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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윅 4’ 그 남자는 은퇴할 수 없다

2023.04.17

by 민용준

    ‘존 윅 4’ 그 남자는 은퇴할 수 없다

    존 윅의 고통은 곧 관객의 낙이 된다는 것을 <존 윅 4>는 잘 알고 있다.

    “키아누와 나는 1편을 찍을 당시에는 속편이나 후속작을 기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존 윅 4>까지 네 편의 프랜차이즈 시리즈를 이끈 감독 채드 스타헬스키의 말처럼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제작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얼마나 많은 스튜디오가 이 영화를 거절했을까? 정답은 전부다.” 채드 스타헬스키의 말처럼 <존 윅>은 대중성이 떨어지는 작품으로 분류돼 대부분의 제작사로부터 눈길조차 받지 못했다. 이해는 된다. 그러니까 자신의 개를 죽인 범인을 쫓아가는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가 사랑에 빠져서 은퇴한 전설적인 킬러라고? 그런데 아내는 이미 죽었고, 그 아내가 남긴 개를 죽였기 때문에 다시 총을 잡는다고?

    내용만 들어보면 코미디 영화 같기도 하고, 머리로 액션을 그릴 수 있는 재능이 탁월하지 않은 이상 이걸 왜 영화로 만들어야 된다는 건지 감도 잡기 힘든 영화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존 윅>은 호쾌한 복수 영화이자 세련된 킬러 영화이며 탁월한 액션 영화로 완성됐고 무엇보다 결말이 근사했다. 남자는 복수에 성공했고, 새롭게 돌볼 개도 생겼다. 그렇게 끝났다면 정말 쿨한 영화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여느 프랜차이즈 영화가 그러하듯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 나오는 순간 없던 계획이 생긴다. 제작비 2,000만 달러가 소요된 <존 윅>(2015)이 전 세계에서 거둔 흥행 수익은 8,600만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네 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원래는 만들어야 할 이유를 납득시키지 못한 영화였는데 속편을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는 영화가 됐다. 그리고 제작비 4,000만 달러를 쓴 것으로 알려진 <존 윅 – 리로드>(2017)는 1억7,400만 달러의 수익을, 제작비 7,500만 달러를 쓴 것으로 알려진 <존 윅 3: 파라벨룸>(2019)은 3억2,8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새로운 속편이 나올 때마다 제작비를 곱절로 상회하는 수익이 눈에 띈다. 심지어 1억 달러 상당의 제작비가 투자된 것으로 보이는 <존 윅 4>(2023)는 개봉 3주 만에 전 세계적으로 2억7,0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는 상황이다. 북미에서만 개봉 당일 1편의 전 세계 흥행 수입에 준하는 7,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그야말로, 파이팅, 성공적, 존 윅. 그렇게 4편까지 왔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존 윅 4>에서도 존 윅은 계속 더 많이 죽인다. 존 윅을 죽이겠다고 그 주변으로 모여드는 이들의 머릿수가 전작보다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 킬러들을 지배하는 ‘최고 회의’로부터 파문당한 존 윅의 목에 걸린 거액의 현상금을 노리고 몰려드는 킬러들은 전편에 이어 거듭 존 윅을 노린다는 명목으로 부지런히 산 제물이 된다. 게다가 죽음을 자초하는 자들은 현상금을 노린 킬러들만이 아니다. 최고 회의의 명령을 집행하는 새로운 권력자 빈센트 드 그라몽 후작(빌 스카스가드)은 자신의 수하를 풀어 존 윅을 쫓는다.

    존 윅의 옛 친구이자 은퇴한 킬러 케인(견자단)도 가족을 건드리는 그라몽 후작의 협박에 못 이겨 존 윅을 쫓는다. 그리고 존 윅을 도와줬다는 혐의를 받던 윈스턴(이안 맥쉐인)의 뉴욕 컨티넨탈 호텔은 폐쇄되고, 최고 회의 몰래 존 윅과 접선한 코지(사나다 히로유키)의 오사카 컨티넨탈 호텔 또한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역시 존 윅을 노리는 프리랜스 킬러 미스터 노바디(셰미어 앤더슨)는 자신의 타깃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존 윅을 스토킹하듯 보위하고 그의 몸값이 떡상하길 기다린다. 이렇게 관심과 애정으로 덤벼드는 이들을 하나하나 성실하게 처리하는 존 윅은 자유를 찾을 방도를 찾아간다.

