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제 삶입니다
몇 년 전 수술을 한 후, 아픈 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한동안은 ‘아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아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혼자가 되는 시간에는 고립의 감각과 싸워야 했으며, 통증과 원인 모를 면역 이상 반응, 이어지는 불면 앞에서는 이렇게 계속 아플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압도됐다. 병원에서 통증 정도를 1~10까지 수치로 표시해보자며 자가 진단표를 내미는 데 화가 치밀었고, 5분도 채 안 되는 의사와의 면담에서는 “통증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투의 무심함에 또 한 번 놀랐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랄까. 그제야 생각이 미쳤다. ‘아, 정말 나밖에 없구나.’ 이 구체적인 통증과 고통을 겪는 것도 ‘나’이고, 그것을 견뎌야 하는 것도 ‘나’라는 엄연한 사실, 현실.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원망의 마음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가 ‘나밖에’의 의미가 점차 몸과 마음의 주체가 나라는 데로 옮겨갔다. 육체적, 정신적인 아픔, 가시적, 비가시적 고통이란 결국 나라는 사람의 구체적인 경험, 환원 불가한 개인적인 것이기에 섣불리 집단의, 공통의, 보편의, 일반의 것으로 정리될 수 없다. 납작하게 단일화하고, 병명으로 범주화할 수도 없다. 그러면서 아픈 몸과 조금씩 함께 사는 법을 찾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적어도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픈 몸과 동거 중입니다.’
누구든, 언제든, 얼마든지 아플 수 있다. 장애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한 누군가의 별난 상태가 아니라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점에서 보편성이 있는 것이다. 건강을 제일의 미덕으로 여기며 제발 아프지 말길 바라는 절절한 마음을 모를 리 없다. 그 기원을 결코 가벼이 여기고 싶지 않다. 나 역시도 나와 사랑하는 이들의 안녕과 무탈과 건강한 세상을 바란다. 하지만 그런 바람이 절대적이고 무조건 옳다고 여기지 않으려 한다. 건강하지 않은 상태가 발생했을 때 문제라거나 그것을 부정하게 보거나 외면하고 싶지 않다. 건강에 거는 우리 기대의 반의반만이라도 개별의 아픈 상태를 온전히 바라봐줄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공동의 연습과 지원이 있다면, 좀 더 많은 질병 서사가 자기 검열 없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상의 언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개인적 경험 때문일까. <피의 연대기>(2018)를 만든 김보람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2023, 개봉 10월 25일)을 봤을 때, 아픈 몸과 함께 살아가기를 시도하는 영화 속 여성들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는 10대 시절부터 섭식장애를 앓은 채영 씨와 그녀의 엄마 상옥 씨, 두 사람의 이야기다. 혹여 섭식장애에 관한 정보, 역사에 관해 다루는 영화인가 기대한다면, 그로부터는 완전히 비켜서 있다고 말해야겠다. 섭식장애가 무엇이고, 왜 발생하는지, 치료 과정과 그 경과는 어떠한지와 같은 건 전혀 없는 영화다. 채영 씨의 삶에서 섭식의 어려움은 당장이라도 끝장내야 할 삶의 골칫거리가 아니라 그녀와 예전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앞으로도 함께할 하나의 몸과 마음의 상태에 가깝다. 다시 말해 그것은 채영 씨의 삶 자체인 동시에 그 일부라는 사실을 영화는 잊지 않으려 한다. 또한 채영 씨의 삶만큼 영화가 주목하는 건 상옥 씨의 삶이다. 젊은 시절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며 홀로 채영 씨를 낳아 키우고 대안 학교 사감이 돼 자리를 잡기까지, 화해할 수 없던 자신의 엄마에 대한 마음과 딸을 향한 심정까지.
