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화보

절대 후각, 우리 시대 최고의 조향사 6인

2022.10.19

절대 후각, 우리 시대 최고의 조향사 6인

이들 덕분에 세상은 더 향긋하다. 절대 후각을 지닌 우리 시대 최고의 ‘코’ 6인과 나눈 대화.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향에는 색과 감정, 무한한 상상력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향기를 창조하는 조향사의 세계는 더없이 신비롭다. 여행지에서 만끽한 공기, 사랑하는 사람과의 낭만적인 한때, 삶을 풍요롭게 한 일상의 한 조각, 심지어 미지의 영역에 대한 심오한 구상까지. 누구나 한 번쯤 삶에서 느껴봤을 법한 순간순간의 기분과 감정을 조향사는 향기로 표현한다. 후각을 통해 그들의 사적인 추억과 감정이 서서히 스미는 그 공감각적 과정은 마법과 같다.

팬데믹 이후 향수 세계는 말 그대로 황금기다. 수많은 가을 신제품이 론칭을 앞둔 지금, <보그>는 향수 그 자체보다 후각만으로 특정 경험을 공유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조향사들을 만났다. 우아한 향의 표본 ‘메종 프란시스 커정’, 소위 ‘힙스터’들에게 통하는 감성을 지닌 브루클린 기반의 ‘디에스앤더가’, 편안하고 따뜻한 감성의 ‘조 러브스’, 영국 왕실의 헤리티지를 지닌 ‘펜할리곤스’, 서정적이면서도 복잡 미묘한 향이 매력적인 ‘이솝’, 올해 한국에 상륙한 향수 편집 숍 리퀴드 퍼퓸바(Liquides Perfume Bar)의 다크호스 ‘도르세’… 6개 향 브랜드의 핵심 ‘코’들과 나눈 대화.

FRANCIS KURKDJIAN
Masion Francis Kurkdjian

바쁜 나날을 보낼 것 같습니다. 여러 향수를 동시다발적으로 작업하는 편인가요?

물론입니다. 메종 프란시스 커정을 이끌고 있지만, 향수와 관련된 개인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다른 브랜드의 조향사로도 종종 일하죠. 패션 비즈니스를 예로 들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한 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여러 브랜드 의상을 디자인합니다. 칼 라거펠트가 본인의 브랜드를 가지면서 샤넬,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기도 했죠.

다양한 브랜드 그리고 당신 이름을 건 브랜드와 일할 때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하군요.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조향사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며, CEO를 맡은 마크 차야(Marc Chaya)와 함께 일합니다. 따라서 향기를 창조하는 것은 물론 캠페인 비주얼, 패키징, 이벤트, 비주얼 머천다이징, 고객 경험까지 우리 향수의 모든 표현 수단을 지휘하죠. A부터 Z까지. 이곳에선 제 영감이 핵심입니다. 진정으로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비전을 제공합니다. 사내 예술 창작자인 동시에 조향사가 되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만듭니다. 반면에 다른 브랜드를 위해 조향할 땐 특정 가이드와 제약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잡지처럼 마감일은 기본, 정해진 예산과 목표 고객을 대상으로 모든 작업을 진행하죠.

파리와 뉴욕을 오가는 조향사입니다. 두 도시는 당신에게 어떤 영감을 주나요?

고향인 파리는 성장하고, 일하고, 항상 돌아가게 되는 도시입니다. 제 영감과 조향 세계의 정수 그 자체죠. 자주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지만, 파리의 그 이질적인 인구, 빛, 기념물의 그늘, 옥상의 회색과 황금 첨탑이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폭발은 결국 저를 그 도시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파리의 문화생활을 사랑합니다. 박물관과 고전적이고 현대적인 작품이 공존하는 극장과 건축물… 메종 프란시스 커정 향수병의 회색 아연과 금색 보틀 캡 역시 파리의 골동품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 작품에 담긴 예술가의 자랑스러운 서명처럼 하우스 모노그램을 추가했죠. 그런가 하면 뉴욕은 장 폴 고티에를 위해 조향한 ‘르 말(Le Male)’이라는 향수 공개 직후 이사한 도시입니다. 정말이지 기운이 엄청난 도시예요. 처음 도착했을 때 그 스릴 넘치는 에너지에 말 그대로 강타당한 기분이었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러고 보면 ‘르 말’은 조향사 커리어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명작이 탄생했고요. 그 역사를 돌이켜봤을 때 ‘향수’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모든 향수는 제게 새로운 이야기이자 또 다른 도전입니다. 30여 년 동안 제가 만든 모든 향수는 모두 다르고, 제각기 다른 감정을 전달하죠. 모두 각각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향수이기에 매번 독창적인 프로젝트를 선보여야 합니다. 이 세계에서 가보지 않은 길을 탐구하고, 이전에 행한 일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제 사명 중 일부라고 믿습니다. 새로운 기회와 신선한 아이디어, 경계를 허무는 것들을 추구하죠.

