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주얼리

미래 인간의 주얼리

2022.09.29

by 김나랑

    미래 인간의 주얼리

    기호품보다 생필품에 가까워지는 스마트워치, 스트레스 지수를 알려주는 반지, 와이어리스 이어폰 기능의 귀고리. 미래 인간의 주얼리는 아름답기만 해선 부족할까?

    톱과 바지는 베르사체(Versace), 팔찌는 티파니(Tiffany&Co.).

    지금 가장 많이 팔리는 손목시계는 스마트워치다. 2019년 스위스 시계 전체 출하량이 2,100만 개일 때 애플 워치의 출하량은 3,070만 개였다. 그를 넘어 2020년 세계 스마트워치 출하량은 1억2,750만 개에 달한다. 수치상으로는 스마트워치가 전통적인 손목시계를 넘어 세계인의 손목에 채워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치는 늘 어느 정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애플 워치의 출하량이 아무리 늘어도 롤렉스 매장에는 재고가 없고, IT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무형의 세계에서 상여금이 생기면 판교에 있는 백화점으로 가서 고가의 기계식 시계를 산다. 스마트워치와 전통 손목시계는 기묘한 방식으로 공존하는 중이다.

    애플 워치 자체가 디지털 디바이스 위에 손목시계의 문법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사례다. 대표적인 증거가 사이즈 표기다. 애플은 전통적으로 제품 이름도 직관적으로 붙였다. 아이폰, 아이폰 프로 맥스 같은 식이지 아이폰 6인치, 아이폰 6.5인치 같은 식으로 붙이지 않았다. 애플이 유일하게 숫자로 사이즈를 알리는 제품이 애플 워치다. 41mm, 45mm. 스마트워치는 인터페이스에 조그 다이얼이 없어도 된다. 애플은 굳이 오른쪽 상단에 조그 다이얼을 달고 나서 ‘디지털 크라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손목시계 조작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한 디테일이다.

    디자인 면에서 애플 워치의 혁신은 사각형 그 자체다. 손목시계는 왜 원형일까? 12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는 방법 중 기계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원형 다이얼이었기 때문이다. 다이얼 중앙에 시침, 분침, 초침을 모아놓고 돌게 하는 방식은 기계식 시계의 기본적 레이아웃이었다. 이 레이아웃이 중세 교회의 벽시계와 탁상시계, 회중시계를 거쳐 손목시계 크기로 작아졌다. 애플 워치의 다이얼은 전통을 따를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 사각 스크린을 축소시켜 쓰면 모니터에 정보를 띄울 때도 더 효과적이다. ‘이게 혁신인가’ 싶을지 몰라도 인간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건 아주 큰 혁신이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우수한 기술력으로도 고정관념을 뛰어넘지 못해 갤럭시 워치를 원형 스크린으로 만들고 있다. 스마트워치에서 그럴 필요는 전혀 없는데.

    애플 워치는 줄 교환 방식도 새롭게 했다. 손목시계의 줄 교환 방식 역시 약 100년 동안 같았다. 케이스 위아래로 브레이슬릿을 고정하는 러그가 있다. 그 러그에 스프링 바를 매달아 스트랩이나 브레이슬릿을 고정한다. 애플은 이 방식을 바꿨다. 케이스에 홈을 내어 러그를 만들고 그 홈에 스트랩을 가로로 끼운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손목시계 역사에 길이 남을 혁신이라 본다. 실제로 애플 워치가 쉽게 교환 가능한 스트랩 시스템을 만든 후 대부분의 스위스 고가 시계 브랜드가 ‘퀵 체인지’ 시스템을 적용했다. 애플 워치에도 한계는 있다. 애플 워치의 근본적인 한계는 디바이스가 만들어내는 콘텐츠의 양과 질이다. 디바이스의 영속은 그 디바이스로 무엇을 생산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PC가 성공한 이유는 그걸로 생산할 수 있는 데이터 타입이 무한정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전 지구적으로 성공한 계기는 애플 아이폰 4이며, 이 디바이스의 가장 큰 장점은 당시 가장 성능이 좋은 카메라였다. 그런데 애플 워치는 스크린 크기가 작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없다. 장기적으로는 이 요소가 스마트워치의 한계가 될 수 있다.

    톱과 드레스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부츠는 꾸레주(Courrèges), 귀고리는 패트리시아 본 무슐린(Patricia Von Musulin).

    스마트워치를 포함한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긍정적 가능성도 있다. 스마트워치만 만들 수 있는 콘텐츠를 생각하면 된다. 사용자의 건강 정보다. 스마트워치는 손목에 채우니까 센서를 달아두면 매일의 심박수나 체온 등 건강지표를 스마트워치로 읽어 들인다. 그게 스마트폰과 연결되어 서버에 저장된다면 스마트워치는 기호품을 뛰어넘는 생필품이 될 수 있다. 스마트워치의 가장 긍정적인 미래 가능성이다.