두 사람의 삶의 상태를 통해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찾아가는 과정에 좀 더 관심을 둔다. 서로 간의 접점을 찾고, 그 접점의 면적을 어떻게든 넓히려 하기보다는 각자의 시간과 둘 사이의 일정한 거리를 받아들이되, 그럼에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자 하는 이것은 평행선의 사랑이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그런 사랑도 사랑일 수 있음을 탐색한다. 동시에 영화는 질기고 곡진한 두 여자의 생존기, 누구의 딸도,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아내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바로 서기 위한 그녀들의 분투기, 통증 앞에서 살아남기 위한 저항의 기록이기도 하다.
지난주 일요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이 영화에 관한 관객과의 대화에 사회자로 참석했다. 김보람 감독과 채영 씨, 상옥 씨, 그날의 관객과 밀도감 있는 대화를 나눴다. 그때 채영 씨가 선물로 직접 쓴 에세이 <이것도 제 삶입니다_섭식장애와 함께한 15년>(오월의봄, 2023)을 건넸다. 이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로 결심하고 영화를 완성하면서, 무엇보다 이 영화로 만난 김보람 감독의 지지 덕분에 용기를 내 써 내려갔다는 그녀의 생생한 목소리가 꾹꾹 담겨 있다. 그녀의 글과 그림에는 영화가 미처 담지 않고 또 담지 못한 —영화는 선을 넘지 않기로 결심한 것 같다. 두 주인공이 아닌 그 너머의 또 다른 관계와 이야기는 자신의 몫이 아니니 탐내지 말자고. 섭식에 관한 채영 씨의 어려움을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세부의 역사가 있다. 그 세부를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채영 씨가 책에 썼듯 ‘곁’이 아닐까 싶다.
“만약 내 삶을 한 줄로 요약해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이렇게 쓸 것이다. ‘여자들이 키운 아이.’”(158쪽) 많은 여자들이 채영 씨의 곁이 되어줬다. 엄마, 이모들, 이모의 딸들, 대안 학교의 끼와 깡이 넘치던 언니들… 물론 그들 때문에 채영 씨는 괴롭기도 했지만, 그들 덕분에 살기도 했다. 채영 씨는 그녀들의 영향 아래 있었다. 하지만 그 영향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임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누구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누구 곁에서 자기식으로 살아가고 싶은 채영 씨는 그 누구보다 강하다.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다.
내가 몸이 아플 때면 떨어져 사는 가족이 한걱정을 한다. 우리가 있는 이곳으로 오라고, 여기서 푹 쉬고 회복하고 가라고, 아예 함께 사는 건 어떠냐고. 그 말이 사랑의 표현임을 잘 알면서도 나는 그 말에 언제나 반발심이 생긴다. ‘제대로’ 사는 법이 있는 것처럼,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아 아픈 것처럼, 내가 있는 여기는 문제이고, 가족이 있는 그곳은 건강이 담보되는 곳처럼. 그럴 때면 다시금 내가 부정당하는 것만 같다. 나는 내가 어디서 살든 온전히 나로서 살기를 원한다. 그것을 지지받고 싶다. 어디서든 아플 수 있고, 어디서든 아프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다. 사랑하는 이들의 곁이 주는 감사함을 잘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나라는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싶다. 아픔과 통증과 동거하면서. 채영 씨처럼.
“내가 얻은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나의 정체성, ’박채영‘이라는 존재를 섭식장애로부터 지켜냈다는 점이다. 15년의 세월을 섭식장애 환자라거나 누구의 딸, 또는 어느 학교의 학생, 또는 어느 회사의 일부로 산 것이 아니라 ’박채영‘으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변화무쌍하고 불안정했지만 그게 내 삶이다. 그런 나의 삶이 좋다. 앞으로도 나는 변화할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신념이 있기에 방황 속에서 길을 찾고, 좌절의 끝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234쪽)
채영 씨는 이렇게 글을 맺었다.
“끝으로 오늘 하루 종일 머릿속을 채운 말을 적고 싶다.
이런 나라도 살고 싶다.
어떤 삶이라도, 가치 있으니까.”(240쪽)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과 책 <이것도 제 삶입니다>의 곁에서 또 한 번 삶과 만났다. 그래서, 그런 것으로, 나도 산다.
- 포토
-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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