조향사가 아닌 당신을 상상하긴 어렵군요.

진정한 길을 찾을 수 있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이 직업 외에 다른 일을 하는 저를 스스로 상상하기조차 어렵죠. 열네 살에 조향사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당시 굉장히 희귀한 직업이었습니다. 그 결정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향수는 곧 자신을 예술적으로나 창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만드니까요. 조향사가 되지 않았다면, 분명 다른 종류의 이야기꾼이 되었겠죠?

팬데믹은 향수의 호황기와 더불어 향기의 ‘디지털화’에 속도를 붙였습니다.

분명 오늘날 소셜 미디어의 역할과 그 플랫폼이 주는 파급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 작업에 크게 트렌드를 반영하는 편은 아닙니다. 저는 창조적 비전을 따르며 제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하니까요. 유행은 창의력을 씻어내고, 모두 똑같은 일을 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찰나처럼 빠르기도 하고. 디지털의 역할을 무시할 순 없지만 소통이 진정성 있고 솔직해야만 효과적이라 믿습니다. 향수는 스토리가 있고, 사람들을 감성적인 여정으로 데려가며, 꿈꾸게 하는 수단입니다. 제 향수를 쓰는 사람들이 특별함을 느끼고 뛰어난 결과물을 옷처럼 입었으면 좋겠습니다.

동의해요. 온라인 쇼핑이나 디지털 세상에만 존재하는 향수는 그 여정이 일부 생략되는 면이 있죠.

이미 익숙한 물건이 아닌 한 온라인 쇼핑을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 향수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글쎄요. 시도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향수는 매우 개인적 영역이라 그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되는군요. 지속 가능성 역시 향수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입니다. 환경을 염두에 두고 제품과 마케팅을 생각하는 것은 브랜드가 가진 책임의 일부입니다. 론칭 초기부터 이 문제를 고려해왔습니다. 가능한 한 프랑스 현지에서 생산하며, 브랜드의 공급사 역시 환경, 무역 협정과 법률을 준수하도록 엄격히 유지합니다. 검증된 원료를 사용하고, 포장재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죠. 지속 가능성과 제품의 품질, 어느 하나 균형을 잃지 않도록 늘 고민합니다.

이번 가을 ‘724’라는 이름의 신작을 공개했습니다. 아주 산뜻한 향이더군요.

전 세계 도시의 다양성을 기념하는 향수입니다. 상쾌함과 모던함이 균형을 이루는 향수로, 매우 안정적인 잔향을 지녔습니다. 계절과 더없이 어울리는 포근함을 남기죠.

아이디어는 어떻게 출발했나요?

조향사로 일하기 시작할 즈음에 살았던 뉴욕의 기억은 제 영감의 일부입니다. 매일 이른 아침 거리를 걸었고, 세탁소를 지나갈 때마다 활발한 공기 사이로 방출되던 두꺼운 하얀 증기를 보곤 했습니다. 그 편안한 광경을 보면 기분이 늘 좋아졌죠. 당시에 위안이 되었던 감각을 향기로 재해석하고 싶었고, 주로 하얀 꽃을 활용해 그 느낌을 표현했습니다. 뉴욕에서 첫 아이디어가 출발했지만, 창의적인 기운과 모든 것이 가능한 모든 대도시가 공통적으로 간직하는 활기에 관한 향수죠.

언제 뿌리는 것을 추천하나요?

적당히 시원한 공기가 매력적인 지금, 대도시 한가운데 있을 때 계속 맡고 싶은 향입니다.

당신은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향수를 ‘향기 옷장’이라고 표현하죠. ‘724’는 데님처럼 푸른 보틀이 돋보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기분과 성격, 그날의 날씨 등 느낌에 따라 자유롭게 향수를 사용합니다. 그리하여 ‘향수 옷장’이라고 표현하게 됐죠. 이번 패키지를 디자인하며 ‘어반 블루(Urban Blue)’라는 이름의 특별한 파란색을 창조했습니다. 도시 생활의 두 가지 요소인 ‘시멘트 그레이’와 ‘데님 블루’를 혼합해 만든 거죠. 데님은 현대 생활을 상징하는 가장 보편적인 옷입니다. ‘724’ 역시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그런 향이죠.

당신이 이 계절에 즐기는 향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평소에 저는 향수를 자주 뿌리지 않습니다. 그래야만 제 코에 휴식을 줄 수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을 시간이 생기죠. 지금은 작업 중인 향수를 뿌리고 있습니다. 어떤 향인지는 아직 공개할 수 없군요.

