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을 쓰는 마음, ‘로맨스의 절댓값’
<로맨스의 절댓값>(쿠팡플레이)은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사랑스럽게 반짝이는 드라마다. 여고생이 자기 학교 교사들을 모델로 BL(Boy’s Love) 소설을 쓰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서브컬처 로맨스의 문법만 차용한 게 아니라 그것이 창작·향유되는 맥락을 소재로 삼아 신선한 시대 감각을 드러냈다.

주인공 여의주(김향기)는 모태 솔로다. 공부는 애저녁에 포기했다. 그의 웹소설은 매번 조회 수가 0이다. 누군가 읽고 악플이라도 남겨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장르가 BL이라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내가 뭘 하노라 정확히 말할 수 없다. 그런 의주 앞에 잘생긴 남교사 4명이 등장한다. 여고에서 젊은 남교사는 보급형 아이돌 같은 존재다. 온 학교가 들썩인다. 그에 영감받은 의주는 교사들을 모델로 새로운 소설을 쓴다. 인터넷에서 고대하던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남자 주인공 가우수(차학연)는 성인, 교사, 남성으로서 여의주와 대비를 이룬다. 극 초반에 그는 차갑고 이기적인 인물로 보인다. 여의주는 걸핏하면 벌 청소를 시키고 수학 공부를 강요하는 가우수를 재수 없어 한다. 그런데 가우수가 여의주의 소설을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우수는 학생이 BL을 쓴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소설의 주인공이 자기가 아니라는 점에 화를 낸다.


드라마 중반은 재기 발랄하다. 명색이 로맨스 작가인 의주가 변비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가서 남선생에게 망신을 당한다거나, 의주가 교사들의 말과 에피소드를 소설에 녹여낸다거나, 불량배들에게 잡혀간 학생을 구하는 과정에서 얌전한 교사의 반전이 드러나는 등 매 회차 소소한 코미디와 반전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여의주는 가우수와 점차 가까워진다. 시청자들은 못 말리는 나르시시스트처럼 보였던 우수가 실은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학생들과 소통하는 인물임을 알게 된다. 여의주는 이 성인 남성 보호자를 향한 호감을 이성애와 혼동하고 짝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귀여운 얘기다. 그런데 그 안에 여성 성장기의 중요한 특징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내서 가볍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여의주는 교복 아래 체육복을 겹쳐 입고 바가지머리를 한 중성적인 소녀다. 그는 아직 사회와 또래 집단의 욕망을 모방하거나 실현 불가능한 유사 연애 감정에 몰두하거나 혼자만의 상상을 통해 성애를 탐구하는 단계에 있다. BL은 캐릭터의 이런 특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물론 BL이 청소년만의 문화는 아니다. 하지만 사춘기 소녀의 성애적 탐구와 성장이라는 이 드라마의 주제 안에서는 BL이 특수한 의미로 다가온다.




BL은 로판 중에서도 음지로 간주되고, 실존 아이돌을 소재로 한 수위 높은 BL물은 성희롱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다. 미성년자가 교사를 성적 대상화해 소설을 쓴다는 건 주인공의 성별이 바뀌었거나 드라마의 장르가 달라졌다면 심각한 사건이 될 수 있는 문제다. <로맨스의 절댓값>에서도 여의주의 비밀이 폭로되자 그에게 변태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퇴학, 소송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가 쓴 소설의 수위가 높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며 여의주의 행위에 변명의 여지를 남겨둔다. 작가가 BL이라는 민감한 하위문화를 어떻게 평가할지, 실전 첫사랑이 의주의 취향과 창작에 어떤 변화를 야기할지, 가우수는 의주의 소설에서 무엇을 발견했기에 즉각 집필을 제지하지 않았는지, 현실에서 BL을 향유하는 미성년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중요한 질문의 답이 후반에 배치되어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시청할 수 있다.
여의주 역의 김향기는 탁월한 캐스팅이다.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여성성에 부합하는 배우가 맡았다면 여의주와 가우수의 관계에 불필요한 성적 뉘앙스가 더해졌을 것이다. BL이라는 소재의 민감성을 누그러뜨리는 데도 배우의 순진무구한 이미지가 큰 몫을 한다. 대중문화의 관념적인 소녀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한 발 다가온 이 캐릭터는 청소년기를 거쳐온 모든 시청자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쿠팡플레이 ‘로맨스의 절댓값’ 스틸 컷.

쿠팡플레이 ‘로맨스의 절댓값’ 스틸 컷.

쿠팡플레이 ‘로맨스의 절댓값’ 스틸 컷.

쿠팡플레이 ‘로맨스의 절댓값’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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