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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프와 이데올로기’ 역사가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2022.10.24

by 민용준

    ‘수프와 이데올로기’ 역사가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거대한 갈등의 역사를 허무는 식탁 위의 웃음을 기록하고 그 너머로 나아가는 시선의 다큐멘터리.

    ‘역사가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첫 문장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어쩌면 당연하게 <파친코>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선자와 이삭의 터전이 되는 오사카가 사연의 주된 배경이기도 하다. 양영희 감독의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전작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잇는 자전적인 다큐멘터리다.

    재일 조선인인 양영희 감독은 제주도에서 태어났지만 각기 다른 비극을 경험하게 만든 고향을 등지고 일본에 와 결혼한 뒤 오사카에 정착한 부모님에게서 시작된 가족의 역사를 차근차근 기록해왔다. 그만큼 사적인 기록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시절의 공기가 한 가족의 세월과 함께 자욱하게 일어난다.

    병상에 누운 채 담담하게 음성을 내뱉던 강정희 할머니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진다. 사람이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였다는 끔찍한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아는 ‘제주 4·3 사건’에 관한 생생한 증언이다. 유년 시절 자신의 친척들이 자국 군인들이 쏜 총에 맞고, 휘두른 총검에 찔리고, 개머리판에 맞아 죽는 광경을 두 눈으로 본 강정희 할머니는 어린 동생들과 함께 먼 길을 걸어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넘어왔다.

    그곳에서 보다 일찍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넘어온 재일 조선인 량공선을 만났고 가정을 꾸려 자식 넷을 낳았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가족 중 유일하게 강정희 할머니의 곁에 남아 있는 딸 양영희의 시선과 사유를 관통한 어머니와 어머니가 지나온 시절과 역사에 관한 기록이다.

    전작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은 양영희 감독의 가족이 지닌 복잡한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넘어간 아버지가 왜 북한 국적의 재일 조선인이 됐는지, 해방 이후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어머니 역시 왜 북한 국적의 재일 조선인이 됐는지, 세 오빠는 왜 일본에서 북한으로 넘어가야만 했는지, 그 모든 사연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역사와 어떤 인과관계를 이루는지 사람의 얼굴을 통해 납득하고 이해하게 되는 그림자 너머의 체험 같은 다큐멘터리다. 두 작품에 고스란히 담긴 가족의 전말을 설명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넘어온 제주도 출신 아버지가 북한 국적의 재일 조선인이 된 건 해방 이후 분단된 고국 중 북한이 재일 조선인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남한 땅인 제주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어머니는 자신의 혈육과 이웃이 빨갱이로 내몰려 자국 군인의 총과 검에 무자비하게 학살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후 한국 국적 자체에 치를 떨었다. 애초에 자국민을 학살하는 공권력을 등지고 찾아온 일본이었다. 과거 식민 지배를 했던 나라보다 더 두려운 건 이데올로기를 뒤집어씌워 멀쩡한 사람을 주검으로 만든 고국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조총련 활동을 하는 남편을 따라 재일 조선인이 됐다.

    사랑하는 세 아들을 북한으로 보낸 건 예기치 못한 일이면서도 선택이었다. 김일성의 환갑을 축하하는 인간 선물로 선발된 첫째 아들을 강제 북송해야 하는 상황에서 남한보다 살기 좋은 지상 낙원이라 믿었던 북한으로 세 아들을 보내는 것이 부모로서 옳은 선택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북한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그리고 운동에 골몰하고 돈벌이에 무심한 아버지 대신 어머니는 밤낮없이 일하며 돈을 벌고 북한에 생필품을 보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던 첫째 아들은 조울증에 시달리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양영희 감독은 <디어 평양>을 공개한 뒤 반체제 인사로 분류돼 북한에 입국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으로 자란 조카 선화의 모습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지난 두 편의 기록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갈무리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역사를 살핀다. 딸이 일본인이나 미국인과 결혼하는 걸 반대하는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역시 일본인 사위는 싫다고 했던 어머니는 딸이 데려온 일본인 사윗감을 만나기 위해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시장에서 사 온 생닭으로 백숙을 끓이려는 것이다. 제주도 출신 재일 조선인 어머니 강정희와 일본인 사위 카오루 사이에는 첫  대면에 감도는 어색함이 있긴 하지만, 마주 보고 웃으며 식사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얼어붙은 역사의 장벽이 일거에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뜨거운 닭고기 수프 앞에서 이데올로기의 한파는 비로소 현재의 삶 너머로 떠밀려 간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일본인 사위는 싫다고 했던 어머니는 다정하고 서글서글한 카오루를 극진하게 대접한다. 두 사람의 웃음 앞에서 두꺼운 역사의 장벽이 삽시간에 무너지는 것만 같다. 역사로 명문화된 갈등과 충돌의 세월은 얼굴을 마주한 개인과 개인의 연대를 통해 눈 녹듯 사라진다. 하지만 역사의 앙금이 온전히 사라질 리 없다. 다만 역사의 채무를 개개인이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 정도는 확인할 수 있다.

