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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퍼스트 슬램덩크’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2022.12.30

by 민용준

    ‘더 퍼스트 슬램덩크’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21세기에도 여전한 울림을 선사하는, 다시 한번 심장을 뛰게 만드는 놀라운 성장 드라마. 이건 꼭 봐야 한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임에도, 일찍이 애정을 가져본 적이 있기에 하나같이 익숙한 캐릭터임에도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고, 그와 함께 반가웠다. 지난 세월이 다시 눈앞으로 돌아온 것처럼 익숙하면서도 처음 느낀 그대로 그다음이 거듭 궁금해졌다.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그 시절의 감각이 고스란히 쥐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첫 경험처럼 온전히 다가왔다. 손으로 넘기는 순간순간 전해지던 짜릿한 전율이 스크린 너머에서 새로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낯익은 반가움 이상으로 격한 설렘이 점점 빨라지는 심장박동으로 전이됐다.  

    그러니까 2021년 1월 7일이었다. <슬램덩크>와 <배가본드>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트위터 계정에 흥미로운 소식이 하나 올라왔다.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슬램덩크>가 영화화된다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티저 수준의 영상과 문구였다. 반응은 뜨거웠지만 실사 영화를 의미하는 걸까 두렵기도 했다. 소중한 추억을 박살 내는 코스프레 영화 같은 걸 기대하는 이는 없었다.

    그 뒤로 제작사 도에이 애니메이션은 새로운 <슬램덩크>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 중이라는 다행스러운(!) 소식을 전했고, 2021년 8월에 공개된 첫 번째 공식 티저 영상은 2022년 가을 일본 개봉을 예고했다. 그리고 2022년 7월 2일 ‘더 퍼스트 슬램덩크’라는 공식 제목이 공개됐고, 일본에서 12월 3일 개봉이 확정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리고 지난 11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국내 개봉 소식이 전해졌다. 마침내!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슬램덩크>의 대단원이라 할 수 있는, 전국 고등학교 농구 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가나가와현 대표 북산고등학교와 아키타현 대표 산왕공업고등학교 농구부가 겨루는 32강전 경기를 주축으로 둔 신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슬램덩크>를 봤다면 결코 모를 수 없는 바로 그 경기다.

    그런데 왜 ‘더 퍼스트(The First)’인 걸까? 무엇이 대체 ‘처음’이란 말일까? 일단 북산고와 산왕공고 경기를 다룬 <슬램덩크> 애니메이션은 제작된 바 없다는 점에서 ‘처음’이라는 수사는 유효하다. 그런데 그 ‘처음’이라는 의미가 단지 <슬램덩크>의 클라이맥스 에피소드라 할 수 있는 경기를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재현한다는 의미를 위해 동원될 것 같진 않다. 

     

    바닷가에 자리한 오키나와의 야외 농구장에서 두 소년이 농구를 하고 있다. 1:1 승부를 벌이는 두 소년은 형제다. 그리고 형제 중 한 명은 북산의 가드 송태섭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송태섭의 유년 시절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슬램덩크>가 면밀히 다루지 않던 주요 인물의 과거를 처음 조명한다. 초등학생 시절의 송태섭은 중학생이자 농구부 유망주인 형 송준섭과 승부를 벌이고 있다. 신장 차이로 고전하지만 좀처럼 물러설 줄 모르는 송태섭은 형만큼 뛰어난 농구 실력을 인정받고 싶다. 형 역시 어린 동생이라고 봐주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밀어붙이라 요구한다. 그리고 공격 중 넘어진 동생에게 말한다. “넘어진 다음이 중요해!”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송태섭과 관련이 있는 과거의 일화를 플래시백 형식으로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경기가 진행 중인 현재 시점의 서사와 교차편집하며 진전되는 작품이다. 가족사와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 등 송태섭의 유년 시절과 성장 서사를 필두로 정대만과 송태섭의 만남과 갈등, 전국 제패를 갈망하며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지만 일찍이 지는 법에 익숙해진 선배들의 조롱을 묵묵히 견디는 채치수의 2학년 시절을 지켜보는 신입생 시절의 송태섭 등 <슬램덩크>를 통해서는 알 수 없던 송태섭과 관련된 일화가 ‘처음’ 공개된다.

    그리고 아무래도 기존의 <슬램덩크> 독자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울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경기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의 감각을 입고 재현되지만 원작의 모든 장면을 작화한 것은 아니다. 이는 <슬램덩크>의 모든 대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기에 기존 <슬램덩크> 팬이라면 그 자체로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송태섭의 과거사를 주된 줄기로 삼은 건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1998년에 발표한 <슬램덩크> 외전 격의 단편 만화 <피어스>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피어스>는 송태섭이 귀에 피어싱을 하게 된 계기가 등장하는 단편 만화로 송태섭이 북산고의 매니저 이한나와 처음 만나게 되는 우연한 계기를 다루는 동시에 처음으로 형의 존재를 언급하는 송태섭의 가족사가 수면 위로 살짝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쩌면 <슬램덩크>의 주축을 이루는 인물임에도 주목받을 기회를 충분히 주지 못했다는 작가의 자책감이 반영된 것이 아닌지 궁금하기도 한데, 그런 면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기존 팬에게도 ‘처음’ 접하는 새로운 <슬램덩크>로서 흥미를 선사한다. 

