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스 반 노튼부터 사라 버튼까지, 패션을 떠난 거장의 시간
패션계를 떠난 디자이너는 어디로 향할까? 톰 포드는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드리스 반 노튼과 패트릭 반겔루위는 베니스에 새로운 터전을 꾸렸다. 그들의 고요한 ‘가든 리브’ 시간을 찾아서.

패션은 삶 전체를 에워싸는 다층적인 세계다. 잠깐의 휴식이든 인생의 완전한 전환이든, 어떤 이유로든 그 흐름에서 벗어나면 비로소 알게 된다. 그 잔상은 늘 수면 아래에서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몇 년 전 뇌졸중으로 6개월간 병원에 머물며 가장 아끼던 것들과 멀어졌을 때, 고통스러운 회복 과정에서 나를 사로잡은 건 뜻밖에도 축구였다. 단 한 번도 관심을 갖지 않은 새로운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삶의 변곡점에서는 늘 이런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지난 1년간 패션계는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겪었다. 파리와 밀라노 패션 하우스가 새로운 얼굴로 활기를 되찾는 동안, 그만큼 많은 이가 무대 뒤로 사라졌다. 삶의 중심에서 패션을 내려놓았을 때, 떠난 사람들은 무엇에 집중했을까? 이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찾아왔을까? 한때 그들을 불태운 창작에 대한 열망은 사라진 걸까?
물론 아니다. <보그 리빙>은 단순히 인테리어나 여행기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환기가 되는 순간에 집중하기에 그들의 행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1980년대 패션의 절정을 이끈 크리스찬 라크르와(Christian Lacroix)였다. 2009년 이후 그는 무대 디자인 분야에서 눈부신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흥미롭게도 헬무트 랭(Helmut Lang)의 근황을 처음 알려준 것도 라크르와였다. 1990년대 패션을 정의했던 헬무트 랭은 2005년 자신의 레이블을 떠나 순수예술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갔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관통하며 유일무이한 에로티시즘을 구현한 리파트 외지베크(Rifat Özbek)의 변신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타고난 미적 감각을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변환해 맨해튼의 프라이빗 클럽 ‘맥심스(Maxime’s)’의 공간을 설계했다. 캘빈클라인에서 13년간 일했던 프란시스코 코스타(Francisco Costa)는 지속 가능한 뷰티 브랜드 코스타 브라질을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이런 커리어 전환의 사례는 끝이 없다.
2024년 40년 커리어를 마무리하며 디자인 일선에서 물러난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은 즉시 또 다른 삶의 궤도로 진입했다. 물론 파트너 패트릭 반겔루위(Patrick Vangheluwe)와 함께 뉴욕 매장과 최근 문을 연 런던 부티크는 꼼꼼히 챙긴다. (런던 하노버 스퀘어 매장에 걸린 스티븐 테넌트의 섬세한 드로잉을 보는 순간, 소장 욕구를 참기 힘들었다!) 앤트워프 매장 위층에서 브랜드 성장을 위해 밤낮없이 매진했던 워커홀릭 시절을 뒤로하고, 그들은 리르(Lier) 근교의 한 대지를 운명적으로 만났다. 기둥이 늘어선 1840년대 양식의 저택과 24만2,811㎡ 규모의 드넓은 부지였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헤르트 포리안스(Gert Voorjans)와 조경계의 거장 피에트 아우돌프(Piet Oudolf), 에릭 돈트(Erik Dhont)가 협업해 공간을 매만졌고, 이제 그들 삶의 새로운 중심이 되었다.
최근 드리스 반 노튼과 패트릭 반겔루위는 베니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디자이너이자 컬렉터였던 빅토리아 프레스(Victoria Press)의 옛집 덕분인데, 대운하를 바라보는 아파트로 은빛 신기루에 떠 있는 듯한 공간이다. 이 역사적인 팔라초는 두 사람의 안식처이자 재단 활동의 거점이 되었다. “베니스는 환상적인 도시예요. 이곳의 예술적 생태계와 비엔날레가 주는 자극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죠.” 처음에 이들이 찾고자 한 것은 소박하고 절제미가 돋보이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찾아왔다. “결국 이 웅장한 팔라초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말았어요!” 1730년대 원형 인테리어가 고스란히 보존된 15세기 건축물, 팔라초 피사니 모레타(Palazzo Pisani Moretta)가 바로 ‘드리스 반 노튼 재단’의 새로운 집이 되었다.