    함께 마주할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다면 그 앞에서 되레 역사의 체증 같은 건 삼켜버릴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조선인을 핍박하고 지배한 역사를 지닌 일본인 사위도 받아들인 어머니가 고국의 땅 제주도에서 벌어진 역사를 보다 끔찍하게 여기는 건 그래서 의아한 일이다. 그렇게 양영희 감독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묻지 못했던 질문을 하며 알아야 할 진실로 발길을 돌리고 카메라를 비춘다.

    일본 오사카와 평양을 주요 배경으로 한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이 일제강점기 이후 찾아온 해방과 남북 분단이라는 한반도 근대사에 휘말린 한 가족의 역사를 살펴보는 이야기였다면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지난 두 작품으로 미처 기록하지 못한 그 역사의 여진을 마저 돌아보고 나아가는 작품이다.

    그래서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이 과거형의 반추를 토대로 둔 기록 같다면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미래로 나아가는 현재진행형의 기록 같다. 지난 두 번의 기록이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기이하게 꼬여버린 가족의 발자국을 찬찬히 따라잡는 여정이었다면 최신 기록은 남겨지고 남겨질 자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를 대면하고 걸어나가는 새로운 여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양영희 감독이 듣고 보는 모든 언어와 풍경은 양영희 감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도 생소하고 낯설 것이다. 납작하게 누운 활자로만 다가오던 단말마 같은 역사는 너르게 펼쳐진 제주 4·3 사건의 실종자 추도비와 함께 현실로 일어난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이 일어났다는 식으로 기술되는 역사와 함께 지워진 얼굴들을 떠올리게 된다. 역사라는 거대한 언어 아래 압사된 이름을 읽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지금 살아가는 얼굴과 이름을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재일 조선인이 된 강정희가 낳은 일본인 딸 양영희와 그 남편 카오루가 이룬 하나의 줄기는 그 모든 역사의 아이러니 끝에서 만난 결과다. 그들이 함께 제주 4·3 사건의 풍경을 마주할 때 그 역사는 비단 그 땅에 소속된 이들만의 것이 아닌 세계의 역사로 다가온다. 그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인종과 민족과 국가와 이념으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공통의 세계임을 인식하고 자각하게 된다. 한 시대와 한 세계의 역사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서로 엮이며 이어지는 다양한 인과의 세계로서 한 세계의 역사는 모든 세계의 역사이자 모든 이들의 시간이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함께 풀어야 하는 시간은 함께 마주 보는 데서 시작된다. 지금에 다다르기 전까지의 역사에 어떤 과오가 있다 해도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은 함께 밥을 먹고 마음을 나누며 그럼으로써 역사를 함께 돌아봐야 한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라는 제목처럼 첨예한 이념 앞에서도 때가 되면 식탁을 차리고 밥을 먹어야만 한다. 그렇게 마음을 풀어나가듯 역사를 풀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학자 E. H. 카의 격언은 자주 회자되면서도 길을 잃는 법이 없다. 역사를 망각하지 않아야 하는 건 그 역사에 기록된 갈등과 충돌로 보복하고 분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되레 포용하고 화합할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역사로 나아가야 한다.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으로 이어지는 갈등과 충돌의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필요한 건 결국 마음을 맞댈 수 있는 새로운 연대와 마음의 대화일 수밖에 없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안팎으로 널린 상황 자체의 혼란을 가다듬고 진정하게 만드는 건 거대한 구호로 돌볼 수 없는 다정한 마음일 것이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냉랭하게 다가오는 국적과 민족의 거시적 갈등 아래 가능한 미소와 대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렇게 돌아보고 나아가 지켜보며 살 것이다. 그러면서 시간은 우리 편이 된다. 냉랭한 진영의 논리가 아닌 따뜻한 개개인의 마음을 마주하고 돌봄으로써. 그리하여, 역사가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민용준(영화 저널리스트&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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