    건강 정보는 손목에만 있는 게 아니다. 맥박은 몸의 다른 곳에서도 뛴다. 스마트 반지는 이런 과학적 지표로부터 출발한 스마트 디바이스이자 스마트 주얼리의 미래 중 하나다. 손가락에 센서를 붙여도 체온, 맥박, 운동량과 운동 방향 등의 정보를 알 수 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업체는 핀란드의 오우라(Oura)다. 이들은 2013년 시작해 2021년 3세대 모델을 냈을 정도로 자리 잡는 중이다. 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겉으로 봐서는 스마트 기기라는 티가 안 난다는 점이다. 색도 3세대 기준 검정, 스텔스(무광 검정), 실버, 골드 등 일반 액세서리 색이다. 생김새도 그렇다. 다만 보통 사람이라면 이니셜 같은 걸 새길 내부에 적외선 맥박 측정기, 3D 가속 센서, 자이로스코프, 체온 측정 센서 등이 장착된다. 이 모든 걸 구동하는 배터리를 포함한 전체 무게는 6g에 불과하고 배터리 수명은 최대 7일에 달한다.

    오우라의 활용성은 무궁무진하다. 건강 디바이스니까. 오우라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맥박을 재는 건 쉽지 않고 체온 역시 스트레스와 질병을 알려주는 지표인데, 오우라 스마트 반지를 차면 이런 정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오우라는 일반인뿐 아니라 프로 운동선수에게도 쓰인다. 선수들의 퍼포먼스와 관련된 각종 지표를 오우라를 통해 전달한다. 미국의 여자 프로 농구 리그인 WNBA, 이종격투기 리그 UFC, 자동차 레이스 대회인 나스카 등이 오우라를 프로 레벨 선수들에게 쓰고 있다. 반지를 보면 프로 운동선수에게 잘 어울리겠다 싶기도 하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오우라의 생김새가 못생기지는 않았어도 ‘와우! 저 반지 뭐야? 멋있는데’ 할 것처럼 생기진 않았다. 반지치고는 조금 두꺼워서 헤어밴드를 손가락에 감은 것처럼 보인다.

    이럴 때 패션 하우스와의 협업이 돌파구가 된다. 애플의 라이벌인 구글이 다양한 하드웨어 제조사와 협업해 스마트워치를 내듯이. 루이 비통이나 태그호이어가 출시하는 스마트워치는 모두 구글 OS를 탑재했다. 오우라는 구찌와 협업한 스마트 반지를 출시했다. 오우라와 구찌가 만난 건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요즘 패션 브랜드는 그게 뭐든 남다른 협업을 즐겨 하고, 신생 스마트 주얼리 업체는 누구와 함께든 자신들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일을 계속해나가야 할 것이다. 실제로 보통 오우라 스마트 반지가 299~399달러인 반면에 구찌와 오우라의 스마트 반지는 950달러다. 그 결과 반지 곳곳과 충전기에도 구찌의 로고가 붙어 있다.

    이런 스마트 귀금속 사례는 전 세계에서 계속 나타난다. 독일 뮌헨의 브랜드 노바(Nova)는 와이어리스 이어폰을 귀고리에 이식한 사례다. 생긴 건 완전히 귀고리고, 기능은 완전히 와이어리스 이어폰이다. 디자인이 상당히 귀고리에 가까워진 만큼 가격도 이어폰보다 귀금속 쪽에 더 가깝다. 골드와 실버 버전 두 가지로 출시되는데, 골드는 695유로, 실버는 595유로. 한화로는 100만원에 육박한다.

    이런 사례를 보고 어떤 마음이 드시는지? 사고 싶으신지, 큰 관심이 없으신지? 별 관심이 없다면 여러분이 시장의 평균적인 손님이다. 사실 스마트 귀금속은 계속 그럴듯하게 시작하다 렌더링 단계까지만 만든 후 현실 세계에 출시되지 못하거나 출시되어도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스마트 주얼리 사례를 찾아보면 4~5년 전 출시되었는데 이제는 자취를 찾을 수 없는 것들이 태반이다. 2013년 시작해 3세대까지 나오는 오우라는 굉장히 희귀한 경우이고, 노바 역시 2022년 만들어진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응원은 하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엄밀히 말해 스마트 웨어러블 디바이스 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은 전 세계에 애플 하나뿐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스마트 기기와 귀금속은 인간의 전혀 다른 영역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인간의 합리성을 설득한다. 스마트폰과 연동되고 건강 정보를 알려준다면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필요한 물건이다. 귀금속은 반대다. 귀금속은 인간의 비합리성을 유혹한다. 고가의 손목시계에는 분명 나름의 아름다움과 고집이 있다. 그와 별개로 모든 기계식 손목시계 기술은 지난 세기의 구식 기술이다. 이 기술은 기술 자체가 귀금속 수준으로 정밀하게 세공되어 사람들의 비합리적 감성을 자극하며 오늘날의 귀금속이 되었다. 그러니 이 원고를 예측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면 앞으로도 스마트 귀금속의 시대는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 애플마저도 애플 워치를 7세대나 만들면서 금으로 된 애플 워치는 딱 한 번(1세대)만 만들었다. (VK)

      박찬용(칼럼니스트)
      포토그래퍼
      Elizaveta Porodina
      스타일리스트
      Gabriella Karefa-Johnson
      모델
      Bella Had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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