이탈리아 거장 티에폴로(Tiepolo)의 제자가 혼신을 다해 완성한 정교한 회반죽의 스투코 장식이 벽면을 감싸고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팔라초 3층의 프라이빗 플로어에서 드리스 반 노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추구하는 장인 정신은 경계 없는 포용적 개념입니다.” 그가 그리는 재단의 비전은 선명했다. “세라믹이나 은, 유리 공예 같은 고전적 영역을 뛰어넘어 다양한 장르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고 싶습니다. 흙으로 도자기를 빚어 자신의 감정을 전하는 아티스트가 있는가 하면, 목소리라는 악기로 음악적 서사를 창조하는 뮤지션도 있죠. 또한 요리라는 캔버스에 영혼을 담아내는 셰프도 있고요.” 익숙했던 화려한 명성을 접어둔 채, 이들은 미지의 광활한 우주로 과감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 앞에는 경이로움이 가득한 새로운 챕터가 펼쳐져 있다.
매 시즌 황홀할 만큼 완벽한 컬렉션을 쏟아내던 하이더 아커만(Haider Ackermann)은 2019년 돌연 작별을 고했다. 철학이 맞지 않는 파트너와 헤어지며 퇴장한 그의 선택은 패션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늘 불안과 결핍에 시달렸어요.” 세상에서 가장 당당해 보이던 하이더 아커만이 내뱉은 뜻밖의 고백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나아가게 만드는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깊은 불안에서 시작됐다. 스스로 1년여의 공백을 선택했다. “멈춰보니 알겠더군요. 이 일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영감은 넘치는데 쏟아낼 곳 없던 갈증의 시간을 마주하며 그는 예술로 눈을 돌렸다. “전시를 보고 독서에 빠지고, 발레를 즐겼어요. 온전히 나를 채우는 시간이었죠. 그 밀도 높은 침묵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다시 뛰게 만들었습니다.”
공백기에도 하이더 아커만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티모시 샬라메와 틸다 스윈튼 같은 스타일 아이콘을 위해 레드 카펫 위 찰나의 완벽함을 담아낼 오직 단 한 벌뿐인 작품을 빚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전해진 캐나다구스와의 협업 소식은 모두를 놀라게 한 반전이었다. 많은 패션 하우스 수장들이 교체되던 격변의 시기, 파리의 유명 럭셔리 브랜드에 합류할지 고민하던 그에게 톰 포드가 손을 내밀었다. 캐나다구스와 톰 포드를 오가는 행보는 파리 런웨이를 뜨겁게 달궜다. 라일락 컬러의 프린지가 온몸을 타고 흐르는 카렌 엘슨의 드레스, 에린 오코너와 스콧 반힐(Scott Barnhill)이 선보인 짙은 잉크빛 수트,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드러낸 수지 케이브(Susie Cave)의 오프화이트 캐시미어 드레싱 가운까지 완벽한 색감으로 우아함을 증명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다시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입니다.”
