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허밍하지 않는다 #1 톰 요크
“AI가 창의성을 가질 수 있어?”

물리학과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네덜란드에서 AI 석사 수료를 한 달 앞둔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단칼에 답하더군요. “아직 모르지.” 역시 제 친구 중에서 가장 논리적입니다. “그럼 가능성은 100점 만점에 몇 점이야?” 친구는 이론상으로 인간 뇌를 똑같이 모델링하는 날이 오면,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하더군요. 현재 초파리 뇌 모델링까지 성공했고요.
오, 생명 윤리 사각지대이자 돈이 넘쳐나는 어느 나라(익명으로 두겠습니다)는 인간 복제도 이미 개봉박두 아닐까. 논리보다는 상상으로 그 가능성을 추리하던 중 친구가 보여줄 게 있다며 본론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술에 종사하는 친구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 코드를 짜서 실험해봤다고요.
실험을 위해 AI에게 방식은 알려주지 않고 목적지만 제시합니다. AI가 스스로 얼마나 다양한 경로를 찾으며, 그 과정에서 부가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 즉 ‘창의성을 발휘하느냐’가 골자였죠. 결론은 방법 없이도 AI는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서 자유롭게 답을 구했습니다. 관점에 따라 이걸 창의성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뉴스에서 걸핏하면 “한국 학생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문제 해결 능력”이라고 지적하는 그 능력이요.

AI에게 목푯값만 준 뒤 어떻게 해결하는지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사각형이라는 정보가 없어도 사각형을 완성한다.
“목적지에 효율적으로 도달하고 보기 좋게 결괏값을 내놓는 건 가능한데, 목적지 바깥으로 가는 건 아직 알고리즘적으로 불가능해. 내가 생각하는 창의성은 후자에 가까워.” ‘알고리즘적으로 불가능’이란 말이 단번에 이해는 안 돼도 안심은 되더군요. 레고 블록으로 성을 쌓으라고 하면 튼튼하고 빠르게 만들 수는 있지만 ‘성을 지은 김에 디즈니랜드를 만들어볼까’ 같은 돌발 행동은 서툴다는 뜻이죠.
친구는 아직일 뿐 단언할 순 없다고 덧붙입니다. “이미지, 음악을 만드는 AI와 문장 생성 AI는 로직도 다르고, 입장도 달라. LLM(Large Language Model, 대규모 언어 모델) 종사자 중에 AI에 진짜 ‘뭔가’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지.” 그 ‘뭔가’를 아예 무시할 순 없을 겁니다. 결과가 들이닥칠 때까지 베팅하거나 도를 닦는 대신 그다음을 한 번쯤 고민해 봅니다. AI에게 인간에 비견하는 창의성이 생기는 그날이 와도 인간만 지닐 수 있는 게 뭔지를요.
AI가 1분 만에 작곡하는 지금, ‘인간 음악’이라는 구분이 불가피합니다. 작사를 제외하고 모든 요소를 AI가 만든 노래 ‘늘 사랑을 못 봐 그냥 느끼는 거야’는 삑사리, 거친 생목의 질감, 기술 부족을 스타일로 승화시킨 로파이(Lo-fi)도 재현해냅니다. 인간의 불완전함마저도 학습한 거죠. 이 순간에도 AI는 격차를 좁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AI 노래는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즉 “인간 같은가”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습니다.
AI가 흉내 내고 싶은 건 정확히 뭘까요? <보그 코리아> 웹 시리즈 ‘AI Never Hums(AI는 허밍하지 않는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매회 연습과 리허설, 즉흥적인 합주와 무대 위 해프닝을 통해 ‘라이브(Live)’, 살아 있음의 증거를 수집하려 합니다. 이번 영상은 라디오헤드 ‘Paranoid Android’ 2003년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라이브입니다.
완벽함 거부하기
“난 패러노이드일진 몰라도, 안드로이드는 아니야(I may be paranoid but no android).”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때론 무너지더라도 그 모든 결함을 지운 채 최적의 결괏값만 출력하는 기계가 되진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라디오헤드 프론트맨 톰 요크는 이 곡의 탄생 배경이 ‘혼돈’이라고 언급했죠. “술집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냥 혼돈, 혼돈, 완전한 혼돈에 관한 이야기.”