DAVID SETH MOLTZ
D.S. & Durga

브랜드명 그대로 당신(D.S.)과 아내이자 비즈니스 파트너 카비 더가(Kavi Durga)의 합작입니다. 어떤 시너지가 발휘되나요?

우리는 ‘뉴요커’의 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죠.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아이디어가 시작됐고, 서로 다른 배경에서 성장하며 비롯된 이국적인 흔적이 우리가 만든 향수에서 엿보일 겁니다. ‘로즈 아틀란틱(Rose Atlantic)’ ‘솔트 마쉬 로즈 (Salt Marsh Rose)’를 맡으면 제 고향 뉴잉글랜드가, ‘라디오 봄베이(Radio Bombay)’ ‘더가(Durga)’ ‘디에스(D.S.)’에선 카비가 태어난 인도의 색이 묻어나죠.

당신은 뮤지션이기도 하죠. 조향사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요?

처음에는 시트러스를 증류시키고, 허브를 담그고,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의 향기를 직접 만드는 것에 매료됐습니다. 친구들을 위한 선물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고요. 그러다 보니 향기라는 언어를 통해 세상을 새로운 방법으로 묘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군요. 음악과 향기, 두 분야 모두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을 어딘가로 데려가죠. 게다가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향지를 맡자마자 눈을 번뜩이는 사람을 본 적 있을 겁니다.

향기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집 뒤편에 숲이 자리한 바닷가에서 자랐습니다. 기억 속 최초의 향기는 바다의 냄새와 간발의 차이로 이어지는 소나무 숲의 향이죠.

디에스앤더가를 전형적인 ‘미국식’ 브랜드라고 표현한 적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미국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죠. 카비와 전 뉴욕의 어느 거리에서 만났고, 향수나 경영에 대한 전문 트레이닝 없이 이 브랜드를 시작했습니다. 건축가와 뮤지션이 드라마틱한 모험을 택한 거죠. 이토록 스위치 바꾸듯 전환되는 자유라니! 정말 ‘미국적’이지 않나요? 알다시피 향기 비즈니스를 오랫동안 이끌어온 주축은 프랑스입니다. 몇몇 브랜드가 뉴저지에서 탄생했음에도 프랑스와 연관 짓고자 노력하는 걸 자주 목격했어요. ‘도대체 왜?’라는 질문밖에 떠오르지 않더군요. 모든 문화는 향기로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것들이 있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브랜드만의 미학은 무엇일까요?

사려 깊음, 힙함, 즐거움, 균형.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얻을 것 같군요.

향기를 곧 음악, 문화, 시를 넘어 제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강조하는 하나의 매개로 여깁니다. 하나의 향료보다 언젠가 보았던 해변의 풍경, 한밤중 런던에서 했던 산책 등 전체 컨셉에 집중하죠. 조개 향이 나는 캔들을 만드는 것처럼.

요즘 관심사는요?

알고 보면 굉장한 역사 마니아입니다. 이번 여름에는 다크 에이지, 비잔틴, 로마, 아랍과 중세 시대 역사에 관한 책을 섭렵했죠.

신제품 ‘스윗 두 낫띵(Sweet Do Nothing)’은 평온하고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이름입니다.

휴가가 끝나고 학교와 회사,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바쁜 시즌입니다. 동시에 명절과 겨울 준비로 이어지는 광란의 시기죠. 그 속에서 한숨 돌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엘 코스미코(El Cosmico)’에 이어 텍사스를 모티브로 한 두 번째 향수입니다.

텍사스는 정말 광활합니다.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고대 문화, 외계인과 연결된 듯한 신비감마저 들죠. 대학원 시절 룸메이트와 함께 조지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대륙을 가로질러 드라이브를 했습니다. 한여름의 텍사스 사막 중턱에서 오랫동안 구겨졌던 몸을 스트레칭하기 위해 잠시 멈춘 순간 향기가 났어요. 진입로에는 크레오소트(목재가 썩지 않게 하는 보존재)를 흠뻑 적신 나무 전신주, 건조한 바람의 날카로운 냄새, 사막에서 자란 푸른 초목과 꽃의 향기까지. ‘스윗 두 낫띵’은 그 모든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부드럽고, 알싸하고, 이국적이고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죠.

핵심 향료가 있다면요?

마지막에 이어지는 크레오소트의 향입니다. 사막 비 냄새가 나는, 정말 중독적인 향기죠.

총 28곡, 2시간가량의 플레이리스트를 함께 공개했습니다. 당신의 선곡인가요?

물론입니다. 저는 뮤지션이기도 하고, 하나의 규범을 다른 형태로 바꾸는 일에 익숙함을 느끼죠. ‘스윗 두 낫띵’의 플레이리스트엔 긴장을 풀고, 여유롭게 거니는 텍사스 서부를 담았습니다.

