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 밤하늘의 펄이 되다
“Counting Stars.” 밤하늘의 별을 세던 비오가, 이제는 밤하늘의 펄.
본명이 유찬욱이죠. 랩 네임은 왜 비오(BE’O)인가요?
모태 신앙이어서 어릴 때 비오라는 세례명을 받았어요. 비오는 언제나 두 번째 이름이었죠.
어제 <쇼미더머니 10(쇼미 10)>의 ‘파이널’을 치렀죠. 기분이 어떤가요?
후련할 줄 알았는데 조금 공허해요.
100% 보여주지 못해서요?
맞아요. 무대가 완벽하지 못했거든요. 원래 만족을 잘 못해요. 무대나 음악이나 아쉬운 부분이 크게 보이고 거기 집중하게 돼요.
파이널 무대에서 ‘지나고 보면’을 불렀어요. “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닐 거야. 나쁜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추억으로”라는 가사가 인상적이에요. 당시의 진심을 담았다고 했는데, 왜 이런 가사가 나왔을까요?
<쇼미 10>에 나오기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비오는 <고등래퍼> 1, 2, 3와 <쇼미더머니 777>, <쇼미더머니 9>에 지원했다.) 인생의 벽 같아서 마지막으로 한번 넘고 싶었죠. 역시 힘들었어요. 경쟁이 안 맞는 사람이거든요. 싸워서 누가 한 명 떨어진다는 규칙 자체가 항상 마음에 걸렸어요. 이왕 나왔으니 ‘이번만 넘기자, 이번 무대만 잘하자’며 본선까지 갔죠. 파이널까지 가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다 좋은 시간이고 추억이죠.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이 많아 보였어요. 당장은 힘들고 지치지만 언젠가는 분명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하고 싶었어요.
고등학생 때 오디션 프로그램의 공개 탈락이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매번 다시 응시했어요?
예술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자기 꿈을 일찍 펼치는 친구들을 봤어요. 그런 노력을 사람들이 알아봐준다니 부러웠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어요. 빨리 내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죠. 방송이 빠른 길이 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도전했고 낙담도 많이 했지만 스스로 회복했어요.
“이전 오디션에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했지만 <쇼미 10>은 내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죠.
<고등래퍼>에 나갈 때만 해도 힙합 프로그램은 가사를 세게 쓰고 자랑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하지만 <쇼미 10>은 힙합 경쟁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의 음악 프로그램으로 보고 나를 소개하는 자리로 생각했어요. 떨어지든 욕을 먹든 내 이야기를 하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란 말도 있죠. 자기 얘기를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동하죠.
신기했어요. 공감을 사려고 쓴 가사에는 아무도 공감 안 하다가, 내 이야기를 하니 공감했어요.
2차 예선에서 부른 ‘Counting Stars’ 유튜브 영상이 조회 수 1,000만을 넘겼어요.
초반엔 ‘이제 비오라는 이름을 기억해주겠네’라며 기뻤죠. 하지만 다음 무대가 부담됐어요. 더 멋진 걸 보여주지 못하면 사람들이 실망해서 내게 받았던 좋은 인상이 반대로 바뀔 거 같았죠. 남은 무대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컸죠. 그 때문인지 어느 순간 남에게 잘 보이려는 가사를 쓰고 있더라고요.
부담에서 어떻게 벗어났나요?
(송)민호 형, 그레이 형이 조언을 해줬어요.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키든 말든 네 것을 해라. 그렇게 생각하니 나아졌어요.
‘Counting Stars’는 어떻게 나온 곡인가요?
할아버지가 요양 병원에 들어가시는 날 따라갔어요. 유달리 할아버지랑 친해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집에 돌아와서 베란다에서 하늘을 바라보는데 별이 엄청 많았어요. 내 마음과 달리 반짝거렸죠. 할아버지께 뭘 해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곡을 썼어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거였죠.
너무 가깝고 소중한 존재를 작품화하기란 더 어렵죠. 객관적이기보다 감상에 빠져 일기처럼 끝나기 쉽거든요.
