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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잃은 ‘곽튜브’를 기대한다

2023.02.01

by 강병진

    초심 잃은 ‘곽튜브’를 기대한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라고 하지만, 곽튜브는 걱정이 된다(130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이자, 김태호 PD와도 협업하는 인플루언서이니 연예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정확히 말하면 곽튜브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그의 캐릭터를 즐겨온 나에 대한 걱정이다. 2023년 1월 30일 기준으로 최근 그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했고, 곧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할 예정이다. 게다가 서울 마포구에 새로운 사무실과 오피스텔을 얻어 이사하는 영상 콘텐츠를 업로드했다. 그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빠니보틀과 좁은 단칸방에서 생활했던 것, 이후 신촌을 거쳐 까치산역 주변의 어느 빌라로 이사를 했던 것까지 다 지켜본 입장에서는 뭔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곽튜브, 성공했구나! 대단하다! 멋지다! 상을 받는 박연진에게 박수 치는 문동은처럼 환호해주고 싶었다. 그런 한편 걱정이 생겼다. 나를 포함해 지금까지 그의 캐릭터를 즐기던 사람들은 이제 성공한 곽튜브를 똑같이 즐길 수 있을 것인가.

    @jbkw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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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또한 곽튜브가 러시아에서 우즈베키스탄 이주 노동자 어몽 형님과 우정을 나눌 때부터 그의 채널을 구독했다. 겁은 많지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친화력, 자신이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려고 하는 예의, 그런 태도가 만들어낸 따뜻한 관계의 서사에 감동했다. 동시에 미용실에 가서 굳이 박서준 같은 헤어스타일을 요구하는 자학적인 개그와 ‘무슨 의미?’란 자막으로 완성되는 ‘찐따’의 미학을 사랑했다. 그의 캐릭터는 상당히 힘이 셌다. 모든 연예인을 외모만으로 평가하는 내 여자 친구마저 “곽튜브는 정이 간다”고 했을 정도다. 그녀는 곽튜브와 우정잉이 데이트를 하는 영상도 곽튜브 입장에서 감상했다. “아니, 우정잉은 곽튜브랑 사귈 것도 아니면서 애 마음 설레게 왜 자꾸 웃어주는 거야?” 그 정도로 곽튜브의 캐릭터는 흥미로웠다. 그래서 그가 코로나19 때문에 해외여행을 하지 못할 때 올린 브이로그 영상도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인 남자가 집 꾸미는 영상을 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성인 남자가 봐야 할 이유는 캐릭터에 대한 호감밖에 없는 것 같다.

    @jbkwak

    그런데 그렇게 자학 개그와 ‘찐따미’로 친숙해진 캐릭터가 어느 날 번듯해진다면? 곽튜브라는 캐릭터를 즐겨온 입장 또한 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건 이미 <무한도전>의 흥망성쇠를 통해 겪은 것이다. 김태호 PD는 한 강연에서 “주요 멤버들이 하차하면서 <무한도전>의 집단 지성이 무너지게 된 것”이 쇠퇴의 이유라고 말했지만, 사실 <무한도전>의 멤버와 시청자 사이 관계의 양상이 바뀐 게 먼저였다. <무한도전>의 시작점이었던 <무모한 도전>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성들이 초일류 연예인이 되기 위한 무한 프로젝트”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방송이 거듭되면서 그들은 진짜 초일류 연예인이 되었다. 이후에는 그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고수해도 시청자들은 더 이상 그들을 원래 캐릭터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또 그들은 예전 같은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없었다. 초창기에는 전혀 대단할 게 없는 도전을 하던 그들이 나중에는 사회적인 메시지와 영향력을 생각한 도전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머지않아 곽튜브와 나의 관계도 그렇게 변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곽튜브가 계속 자학 개그와 ‘찐따미’를 보여준다고 해도 그를 과거의 곽튜브로 볼 수 없게 될 테니 말이다.

    샌드박스 곽튜브

    그래서 나는 오히려 곽튜브가 초심을 잃어가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어몽 형님, 오리뽀 형님과 우정을 나누던 태도를 버리라는 게 아니다. 더 이상 자신을 평균 이하의 찐따 모태 솔로남으로 규정하지 않고, 멋있는 남성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오늘부터 제로 콜라 끊습니다”라거나, “오늘부터 곱빼기 주문 안 합니다” 등등. 그런 식으로 곽튜브가 먼저 자신의 캐릭터를 진화시키는 것이다. 곽튜브라면 분명 초심을 잃어가는 모습까지도 유쾌하게 보일 것이다. 나를 포함한 그의 구독자들도 조금씩 달라지는 곽튜브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찐따’가 아닌 곽튜브에게 무슨 재미가 있냐고 할 것이다. 과거와 다른 곽튜브가 <바퀴 달린 입>에 나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할 수도 있다. 그건 나도 걱정이다. 하지만 그렇게 초심을 잃고 더더욱 번듯해지는 과정이 학교 폭력에 시달려 자퇴했다가 새로운 도전에 뛰어든 그의 서사에 또 다른 감동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전직 대사관 직원이고,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갖춘 데다 놀라운 친화력을 지닌 곽튜브는 사실 ‘찐따’일 수 없는 사람이다. ‘찐따’가 아닌데, 스스로를 ‘찐따’로 규정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 때문에 ‘찐따’인 사람들과 즐겁게 놀 수 있었던 게 아닐지. 그러니 곽튜브가 계속 ‘찐따’로 남아주기를 원한다면, 오히려 번듯한 곽튜브와 더 빨리 멀어질지 모른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래서 초심을 잃은 곽튜브의 시즌 2를 기대한다.

    https://youtu.be/WnzPCvaxYvs

    프리랜스 에디터
    강병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포토
    샌드박스, 곽튜브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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