향기를 맡으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모든 광활한 것과 연결된 듯 느껴지는 하늘 아래, 해먹에 누워 이 인터뷰를 읽고 있을 당신.

생각만 해도 좋군요. 최근에도 텍사스에 다녀온 적이 있나요?

텍사스주 마파 사막에 있는 ‘호텔 엘 코스미코(Hotel El Cosmico)’는 주변과 단절돼 정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1950년대 집시 스타일의 원뿔형 텐트, 드넓은 초원과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 은하수 등의 풍경이 정말로 인상적이죠. 세 번이나 방문한 곳이지만 안타깝게도 팬데믹 이후로는 가보지 못했어요. 굉장히 규모가 작고 멀리 있기 때문에 다른 휴가지보다 공을 많이 들여야 갈 수 있죠.

개인적으로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입니다. 당신은 이맘때 어떤 향기를 즐기나요?

건조하고 스모키한 향. ‘보우메이커스(Bowmakers)’ 향수와 가장 가깝죠.

단답형 질문입니다. 10월에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는?

매사추세츠에 있는 ‘세일럼(Salem)’. 마녀들의 화려한 코스튬과 추운 뉴잉글랜드의 공기, 호박도 많으니 할로윈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습니다.

가을과 가장 어울리는 음악을 추천한다면?

세 가지 향수의 플레이리스트. 출퇴근 시간에는 ‘스윗 두 낫띵’ , 시간이 느리게 가는 오후에는 ‘포터블 파이어플레이스(Portable Fireplace)’를, 신이 나는 밤에는 ‘아이 돈 노 왓(I Don’t Know What)’.

이 계절에 가장 즐기는 패션은?

스웨터와 트위드.

JO MALONE CBE
Jo Loves

<보그 코리아>와 2년 만의 만남이군요!

정말 반가워요. 그러고 보니 2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빠르군요. 그동안은 조 러브스에 집중하며 브랜드의 성장에 집중했거든요.

향에 조예가 깊은 집안에서 자랐을 것 같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첫 향이 부모님 품에서 맡던 향기라, 어느 정도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장 파투(Jean Patou)의 ‘조이(Joy)’, 카르벵의 ‘마 그리프(Ma Griffe)’, 워스(Worth)의 ‘쥬 르비엥(Je Reviens)’을 자주 뿌리셨어요. 당시 ‘쥬 르비엥’은 파란 병 안에 담긴 강렬한 향의 향수였고, 녹색 병의 ‘마 그리프’는 훨씬 세련되고 신선한 향기였죠. 어머니가 뿌리고 나면 집에 며칠간 남아 있던, 활짝 핀 하얀 꽃의 향기가 떠오릅니다. 아버지는 디올 ‘오 소바쥬(Eau Sauvage)’와 겔랑 ‘베티버(Vetiver)’를 즐겼어요. 우리 가족은 작은 집에 살았지만, 오감을 자극하는 다양한 향을 품은 곳이어서 눈을 감으면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마주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팬데믹은 향수 비즈니스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죠. 향에 대한 생각이 변화한 부분이 있나요?

개인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집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벽을 새롭게 세워 침실과 식당, 피트니스 룸, 사무실 공간을 철저히 분류했죠. 공간을 나눌수록 그와 어우러지는 향기가 필요하더군요. 예를 들어 피트니스 룸은 신선한 프루티 계열을, 사무실은 깨끗한 파촐리나 핑크 베티버 향으로 채웠습니다. 메이크업도 바르는 부위와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색과 질감이 조금씩 천차만별인 것처럼, 향도 제 삶의 컬러와 텍스처라고 볼 수 있죠.

침실의 향도 궁금해지는군요.

오렌지 꽃나무가 피어나는 듯한 시트러스와 네롤리 향입니다.

당신은 후각으로 암 환자를 판별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후각의 힘은 원시적이고, 단련할수록 그 힘이 커집니다. 제 남편은 급성 신부전을 앓고 있는데, 병을 진단받고 나서 이전에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던 이끼 향을 맡았어요. 의료 탐지견 관련 자선단체와 함께 일하는데,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래서 개들이 남편 목을 킁킁거린 거구나!”라고 누군가 말하더군요.

흥미로운 사실이군요. 한국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에요.

이 개들은 당뇨병과 뇌전증 같은 병을 발견하도록 훈련받았어요. 참고로 저는 조 러브스의 향수 ‘포멜로’라는 이름을 붙인 한 아이를 후원 중이죠.

최근 새로운 시도가 있나요?

