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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한미녀’ 김주령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

2023.02.12

by 조소현

    <오징어 게임> ‘한미녀’ 김주령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

    미스 춘향 출신인 그는 실제로도 미녀가 맞다. 벼랑 끝에 몰린 어른들의 잔혹동화 〈오징어 게임〉의 번외 편, ‘한미녀’의 신데렐라 스토리. 배우 김주령에 대해 지금부터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블랙 드레스, 레드 페이턴트 힐은 디올(Dior), 골드 귀고리는 셀린느(Celine).

    드라마가 공개되기 며칠 전 김주령은 이상한 꿈을 꿨다. 산더미처럼 변이 쏟아지는데 사람들의 시선에도 부끄러움은커녕 매우 시원한 기분을 느낀 그는 미국에 있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얘기하지 말라”는 남편의 신신당부에 한동안 잊고 지낸 길몽이다. 생생한 그 꿈 때문이었을까? <오징어 게임>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무명에 가깝던 배우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SNS만 봐도 알 수 있다. 드라마가 나온 지 한 달. 400명이었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어느새 200만을 넘었다. 김주령은 요즘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꿈만 같다. 데뷔 22년 차의 배우, 아홉 살 아이의 엄마, 충정로에 사는 마흔여섯 살 여성. 평범할 것 같던 인생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10년 넘게 소식이 끊겼던 이들까지 연락이 빗발친다.

    “미국은 지금 한국보다 더 난리래요. 매일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이 <오징어 게임> 얘길 한다고요. 덕분에 자기가 스타가 됐대요.” 연출을 전공한 김주령의 남편은 현재 텍사스주립대 교수다. 두 사람은 오래전 연극 무대에서 배우와 연출로 만났다. 아내의 연기에 대해선 말을 아끼던 그도 한껏 신이 나 현지 매니저를 자처하며 온갖 소식을 전하고 있다. 할리우드 진출이 허황된 얘기만도 아니다. 불과 4주 만에 전 세계 1억1,100만 명이 시청한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TV 시리즈 역대 흥행 1위다. 그뿐인가. 한국 영화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한국 배우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시대다. 인종도 나이도 성별도 더 이상 문제 되지 않는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죠. 아무래도 가족이 오래 떨어져 지내는 건 별로니까. 아직 계획은 없어요. 어떻게 될진 저도 모르죠. 일단 영어를 잘해야 할 텐데 잠깐 미국에서 살긴 했지만 그땐 육아하느라 따로 공부를 하진 못했거든요.” 작품에 대한 뜨거운 반응에 얼마 전 김주령은 영어로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사실 그의 영어 실력은 드라마 <SKY 캐슬>에서 살짝 공개된 바 있다. 미국에 사는 세리 이모로 반짝 출연한 그는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한국으로 도망친 조카의 만행을 동생(윤세아)에게 실감 나게 폭로했다. “쉬 이즈 인세인~! 미쳤어, 미쳤어.”

    이 얘긴 <오징어 게임>의 한미녀에게도 해당된다. 사기 전과 5범, 동두천에서 강남까지 다 씹어 먹었다는 전설의 ‘이 구역 미친X’. 정신 사나운 긴 파마머리에 틈만 나면 튀어나오는 욕설. 212번이라는 추리닝에 적힌 숫자처럼 이편과 저편을 오가는 처세술과 상황에 따라 돌변하는 종잡을 수 없는 성격.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영화<도가니> 때부터 김주령을 눈여겨봤다. 기숙사 사감이자 교장(장광)의 애인 윤자애 역으로 열연한 그에 대해 황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순간적으로 돌변해 폭발하는 광기를 봤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것이 한미녀를 연기할 때도 잘 발현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조감독이었던 박정배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 <도굴> 촬영 현장에서 우연찮게 다시 만난 황 감독은 슬쩍 김주령의 내년 스케줄을 물었다. <오징어 게임>의 대본이 도착한 건 이듬해 2월이었다. “사실 <도가니>에서 제가 등장하는 장면이 얼마 안 돼요. 현장에서 감독님을 한 여덟 번 봤나? 그게 다였죠. 그런데 영화 끝나고 <국화꽃 향기>라는 연극을 할 때 감독님이 제 공연을 보러 오셨더라고요.” 대본을 건네받은 김주령은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전부를 읽었다. 신선하고 충격적인 잔혹동화. 극 중 한미녀라는 캐릭터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와 거의 달라진 게 없다. 그만큼 극을 위해 철저히 계획된 인물이다.

    화이트 셔츠, 진주 귀고리는 디올(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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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 셔츠, 진주 귀고리는 디올(Dior).

    첫 촬영을 하던 날, 김주령은 너무 긴장된 나머지 몰래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2화에 첫 등장하는 한미녀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이었다. 그간 여러 작품에 출연해왔지만 이렇게 큰 배역을 맡아 무대가 아닌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건 처음이었다. 스태프들이 자연스레 모니터를 확인하는 모습조차 ‘너 어디 한번 잘하나 지켜보자’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가 원래 술을 잘 못하거든요. 한 잔 마시니 알딸딸한 게 주위에 신경이 안 쓰이더라고요. 에라, 모르겠다. 연기했죠. 다행히 감독님이 ‘좋다’고 칭찬해서 그때부터 부담을 덜었어요.” 김주령의 애드리브가 빛을 발한 장면도 있다. 원래 화장실에 보내달라고 네모에게 떼쓰는 장면에서 한미녀의 대사는 “나 싼다, 진짜 싼다”가 전부였다. 바지를 끌어 내리는 시늉을 하며 “아하, 줄줄 잘~ 나온다” 능청을 부린 건 순전히 그의 즉흥연기다.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온 거예요. 순간 현장의 스태프들이 빵 터졌어요. 감독님도 박수를 치며 ‘신의 한 수’라고 재밌어했죠.”