맞아요. 너무 소중해서 함부로 꺼낼 수 없었어요. 할아버지를 너무 슬프게 드러내거나, 구구절절하게 나는 어떤 기분인지 쓰고 싶지 않았어요. 앞으로 잘해드리고 싶은 내 마음을 중심으로 담담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2020년 9월 <Monster>(‘That’s Wolf’ ‘Vampire’), 2021년 2월 ‘Blurry in my hotel room’, 3월 ‘BAD LOVE’, 5월 <Bipolar>(‘Brand’ ‘문득’)를 발매했죠. 비오는 사랑에 관심이 많더군요.
인생에서 사랑이 감정을 크게 좌우해요. 연인과의 사랑이든, 가족과의 사랑이든 저를 움직여왔죠. 다만 하나의 감정으로 묶어 표현하기보다 그 안의 여러 가지를 얘기해요. 이별만 해도 ‘슬퍼’로 끝나지 않는, 그리워하고 후회하고 탓하고 무덤덤해지는 등 다양한 부분이 있잖아요.
계속 음악을 해왔지만, 미디어 노출로 주목도가 달라지는 상황이 허탈한가요?괴리감이 조금 들었어요. ‘옛날에는 관심 없다가 방송 나가니까 들어주네’라는 마음은 아니에요. 마케팅 능력이 부족했던 거죠. 이런 의문은 들어요. 방송이 없었다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가가 되었을까? 방송 출연 여부를 떠나 사랑받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작사할 때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하나요?
가사를 열 번 쓰면 일곱 번은 내 이야기, 세 번은 상상에서 나와요. ‘BAD LOVE’란 곡은 금연하던 중에 나왔어요. 사랑이 담배 같았죠. 담배가 해로운 걸 알면서도 손이 가고 피우고 싶잖아요. 나쁜 사람인 걸 알지만 계속 관심이 가는 것처럼요. 이처럼 생각의 ‘케미’가 맞으면 작업이 술술 풀려요.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내면과 타인을 계속 들여다봐요. 비오도 그렇겠죠?
작가들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 모르지만, 래퍼 역시 나를 많이 생각해야 해요.
창작할 때 언제 가장 카타르시스를 느끼나요?
컴퓨터로 작업 완료한 곡을 휴대폰으로 옮길 때 ‘뽑는 과정’이 있어요. 내 음악의 첫 리스너가 되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는 거죠. 곡이 마음에 들면 방에서 혼자 엄청 좋아해요.
창작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요?
<쇼미>를 하느라 한동안 여러 경험을 못했어요. 꽉 막힌 상태죠. 원래는 굉장히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아요. 지금 이 공간에 있는 빗자루, 담배, 게임기, 얼마 전에 만난 못된 사람, 모두 영감이 될 수 있죠.
경험이 곡의 직접적인 소스가 되곤 해요. “작품은 결핍과 경험에서 나오는데 너무 평범한 나”라서 걱정하는 창작자도 있어요. 비오도 비슷한 고민을 해봤나요?
완전히 많이 했죠. 이렇다 할 스토리가 없는 사람인데 괜찮은 가사를 쓸 수 있을까. 엄청난 경험을 얘기하는 아티스트를 보면서 내 것을 꺼내도 될지 망설였어요. 이제 결론 냈어요. 나는 내 이야기를 하겠다. 죽을 것같이 힘든 시기가 오면 그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된다. 굳이 고통을 겪으러 들어갈 필요 없다. 내 일상이 스펙터클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공감할 것이다.
궁극적 목표를 말하기엔 이르다고 했죠. 그럼 소소하게 음악적으로 이루고 싶은 건?
‘궁극적’이란 말이 겁났어요. 대답해버리면 그것만 보고 살까 봐, 그것이 내 한계가 될까 봐요. 지금은 여러 아티스트와 재미있게 작업하고 싶을 뿐이에요.
새 앨범은 언제 만날 수 있나요?
내년에는 무조건 내야죠. 그간 만들어둔 많은 곡을 얼른 소비하고 싶어요. 너무 참았거든요.
비오의 음악 세계에 대해 말해주세요.
나를 아예 모르는 사람도 나를 상상하게끔 하는 음악. 제가 곡을 만들 때 감정을 듣는 사람도 비슷하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렇기에 음악만 만들고 끝이 아니라 영상, 앨범 커버도 함께 구상하죠. 대중이 음악에 더 가깝게 갈 수 있게요. 제 음악을 함께 상상해주세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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