유행을 따르는 데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오롯이 유행을 창조하는 것에만 몰두하죠. 상상력을 갖고 파고들다 보면 전에 없던 것이 새롭게 등장하더군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 조 러브스의 베스트셀러인 ‘페인트 브러쉬 컬렉션’입니다. 젤 타입 향료를 액세서리 같은 케이스에 담아, 피부 위에 쓸어 향을 입히는 방식이에요. 향기로 자신을 ‘페인팅’하는 아티스틱한 경험을 누구에게나 제공하고 싶었죠.

신제품을 두 개나 공개했습니다. 먼저 ‘EDT 스모크드 플럼 앤 레더’의 탄생부터 이야기해보죠.

제가 키우는 말 게리, 조시와 함께 카우보이처럼 몬태나에서 보내던 휴가에서 영감을 얻은 향입니다. 모험, 단순함, 강렬하고 열정적인 감정이 담겨 있죠. 말안장의 가죽 냄새와 들판의 세이지, 통나무 캠프파이어와 플럼주 등 제 기억의 퍼즐이 향에 전부 존재합니다. 각 조각은 전체 그림을 구성하는 노트가 되는 거죠. 바쁜 세상과 단절되던 그 순간이요.

디지털 세상으로부터 단절을 말하나요?

저는 어떤 테크 제품에도 애착을 갖지 않습니다. 컴퓨터도 없죠. 그래서 제 상상력을 온전히 이끌어내고 발휘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아요.

반면에 ‘EDT 샤드 오브 시더 앤 레드 타임’은 따뜻한 향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을과 더없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사랑과 로맨스의 소중한 순간을 담은 향이기 때문이죠. 남편과 프랑스 샤토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넓은 들판에 앉아 남편과 소풍을 즐기던, 제가 삶을 가장 사랑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낸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향이에요. 매혹적이면서도 따스한 계열의 우드 노트로 완성했죠.

이쯤 되니 당신에게 가을 여행지를 추천받고 싶군요.

10월에서 11월에는 보통 중동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뜨거운 태양과 더없이 이국적인 풍경을 만끽할 수 있으니까요.

두 가지 향을 각각 작품에 비유해본다면?

‘EDT 스모크드 플럼 앤 레더’는 로렌초 퀸(Lorenzo Quinn)의 아름다운 청동 조각품, ‘EDT 샤드 오브 시더 앤 레드 타임’은 추상적인 예술의 상징인 피카소.

지금 이 계절, 향수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샤드 오브 시더 앤 레드 타임’을 ‘핑크 베티버’와 레이어드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몸에서 가장 온기가 많이 느껴지는 부위에 각각의 향을 더해보세요.

당신은 젊은 여성의 멘토 같은 존재입니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각각의 향료가 모여 또 다른 향을 창조해내듯, 모든 것에는 큰 그림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뭔가를 선택할 때 렌즈를 통해 이 순간을 클로즈업한 것처럼 크고 강렬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삶은 드넓은 경치를 즐기는 것과 같습니다. 순간순간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울 방문 소식이 들리더군요.

신제품을 직접 선보이기 위해 11월에 찾아가기로 했어요.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들과 향기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라 무척 설렙니다.

그때 또 만났으면 좋겠군요.

그럼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NATALIE GRACIA-CETTO
Penhaligon’s

향수의 낙원 그라스(Grasse) 출신입니다. 당신의 조향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10대 시절을 조향사의 인큐베이터인 그라스에서 보냈습니다. 그곳은 어떤 마을에 가도 향수에 대한 문화유산이 가득하죠. 그저 조향사라는 직업을 막연히 꿈꾸게 하는 것을 넘어, 구체적이고 명확한 아이디어와 방향을 제시했어요. 자연 그대로를 즐기고 보존해가며 향수를 만들어내는 방법 또한 배웠습니다. 향수 세계에 더없이 몰입할 수 있는 배경이었죠.

향에 대한 첫 기억도 그곳에 있겠군요.

그보다 더 어릴 때입니다. 가족과 함께 이집트에 살았죠. 아버지의 차량 백미러에 액세서리처럼 걸려 있던, ‘르 콜리에 드 자스민(Le Collier de Jasmin)’이라는 이름의 향이었어요. 매일 아침 아버지의 차를 타고 등교하며 그 향을 맡았죠.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향기지만 그 강렬하던 향취는 기억에 아직 남아 있습니다.

끌로에, 버버리, 코치, 엑스니힐로 등 다양한 브랜드와 작업했습니다. 펜할리곤스 향수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알다시피 펜할리곤스는 영국 왕실로부터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향수 브랜드입니다. 품위 있는 역사와 그에 걸맞은 제품을 선보여온 럭셔리 브랜드와 작업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동시에, 귀중한 원료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죠.

