성과 직접적 멘토십에 기인합니다.” 그는 그 네트워크를 신뢰성 높고 상호 간의 유익한 관계가 가장 중요한 ‘신족벌주의(Nepotism)’라고 표현한다(아블로는 자신의 멘토로 조지 콘도(George Condo), 마크 제이콥스, 루이 비통 CEO 마이클 버크(Michael Burke), 노 베이컨시 인(No Vacancy Inn)의 공동 설립자 트리메인 에모리(Tremaine Emory) 등을 꼽는다). 그런 가이드와 관계 형성에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방법이라고 아블로는 여긴다. “내 임무는 다음 세대를 위해 그 문을 확실히 여는 겁니다. ‘버질이 했던 일을 능가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젊은 흑인이 탄생하게 하는 거죠. 나는 나 혼자만의 일보다 그런 일에서 더 성취감을 얻는 그런 커리어의 지점에 와 있습니다.” -Sarah Spellings

    첫 번째 ‘패러그래프’ 컬렉션에서 선보인 제로 웨이스트 패턴 팬츠를 입고 쇼룸에 선 르쥬의 제양모와 강주형.

    LEJE

    론칭 2년밖에 안 된 신인 디자이너 듀오는 파리에서 코로나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았다고 표현했다. “파리에서 우리 같은 소규모 브랜드가 컬렉션을 선보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거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서 제작은 고사하고 원단 수급조차 불가능했죠.” 지난해 11월 제양모와 강주형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전까지 아트 피스는 주로 파리에서, 커머셜 아이템은 서울에서 제작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서울에서 이뤄진다. “2021 S/S 컬렉션을 준비할 때 경주 여행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요즘은 한국이 영감의 원천입니다.” SNS뿐 아니라 세일즈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은 두 번째 ‘패러그래프’ 컬렉션의 재활용 플라스틱 베스트도 불국사 단청의 문양과 색감, 문살무늬를 참고한 것이다. 빈 생수병 조각을 알록달록한 크로셰로 이어서 만들었는데, 보석 같은 다이아몬드 패턴은 대정 스파클, 줄무늬는 제주삼다수, 2021 S/S 여성복 컬렉션의 링크로 이은 투명한 꽃잎은 칠성사이다병이다. “첫 컬렉션을 데드 스톡 원단으로 완성하면서부터 쭉 자개나 라탄 같은 천연 소재와 메종에서 쓰고 남은 패브릭 등 재활용 소재를 활용했습니다. ‘럭셔리 서스테이너블’이라는 가치관을 본격적으로 정립한 건 제로 웨이스트 패턴의 팬츠를 선보인 첫 번째 패러그래프 컬렉션이고요.” 직사각형 패턴 조각을 이어 만든 팬츠는 원단 낭비가 없다. 특정 아이템에 집중한 패러그래프 컬렉션은 ‘친환경’이라는 컨셉을 확고히 하고자 최소한의 공정을 제외한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전통적이면서도 꾸뛰르적인 제작 방식은 메인 컬렉션에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그 시즌 테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아트 피스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지난 2020 S/S 컬렉션의 등나무 가지로 만든 조끼는 조선시대 등거리를 만드는 장인과 협업한 것이고, 재활용 플라스틱 베스트의 니팅 작업은 국내 손뜨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제양모와 강주형의 계획에는 우리나라 장인들과의 지속적인 협업도 포함된다. “첫 컬렉션은 샤넬 파트너 공방에 의뢰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도 못지않은 기술을 가진 분이 많다는 걸 알게 됐죠. 사람의 손으로 완성하는 아날로그 방식은 르쥬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Borah Song

    케어링과의 파트너십으로 YFINY 재단 론칭을 준비 중인 디자이너 커비 장 레이몬드.

    KERBY JEAN-RAYMOND

    지난해 3월 팬데믹이 뉴욕을 강타했을 때, 피에르 모스(Pyer Moss)의 커비 장 레이몬드는 즉시 필요한 일을 실행했다. 브루클린 출신의 디자이너는 몇 주 만에 병원 근로자를 위한 보호 장구를 모으는 데 힘을 보탰고, 흑인이 운영하는 현지 사업체에 YFINY(Your Friends in New York) 이름으로 보조금을 지급한 것이다. 기분 좋은 슬로건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은 지역사회 주도의 지원이 되어, 창의적인 젊은 패션 디자이너에게 생명의 밧줄을 던져주게 되었다. “YFINY는 생태계죠. 디자이너,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 패션 산업 종사자들이 겪는 많은 문제 해결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장 레이몬드가 말했다.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사람들이 사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을 확보하는 거죠. 인원이 부족하지는 않아요.” 케어링이 지난해 초가을에 맨 먼저 이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케어링의 회장 프랑수아 앙리 피노가 장 레이몬드를 만난 후 줄곧 논의해온 파트너십이었다. 장 레이몬드는 그것을 음반 레이블과 유사한 것으로 표현했다. “1990년대 중반 데프 잼 레코딩스 혹은 2000년대 초의 로커펠라 레코드 같죠. 놀랄 만한 참여자도 있을 겁니다. 난 어떤 의미에서도 구세주는 아닙니다. 나 역시 여전히 알아가는 중이죠.” 그는 내년에 론칭할 YFINY의 세부 사항을 발표할 계획이다. “나 혼자 성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끄는 새 브랜드가 실제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Chioma Nnadi

