챈들러 같은 남자
지난주 일요일, 챈들러, 아니 배우 매튜 페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프렌즈>를 마지막으로 재생한 것도 벌써 10여 년 전 일이고, 챈들러가 아닌 매튜 페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데도 하루 종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유명인의 부고를 들었을 때와는 또 다른, 조금 더 ‘사적인’ 슬픔과 애도의 감정이 밀려왔달까. 나중에 뉴욕의 팬들이 챈들러를 추모하며 올린 사진을 보고 나서야 이 감정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뉴욕에 있는 ‘프렌즈 아파트먼트(실제 촬영은 세트장에서 진행했지만, 이 건물의 외관이 <프렌즈>에 삽입되었다)’에 추모의 꽃과 함께 놓인 카드에는 이러한 문구가 쓰여 있었다. ‘우리 모두가 친구를 잃은 곳(The one where we all lost a friend).’ 나 역시 함께 낄낄대고 울적해하며 한 시절을 보낸 친구를 잃은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챈들러가 어떤 남자인지 확실하게 보여준 에피소드를 떠올려본다. 가장 먼저 자기만의 침대를 사수하던 챈들러가 떠오른다. 해당 에피소드의 여자 친구가 재니스였는지 모니카였는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챈들러는 침대에서도 자기만의 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이고, 상대는 온몸을 밀착해 두 인간이 한 덩어리가 되어야 깊이 잠들 수 있는 쪽이었다. 나 역시 전자이고, 후자의 상황에서는 결코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에(일단 숨 쉬기가 어렵지 않나?) 이 에피소드에서는 챈들러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기억이 난다. 물속에서 숨을 참고 숫자를 세는 듯한 표정으로 ‘밀착의 시간’을 견디던 챈들러는 상대가 잠들자 마침내 ‘자기만의 이불’을 쟁취하며 사적 공간을 되찾는다. 깊은 잠에 빠져든 상대는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지고, 비로소 행복하고 평화로운 얼굴로 잠이 드는 챈들러의 모습과 함께 흘러나오던 클로징 송. 세상 모든 이에게는 ‘자기만의 이불’이 필요하다.
이어서 회사에 다니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던 챈들러의 모습도 떠오른다. <프렌즈>의 몇 가지 미스터리 중 하나는 “챈들러는 도대체 뭘 하는 녀석인가”일 것이다. 회사는 돈 벌러 다니는 지루한 곳이라고 생각하며, 일이나 직업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지 않기에 꼼꼼히 보지 않는다면 매일 시니컬한 농담이나 늘어놓는 챈들러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 심지어 친구들조차 그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서 챈들러의 직업을 맞히는 게임을 할 정도니까. 회사 가기 싫어 끙끙대는 챈들러에게 친구들이 그렇다면 직업을 바꿔보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조언하자, 챈들러는 “어디든 똑같지, 회사 다니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라며 투덜거린다. 친구들이 “나는 내 직업 좋은데?”라고 말하자, 진심으로 경악하던 챈들러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런데 정작 챈들러는 ‘통계분석 및 데이터 재구성 전문가’라는 어엿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일도 꽤 잘하는지 직장에서 그를 예뻐하는 상사에게 ‘엉덩이 팡팡’까지 받고 있다는 사실(‘상사의 엉덩이 슬랩을 피하는 법’도 무척 웃긴 에피소드 중 하나다)은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싫어하는 직장에 꾸준히 다니며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루었던 챈들러. 당시에는 그저 낄낄대고 말았지만 사회생활을 해볼 만큼 해본 지금의 나로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챈들러, 당신은 진정한 어른이었어요.
새해를 맞이해 농담하지 않기로 결심하던 챈들러도 떠오른다. 이어서 등장한 로스의 가죽 바지 때문에 고통받지만, 사실 가죽 바지가 아니더라도 이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매 순간을 (가끔은 성공하고 가끔은 실패하는) 자잘한 농담으로 채우는 챈들러는 농담기가 쏙 빠진 진지한 상황을 꽤 견디기 힘들어하는 남자였다. 마찬가지로 진지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남자와 만났던 당시의 나는 챈들러의 이러한 모습을 못마땅해했지만, 지금은 안다. 이렇게 웃기면서도 지적이고, 따뜻한 구석이 있는 농담을 적재적소에 구사할 수 있는 남자는 많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영원한 감정을 믿지 않고, 결혼을 두려워하던 챈들러가 농담기를 쏙 빼고 진지한 어조로 모니카에게 프러포즈하는 장면이 더욱 감동적이었던 것도 그래서다. 챈들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용기를 내는 남자였고, 시니컬한 척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지닌 남자였다. 자유와 유머의 공간을 지지하던 챈들러 같은 남자가 그립다.
매튜 페리라는 이름이 낯설 정도로 그는 오랫동안 ‘챈들러’였다. 그리고 본인 역시 챈들러와 자신을 어느 정도 동일시했는지, 그가 쓴 회고록에는 ‘<프렌즈>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마치 누군가가 나를 1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내가 한 농담을 훔치고 내 매너리즘을 따라 한 것 같은 느낌, 내 인생관을 사진으로 찍은 듯한 느낌이었다’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그가 <프렌즈> 촬영 당시 약물중독으로 깊은 늪에 빠져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에도 <프렌즈>에 함께 출연한 배우들이 그를 도왔고, 챈들러에게는 <프렌즈>가 유일하게 안심할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프렌즈>가, 각자의 챈들러가 있다. <프렌즈>를 보며 낄낄대던 시절이 한없이 그리운 것은 친구가 세계의 전부이던 시절, 안심할 수 있는 든든한 장소가 있던 시절이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일요일. 개인적으로 꼽는 챈들러의 명대사 중 하나는 “오늘은 일요일이야. 나는 일요일에는 움직이지 않아(It’s a Sunday. I don’t move on Sunday)”다. <프렌즈>와 함께한 호시절을 떠올리며, 챈들러의 말대로 움직이지 않는 일요일을 보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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