    <존 윅 4>에서 존 윅은 단순한 도망자가 아니다. 세 편의 시리즈가 이어지는 사이 존 윅은 복수의 화신에서 쫓기는 몸이 됐다. 그는 이제 전환점을 찾으려 한다. 도망만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랑자 조직을 이끄는 바워리 킹(로렌스 피시번)의 은신처에서 건강을 회복한 존 윅은 방탄 수트를 가져다준 바워리 킹으로부터 준비가 됐느냐는 질문을 받고 답한다. “그래(Yeah).” 특유의 과묵함은 여전하다. 고된 몸의 체력을 보상하기 위해 말이라도 줄이겠다는 듯 그렇다. 이런 과묵함과 무덤덤함은 과잉으로 치닫는 세계관을 보완하는 미덕이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존 윅> 시리즈는 현실을 매트 페인팅한 거짓말 같은 세계라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길 마다하지 않는 것 같다. 이를테면 킬러는 저렇게 많은데 왜 경찰은 한 명도 없는 걸까? 심지어 몰래 은신한 것도 아니고 주변에 자리한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다 알고 보니 킬러라고? 저 정도면 그냥 킬러 국가 아닌가? 이런 물음표가 떠오르는 순간들을 ‘그래, 자연스러웠어’ 하는 태도로 돌파해버리는 것 같다고 할까. 구체적으로는 현실감을 적당히 뭉갤 만한 액션 시퀀스를 설계하고 연결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궁극적인 비전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얼마나 극단적인지, 얼마나 극사실적인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10명이 아니라 400명을 촬영한다. 장르를 조롱하고, 이는 끝내 우리 자신을 조롱하는 것임을 알아주면 좋겠다. 몇 가지 테마가 마음에 들고, 캐릭터가 마음에 든다면 편히 앉아서 즐기길 권한다.”

    채드 스타헬스키의 말처럼 그는 이 시리즈가 과장된 전위극 무대 같은 세계관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오프닝 시퀀스부터 단테의 <신곡>을 인용해 웅변하듯 읊는 바워리 킹의 대사는 로렌스 피시번의 대단한 호연에도 불구하고 비장한 분위기를 선사하겠다는 의도가 너무 선명해서 민망한 감이 있고, 인물들의 대사는 위트가 사라진 셰익스피어 희곡의 문어적인 대사를 대놓고 필사한 것 같아 유치하게 들리는 경향도 있다.

    그런데 이건 모두 의도된 결과처럼 보인다. <존 윅 4>는 시종일관 과장된 전위극 무대처럼 굴러가는 세계다. 그 와중에 과묵한 존 윅이 있다. 그는 말수가 적고, 누군가를 죽일 때가 아니면 대체로 행동도 느릿하다. 모두가 아드레날린 보충제를 삽으로 퍼먹어버린 것 같은 과장된 세계에서 혼자 달관한 듯 차분하다. 그런 태도와 자태가 과장과 난장의 세계로 점철되는 이 프랜차이즈의 호들갑을 신뢰할 수 있도록 이끈다.

    <매트릭스>, Courtesy Photos

    사실 <존 윅> 시리즈의 대본에서 존 윅의 대사는 더 많았지만 키아누 리브스 입장에서 불필요하다고 느낀 대사를 매번 스스로 정리한 덕분에 존 윅은 과묵한 캐릭터가 됐다고 한다. <존 윅 4> 시나리오를 쓴 작가 마이클 핀치 역시 존 윅의 대사는 키아누 리브스가 알아서 정리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존 윅은 키아누 리브스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통해 독보적인 인상을 확보한 캐릭터다.

    키아누 리브스의 중요한 경력으로 꼽히는 <매트릭스> 시리즈와 비교하면 이런 면모는 더욱 두드러진다. <매트릭스>의 네오를 연기한 키아누 리브스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해리 포터를 연기한 다니엘 래드클리프 같은 존재였다. 세계관이 바라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하지만 <존 윅>의 키아누 리브스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수정주의 서부극에 자리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다. 배우의 성격과 매력이 고스란히 캐릭터에 반영돼 영화의 분위기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인상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존 윅>은 키아누 리브스의 배우 경력을 말할 때 <매트릭스>보다 더 배우에게 밀착해 회자되는 작품으로 언급될 것 같다. 물론 <매트릭스> 역시 키아누 리브스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겠지만 배우의 개인적인 면모와 가깝게 떠오를 작품은 아무래도 <존 윅>일 것이다.

    이제 환갑이 머지않았다는 키아누 리브스의 말처럼 배우의 노쇠 역시 존 윅을 현실적으로 신뢰하게 만드는 뜻밖의 장치처럼 보인다. 그와 비슷한 연배에도 스턴트 액션을 직접 소화하는 것으로 유명한 톰 크루즈와 비교했을 때 이런 인상은 더 여실해진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스턴트 액션에 진심인 톰 크루즈가 연기하는 이단 헌트가 중력과 싸우듯 한계를 거듭 돌파하는 초현실적 캐릭터처럼 보인다면 <존 윅>의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하는 존 윅은 자기 한계를 고스란히 반영해 더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자연인 캐릭터처럼 보인다.

