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사라질 벽화를 6주 동안 그린 니콜라스 파티

2024.09.30

사라질 벽화를 6주 동안 그린 니콜라스 파티

최고의 뮤지엄과 갤러리, 평단과 옥션마저도 이들의 이름을 빼고 예술을 이야기할 순 없다. 데릭 애덤스, 레픽 아나돌, 니콜라스 파티가 한국을 찾았다. 자신의 뿌리와 자연, 사라질 것들에 대한 존중으로 가득한 작품만큼 직접 만난 작가들은 배려 깊고 온화했다.

호암미술관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스위스 미술가 니콜라스 파티. 전시가 끝나면 사라질 벽화를 그가 6주 동안 공들여 그린 이유는 뭘까?

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 중 한 명이다. 그가 한국에서 갖는 첫 번째 전시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Nicolas Party: Dust)>는 파스텔로 그린 그의 대표작과 조각뿐 아니라 신작 회화 20점을 만날 수 있어 화제다. 장생과 불멸의 염원을 담은 ‘십장생도 10곡병’과 김홍도의 ‘군선도’에서 복숭아와 연꽃 같은 상징을 차용해 여덟 명의 팔선(八仙)을 형상화한 신작 초상 8점은 특히 매력적이다. 그의 아름다운 벽화와 작품이 우리나라의 ‘백자 태호’ ‘금동 용두보당’과 같이 전시되어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그는 작가로서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스스로를 초월하고자 노력한다. 바로 자신이 작품의 첫 관람객이기에, 스스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관람객에게 전달할지 고민이 크다. 예술 작품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고 예상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것이 큰 선물이기에, 작가로서 내공을 쌓기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이다. 시대를 넘나드는 젊은 작가의 영감을 발견할 수 있는 니콜라스 파티의 전시 <더스트>는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내년 1월 19일까지 만날 수 있다.

‘사슴이 있는 초상’, 2024, 리넨에 소프트 파스텔, 150.1×110.1cm, 작가 및 하우저 앤 워스 제공. ©니콜라스 파티, 사진은 애덤 라이시(Adam Reich).

이번 전시를 위해 5점의 벽화를 그렸다. 전시가 끝나면 이 아름다운 그림이 사라진다니 아쉬워하는 이들이 벌써부터 많다.

6주 동안 벽화도 그리고, 전시를 준비하면서 노동 집약적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호암미술관이라는 환경과 새로 만난 팀에 몰입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전시 공간과 물리적·정서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즐긴다. 벽화의 일시성을 좋아한다. 캔버스에 담지 못하는 여러 많은 주제를 벽화에 담을 수 있다. 벽화를 그리며 전시 공간에서 수행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벽화가 갖는 일시성이 전시 주제와 연결된다. 더불어 죽음, 소멸과도 연계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먼지에서 와서 먼지로 돌아가고, 나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세월은 길지도 짧지도 않고, 모든 것은 천천히 소멸되는 중이다. 돌로 만든 석조 건축물도, 우리가 서 있는 이 땅도 나중에 사라질 것이고, 전시가 끝나면 없어지는 벽화는 그런 시간 개념을 다시 돌아보게 하지 않을까.

당신 작품의 모든 색깔이 매력적이지만 빨간색이 돋보인다. 레드 컬러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특정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진짜 레드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 중국과 같은 아시아 예술을 접하고 공부하면서 아마도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중국에서 특히 레드는 상징적인 색이다. 전시에서 레드가 돋보이는 공간이 있는데, 일부러 그렇게 구성해야겠다고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색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하다. 그래서 동굴이 중심인 공간은 어둡게, 산과 구름이 나오는 풍경은 파랗게 색칠했다. 마지막 12명의 선인이 하늘로 가는 공간은 회색을 중심으로 표현했다.

전시장에서 ‘작가 소장’이라고 표기된 작품이 눈에 띄었다. 당신이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어서 절대 팔지 않는 비매품(Not for Sale)인가?

그렇다.(웃음) 내 소장품이 전시에 많이 포함되었다. 얼마 전부터 나의 일부 작품을 소장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누가 작품을 구매하고 싶어 하면 감사하면서 판매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가지고 있는 작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시다시피 그림은 실물로 보는 것과 사진으로 보는 것이 다르다. 작품을 팔고 나면 다시 보기 어려운 것이 섭섭해서 각 시리즈에서 애정하는 작품을 남겨두기 시작했다. 감정적으로 마음이 가는 작품이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전시에서도 선보인 아이 그림은 나의 딸이다. 이를 어떻게 판매할 수 있겠는가? 아이 그림은 1년 반 전에 완성했고, 이번에 네 번째로 선보인다. 그 밖에 갤러리에서 보여준 적 있는 공룡 시리즈도 개인 소장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친밀한 감정이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미술관 대형 전시에서 다른 소장자에게 작품을 대여받는 것이 쉽지 않기에 개인적으로 작품을 갖고 있게 됐다. 작품을 빌리는 것은 언제나 순조롭지 않다. 마음에 드는 작품 컬렉션과 미술관 전시를 위한 준비가 개인 소장의 시작이다.