이 곡은 가변적 프로덕션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건조한 아르페지오로 시작해 갑자기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디스토션, 보컬 레이어가 겹겹이 쌓이는 합창 코러스. 전혀 다른 파트가 한 곡에서 쏟아지죠. 그 사이로 톰 요크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이크에 입술이 닿을 듯 가까이 다가갑니다.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흥얼거리는 듯한 모습으로요.
프레이징도 독보적입니다. 자음을 의도적으로 삼키고 모음을 비틀며 가사 전달력보다 정서를 앞세우죠. 1968년생인 톰은 지금도 라이브에서 성량이 풍부하지만, 성량으로 밀어붙이는 타입이 아닙니다. 얇고 예민하게 떨리는 고음, 비음이 배어드는 중음역과 갑자기 갈라지는 파열음. 불규칙한 음역대와 질감 변화가 청자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큰 소리보다 예측 불가능한 소리가 더 긴장되는 법이니까요.

톰 요크 라이브 영상을 이것저것 보고 있자면 가장 큰 특징을 ‘안정적’이라고 꼽고 싶군요. 음원과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애초에 그런 걸 기대하고 톰의 공연을 보러 가는 관객은 없을 겁니다. 톰 요크는 관객이 기대하는 ‘단 한 번뿐인 라이브’를 어김없이 내줍니다. 음원보다 반박자 늦게 들어오거나 예상치 못한 대목에서 울부짖는 식의 다이내믹은 AI에겐 제거해야 할 오류지만, 인간에게는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전율입니다.
성전을 불태우고 샛길에 터를 닦기

오랫동안 다작했으니, 톰 요크를 알게 되는 경로는 다양할 겁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노래방 금지곡 ‘Creep(1992)’이죠. 발표 1년 만에 뒤늦은 열풍을 일으킨 이 데뷔곡은 전 세계에 라디오헤드라는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후 <The Bends>(1995)로 영국 얼터너티브 록의 기준을 다시 썼고, <OK Computer>(1997)로 록의 정점에 섰습니다. 누적 앨범 판매량은 3,000만 장을 넘으며, 새천년을 앞두고 쏟아지는 기술에서 비롯한 공포를 다룬 앨범은 출시 직후부터 세대의 초상으로 불렸습니다. 2번 트랙 ‘Paranoid Android’는 <롤링 스톤>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곡 리스트에 올랐고요.
그런데 정점에 서는 순간, 톰 요크는 돌연 성전을 불태웠습니다.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을 비롯해 워프(Warp) 레이블이 만든 전자음악에 빠져들며 기타 중심의 사운드를 버리겠다고 선언했고, 그 결과가 <Kid A>(2000)입니다. 앨범 작업 중 밴드는 해체 직전까지 몰렸고, 공개 당시엔 팬도 평단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훗날 <피치포크>가 2000년대 최고의 앨범 1위로 선정하는 등 혼란스러운 시대에 꼭 필요했던 걸작으로 재평가받습니다.

톰 요크는 라디오헤드 밖으로도 기꺼이 나갑니다. 2006년 솔로 앨범 <The Eraser>, 2009년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베이시스트 플리(Flea), 프로듀서 나이젤 고드리치(Nigel Godrich)와 ‘아톰스 포 피스(Atoms for Peace)’를 결성합니다. 2021년에는 라디오헤드 동료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 재즈 드러머 톰 스키너(Tom Skinner)와 ‘더 스마일(The Smile)’을 결성해 지금도 활발히 활동 중이죠. 2012년부터 이어온 랙앤본(Rag&Bone)과의 협업, 2018년 영화 <서스페리아> 오리지널 스코어까지 계속 경로를 이탈합니다.
천사도 타는 헬리콥터

‘Paranoid Android’ 뮤직비디오에는 날개 달린 천사가 헬리콥터를 타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계는 천사도 올라탈 만큼 편리하죠. AI 작곡이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 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날 때부터 헬리콥터만 탄 천사가 날갯짓하는 법을 익힐 수 있을까요? 그러다가 헬리콥터가 사라지면요? 약해진 날개 근육은 어떡하죠? 스스로 떠날 수 있다는 건 축복입니다. 톰 요크는 노래하는 기분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자신의 취약함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어딘가로 떠나는 거예요. 그러다 돌아오는 거죠. 거울 앞에서 자신을 뜻밖에 마주치는 것처럼.” AI가 창의성을 갖게 되는 그날을 인류가 피할 수 없다고 해도, 이 뜻밖의 마주침만큼은 인간의 몫일 겁니다. 데이터는 수렴하지만, 인간은 발산합니다. AI는 최적의 경로를 찾지만, 인간은 기꺼이 길을 잃습니다. 톰 요크가 30년 넘게 샛길을 택했기에, 우리는 안드로이드가 아닌 톰 요크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길을 잃어야만 닿는 곳이 있고, 그곳에선 살아 있는 자만이 흥얼거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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