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완전히 새롭고 건강한 하와이

2023.02.12

완전히 새롭고 건강한 하와이

언젠가 하와이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품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응원하는 힘이 된다. 절대적 낙원 하와이는 이제 건강한 휴식과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팬데믹 기간 동안 나는 많은 인터뷰를 “다시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면, 어디부터 가고 싶나요?”로 시작하곤 했다. 그리고 ‘하와이’라는 답변을 수집하듯 들으며 수년 전 하와이에 갔을 때 느낀 느슨한 바이브를 되감곤 했다. 하와이라고 대답한 사람들과는 하와이에 대해 잠시 수다를 떨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하와이를 ‘낙원’과 동의어로 썼던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추위를 이겨야 할 때면 아내와 하와이 얘기를 했다. 그리고 하와이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가며 글을 쓸 때면 아주 조금 따뜻해진 기분이, 열대 태양 아래에서 뒹굴며 콜라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에세이에 적었다. 정말 그랬다. 하와이는 언젠가 가야겠다는 마음을 품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응원하는 힘이 되어줬다.

호놀룰루에서 국내선을 갈아타고 1시간 더 비행하면 도착하는 섬 마우이는 하와이의 휴양지 같은 섬이다. 해변을 따라 고급 리조트가 줄지어 있고 계곡의 섬이라는 별명 그대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이어져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다.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하늘이 시야의 반 이상을 차지할 때 비로소 하와이에 왔다는 걸 실감한다. 서쪽 끝 카팔루아 해변에 있는 리조트 몽타주 카팔루아 베이(Montage Kapalua Bay)까지 달리는 동안 창밖으로 낚시를 하고 서핑을 하며 캠핑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특정 장소가 아니라 쉬고 싶은 곳 어디든 멈추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땅. 마우이는 섬 전체가 휴식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몽타주 카팔루아 베이 리조트는 객실이 총 56개로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레지던스형이라 완벽한 주방과 가전제품을 갖춘 것도 큰 특징이다. 리조트 정중앙에는 라군 풀이 자리하는데, 무엇보다 환상적인 건 라나이섬과 몰로카이섬까지 탁 트인 전망이었다. 어느 객실에서든 오솔길을 따라가면 카팔루아 해변에 다다른다. 해변다운 활기가 느껴지는 가운데 스노클링 장비도 대여해주는데, 장비를 끼고 바닷속을 헤엄친 지 5분이 지나지 않아 거북을 만날 수 있었다. 수심이 허리에도 못 미치는 깊이였다. 산책이라도 나온 듯 느긋하게 모래사장까지 진출한 거북을 보며 술렁이는 나 같은 여행객을 대상으로 해변 관리인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 거북이 불편하지 않도록 모른 척하라”는 안내 방송을 했다.

광활한 잔디밭을 따라 걷다 보면 클리프 하우스(Cliff House)가 나온다. 나말루 베이 절벽 위의 하얀 집. 윈도우 배경 화면에서나 볼 법한 환상적인 모습을 한 이곳은 1940년 호놀루아 플랜테이션 관리자가 모여 회의를 하는 장소였으나 지금은 결혼식, 기업 행사 등 특별한 날을 위해 공개한다. 클리프 하우스 옆 절벽은 젊은이들의 다이빙 명소다. 클리프 하우스에서 컬처 앰배서더로부터 하와이 전통 신화를 청해 듣던 날, 밖에서는 연신 바다로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일으키는 물보라와 풍덩 소리가 이어졌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휴식은 스파다. 히비스커스가 흐드러진 산책로 끝에 자리한 스파는 모두 독채로 이뤄져 있다. 폭포가 있는 야외 수영장, 유칼립투스 사우나 등을 갖춰 열대 정원 한복판에 찾아 들어간 듯한 느낌을 준다. 원주민에게 전해 내려오는 하와이 전통 마사지 로미로미(Lomilomi)는 리드미컬한 스트로크와 태평양 파도처럼 흐르는 팔뚝 움직임을 구사한다. 마사지사는 뜨겁고 반질반질한 돌을 몸 한가운데 놓았다가 손에 쥐여주곤 했는데 대지의 기운이 전해지는 듯했다. 이곳에서 나는 완전한 휴식을 경험했다.

