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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비통 수석 조향사가 말하는 사랑과 향

2021.08.27

by 이주현

    루이 비통 수석 조향사가 말하는 사랑과 향

    낭만적이면서도 짓궂고, 관능적이면서 경쾌한! 이토록 복잡 미묘하고 모순적인 사랑이라는 감정 그리고 향.

    루이 비통의 수석 조향사 자크 카발리에 벨트뤼(Jacques Cavallier-Belletrud)가 꽃과 바람을 재료로 완성한 열세 번째 여성용 향수 ‘스펠 온 유’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 남부 그라스에 있는 루이 비통 향수의 모체, LVMH 그룹의 후각 창조 센터를 방문했다. 6월의 선선한 바닷바람과 작열하는 태양이 마음을 두드리는 칸에 도착해 구불구불한 산골짜기를 따라 그라스로 향하는 길. 국제향수박물관과 앤티크 향수 부티크가 ‘파인 프래그런스(Fine Fragrance)’의 본고장에 다다랐음을 알렸다. 그라스 중심가의 좁다란 오르막길을 아슬아슬하게 올라가던 차는 범상치 않은 철제문 앞에 멈춰 섰다. 대문을 지나자 여름의 열기로 무르익은 꽃과 허브, 지중해 과일 향이 코끝을 기분 좋게 자극했고, 비탈을 따라 조성된 마을과 대조되는 커다란 평원과 붉은색 테라코타 외벽이 전형적인 남프랑스풍 저택을 연상시키는 ‘퐁텐느 파르퓌메’가 위용을 드러냈다. ‘향기로운 분수’라 이름 붙은 이곳은 1640년 설립된 향 공방으로 2013년 LVMH 그룹이 인수하기 전, 50년 가까이 일이 없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퐁텐느 파르뮈메에서 한 세기 동안 자취를 감춘 루이 비통 향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은 어딘가 ‘신화적인’ 면이 있다. 프랑스 전역에 세 차례 봉쇄 조치가 내려진 지난해, 자크 카발리에 벨트뤼는 이 공방에서 철저히 단절된 생활을 하며 창작에 전념했다. 새로운 향료를 발견하기 위해 해외로 떠나는 여행이 금지된 시기에 그는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감정에 주목했다. “영어로 감정을 의미하는 ‘이모션(Emotion)’의 어원이 ‘움직이게 하다(Movere)’예요. 이처럼 감정은 내면에 숨겨진 영역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여행이죠. 그 가운데 가장 가슴 짜릿한 여행은 두말할 것 없이 사랑이라는 감정이죠.” 매혹의 핑크빛으로 물든 향수병에 새겨진 세 글자 ‘Spell on You(당신에게 주문을 걸어요)’가 시선을 끄는 이 새로운 향은 로맨틱하면서도 짓궂고, 관능적이면서 경쾌한, 모순적인 사랑의 감정을 담고 있다. 싱그러우면서도 강렬한 플로럴 노트에 가벼운 과일 향이 감도는 스펠 온 유는 사랑에 빠진, 아니 사랑을 쟁취하는 여인에게 바치는 현대적인 서정시다.

    스펠 온 유(당신에게 주문을 걸어요). 향수 이름이 매혹적이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인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Screamin’ Jay Hawkins)의 ‘I Put a Spell on You(나는 당신에게 주문을 걸어요)’에서 따왔어요. 니나 시몬(Nina Simone)이 리메이크하기도 한 이 곡은 특유의 경쾌하면서도 관능적인 리듬이 듣는 이의 귀를 홀리는 진취적인 사랑 노래죠. ‘스펠 온 유’, 이 세 단어는 그 자체로 주문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대면 만남이 극도로 제한되던 록다운 기간에 이 공방에서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하면서 사랑과 유혹 같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감정, 향수의 가장 근원적인 존재 이유인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어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자석처럼 이끌리는 순간,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와 깊숙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때, 그 원초적이고 짜릿한 감정을 향으로 포착해낸 결과물이죠.

