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무쌍’으로 산다는 것

Beauty

미국에서 ‘무쌍’으로 산다는 것

2021-11-24T18:45:48+00:00 2021.11.25|

쌍꺼풀 없이 매끈한 눈매? 누군가에겐 아픈 손가락인 동시에 자부심이다.

고유의 미를 간직한 외까풀의 인기는 점차 높아진다. 유행하는 미의 기준은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치기 시작한 것.

몇 달 전 용인시에 거주하는 외할머니와 함께 탄천을 따라 산책을 한 적 있다. 겨울 중순이었지만 따뜻한 날씨였고, 나는 할머니의 팔짱을 끼고 걸었다. 어린 시절을 보낸 미국 중서부를 떠나 뉴욕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한국 방문도 점점 뜸해지고 있었기에 할머니를 뵌 것도 몇 년 만이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보다 나이가 더 드신 것 같진 않았지만 걸음은 조금 더 느려졌고, 무릎은 약간 더 뻣뻣해지셨다. 파란색, 노란색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바짝 뒤따라오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뒤로한 채 한강을 따라 뛰었던 어린 여름날이 생각났다. 공원 벤치에 앉아 쉬던 중, 할머니는 문득 내게 10대 시절에도 했던 질문을 다시 건넸다. “쌍꺼풀 수술 하고 싶었니?”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 얘기는 진작에 끝나지 않았냐고 가볍게 핀잔을 주고 넘어갔지만, 마음속에서는 과거의 분노가 요동치는 걸 느꼈다. 이런 기분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맨 먼저 보게 되는 건 내 두 눈이다. 아버지가 물려준 눈은 검은색에 가까운 진갈색에 약간 처진 모양을 그린다. 그중에도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건 눈꺼풀이다. 주름도, 크리스(눈을 뜰 때 눈두덩 가운데 생기는 깊숙한 주름)도, 속쌍꺼풀도 없이 넓고 평평한 내 눈꺼풀은 눈썹 아래부터 그야말로 굴곡 없이 가만히 자리한다. 전문적으로는 ‘몽고주름’, 일반적으로는 ‘외까풀 눈’으로 지칭된다. 간혹 무지한 사람들이 ‘아시아인 눈’으로 부르는 이 눈매는 21세기가 시작될 무렵이나 지금이나 인종차별적 캐리커처를 그릴 때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된다. 붓으로 한쪽 끝이 올라간 선과 그 아래 선을 그리고, 그 사이에는 단춧구멍 같은 점 하나를 찍어 작고 째진 눈을 표현하는 식이다. 아시아 대륙이 얼마나 넓은지 종종 간과하는 미국인이 많다. 한국, 일본, 중국 외에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 방글라데시 등의 아시아 국가에는 외까풀, 쌍꺼풀, 갈색, 검은색, 헤이즐색 등 수없이 다양한 눈이 존재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외까풀이 아시아를 하나로 모호하게 묶는 상징이 되어버렸다. 아시아인 수십억 명을 붓질 세 번으로 다 표현한 양 하는 것이다.

전 세계 어디를 방문하든 내 눈은 비뚤어진 관심의 대상이 되곤 했다. 성장기의 대부분을 보낸 미국 중서부 마을에서 내 눈은 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의 놀잇감으로 전락했다. “중국인.” 반 아이들은 구호처럼 외치며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일본인.” 이번에는 눈꼬리를 끌어 내렸다. “하지만 난 한국인이야.” 나는 그게 중요한 사실처럼 맞받아쳤지만 그 아이들의 동그란 눈에는 다 같은 것으로 비칠 뿐이었다. 외가 쪽 친척을 만나러 자주 들렀던 서울에서도 이상한 일은 계속 벌어졌다. 내 언니는 크고 동그랗고, 자연스러운 속쌍꺼풀을 가진 엄마의 눈을 물려받았다. 먼 친척까지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가족들은 언니의 윤기 나는 흑발과 긴 속눈썹이 살포시 얹힌 사랑스러운 눈을 보며 칭찬했고, 반곱슬의 갈색 모발에 외까풀을 가진 나를 특이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애 아빠 쪽에서 온 거겠지.” 친척들은 조소하듯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했다. 눈꺼풀 하나가 다르다는 이유로 언니는 ‘예쁜 애’, 나는 ‘똑똑한 애’가 되어버렸다.

열넷의 생일 직후 한여름 밤, 어머니와 할머니가 부엌에서 숨죽여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쌍꺼풀 하면 참 예쁠 텐데.” 한국에서는 흔하디흔한 쌍꺼풀 수술 이야기였다. 공식 통계가 나온 적은 없지만 어느 국제 성형외과 의사 협회가 최근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쌍꺼풀 수술은 매년 한국에서 시행되는 시술의 약 22.9%를 차지한다. 절개 한 번으로 그럴듯한 쌍꺼풀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 수술은 거의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처럼 여겨지고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수술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항상 이 통계가 과장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당장 사람이 붐비는 홍대 앞이나 청담동을 걸어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쌍꺼풀 있는 눈을 깜빡이며 지나간다. 그 쌍꺼풀이 모두 자연산일까? 그럴 리는 없다고 본다.

