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다니엘 아샴이 오래된 소방서 건물에 사는 법

2024.03.24

by 류가영

    다니엘 아샴이 오래된 소방서 건물에 사는 법

    연금술사 다니엘 아샴을 새 주인으로 맞아들이자 오래된 소방서 건물에 펼쳐진 상쾌한 민트빛 세상.

    둥글둥글한 모양의 소호(Soho) 소파와 인디아(India) 의자, 런던 플로어 플랜(London Floor Plan)의 러그는 전부 아샴 리빙(Arsham Living) 제품으로 프리드먼 벤다에서 구입할 수 있다. 크리스털로 만든 이상해씨 피규어는 아샴이 디자인한 것. 거실 한가운데 놓인 울퉁불퉁한 테이블은 아샴의 디자인 레이블 스나키텍처(Snarkitecture)와 구프람(Gufram), 인형이 잔뜩 매달린 독특한 암체어는 카우스와 캄파나(Campana)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퍼렐 윌리엄스와 포르쉐의 러브콜을 받은, 팔로워 143만 명을 거느린 예술계의 유명 인사, 푸르스름한 석고로 온갖 연금술을 부리는 아티스트 다니엘 아샴(Daniel Arsham)이 맨해튼에 새집을 구할 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한 가지 ‘원대한 소망’이 있었다. 바로 차고. 매일같이 뉴욕 롱아일랜드시티에 자리한 작업실까지 차로 오가는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 중인 아샴이 힘주어 말했다. “차는 제 삶에서 정말 중요해요. 차에 있어서만큼은 아주 까다롭게 굴죠. 차고도 마찬가지예요. 이 집으로 이사할 때도 깔끔하고 안전하면서도 예술적인 차고를 원했어요.”

    과거 소방서로 쓰인 공간의 구조를 재치 있게 활용한 아샴의 드림 하우스. ‘아샴 그린’ 컬러로 물들인 1991년형 포르쉐 964 카레라 2가 홈 스튜디오 겸 차고에 거대한 조형물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운명적인 전화가 걸려왔다. 소호에서 한때 소방서로 쓰이던 커다란 건물이 매물로 나왔으니 한번 가보라는 것이었다. 발 빠른 사람들이 이미 앞다투어 매물을 보기 위해 약속을 잡고 있지만 빨리 가면 낚아챌 수도 있을 거라고 덧붙이면서. 예사롭지 않은 직감에 사로잡힌 아샴은 즉시 달려가 기회를 잡았다. 이제까지 그 정도로 그의 마음에 쏙 든 집은 없었다. “보자마자 느낌이 왔어요. <고스트버스터즈>에 나오는 소방서가 떠올랐죠. 다시없이 유니크하잖아요! 뉴욕에 오래 살았는데, 이곳이야말로 저에게 딱 어울리는 곳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어요.”

    다니엘 아샴이 소방서의 흥미로운 잔재가 엿보이는 나선형 계단 앞에 서 있다. 스나키텍처×구프람의 ‘브로큰 미러(Broken Mirror)’ 위에 걸린 수정 조각과 벽에 걸린 두 점의 작품은 모두 아샴이 만든 것.

    평소 엄청난 작업량을 자랑하는 아샴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사색을 유도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각, 회화, 드로잉을 두루 섭렵한 그는 석고, 수정, 황동을 아우르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며 스포츠, 만화, 자동차, 오랜 역사를 간직한 조각상 등 그가 영감으로 활용하는 대상의 스펙트럼 또한 무궁무진하다. (그의 최신작 중 하나인 거대한 조각 작품 ‘Bronze Eroded Venus of Arles’은 지난해 뉴욕 5번가에 새롭게 문을 연 티파니 플래그십 스토어의 층계참 한가운데 안착했다.)

    1800년대 말에 지어진 이 집이 간직하던 역사적인 뼈대와 재미있는 구조는 아샴의 취향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이 집엔 아직 연석과 경사로도 존재해요. 도로의 주차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시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요소지만요.” 하지만 이 특이 사항 덕분에 그가 애정하는 민트 그린색 1991년형 포르쉐 964 카레라 2를 1층 실내로 자유롭게 끌고 들어올 수 있었다.