    이번 향수를 통해 당신은 21세기의 로맨틱 향수를 재정의했어요.
    늘 바쁜 일상에 치이는 현대인이 사랑하는 방식, 연애하는 방식은 훨씬 더 즉흥적이고 직관적이에요. 팬데믹 시대에 스마트폰 메신저와 데이트 앱을 활용한 ‘랜선 연애’를 즐기는 젊은이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죠. 21세기의 사랑은 이처럼 템포가 빠르고, 강렬하고, 때로 정열적이지만, 랜선 연애의 시대에도 연인에서 바치는 커다란 꽃다발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하기 힘든 순수하고 강력한 애정의 표현이기도 해요. 스펠 온 유를 통해 21세기 사랑의 역동성과 불변하는 낭만주의를 동시에 표현하고 싶었고, 그 실마리를 플로럴 노트의 ‘이중성’에서 찾았죠. 바닐라 노트나 농후한 플로럴 노트처럼 무거운 향조가 지배적이던 과거 로맨틱 향수의 수식에서 탈피해, 유려하지만 파워 넘치고, 연약하지만 대담하고, 관능적이지만 공기처럼 가벼운 플로럴 향수로 재기 발랄하며 쟁취적이고 때론 짓궂은 낭만주의자를 상징하고자 했어요. 스펠 온 유의 중심축인 붓꽃은 이런 꽃의 이중성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재료였죠.

    스펠 온 유에 이어 시향한 붓꽃 원액은 정말이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뿌리줄기가 향을 완전히 머금는 데 3년, 추출을 위해 건조하는 데 3년, 총 6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 완성되는 아이리스 원액은 5톤의 뿌리줄기에서 단 1kg밖에 생산되지 않는 진귀한 향료예요. 우아한 플로럴 노트와 관능적인 파우더리 향,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강력하게 발향하는 아이리스는 오래전부터 ‘사랑의 묘약’으로 통했죠. 향수가 발명되기 이전, 서양권뿐 아니라 동양권에서도 아이리스를 건조해 얻은 분말을 화장용 분에 섞어 사용했을 정도로 이 향료가 가진 유혹의 힘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요. 스펠 온 유에는 아이리스 중에서도 최고급 품종인 피렌체산 아이리스 팔리다(Iris Pallida)에 앱솔루트(Absolute)와 콘크리트 에센스(Concrete Essence) 두 가지 향유가 사용됐는데, 앱솔루트의 향기로운 꽃향기와 식물의 푸른 향, 콘크리트 에센스의 섬세한 파우더리 향이 이 향수의 양면적 매력을 구성하는 두 개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향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향수는 ‘리듬을 지닌 창작물’이라고 말했어요. 스펠 온 유는 어떤 ‘리듬’을 지닌 향수인가요?
    스펠 온 유는 톱 노트부터 잔향까지 플로럴 노트가 끊임없이 굴절되며 다양한 선율과 리듬을 만들어내는 향수예요. 우선 분사하자마자 코끝으로 밀려오는 아이리스 앱솔루트의 싱싱한 제비꽃 향과 그린 노트는 향을 맡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경쾌하게 굽이치는 톱 노트가 사라진 자리에 우아한 장미 향과 삼박 재스민의 태양 빛을 머금은 듯한 관능적인 향이 피어나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폭발적인 플로럴 노트의 배경에 은은히 퍼지는 아이리스 콘크리트 에센스의 활석 향과 아카시아꽃의 꿀 내음이 어우러진 중독적인 베이스 노트를 느끼시게 될 거예요. 그리고 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꽃의 여정’을 상큼한 복숭아 향을 품은 부드러운 화이트 머스크가 마무리하죠. 향수의 주축인 플로럴 향조에 프루티 머스크 향을 가미해 풍성하고 포근한 인상적인 잔향을 완성했습니다.

    2016년 첫 향수를 발표한 후 6년 동안 총 27개 향수를 탄생시켰습니다. 루이 비통만의 향을 완성하는 노하우나 법칙이 있나요?
    향수를 만드는 일은 결국 조향사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야기나 감정, 기억을 향을 통해 들려주는 일입니다. 아직 탐험해보지 않은 내면의 영토를 들여다보는 일에서 루이 비통의 새로운 향수에 대한 영감을 얻곤 하죠. 그 숙고의 과정이 곧 ‘조향’이라는 개척되지 않은 향의 영토를 그려나가는 일로 귀결되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향수 사이에서 특정 향수가 기억에 남는 지점은 만든 이의 감정이나 기억이 착향하는 이에게 오롯이 전달되는 순간입니다. 이는 제가 루이 비통 향수를 만들 때 얼마나 많은 이가 좋아해줄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이유기도 해요. 내 감정을 얼마나 충실하게 향수병에 담아냈느냐가 관건이죠. 모든 이가 좋아하는 향수는 음악이 나오고 있는지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엘리베이터의 배경음악 같아요.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되지 않는 향수는 의미가 없죠.