쌍꺼풀에 대한 이 집착이 어디서 시작된 건지 가끔 생각한다. 한국인이 애초에 백인처럼 보이고 싶어 했던 건 아니었다. 그렇게 단순하게 시작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이 현상의 유래를 무시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6·25전쟁이 끝난 후 한국에 들어온 미국인 군의관은 ‘째진 구멍으로 은밀하게 훔쳐보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눈’을 수술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 들어온 미군은 한국을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이미지로 바꾸고자 했다. 이때 받은 상처가 지나치게 내면을 지배한 나머지 상처였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다음 날 어머니는 나에게 전날 외할머니와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했다. 나는 생긴 대로 사는 것이 뭐가 문제냐며 되물었고, 그 후 다시는 이 문제에 대해 서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 행사가 있을 때도, 한국인 친구들과 있을 때도, 미국 중서부를 떠나 동부로 이사할 때까지도 이 의문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 뒷모습만 보면 어떤 인종인지 알 수 없지만 앞에서 이목구비를 보면 영락없는 아시아인이었다. 블리커 스트리트 역 출구에서 나올 때 내게 침을 뱉은 남성에게도, 센트럴 파크에서 영어를 배우라며 소리친 노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적 눈꼬리를 손으로 치켜올리던 아이들이 아직도 생각난다. 쌍꺼풀이 뭐가 대수라고 이 난리란 말인가.

사실 마음 한쪽에서는 쌍꺼풀 수술을 받고 싶어 하는 충동이 이해되기도 한다. 팬데믹 기간에 서울로 이사 오면서 쌍꺼풀 열기에 합류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10대에는 일명 ‘아이참’으로 불리는 쌍꺼풀 테이프를 사용할 생각도 했다. 아직도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면 보이는 성형외과 광고를 지날 때 ‘쌍꺼풀 수술’이라는 유령이 또 내 마음을 헤집어놓을까, 포토샵 처리된 광고판의 얼굴들을 빨리 지나치고자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한다. 수술을 하면 예뻐질까? 내가 예쁘다고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사촌들처럼 서울이나 LA에서 자랐다면 결국 수술을 받았을 것이다. 관습을 따르는 게 훨씬 쉬우니까. 그런 이유로 받았든, 다른 이유로 쌍꺼풀 수술을 했든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그저 물려받은 걸 그대로 간직하고 싶을 뿐이었다. 외까풀 눈이 쌍꺼풀 눈보다 더 예뻐서가 아니라, 그냥 동등하게 대우받고 싶었다. 외까풀이 쌍꺼풀과 같은 대우를 받고 패션·예술·영화계에서도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간절히 원했다. 쌍꺼풀이 또렷한 눈매 위 발색된 아이섀도가 참 예쁘다고 여겼다. 눈을 감을 때만 볼 수 있는 그 반짝이는 색감. 수년 동안 잡지를 뒤적였지만 뷰티 팁은 죄다 커다란 쌍꺼풀이 진 눈을 위한 것뿐이었다. 외까풀을 가진 나는 어떻게 화장하면 좋을지 몰랐고, 지금도 여전히 모른다.

“자라면서 모든 메이크업 룩이 쌍꺼풀이 깊은 서양인의 눈에만 맞춰져 있다고 느꼈어요.” 한국계 미국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그레이스 안(Grace Ahn)도 나의 의견에 동의한다. “잡지에서 소개하는 예쁜 메이크업 룩은 죄다 쌍꺼풀이 있는 눈에만 어울려서 저도 그런 눈을 가졌으면 했죠.” 그레이스는 이제 외까풀이 메이크업을 하기에 오히려 장점이 많은 눈이라고 이야기한다. “작업할 수 있는 면적이 더 넓잖아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죠!” 사랑스러운 반짝임을 연출해주는 글리터처럼 다양한 텍스처의 화장품을 시도해보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자신의 문화적 배경을 활용해 대담하고 그래픽적인 메이크업에 도전하는 일본계 메이크업 아티스트 마키 료케(Maki Ryoke)에게 눈이란 “영혼의 진실을 보여주는 창”이다. 그래서 이 기사의 사진 속 메이크업처럼 틀에 얽매이지 않은 모양과 색상으로 눈을 꾸민다. 외까풀이라면 심플한 톤으로, 그러데이션을 연출해보라고 그녀는 추천한다. 속눈썹 점막에 어두운색의 아이섀도를 칠한 뒤 눈두덩 위쪽으로 갈수록 옅게 블렌딩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제 서울에서도 외까풀 눈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번 오랜 친구와의 저녁 약속에 용기를 내 핑크색 글로스를 눈두덩에 바르고 나갔다. 그레이스나 마키처럼 어떤 모양의 눈에서든 고유의 미를 찾아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어릴 적부터 알았더라면, 요즘처럼 나와 같은 눈매를 지닌 모델이나 가수를 알았더라면, 할머니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는 법을 좀 더 일찍 깨우치지 않았을까?

막걸리를 홀짝거리던 중 친구는 내 눈이 예쁘다고 스치듯 말했다. “너에게 잘 어울려.” 그녀가 말했다. 친구 뒤의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고, 아버지가 물려준 눈이라고 답했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나고서야 내 눈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