    이런 캐릭터 연출은 <매트릭스> 시리즈를 비롯해 키아누 리브스의 전속 스턴트 배우, 즉 스턴트 더블로 활동한 바 있는 감독 채드 스타헬스키가 그만큼 배우를 신뢰한 결과처럼 보인다. 배우의 개성이 캐릭터의 성격에 반영돼 독특한 매력을 선사할 것이라는 믿음이 지금의 존 윅을 만들어낸 중요한 여건처럼 보인다. 물론 키아누 리브스가 존 윅을 소화하기 위해 물리적으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 역시 중요한 사실일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는 <존 윅 4>에서 계획된 만만찮은 액션 신을 소화하기 위해 12주 동안 무술과 스턴트 연기 훈련에 매진했다고 한다. 전작의 액션 시퀀스도 만만찮았지만 <존 윅 4>는 무려 169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의 영화다. 원래 4편과 5편을 동시에 제작한다는 계획을 틀어 한 편으로 수정한 탓에 두 편 분량의 촬영분을 한 편으로 압축하다 보니 러닝타임이 길어진 탓도 있는데 배우 입장에서는 그만큼 전작보다 다양한 액션 연기를 소화해낸 영화가 됐다. 그래서 액션 신의 비중을 분담할 능력이 있는 견자단의 합류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존 윅의 고생은 필연적이었다. 어차피 관객은 존 윅이 고생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존 윅 4>는 액션 영화의 역사에서 회자될 만한 스케일과 스타일, 리얼리티를 작심하고 뽐내는 영화다.

    <자토이치>, Courtesy Photos

    오사카 컨티넨탈에서 벌어지는 혼전 상황에서 이색적인 쌍절곤 액션을 선보이는 존 윅은 <용쟁호투>의 거울 시퀀스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담긴 3편에 이어 다시 한번 이소룡을 오마주하는 인상이다. 반면 견자단이 연기하는 케인은 지팡이로 위장한 칼을 휘두르는 맹인 검객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일본 영화 <자토이치>에서 얻은 모티브가 반영됐다고 한다. 그 밖에도 최후반부의 총잡이 결투 신은 명백한 웨스턴 무비의 인용처럼 보인다. 채드 스타헬스키는 <존 윅 4>가 <옛날 옛적 서부에서>나 <석양의 무법자> 같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에서 영향을 받은 영화라고 말했다. 웨스턴 무비와 아시안 무협 영화의 이색적인 조합은 <존 윅 4>에서 분명 좋은 볼거리다.

    <존 윅 4> 액션 시퀀스의 하이라이트는 파리를 배경에 둔 후반부에 집약돼 있다. 벽으로 구획된 실내 공간을 넓게 조망한 직부감 앵글의 원 신 원 컷으로 연출된 실내 총격전 시퀀스는 <더 홍콩 매서커>라는 슈팅 게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높은 천장에서 모든 혼전 상황을 중계하는 카메라 앵글로부터 보이지 않는 적을 찾아가는 인물 간의 긴장감과 대비되는 여유가 발생하고, 이는 관객에게 오락적인 아이러니를 제공한다.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지는 공간을 관망하듯 보게 만드는 앵글 연출 자체가 대단한 위트로 작동한다.

    <존 윅 4>의 야심이 총망라된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에투알 개선문 로터리 액션 시퀀스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량과 그 사이에 자리한 배우들, 그 사이를 질주하는 개까지 혼재된 도로 위 풍경만으로도 놀랍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9개월간 준비했다는 제작진은 제각각 5개 국어를 쓰는 50명의 스턴트 드라이버를 동원해 격투 연기를 벌이는 스턴트 배우들을 스쳐 지나듯 차량을 운전하게 했다. 덕분에 양옆으로 차가 달리는 도로 위에 서서 싸움을 벌이는 킬러들의 모습만으로도 아슬아슬한 초현실적 리얼리티가 마련된다. 그리고 최후의 결전을 벌일 사크레 쾨르 대성당으로 오르는 222개 계단에서 셀 수 없이 쏟아지는 킬러들과 결전을 벌이는 장면은 소위 말하는 타격감뿐 아니라 체력적 부담감 역시 액션 시퀀스의 리얼리티로 활용될 수 있는 요소임을 제시한다.

    이렇듯 <존 윅 4>는 스턴트 배우 출신 감독이 만들어낸, 스턴트 연기 전문가이기에 해낼 수 있는 최상의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액션 영화다. 169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존 윅에게 좀처럼 편안한 시간을 선사하지 않는다. 제작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존 윅이 고생할수록 관객은 만족한다는 것을 말이다. 키아누 리브스 역시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다만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운명은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애초에 1편 이상을 기대하지 못한 영화는 4편까지 다다랐고, 뉴욕을 벗어나 모로코, 오사카, 베를린, 파리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한 블록버스터 스케일로 팽창했다. 신화적 캐릭터를 위시한 만화적 세계관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존 윅을 대행하는 키아누 리브스는 스스로의 말처럼 늙어가고 있다. 존 윅의 명예로운 퇴장은 분명 정해진 수순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명예로운 퇴장을 선택할지 시리즈 생명 연장을 선택할지 궁금하다. 엔딩 크레딧 이후에 등장하는 쿠키 영상을 불분명하게 수정했다는 비화로부터 그런 고민이 언뜻 읽히기도 한다. 어쨌든 <존 윅> 세계관은 공개를 앞둔 드라마 <더 콘티넨탈>과 스핀오프 영화 <발레리나>로 확장 중이다. 결국 이 프랜차이즈의 생명도, 운명도, 숫자로 결정될 것이다. 그러니 당분간 존 윅이 평안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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