리조트에서 휴식은 더할 나위 없었지만 마지막 날 마우이에서 가장 높은 할레아칼라(Haleakalā) 산에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태양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할레아칼라, 그 정상까지 다다르는 길은 구불구불하고 가파르며 시간도 오래 걸렸다. 발아래 구름을 두고 붉게 물드는 하늘을 마주하는 일출과 일몰이 유명하지만, 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그곳에서 별이 뜨길 기다렸다. 그렇게 별을 마주한 소감부터 전하자면, 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Stargaze’, 곧 ‘별멍’을 위해 “담요나 의자를 가져오십시오. 앉거나 누워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라는 조언이 나와 있다. 담요를 깔고 누우니 칠흑 가운데 빛나는 존재가 쏟아져 내렸다. 동행한 별자리 전문가는 거대한 현미경으로 북극성, 큰곰자리 같은 별자리를 짚어줬다. 홈페이지에는 “옷을 따뜻하게 입으십시오”라는 조언도 적혀 있다. 산기슭과 산 정상의 날씨는 하늘과 땅 차이다. 하와이의 하루에는 사계절이 모두 지나간다.

마우이가 하와이의 은근한 비경이라면, 오아후는 빼어난 절경이다. 에메랄드빛 와이키키 해변을 따라 리조트와 상점이 늘어선 모습은 우리가 하와이에 바라는 모든 것을 상징한다. 와이키키에서 10여 분 떨어진 카할라 호텔 앤 리조트(The Kāhala Hotel & Resort)는 프라이빗한 비치로 유명하다. 벽을 따라 쭉 걸린 유명 인사의 사진은 카할라 호텔의 역사이자 자랑이다. 골프장으로 바로 연결되는 코너 스위트가 특히 그들이 애정하는 룸이다. 호텔 앞 바다는 다른 어느 곳보다 파도가 잔잔해 수영장과 바다를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는 분위기다. 본격적인 물놀이를 하지 않고 그저 파인애플 칵테일을 들고 아무 데나 몸을 기대도 하루 종일 가동되던 긴장감이 풀린다.

카할라 호텔에서는 매일 아침 해변에서 요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해변가에는 플루메리아 꽃나무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오늘을 위한 에너지를 깨웠다. ‘항상 웃길, 항상 행복하길’. 요가 트레이너는 진심으로 우리의 안녕을 바랐다. 웰니스를 지향하는 호텔답게 스파 역시 유명하다. 특히 트리트먼트에 앞서 소금과 스크럽으로 발을 정성껏 씻어주는데 ‘발을 환영하는 의식’이라고 부른다. 기분에 맞는 향의 오일을 골랐고 로미로미는 또 한 번 지구 반대편 도시에서 켜켜이 쌓인 긴장을 풀어냈다.

때로 여행을 좌우하는 건 이미지와 환상이다. 특히 영화에서 본 장면은 여행의 동력이 된다. 쿠알로아 랜치 (Kualoa Ranch)에 대한 관심은 대체로 <쥬라기 공원> <쥬만지> <첫 키스만 50번째>에서 시작되었을 확률이 높다. 용암이 그대로 굳어진 듯한 기묘한 산 앞에서 모든 모험이 시작되지 않았던가. 할리우드의 공식을 따를 것 같은 이곳은 사실 하와이에서 자연을 깊숙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490만 평에 달하는 쿠알로아 랜치를 둘러보는 방법은 집라인, 랩터 등 여럿인데 차량 대신 승마를 선택한 건 도시처럼 스치지 않고 들여다보고 싶어서였다. 육안으로 두 뼘 남짓한 트레일을 따라 2시간 동안 섬을 돌아봤다. 나와 함께한 말은 롤렉스라는 이름을 가진, 걸음마다 갈기가 근사하게 날리는 말이었다. 승마 경험이 없다면 무서울 수 있지만, 우리를 태우는 말이 명마라서 괜찮다. 롤렉스는 신호를 주지 않아도 굽이굽이 산길을 잘도 오르내렸다. 끝없는 초원 이후 펼쳐지는 바다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승마를 한다는 건 바닥의 질감, 공기의 온도, 바람의 촉감을 모두 느끼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말을 타고 영화 촬영지, 전쟁 요새 등을 누볐다.