    루이 비통 향수의 조향사가 되어 가장 좋은 점 한 가지는 뭐죠?
    한 가지만 꼽긴 힘들 것 같은데요(웃음). 루이 비통 향수는 사전에 출시일을 정해두지 않아요. 향료 가격에도 제한을 두지 않고요. 시간과 비용의 제약 없이 제품 하나하나에 완벽을 기할 수 있다는 점은 루이 비통 하우스에서만 누릴 수 있는 럭셔리죠. 또 다른 럭셔리는 바로 이곳 퐁텐느 파르퓌메에서 일하는 겁니다. 유서 깊은 그라스 조향사 집안 출신으로 중심가에서 나고 자란 저는 등하굣길에 늘 이 대문 앞을 지나치곤 했어요. 하루는 조향사인 아버지에게 저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여쭤봤고, 아버지는 향수 공방이 있었는데 이제는 문을 닫았다고 말씀하셨죠. 유년 시절 내내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던 이곳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정원에서는 350종의 꽃과 식물, 과일이 자라고 4,800종의 향료를 보유한 조향 아틀리에가 작업실 바로 위층에 자리한 퐁텐느 파르퓌메는 조향사라면 누구나 꿈에 그려봤을 법한 마법 같은 장소입니다. 대부분의 조향 회사가 있는 산업 단지가 아니라, 그라스 중심부에 있다는 점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세계 최초로 초임계 이산화탄소(CO2) 추출 기술을 통해 그라스 지방의 장미와 재스민 원액을 추출한 주인공일 정도로 향료를 직접 개발하는 일에도 적극적입니다.
    향료를 향한 열정은 그라스 지방의 유산이에요. 그라스는 향료용 꽃과 식물 재배지로도 명성이 높지만, 특히 향료 추출 기술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역이죠. 4세기 동안 전해 내려오는 전통 추출 기술과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그라스에서 오뜨 퍼뮤머리에서 사용하는 고급 향료의 90%를 만들 정도죠. 조향사와 원재료 재배인, 향료 제조 장인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라스 지방의 전통이에요. 이런 지리적, 사회적 환경 덕에 그라스의 조향사는 향료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향료를 직접 개발하는 일에도 남다른 열정을 지녔습니다. 아침 시간에 향료 제조 장인의 공방에 들러 스파이시한 파촐리 원액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하고 그날 저녁에 곧바로 시향하는 일은 이 지방 조향사만 누릴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이에요.

    4대째 가문의 조향 전통을 잇고 있는데, 아버지나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면 무엇인가요?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도전 정신, 시대를 읽고 앞을 내다보는 안목을 배웠어요. 물론 후각 훈련과 조향 훈련도 전부 아버지에게 직접 배웠지만, 제가 처음 조향을 배우던 당시와 현재는 조향법이 상당히 달라졌고, 향료 추출 기술도 대단히 진화했어요. 기술이 변했더라도,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고 과거에 머물지 않는 도전적 마인드는 가족에게 물려받은 귀중한 유산이자 창작의 동인이죠. 현재 우리 가문 5대 조향사의 길을 가고 있는 딸에게도 늘 이러한 도전 정신을 강조합니다. 제가 걸어온 길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이죠. 오이디푸스 신화처럼 언젠가는 아버지의 목을 베야 하니까요(웃음).

    당신의 향수에는 늘 현대와 고전이 공존하는 듯합니다. 향수에 현대적 터치를 가져오는 요소는 뭘까요?
    향수가 공기 중에 퍼질 때의 표현력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이 세상 최고의 조향사는 ‘바람’이에요. 지금 퐁텐느 파르퓌메에서 우리가 맡고 있는 향기는 모두 바람이 몰고 온 것들이죠. 절대 정지하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지중해 바람이 가져오는 장미 향에는 바다의 짠 내음, 흙냄새, 줄기와 잎사귀의 푸른 향, 꽃잎의 청초한 향이 동시에 담겨 있어요. 바람이 몰고 온 향처럼 자연의 다양한 양상, 재료 하나하나의 다양한 표정을 향수에 담아내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고, 과거의 향수와는 차별화된 진동과 움직임이 살아 있는 저만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스펠 온 유에도 이러한 꽃과 바람의 대화가 담겼죠.

    한 세기 동안 잠들어 있던 루이 비통 향수를 다시 만든 주역이자 브랜드 향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수석 조향사로서 루이 비통 여성 향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를 꼽아주세요.
    여행과 꽃입니다. 이 두 단어는 루이 비통 향수뿐 아니라 루이 비통 하우스의 DNA를 대변합니다. 플로럴 노트는 루이 비통의 지문처럼 모든 여성 향수의 중심이 될 뿐 아니라, 가변적이고 모순적인 남성상을 지향하는 루이 비통 남성용 향수에도 빠질 수 없는 재료예요. 꽃 향조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개척하는 루이 비통 여성용 향수는 현대적 낭만주의를 대변합니다. (VK)

    뷰티 에디터
    이주현
    정혜선
    Courtesy of
    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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