‘복숭아가 있는 초상’, 2024, 리넨에 소프트 파스텔, 150×109.9cm, 작가 및 하우저 앤 워스 제공. ©니콜라스 파티, 사진은 애덤 라이시(Adam Reich).

당신은 동서양의 미술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상징과 기호를 작품에 인용한다. 과거의 의미를 그대로 차용하는 것인지, 당신 나름의 기준으로 재해석하는지 궁금하다.

다양한 요소의 콜라주는 많은 미술가가 해온 방식이다. 나는 기존 미술가의 방식에서 다채로운 요소를 가져와서 콜라주 하는데, 초상에서 상징을 많이 발견하는 편이다. 신작에서 ‘십장생도 10곡병’의 사슴이나 복숭아가 신작에서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고, 리움미술관 소장품인 청자도 하나의 요소로 가져왔다. 당나귀는 한국 고전 ‘군선도’에서 신선이 타고 사후 세계로 향하는 동물인데, 고야의 작품에서도 등장하기에 흥미로웠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리움미술관에서 국보 청자를 보고 재료의 물성과 뛰어난 기술로 오랫동안 아름다움이 보존된 것에 감동을 받았다. 이 청자를 초상화에 담으면 다른 맥락에 놓이면서 새로운 형상으로 다가온다. 그런 와중에 개구리도 등장해서 초상의 유머가 도드라진다. 이렇게 새로운 이야기를 덧입으며 그림 속 청자와 여성의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여성이 청자에 담긴 영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기존 미술 요소가 새로운 상징과 서사를 부여하기에, 작품을 보는 한국 관람객이 이미 알고 있는 고전의 의미에 자신만의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고자 한다. 복숭아는 사실 서양에서는 에로틱한 상징으로 쓰이는데, 신작 초상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서구의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와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을 담은 우리나라의 ‘십장생도 10곡병’ ‘군선도’를 전시에서 함께 오마주한 것이 흥미로웠다. 완전히 상반되는 두 개념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는가?

우리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인지하기에, 불멸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비롯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정말 장수할 수 있다면 영생에 대한 욕망을 그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서구 종교화를 보면 아기 예수가 태어나는 순간, 마리아는 아기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추후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시한폭탄처럼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가며 모든 것이 흙으로 돌아가서 소멸될 것이라는 것을 늘 인식하고 있다. 예술 작품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고,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와 태양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인류는 이를 인지하고 표현하며 살고 있는 것.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소멸에 대한 고민이 발견되고 있으며, 최후에 대한 인식은 여러 작품에서 인상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거대한 담론이 다른 문화권에서 어떻게 변형되는지 관심이 높다. 존재에 대한 인간의 관심과 인식이 인류의 근본이다. 인간이 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종이다. 내가 43세에 딸을 가졌는데, 90세까지 살더라도 딸은 겨우 마흔일곱 살이니 그녀의 인생 절반을 놓친다. 이렇게 많은 이가 부모의 죽음과 자녀의 출산으로 죽음을 각성하는 것 같다.

뒤 작품은 니콜라스 파티, ‘동굴’, 2024, 벽에 소프트 파스텔, 380×908cm, 작가 제공. ©니콜라스 파티. 앞 작품은 ‘백자 태호’, 조선 백자, 41×25.3cm,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 회장 기증. 전경 사진은 김상태.

많은 작품을 먼지처럼 사라지기 쉬운 파스텔로 제작했기에 ‘더스트’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들었다. 예전에 미술 보존 전문가와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가장 보존이 까다로운 미술 작품 소재가 파스텔이라고 말했다. 21세기의 파스텔은 과거 인상파 시대보다 보존하기 용이한가? 보존을 위해 당신은 작품에 어떤 마감을 하는 편인가?

예전에는 미술가가 재료를 사용할 때 건강이나 안전에 대한 통제가 없었다. 납이 들어간 하얀색 색소가 작품에 사용되었고, 이를 산업 회화라고 불렀다. 초록색에는 비소가 포함되기도 했고, 그래서 초록색이 극장에서 불길한 색으로 인식된 적도 있었다. 다행히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 유해한 물질을 미술 작품에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파스텔의 물질적 특성은 과거와 비교해 크게 변한 건 없다. 파스텔은 작가가 손을 대자마자 먼지처럼 부서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물감처럼 마르지 않기에 그대로 보존된다. 물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물감 안의 여러 요소가 각기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변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림 표면이 갈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파스텔 작품은 잘 보존한다면 아무 변화 없이 처음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색과 질감의 변화가 없다. 19세기 로코코 시대가 많은 파스텔 작품을 그린 파스텔의 황금기였다. 그때 그린 파스텔 그림의 일부가 오랜 시간 훌륭한 관리를 통해 잘 보존되고 있다. 주의할 것은 아크릴과 유화물감은 오일 베이스지만, 파스텔은 보호 장치가 없는 벌거벗은 상태이기 때문에 빛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뒤 작품은 니콜라스 파티, ‘산’, 2024, 벽에 소프트 파스텔, 350×800cm, 작가 제공. ©니콜라스 파티. 앞 작품은 ‘금동 용두보당’, 고려 10~11세기, 청동·도금, 104.3×20.9×16cm, 리움미술관, 국보, 전경 사진은 김상태.