쿠알로아 랜치는 토착 식물을 보존하고 전통 농법과 어업을 이어가는 등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이어간다. 알로하 아이나 투어(Aloha ’Āina Tour)는 그 정신을 몸소 경험할 수 있는 선택이다. 하와이에서는 과거 타로(토란)를 우리의 쌀처럼 주식으로 먹었는데, 이곳에서는 직사각형 진흙 연못에서 타로를 키우는 원주민의 농법을 따른다. 수확한 타로는 지역 사회로 보내진다. 물고기로 물을 정화할 정도로 자연을 향한 지혜만 가득한 이곳에서 달팽이 알을 걷어내고 노랗게 변한 이파리를 뽑았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진흙밭에서 자처한 노동으로 얻은 건 자연을 향한 책임감이었다. 투어는 파머스 마켓으로 이어졌는데 생산 과정에 참여한 후 만나는 카카오, 달걀, 고기 등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쿠알로아 랜치는 전통 양어장을 운영하며 새우와 굴 양식도 하고 있다. 굴 양식으로 여과되는 물의 총량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자연이 허락한 것들의 경이로움을 떠올렸다.

여행지에서 숙소는 그 자체로 목적지가 되기도 한다. 오아후의 서부 해안에 있는 포시즌스 리조트 오아후 앳 코올리나(Four Seasons Resort O’ahu at Ko Olina)는 그 조건에 부합한다. 거대한 잔에 담긴 트로피컬 칵테일 마시기, 수영장 옮겨 다니며 책 읽기, 바닷가에서 스노클링 하기, 레이 만들기나 하와이 전통 공예 클래스 듣기 등 하와이를 기다리며 상상하던 것들을 하루에 딱 하나씩만 하며 보내고 싶었던 곳이다. 포시즌스는 세일링 & 스노클링 프로그램 카아우모아나(Ka’aumoana)를 운영하는데, 카누를 타고 바다를 한참 누볐다. 카누 양옆에 이어진 그물에 앉아 바람에 펄럭이는 돛의 소리를 들으면 눈이 절로 감겼다. 다채로운 포시즌스의 수영장은 이곳을 선택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특히 4년 전 리노베이션을 마친 인피니티 풀은 낭만과 휴식이란 단어를 동시에 떠올리는 곳이었다. 모두 저녁을 먹으러 가고 한낮의 열기가 옅어지는 시간, 비치 체어는 석양을 기다리기에 정말 좋았다. 수영장에서 슬쩍 벗어나 작은 문을 열고 나가면 펼쳐지는 퍼플릭 비치는 나만 알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하와이는 여전히 절대다수와도 어울릴 수 있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곳이다.

포시즌즈 호텔 시그니처 레스토랑 미나스 피시 하우스(Mina’s Fish House)에서는 피시 소믈리에가 생선의 질감에 따라 어울리는 조리법과 소스를 추천한다. 그는 우리 식탁에 들러 잿방어와 참돔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려줬다. 말 그대로 ‘오션투테이블’이었다. 하와이에서는 밥 먹는 행위, 즐기는 행위 모두 자연과 이어진다.

소설가 김영하는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의 경험은 켜켜이 쌓여 일종의 숙성 과정을 거치며 발효한다”고 적었다. 후텁지근한 서울로 돌아와 하와이를 더듬어가며 글을 쓰는 지금, 낙원으로 소원하던 하와이에 건강한 휴식의 경험이 쌓여 조금 다른 세계가 되었음을 느낀다. 기억이 희미해지도록 시간이 지난 후에는 한낮에 불쑥 무지개 뜨는 그곳을 그리워하며 조금 따뜻해진 기분을 느낄 것도 같다. (VK)

에디터
조소현
포토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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