     

    <슬램덩크>에서 볼 수 없던 몇몇 캐릭터의 새로운 전사가 등장하는 건 단순히 정보 차원의 재미를 부여하는 것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는 선택이기도 하다. 단일한 작품으로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서사를 구조화하는 중요 소재가 되는 동시에 이미 결과가 정해진 경기를 보고 있음에도 새롭게 몰입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는, 일종의 감상적 가이드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작에서 그린 경기 양상과 다를 바가 없고 승패의 결과가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간절하게 응원을 하게 된다고 느껴지는 건 애정을 갖고 지켜보던 캐릭터가 홀로 품고 감당했을 간절함에 뒤늦게 공감할 수 있게 된 마음에서 기인된 결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깊이 애정하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세계관의 유효기간이 만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처럼 보인다. 두고두고 회자될 명경기의 승패를 알고 있음에도 다시 보는 이유를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설명해주는 것만 같다. 

     

    무엇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작화 면에서 놀라운 수준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단순히 기술적 완성도가 대단한 수준을 넘어 오직 장인만이 담아낼 수 있는 울림의 저력 같은 걸 느끼게 만드는 순간이 상당하다. 극 초반부에서 크로키 방식으로 그려지기 시작하는 북산고 농구 팀의 멤버들이 송태섭, 정대만, 채치수, 서태웅, 강백호 순으로 하나씩 완성되면서 생명력을 얻은 듯 자연스럽게 살아 움직이는 장면은 그 자체로 마술 같다.

    3D CG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배경의 그림체가 실사의 실물감을 구현하면서도 전통적인 2D 만화 특유의 톤을 보존하는 동시에 생생하게 구현된 인물의 움직임은 동시대 CG 애니메이션이 줄 수 없는 특별한 감각을 부여하는 것 같다. 고도로 발전한 시각 효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인간의 손을 거쳐야만 표현될 수 있을 것 같은 만화적 기교가 발휘된 최상의 경지를 목격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장인의 기술을 관전하고, 목격한다는 흥분을 선사한다.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 연출과 편집 측면에서도 대단한 박진감과 경쾌함, 속도감과 긴장감을 조성하고 선사한다. 경기 중간마다 플래시백 형식으로 삽입되는 과거사가 자아내는 파토스와 노스탤지어는 쫓고 쫓기는 경기의 흐름과 맞물려 감정의 고양을 이끌고 이를 통해 이미 다 알고 있는 정보를 새로운 감각과 정서로 덧씌워 다시 본다는 인식을 지우고 새롭게 보고 있다는 인상을 거머쥐게 만든다.

    강팀 산왕공고를 상대하는 송태섭의 마음이 비단 현재에 머무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감정은 방황을 끝낸 정대만과 일찍이 무시당했던 전국 제패라는 꿈을 홀로 품었던 채치수의 절실함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애초에 응원해본 적 없던 경기를 보고 있다는 착각처럼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다시 보는 명경기가 아니라 재경기를 보고 있다는 거짓말을 스스로 믿고 싶게 만든다. 완벽하게 마음을 움켜쥔다. 

     

    경기가 끝나기까지 1분을 남긴 최후반부는 <슬램덩크>에서도 절정이었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는 또 다른 절정처럼 느껴진다. 가장 박진감 넘치는 순간을 완벽한 침묵에 가두듯 묘사하고, 펜 일러스트 기법이 온전히 노출되는 만화적 표현을 동원해 캐릭터의 움직임에 속도감을 부여하는 방식에서 전해지는 압박감은 소름 끼치게 놀랍다. 결과를 다 알고 있는 1분을 보고 있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긴박감을 느끼게 만드는, 마술 같은 체험을 선사한다.

    그러니까 재차 말하듯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다시 보고 있다고 인식할 빈틈 따위를 아예 허락하지 않는 작품이다. 새로운 것은 온전히 새로울 것이고, 알고 있는 것은 완전히 새롭게 느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라는 제목은 자신감을 넘어 저력을 느끼게 만든다. 작법, 작화, 연출 등 모든 면에서 빠지는 것 없이 그 이상의 수준을 성취한, 애니메이션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램덩크>는 엄밀히 말해서 농구에 관한 작품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농구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농구가 아니라 축구였다 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스포츠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말은 <슬램덩크>가 시대를 초월해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에 관한 답변처럼 들린다. ‘이긴다’는 투지만큼 ‘이겨낸다’는 의지로 가쁜 숨을 다잡고,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우는 모습은 어쩔 수 없이 감동적이다. <슬램덩크>가 예나 지금이나 동시대적 울림을 선사하는 건 시대를 막론하고 응원하고 싶게 만드는 어떤 원형 같은 마음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오래전 잊고 있던 소년을 깨우는 듯한 하이 파이브의 감각,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의지로 온몸을 내던지는 용기,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 믿고 한 발을 내딛는 패기. 그렇게 다시 한번 마음을 움켜쥐고 믿게 만든다. 그 시절의 치기와 패기를 모두 돌아보고 끌어안고 싶게 만든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경기 종료예요.” 신발 끈을 다시 매고 싶게 만든다. 마음이 웅장해진다.  

    민용준(영화 저널리스트 &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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