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서커스, 모든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곳
막이 오르고 쇼가 시작됐다. 태양의 서커스에서는 모든 상상이 현실이 된다.
당신의 생애 첫 서커스는?
어릴 적 고향에는 서커스 유랑단이 찾아오곤 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초등학교 운동장에 천막을 친 서커스를 보러 갔다. 그들은 샴푸나 자양 강장제 등도 같이 팔았기에 “애들은 가”를 외쳤지만, 어른 손님의 점퍼나 치맛자락에 숨어 들어가는 아이들을 모른 척했다. 천막 안 방석엔 동네 어르신 대부분이 앉아 있었다. 할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대고 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서커스를 봤다. 그때 할머니의 냄새와 불 쇼의 화약내가 지금도 기분 좋게 아련하다. 진하게 화장을 하고 머리를 단단하게 묶어 올린 여성들이 접시를 돌리고 공중그네를 탔다. 쇼가 끝나면 어르신들이 예쁘다며 과자를 주고 돈도 쥐여주었다. 우스꽝스럽게 부푼 바지를 입은 광대가 나와 슬랩스틱 코미디를 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크게 웃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몇 번 서커스를 봤지만 그때만큼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팬데믹 후, 처음으로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서크))의 ‘뉴 알레그리아’를 보러 큰 천막 ‘빅탑’에 들어설 때 조금 설렜다.
“할머니가 보셨으면 무척 좋아하셨을 거예요.” ‘뉴 알레그리아’의 예술감독 마이클 G. 스미스(Michael G. Smith)를 만났을 때 좋은 공연이었다는 소감을 이 첫마디로 건넸다. 그는 배우와 연출가로 45년간 공연계에 몸담으며, 캐나다 몬트리올의 서크 본사에서 예술감독을 지원하는 수석 감독으로 활동했다. 이번 공연이 어머니에게서 기인했다고 말한다. “당신 할머니 나이라면 내 어머니와 비슷하겠군요.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영국 고향에 돌아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봤어요. 치매 환자들의 시공간 개념은 일반인과 다릅니다. 어머니를 보면서 삶의 모든 순간이 소중함을 깨달았어요. 코로나19가 끝나면 기존 ‘알레그리아’에 이 영감을 적용하고 싶었고, 정말 그렇게 했죠. 내 쇼는 어느 한 순간도 의미 없는 장면으로 채우지 않겠다고요. ‘뉴 알레그리아’의 모든 곳에서 어머니를 봐요. 그 감정이 당신에게도 전해졌나 봐요.” 특히 ‘앤젤’들이 공중그네를 타는 마지막 장면을 새롭게 추가했다. “이 장면에 어머니의 마음, 정신, 영혼을 담고 싶었어요.” 사실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 등의 고정 공연장이 아닌 투어에서는 이런 공중그네 쇼는 보기 쉽지 않다. 1mm의 오차도 위험한 설비의 안전 문제, 공중그네 아티스트의 확보 등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몬트리올에서 6개월간 준비했는데도 막상 하려니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시간과 재능, 노력을 투자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죠. 인생에 지름길은 없잖아요?”
빅탑에서 서크의 부회장 다니엘 라마르(Daniel Lamarre)의 저서 <균형 잡기의 기술>을 구입했다. 첫 문단에 끌렸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께선 이런 의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회사가 파산 보호 신청을 해야 했던 사업가의 책을 왜 읽어야 하나?”
서크는 2020년 초만 해도 전 세계에 라이브 프로덕션 44개를 운영하던 연간 매출 10억 달러의 엔터테인먼트 강자였다. 1982년 캐나다 퀘벡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저글링과 장대 곡예를 하던 길거리 공연단 하이 힐스 클럽(Le Club des Talons Hauts)이 이렇게 커질 줄은 그들도 몰랐을 거다. 1987년 미국에 진출할 때만 해도 캐나다로 돌아올 비행기 표를 살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 비틀스 등 슈퍼스타의 쇼를 성사시키고, 서커스의 인식을 끌어올리면서 크게 성공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팬데믹이 왔다. 44개 쇼는 중단됐고, 파산 보호 신청을 해야 했고, 직원 5,000명의 95%를 해고했다. 하지만 잠실종합운동장 빅탑에서 진행 중인 ‘뉴 알레그리아’처럼 서크의 쇼들이 돌아오고 있다. 중국과 멕시코의 상설 쇼를 먼저 재개했고, 서크의 상징인 라스베이거스 프로덕션의 <미스테르>와 <오>를 비롯해 <마이클잭슨 원> <비틀스 러브> <카>도 돌아왔다. 그 비결은 256페이지의 자서전이지만 한마디로 요약된다. “무한한 창조성이죠.” 뻔한 소리로 넘기기엔, 마이클 감독이 팬데믹 기간 어머니에게서 받은 영감을 ‘뉴 알레그리아’에 적용한 것은 사실이다. 또 그가 어떤 시도를 하건 본사에서는 딴지 건 적 없다. 감독이 아티스트를 대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이래라저래라 한 적 없다. 인터뷰하는 중간중간 출근하는 아티스트를 조카 대하듯이 포옹하고 인사를 했으며, 이런 ‘관계성’이 좋은 공연을 만든다고 믿는다. “어떤 기술을 구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주지 말고, 네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동선을 정해주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그는 창의성이란 ‘정말 작은 속삭임’이라고 덧붙였다. 그것을 듣기 위해서는 주변의 평화가 이뤄져야 한다. “예술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니까요. 주변 환경과 인간관계가 안정될 때 창의성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어요. 그렇기에 창의적인 쇼를 하려면 아티스트와 관계가 돈독해야죠. 제가 그렇게 선한 사람은 아니지만 아티스트를 신뢰와 진실로 대하면 상대도 그런 에너지를 낸다고 생각해요. 인생은 일방통행이 없는 쌍방향 도로니까요.” 공연계는 지금도 그렇지만 많은 부분이 바뀔 것이다. ‘알레그리아’가 팬데믹 전후로 내용 구성과 배우가 바뀌었듯이 말이다. “오래 고립됐기에 감정을 공유하길 원하고, 안전과 행복의 의미가 절실해졌어요. 그렇기에 ‘뉴 알레그리아’의 이야기도 등장인물마다 감정을 행복하게 해소하는 방향으로 수정했죠. 이제 공연은 우리가 바라는 행복, 안전, 교감을 이뤄주는 방향으로 갈 거예요. 관객이 그 여정을 떠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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