주목하는 향수 트렌드가 있다면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성별 유동성(Gender Fluidity)’입니다. 니치 향수 브랜드로부터 시작된 움직임은 기존 프레스티지 브랜드의 향기 창조 방식에 나비효과를 일으키죠. 향수 분야를 넘어 진정한 사회적 흐름이기도 하고요.

펜할리곤스와 협업한 첫 야심작, ‘레거시 오브 페트라(Legacy of Petra)’가 10월에 공개됩니다.

1년 동안 즐겁게 작업한 향수입니다. 어릴 때 살았던 이집트처럼 따뜻한 사막과 바람, 황금빛 모래를 연상시키는 향이죠.

이번 향수를 통해 당신은 기원전 미스터리한 도시를 재정의했습니다. 향기로 구현하기까지 그 여정이 궁금하군요.

향수 네이밍의 ‘페트라’는 기원전 400년경과 서기 106년 사이, 중동의 많은 곳을 지배할 정도로 막강한 도시로 지금은 가장 유명한 고고학 유적지입니다. 나바테아 문명의 근거지이자 건설만 200년이 걸렸지만 어느 날 마을 사람 모두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도시를 버리고 사라졌죠. 아직까지도 도시 대부분이 제대로 발굴되지 않았고, 나바테아인들이 그토록 경이로운 장소를 어떻게 잘 숨길 수 있었는지에 대한 비밀이 불가사의하게 남아 있습니다. 험난한 계곡과 협곡, 제국 번창의 중심지였던 만큼 향료길, 비단길, 향신료길과 같은 교역로, 따뜻한 기후 등으로부터 영감을 얻었어요. 그곳이 주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독특한 향료를 활용했고요.

향기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준다면요?

레진 계열의 ‘몰약(Myrrh)’이라는 원료가 아이디어를 완성하는 핵심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종교 행사와 방부제로 활용하기 위해 태운 최초의 향료 중 하나죠. 아라비아가 원산지인 나무의 수지로부터 유래합니다. 나무껍질을 절개해 눈물방울을 만들고, 굳어진 눈물방울의 증기를 증류하면 매우 진하면서도 면밀한 향기를 지닌 에센셜 오일이 탄생합니다. 예로부터 몰약이 섞인 향을 피우면 그 연기가 인간계와 천국 사이를 통과한다고 믿었어요. ‘Per Fumum(연기를 통해)’, 오늘날 향수라는 단어가 그 이름을 갖게 된 것 또한 그 오래된 미신 덕분이죠.

몰랐던 사실인데요? 설명을 듣자니 집에서 피우는 ‘인센스’의 향이 떠오르는군요.

따뜻하고 스모키한 향취로 비슷한 면을 띱니다. 하지만 훨씬 부드럽고 복잡 미묘하죠. 스파이시하고 이국적인 향료를 달콤하고 파우더리하게 전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이 계절과 더없이 어우러지는 향이겠군요.

사계절 내내 사람들이 이 향을 즐기길 바라지만, 피부에 남는 잔향은 지금 시즌이 더없이 매력적입니다. 향기는 습도와 공기의 상쾌함, 햇볕에 따라 변하니까요.

당신만의 방식으로 이 향수를 정의한다면?

영적이고 관능적인 ‘항해로의 초대’.

상상력을 자극하는군요. 가을에 즐기는 향기는?

구운 밤의 향기. 마음을 진정시키고 영혼을 위로하죠.

동감해요. 추운 계절, 한국의 길거리에서도 쉽게 맡을 수 있는 향이죠. 그렇다면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은?

‘덥(Dub)’ 음악. 1970년대 레게에 기원을 둔 자메이카 음악의 한 종류죠. 두근거리면서도 부드럽게 일렁이는 물결 같은 느낌을 줍니다.

지금 떠나고 싶은 여행지는?

캐나다의 우거진 단풍 숲. 매년 이파리가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광경은 정말 환상적이니까요.

BARNABÉ FILLION
Aesop

이솝과 끈끈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기반으로 한 협력 관계입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그 틈새의 후각적 경험을 토대로 한 ‘아더토피아(Othertopias) 컬렉션’과 함께 시작된 인연이죠. 이제 컬렉션의 중간 지점에 도착했다고 볼 수 있겠군요.

신작의 이름은 ‘이더시스(Eidesis) 오 드 퍼퓸’입니다. 어떤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됐나요?

우리는 모든 향수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드러낼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지난해에 공개한 ‘아더토피아 컬렉션’ 세 가지에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거리감’이 존재했습니다. 반면 ‘이더시스’는 나르키소스의 신화처럼 둘의 통합입니다.

그렇다면 ‘나르시시즘’을 주제로 한 향수인가요?