    화면 밖, 김주령은 뻔뻔한 한미녀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데다 매일 명상을 하고 절 수련을 한다. 100배에서 많게는 500배까지 2시간 반 동안 쉬지 않고 계속한다. 한때는 요가 강사로도 활동했다. 집 근처 정동길부터 시청, 광화문까지 동네 산책도 즐긴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그만의 방법이다. 2000년 영화 <청춘>으로 데뷔 후 지금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김주령은 배우로서 내실을 다지고 스스로를 다독여왔다. “<청춘>에 출연할 때가 스물다섯 살이었어요. 그때는 금세 뭐라도 될 줄 알았죠.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단역도 하고 독립영화도 하고, 그러다 다시 무대 연기를 해야겠다 싶어 극단에 들어갔죠. 거기서 신랑을 만났고요. 조연출이었거든요.” 지금보다 좀 더 빨리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도 있다. <도가니> 이후 배우 장광이 화제가 된 것처럼 충무로에서는 그와 함께 인상적인 연기를 보인 김주령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공교롭게도 그때 아이가 생겼다. 잠시 머물 계획이었던 미국에서의 생활은 3년 가까이 이어졌다. 인생은 참 모를 일이다. “맞아요. 대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딸을 얻었고요.” 그리고 다시 황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요즘 후배 배우들은 “김주령에게서 희망을 본다”는 말을 한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공백기와 일에 대한 고민은 비단 여배우뿐 아니라 모든 여성이 맞닥뜨리는 현실이다. 어린 시절의 게임처럼 끊임없는 선택의 순간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운명을 책임지며 살아간다. 456억원의 상금과 같은 어마어마한 돈은 오직 소수에게만 주어지지만 열심히 살아온 인생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누구에게나 돌아가는 법이다. 일흔네 살,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에 얼마나 많은 여성의 가슴이 뜨거워졌던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극 중 여성 캐릭터도 다양해졌다. 덕분에 과거와 달리 뒤늦게 대중에게 주목받는 여배우 또한 늘고 있다. “맞아요. 요즘은 많죠. 염혜란 씨, 김선영 씨. 다 저랑 동갑이에요. 서로 알지는 못하지만 그분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걸 보며 저도 자극을 받고 또 힘이 되죠.” <기생충>의 이정은도 있다. 2011년 이정은과 함께 연극에 출연했던 김주령은 그를 롤모델이라 말하기도 했다. “정은 언니는 정말 연기를 너무 잘해요. <장석조네 사람들>이라는 작품에서 만났는데 어쩌면 상대 배우의 마음까지 그리 절절하게 만드는지… 전 감히 비교할 수도 없어요.”

    테디베어 퍼 코트, 블라우스, 스커트는 막스마라(Max Mara), 골드 귀고리는 펜디(Fendi).

    김주령은 현재 JTBC 드라마 <공작도시> 촬영 중이다. 대한민국 정재계를 쥐고 흔드는 재벌가의 미술관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그는 서한숙(김미숙)의 비서 고선미 역을 맡아 과묵한 충신형 인물을 연기한다. 20부작으로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촬영은 이제 막바지에 달했다. <오징어 게임>의 신드롬이 거듭되자 드라마 촬영장에선 야단이 났다. “촬영장에 가면 ‘어이구, 대배우님 오셨다’고 막 놀려요. 감독님은 선미에 대한 환상이 깨질까 봐 일부러 안 보셨다는데 ‘여기서 이러고 계실 분이 아닌데’라며 장난을 치시고. 이 중년 여배우한테 참 고마운 일이죠(웃음).”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김주령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언젠가는 꼭 한 번 ‘극 안에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것. 배우라는 직업이 늘 선택을 받는 입장이라지만 <오징어 게임>의 성공 이후 작품과 역할에 대한 그의 선택의 폭이 늘어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상호 호혜 원칙에 따라 비로소 ‘깍두기’가 실력을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어쩌면 <오징어 게임> 시즌 2에 한미녀가 다시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것도 확정된 건 없지만 이번 시즌에서 유일하게 미녀의 전사만 공개되지 않은 터라 그의 과거를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우스갯소리로 감독님이 그런 얘길 한 적은 있어요. ‘만약 시즌 2가 나온다면 이번엔 양복남(공유)이랑 미녀를 한번 이어줘볼까?’ 하고. 하하. 재밌을 것 같다고요.” 김주령에게 한미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캐릭터일 것이다. 지난겨울 한미녀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후 김주령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본인의 연기에 대한 후회라기보단 아쉬움 때문이었다. 앞으로 만나게 될 김주령은 어떤 모습일까? 또 어떤 선택을 할까? 게임은 시작되었다. 이제는 김주령의 시간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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