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합니까?
제가 부지런히 전시를 챙겨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술가의 작업을 통해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갈 수 있고, 과거나 미래에 당도할 수 있으며, 한 번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죠. 모든 작가의 작업은 어쩌면 모르고 살아도 지장은 없지만 알고 나면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흥미로운 세계를 향한 숨겨진 입구 같은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트선재센터에서 5월 12일까지 열리는 벨기에 출신의 작가 리너스 반 데 벨데의 개인전은 저에게 낯설고도 새로운 세계 그 자체였습니다. 회화, 설치, 조각,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은 현실과 허구, 미술사와 일상의 지점을 가로지르며, 지금 이 순간을 ‘2024년 3월, 삼청동’이라는 시공간을 초월해 기억하게 합니다.
다채로운 매체를 활용하는 솜씨는 가상의 세상을 그린 두 편의 영상 작업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납니다. 그중 ‘라 루타 내추럴(La Ruta Natural)’(2019-2021)에서 극 중 인물은 끊임없이 순환되는 초현실적 세계에서 삶과 죽음을 반복합니다. 거꾸로 읽어도, 바로 읽어도 같은 제목이 암시하듯 말이죠. 한편 ‘하루의 삶’(2021-2023)은 외광파 작가의 하루 동안의 여정을 그려내며 작가의 미술적 영감의 대상을 상상하게 합니다. 영상에 나온 모든 세트는 골판지, 종이 같은 값싼 재료를 활용하고 직접 채색하는 등 일일이 수공예로 만들어낸 것들이고, 주인공은 시종일관 작가의 얼굴을 본뜬 마스크를 쓰고 출연합니다. 이 소품과 마스크를 조각 작품처럼 함께 전시해둔 덕분에, 전시 공간 속 영화적 환상의 경계는 여러 겹의 그리드를 그려내며 상상과 현실, 가짜와 진짜의 경계를 더욱 활발하게 활성화합니다.
전시 제목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는 20세기의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의 말에서 인용한 겁니다. 마티스는 그림 그리기에 가장 좋은 빛을 찾아 프랑스 남부로 여행을 떠나며 이렇게 말했다지요. “나는 해와 달과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 작가는 이 인용문을 구상과 추상의 사이에서 오묘한 에너지를 발하는 회화 작품 아래에 써두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하루의 삶’을 보더라도, 당시 빛을 찾아 떠난 외광파 화가들의 존재가 작가에게 큰 영감을 준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작업실에서 책과 영화, 뉴스와 잡지, 역사와 미술사 서적, 작가와 위인의 전기 등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공상적인 모험을 떠나는 21세기에 흔치 않은 미술가거든요. 그런 그가 자신의 작업관과 가장 거리가 먼 옛 거장들을 소환하고, 그중 마티스의 말 “나는 (멀리 떠나지 않고 그저 내 집)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는 식으로 위트 있게 변형한 거죠. 작가에게는 미술사조차 상상과 환상의 단서가 됩니다.
인상적인 것은 리너스 반 데 벨데는 스스로를 ‘안락의자 여행자’라고 소개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모든 미술 작가에게는 직업 특성상 요컨대 전시를 열고, 오프닝 행사를 하고, 미술계 관계자를 만나는 등 이동과 움직임이 필수라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이 작가야말로 매번 전시장에서 예술 작품을 통해 나만의 모험을 떠나는 관객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할 뿐 아니라 요즘 시대 현대미술의 효용을 명료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군요. 아마도 그 열쇠는 바로 상상력에 있을 겁니다. “상상력은 인간에게 주어진 재능이며,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무언가를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 공상은 강력한 도구이며 우리가 현실을 성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작가 인터뷰에서 발췌) 우리 같은 ‘전시 여행자’를 위한 ‘안락의자 여행자’의 상상력 예찬 덕분에 환상 여행은 더욱 즐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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