출발점의 일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컬렉션에 대한 작업을 시작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제로 발전한 아이디어 중 하나는 나르키소스가 아마도 세계 최초의 생태학자일 것이라는 발상이었습니다. 그는 연못에 반사된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물론 이 신화에 대한 좀 더 일반적인 해석이 존재하지만, 우리의 대안적인 해석은 제게 ‘거울’이라는 매개체의 다른 측면을 바라보게 했죠.

어떤 면면인가요?

거울은 세계의 다양한 역사와 전통에서 많은 의미를 지닙니다. 마야 문화의 첫 번째 거울은 검은색의 흑요석이었고, 특정한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그 위에 물을 붓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 물체를 둘러싼 많은 신화와 역사가 있죠. 망원경은 거울의 힘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시기도 합니다. 여러 개의 고품질 거울을 사용해 우주를 더 멀리 볼 수 있죠. 하지만 저는 거울의 주된 매력은 자기 평가와 왜곡, 굴절과 반사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다루고 싶었던 발상은 거울 안의 거울처럼, ‘반사의 반사’를 상징하는 거울이었어요. 끝이 없는 곳으로 당신을 인도하는 무한한 상념. 거울은 우리 내부의 특정한 공허감과 연결되며, 이 공허감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비추죠.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공간 사이의 관계가 핵심입니다.

심오한 답변이군요. ‘거울’을 향으로 구현한 그 복잡한 여정을 설명해줄 수 있나요?

나르키소스 신화의 연못처럼 녹색의, 물 같은 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공허하면서도 무한함을 표현할 수 있는 재료를 모아야 했죠. 그리하여 녹색의 쿠민 노트를 비롯해 다양한 레벨의 향을 정밀하게 조합했습니다. 물과 같은 질감과 너무 가벼워서 무엇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양만큼의 플로럴 노트, 배합 과정에서 향을 부풀린 샌들우드 등. 반사, 굴절, 또 반사되는 자연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만큼 투명한 질감도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개념을 통해 향료를 첨가한 만큼, 향에서 직접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원료는 많지 않아요. 부풀린 향조차 전혀 과하게 느껴지지 않죠. ‘이더시스’는 조금씩, 더 큰 향기로 발전하는 하나의 향기입니다.

샌들우드 노트를 부풀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더시스’는 분리의 환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향수입니다. 그렇기에 ‘무한한 움직임’이라는 발상을 향기로 표현했죠. 반복되는 노트, 특히 같은 샌들우드의 노트라도 다른 공급원과 추출 물질을 활용했습니다. 무한한 센세이션을 창조하기 위한 과장이었어요. 샌들우드가 이 향기의 서사에 다른 측면, 또 다른 레이어를 가져올 수 있도록 말이죠.

반사와 반사라는 무한한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 샌들우드라면, 거울 속으로 처음 인도하는 노트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군요.

쿠민, 시더, 프랑킨세스가 부여한 이 향기의 전체적인 심장부입니다. 인센스처럼 스파이시하고 우디하며, 투명한 질감을 지니죠. 프랑킨센스와 쿠민은 마른 장작의 따뜻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금속적인 측면까지 연출합니다. 그것이 곧 거울을 통해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는 개념을 표현하는 것이죠.

쉽지 않게 느껴지는 과정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필요했나요?

이솝과 제가 ‘거울’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시점은 거의 4~5년 전입니다. ‘아더토피아 컬렉션’의 모든 향수 가운데 단언컨대 ‘이더시스’의 개발이 가장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아이디어가 비로소 공식화되기 시작한 후로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소요된 것 같군요.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투명’하지만 다양한 성격을 가진 향을 만드는 과정 그 자체가 도전이었습니다. 전형적인 머스키 노트가 되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머스크는 다른 원료를 위한 캔버스로 이용하고 싶었어요. 핵심 향료 샌들우드 주변으로 다른 재료가 서로 다른 시간차를 두고, 매우 오랫동안 조금씩 드러납니다. 향기에 그런 볼륨을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이지 꽤 어려운 작업이었죠.

여섯 개로 계획된 ‘아더토피아 컬렉션’의 네 번째입니다. 다른 세 가지 향수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나요?

전반부와 후반부로 이 컬렉션을 정의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더시스’는 후반부의 시작이지만, 이 향수는 컬렉션의 중간점이자 거의 ‘0’의 지점에 가깝습니다. 후각적인 면에서는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감성적인 편이에요.

당신이 이 향수를 입는 방법은?

스카프와 옷감에 뿌려 계속 향을 맡습니다. 특히 스카프가 움직일 때 나는 향은 큰 영감을 주죠.

AMÉLIE HUYNH(CEO) &
ANNE-SOPHIE BEHAGEL
d’Orsay

금지된 러브 스토리를 모티브로 탄생한 브랜드입니다.