    자신의 집에서 앤티크 가구에 둘러싸인 알레산드로 미켈레.

    ALESSANDRO MICHELE

    Marvin, Beatrice, Geraldo, Yuri, Junayd, Min. 구찌 최신 룩북에 등장한 이 ‘모델’들은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함께 컬렉션을 탄생시킨 바로 그 디자이너들이다. 이동 제한령으로 연례행사인 패션쇼를 취소했을 때, 미켈레는 어시스턴트로 일하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 그가 몇 달 동안 공들여 만든 의상이 패션쇼를 위해 조각조각 뜯겨져 나갔고, 이후로 두 번 다시 그 의상을 볼 수 없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서 아들을 뺏어가려는 것과 같은 거죠.” 하지만 동료들을 조명하는 것 역시 ‘아름다운 일’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구찌는 문화, 교육, 사회 정의뿐 아니라 의료 형평성과 건강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기 위해 ‘구찌 체인지메이커스’ 교부금과 장학금 지원을 확대하면서 다른 영역에서도 유사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켈레는 2015년 구찌의 수장이 된 이래 패션쇼를 계속 재조정해왔다. 런웨이의 안팎을 뒤바꿔 관중을 쇼의 일부로 만들기도 했다. “결국 패션쇼는 단순히 쇼와 캠페인이 아닌 겁니다.” 미켈레는 인간적 요소를 중시하며, 팬데믹은그 본능을 더 강화시켰다. 그는 앞으로 1년 동안 다섯 번이 아니라 두 번의 패션쇼를 선보일 계획이다. 스케줄은 한층 차분하며, 창의적으로 현명하고 훨씬 인간적일 것이다. 그것이 미켈레를 행복하게 만든다. “살짝 새로워진 듯한 기분이 들어요. 다시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요.” -Nicole Phelps

    2019년 도쿄에서 진행한 세 번째 로에베 크래프트 시상식에 참석한 조나단 앤더슨과 관계자들.

    JONATHAN ANDERSON

    이동 제한 봉쇄령이 내려진 동안, 조나단 앤더슨은 예상 밖의 협업자를 발견했다. “The secret of life is in art”라고 적힌 오스카 와일드의 글귀를 경매에서 발견한 것이다. “굉장히 단순한 문구예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죠. 그게 집 정리나 뜨개질 혹은 정원 손질 등 무엇이 됐든 상관없죠.” 그의 경우는 JW 앤더슨 2021 S/S 남성복과 여성복 리조트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팀원들과 함께 팬데믹에도 유효하다는 것이 입증된 ‘Show in a Box’를 작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로에베 2021 S/S 컬렉션의 개념적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영국 아티스트 앤시아 해밀턴(Anthea Hamilton)과의 협업도 이에 해당된다. 앤더슨은 항상 블룸즈버리 그룹의 협력적인 종합예술 게잠트쿤스트베르크(Gesamtkunstwerk)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와 그의 조수들의 세상을 따라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로에베 또한 이 정신에 기반해 재편성한다. 앤더슨은 로에베 재단의 ‘Loewe Foundation Craft Prize’를 통해 바구니 직조 장인 조 호건(Joe Hogan)을 알았고, 이 만남은 전 세계 직조 공예가와의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그다음 앤더슨은 자신의 브랜드에서도 창의적이며 지속 가능한 관점을 접목하기 위해 신기술과 그의 팀을 짝짓는 프로젝트에 방직 공장과 협업을 추진했다. “바구니 짜기, 장갑 제조 장인과 소재. 이것은 모두 내가 가진 지식으로 그 수공예를 개선하려는 노력과 이어집니다.” 조나단이 설명했다. “상당수를 로에베에서 작업한 것으로부터 얻었어요. 패션 하우스로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의미로 공예를 다루죠. 거기에 우리의 현대성 또한 존재합니다.” -Hamish Bowles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이규원
      사진
      Courtesy of Prada,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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