    부엌의 아일랜드 테이블 위 랜턴은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의 아카리(Akari) 조명, 부식된 제우스 흉상과 바 스툴은 아샴이 만든 것으로 한데 모여 독특한 분위기를 이룬다

    바닥을 새로 사포질하고, 들보와 목재를 다듬고, 냉난방 시설을 업그레이드하고, 마지막으로 부엌과 욕실 리모델링까지 마치고 나서야 아샴은 이곳을 자신에게 완전히 들어맞는 공간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샴의 예술적 비전 그 자체인 집이 탄생했다. 1층은 보통 차를 주차해두는 공간으로 활용하지만 필요할 때는 촬영 스튜디오로 돌변한다. 바닥에서부터 벽 꼭대기까지 이어지는 선반에는 그만의 애장품 컬렉션이 한가득 진열돼 있다. 실내 한구석에는 이곳이 소방서일 때부터 있던 나선형 계단이 4층까지 쭉 뻗어 있는데 아샴은 계단의 새빨간 페인트를 남김없이 벗겨낸 후 ‘아샴 그린(Arsham Green)’이라 이름 붙인 상큼한 색상을 덧발랐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아샴은 식기 하나하나 세심하게 공들여 준비한다. 아샴이 디자인하고 브루클린 도자기 공방 브루클린 클레이(BKLYN Clay)가 제작한 접시와 나카가와 목공소(Nakagawa Mokkougei)의 나무 컵, 기미코 사토(Kimiko Sato)의 유리잔, 가나미 쓰지(Kanaami-Tsuji)의 소서, 쇼쿠라쿠 아사노(Shokuraku Asano)의 테이블 매트처럼.

    위층으로 올라가면 부엌과 거실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샴은 이곳에서 칵테일 파티를 열거나 좋아하는 셰프를 초대해 소박한 쿠킹 쇼를 벌이기도 한다. 손님들을 대접할 때는 일본에서 들여온 방대한 테이블웨어 컬렉션을 꺼낸다. 그 밖에 집 안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가구는 몇 년 전 그가 론칭한 아샴 리빙(Arsham Living) 제품으로 전부 프리드먼 벤다(Friedman Benda) 갤러리에서 구매할 수 있다.

    자작나무, 레진, 부클레 소재 패브릭으로 이루어진 아샴의 한정판 침대 ‘해트록(Hatrock)’. 나이트 스탠드와 독서등이 장착되어 있다.

    바로 위층에는 아샴이 파리에 머물 때 제작한 설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커스텀 벽지로 둘러싸인 메인 침실이 있다. 바위처럼 생긴 욕실 세면대 역시 그가 손수 조각해 완성한 것으로 콜러(Kohler)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바위 혹은 돌멩이를 닮은 둥글둥글한 인테리어 요소가 아샴의 집을 거대한 수조처럼 보이게 한다. 세면대는 아샴이 콜러와 함께 3D 프린터로 바위를 형상화한 것, 아샴이 부식시킨 오브제가 아래에 놓여 있다.

    널찍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아샴은 지하실을 거대한 드레스 룸으로 탈바꿈했고, 옥상은 여가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프라이빗한 정원으로 꾸몄다. 공간 구석구석에 카우스(KAWS)나 조시 스펄링(Josh Sperling) 같은 예술가 친구들의 작품과 아샴의 작품이 귀여운 조화를 이루는 모습 역시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칼리코 월페이퍼(Calico Wallpaper)를 통해 맞춤 제작한 벽지가 침실 분위기를 유쾌하게 연출한다. 거울, 플로어 램프, 소파는 아샴 리빙 제품. 의자는 프랑스 인테리어 디자이너 피에르 폴랑(Pierre Paulin)이 디자인했다.

    2023년은 그에게 매우 바쁜 해였다. 파리의 갤러리스트 에마뉘엘 페로탕(Emmanuel Perrotin)과 함께 일한 지 20년이 되는 해를 축하하기 위해 파리와 뉴욕에서 두 번의 전시를 열었고, 같은 해 10월에 열린 파리 패션 위크에서는 모엣&샹동 임페리얼 컬렉션을 위해 한정판 보틀 케이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올해도 그는 2024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열릴 개인전과 협업으로 바쁜 행보를 이어간다. 쉼 없는 여정을 채우는 지난한 창작 활동 가운데 결코 지루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드림 하우스. “매일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와 이곳 문을 열 때마다 감탄하곤 해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들뜬 표정으로 아샴이 말했다. “여기가 제 집이라니, 정말 꿈인가 싶어요.” (VL)

    사진
    Jason Schmidt
    Gay Gassmann
    스타일링
    Colin King
    COURTESY OF
    Daniel Arsham, Josh Sperling/Perro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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