2013년 스위스 바이엘러 파운데이션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파스텔 초상 작품을 보고 매료되어 파스텔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파스텔을 사용한 지 10년이 넘었고, 당신의 대표 이미지는 파스텔 작품을 그리는 작가다. 파스텔 소재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궁금하다.

피카소는 파스텔을 잘 사용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는 전천후 아티스트로서 여러 재료를 사용했다. 나는 당시 파스텔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며칠 후부터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파스텔에 바로 연결되는 듯한 즐거움을 느꼈다. 일주일 후부터는 깊이 탐구하기 시작했고, 1년 후에는 오롯이 파스텔만 사용했다. 물론 파스텔 사용 기법에 익숙하지 않아 많은 연구가 필요했다. 시중에 판매하는 종이는 크기가 작아서 고민이었고, 파스텔에 대해 자문을 구할 사람이 없었다. 파스텔을 작가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역사도 공부했다. 이탈리아 미술가 로살바 카리에라(Rosalba Carriera)가 로코코 시대 파스텔화의 선구자였다. 당시는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에서 여러 작가가 파스텔을 사용했다. 특히 18세기에는 다른 매체와 달리 파스텔은 집에서도 쉽게 작업할 수 있는 재료이기에, 여성 작가들이 활발하게 작업했다. 아직 튜브 물감이 발명되기 전이라서, 물감을 사용하려면 아카데미에 가야 작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베니스에서 특히 많은 여성 작가들이 파스텔 작품을 그렸고, 로살바 카리에라는 재산 규모가 카를 대제보다 더 컸을 정도로 부를 축적했다. 그러면서 파스텔은 여성 화가의 매체로 자리매김했는데, 이런 엄청난 유행이 파스텔 인기의 몰락 이유가 되기도 했다. 오늘날 파스텔은 진지한 매체가 아니라고 잘못 인식되고 있어서 안타깝다. 하지만 파스텔 역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여러 협업 전시가 이어지고 있어서 반갑다.

초상 주인공은 항상 중성적이고, 이국적이며, 외로워 보인다. 작가 자신의 모습도 투영될 수밖에 없을 텐데, 이에 대해 어떻게 보나?

그렇다. 내 초상 작품에는 모델이 누구인지, 누가 작가 앞에 앉아 있는지, 특정 인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하지만 예술가가 하는 모든 작업은 자신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내 초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항상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는데 요즘엔 어떤 그림을 그렸나? 일상의 스케치로부터 주로 작업을 시작하는가?

매일매일 스케치를 많이 하는데, 작품의 기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해마와 문어를 그리고 있다.

당신은 창의적인 작가로서 장르 구분이 불편하겠지만, 대중은 이해를 위해 분류를 선호한다. 미술가 르네 마그리트, 로르조 데 키리코와 같은 초현실주의로 당신의 작품을 분류하는 방식을 어떻게 여기는가?

초현실주의는 특정 화가를 묘사하는 표현은 아니고, 미술사의 한 시대를 설명하는 용어라고 본다. 초현실주의 선언문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대미술에서는 기이하고 설명할 수 없는 스타일을 초현실주의라고 정의한다. 어떤 문화권에서 환상적인 존재를 표현한 작품이라는 좋은 의미로 초현실주의라는 말을 사용한다. 나는 운 좋게도 벨기에의 르네 마그리트 뮤지엄에서도 전시를 했고, 두 달 동안 영국에서 독일 초현실주의 미술가 막스 에른스트와 함께 전시한 적도 있다.

당신 작품은 세계의 컬렉터들이 모두 소장하고 싶어 할 정도로 인기다 높다. 물론 이런 인기는 미술가로서 행복하고, 전시 기회도 자주 가질 수 있는 명예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이 될 것 같은데?

내 작품을 처음 구매한 사람은 할머니였다. 내가 열한 살 때 응원과 지지의 마음으로 할머니께서 그림을 구매해주셨다. 10대 때는 동네 치과 의사가 내 작품을 구입해주어 기뻤다. 하지만 현대 미술 시장은 내 통제 밖에 있다. 나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의 전시, 작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주는 모든 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이소영 미술 저널리스트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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