사실 우리는 ‘비밀스러운 사랑 이야기’라고 지칭합니다. 시대 흐름에 따라 기준은 바뀌니까요. 브랜드 창립자인 19세기 화가 알프레드 도르세와 그의 연인 소설가 마르게리트 블레싱턴은 당시 열두 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열애를 나눈 역사가 있죠. 도르세는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향수를 세상에 공개했고요. 우리는 그들의 스토리를 이어 다양한 사랑의 범주에 대한 탐구, 감정을 향기로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처음 사랑을 느낀 향기가 궁금하군요.

니나 리치의 ‘레흐 뒤 땅(L’Air du Temps)’. 1947년 제품으로, 열한 살 때 선물 받은 제 ‘첫’ 향수였죠. 사향나무를
베이스로 꽃과 향신료가 섞인 향이었어요. 당시로서는 매우 현대적이었죠.

향수마다 조향사가 전부 다르더군요. 서로 상호작용하는 부분도 있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조향사끼리 특별한 의사소통 과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 풍부하게 후각을 자극할 수 있어요. 각자 자신의 의견과 영감을 따르고, 결국은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폭발시키죠. 도르세의 분위기는 매우 자유롭습니다. 그 어떤 제한도 없죠.

팬데믹이 당신의 조향사 커리어에 변화를 준 부분이 있나
요?

어두운 시기였지만 한편으론 생각이 깊어졌고, 더 많은 정성을 들여 감각에 몰두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주로 자연에서 향에 대한 영감을 얻곤 했다면 첫 번째 봉쇄 이후 도시와 사람들에게 더 아이디어를 얻곤 해요. 그
후로 많은 로맨틱한 향수가 탄생했습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향수를 찾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에게 조언하자면?

사실 그렇게 좋은 조언자는 아니지만, 향수를 선택하는 데 늘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매우 즉각적인 거예요. 첫눈에 빠지는 사랑 같은!

사랑스러운 답변이군요. 향수 이름 뒤에 두 개의 이니셜을 넣는 이유는?

낯선 사람의 이니셜로, 누군가의 관능적인 사랑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이 이니셜의 정체는 모두 비밀입니다. 신비로운 로맨티시즘을 간직하고 있죠.

한국에는 미공개지만, 두 가지 향수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댄디 오 낫(Dandy or Not) G.A.’는 우리 브랜드의 기원이 된 알프레드 도르세의 캐릭터를 표현한 향이에요. 모든 관습에서 자유로운, 쾌활한 사랑을 그렸죠. 장난기 어린 듯, 생기 넘치고, 지나간 여름을 영원히 기리고 있습니다. 프랑스 남부 비아리츠의 바람 부는 해변과 따뜻한 햇살, 산뜻한 자몽과 씁쓸한 홍차, 오렌지꽃의 은은한 향에 가죽의 노트가 관능을 더하죠. ‘떼 디르 위(Te Dire Oui) V.H.’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행복에 몸을 던지는 누군가를 상상하며 만들어낸 향입니다. 사프란과 장미 꽃다발의 풍성함도 느껴지지만, 사랑을 위해 공허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본능을 떠올리며 백단나무, 이끼, 사향의 깊은 향취를 더했어요.

각 향기마다 포인트를 짚어준다면?

‘댄디 오 낫 G.A.’는 1925년 전설적인 조향사 앙리 로베르(Henri Robert)가 탄생시킨 도르세 ‘르 댄디(Le Dandy)’의 재현입니다. 그 고전적이고 정교한 향에 현대적 해석을 불어넣었죠. 양가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반면에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가진 ‘떼 디르 위 V.H.’는 좀 더 강렬하고 스파이시하며 동물적인 데다 영적인 측면을 이끌어냅니다. 전자가 우리의 시절을 한껏 빛나게 하는 향이라면, 후자는 우리의 내면으로 다시 돌아오는 향이죠.

특정 인물이나 작품으로 비유해본다면요?

‘G.A.’는 프랑스 바스크 해안에서 황금빛 햇살을 받으며 서핑을 즐기는 여성. ‘V.H.’는 동양적인 분위기와 헤나로 가득한 시.

가을에 즐기는 향은?

‘댄디 오 낫 G.A.’. 여름을 사랑하는 제게 이 향은 끝없이 영원한 여름을 느끼게 하니까요.

이 계절에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는?

마라케시! 향신료, 풍부한 컬러, 따뜻한 공기… 끝없이 찬양할 수 있어요.

추천하는 작품은?

영국 싱어송라이터 요셉(Joesef)의 음악. 라이언 맥긴리, 시릴 드 비그네몽(Cyrille de Vignemont)의 영화 같은 사진 작품. (VK)

에디터
송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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