사라 버튼 역시 같은 본능을 공유한다. 그녀에게 표현하고 창조한다는 것은 곧 살아 있음을 입증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26년간 함께한 맥퀸을 떠난다는 소식은 패션계를 경악하게 했다.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진 동안 파리 패션 위크에는 허전함이 감돌았다. 마침내 그녀가 지방시의 새로운 수장으로 발표되었고,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에는 사라 버튼만의 기발하고 독특하며 예리한 감각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뉴욕의 캘빈클라인부터 밀라노의 구찌, 런던의 프링글, 파리의 끌로에와 지방시까지.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섬세한 감각과 깊이 있는 시선으로 자신만의 작업을 이어왔다.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봄, 그녀는 지방시를 떠나 미래에 대한 진지한 문답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한동안 잊고 지낸 것들을 다시 시작한 1년이었죠.” 쉴 틈 없는 일정과 마감의 압박에서 벗어나 그녀는 완벽한 자유를 만끽했다. “실컷 책을 읽고, 온라인으로 다양한 자료를 살펴보고, 정처 없이 걷기도 했어요. 가만히 마음이 흐르는 대로 나를 내버려두었죠. 머릿속을 비우고 싶었거든요. 패션계에선 늘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기 바쁘잖아요. 저 또한 그랬고요.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맛본 온전한 휴식이었죠.” 공백기에 쏟아진 수많은 제안 중 상당수는 익숙한 과거의 반복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2021년 그녀는 세간의 이목을 피해 유니클로와 손잡고 ‘비밀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동경해 마지않던 일본 문화에 깊이 몰입할 기회였다. “그들의 비즈니스 방식과 태도, 크리에이티브를 바라보는 관점까지, 대화를 나누는 매 순간 완전히 매혹될 수밖에 없었죠.” 평생 럭셔리 패션의 치열한 타임라인 속에서만 살아온 그녀에게, 이제 낯선 세계가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그녀는 여전히 노팅힐 스튜디오를 고집한다. 북향 특유의 채광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탄생하는 스케치는 이전보다 완만한 속도로 더 밀도 높게 직조된다. “일본 동료들은 늘 입버릇처럼 말해요. 결정에 대해 심사숙고해보자고 말이죠.” 그녀가 가벼운 미소를 짓는다. 동양으로 눈길을 돌린 건 그녀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패션 지형은 끊임없이 재편되고 있으니까. 10년간 마르니를 이끌던 프란체스코 리소(Francesco Risso)는 유니클로의 ‘GU’에서 스마트한 일상복을 만드는 ‘조용한 혁신’을 실험 중이며, 최근 디올 옴므와 펜디를 떠난 킴 존스(Kim Jones)는 중국 최대 아웃도어 브랜드 보시덩(Bosideng)의 하이엔드 라인 아리얼(Areal)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변신했다. 또한 크리스 반 아쉐(Kris Van Assche)는 중국 아동복 브랜드 발라발라(Balabala)와 협력하고 있다.
때로는 거대한 변화로 인해 화려한 패션 커리어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온다. 크리스토퍼 베일리(Christopher Bailey)가 그랬다. 뉴욕의 도나 카란, 밀라노의 구찌(그는 그곳에서 수년간 호텔에 살다시피 하며 일에 몰두했다), 버버리까지, 그는 광기에 사로잡힌 워커홀릭처럼 커리어를 이어갔다. 하지만 첫딸 아이리스와 둘째 딸 넬이 태어나고 남편 사이먼 우즈(Simon Woods)가 육아를 위해 배우의 길을 접으면서 그의 마음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는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동시에, 안젤라 아렌츠(Angela Ahrendts)의 뒤를 이어 2014년부터 회장직까지 겸하고 있었다. 상장 기업의 수장으로서 감당해야 할 업무량은 말 그대로 살인적이었다. 매사에 전력을 다하는 완벽주의자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조차 일과 가정이라는 두 세계를 동시에 지켜낼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팀원들과 복작이며 영감을 주고받던 버버리 시절은 인생의 황금기였죠.” 베일리는 회상한다. “하지만 커리어를 벗어던진 ‘진짜 나’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 지켜보는 아빠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정서적 허기가 있었죠. 물론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건 제가 엄청난 행운아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마침내 버버리를 떠나자 남편 사이먼 우즈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치열한 현장으로 복귀했고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아빠 역할에 푹 빠져 지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정서적인 충만함을 안겨줬습니다.”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나의 여정은 현재진행형이다. 병원에 있는 동안 그토록 집착했던 축구에는 이제 무덤덤해졌다. 회복 기간을 수개월 거치며 깨달은 건, 내가 진정으로 갈망한 것은 인생의 절반을 바친 패션 런웨이의 뜨겁고 설레는 공기였다는 사실이다. 유독 잊히지 않는 밤이 있다. 2024년 1월 쏟아지는 빗속에서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위 시간은 저녁 7시를 향했고 존 갈리아노의 마르지엘라 쇼장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비에 젖어 미끄럽게 빛나는 긴 계단 끝이 입구였다. 쇼장은 다리 밑에 있었고, 인파는 무섭게 밀려들었다. 그 아득한 계단 앞에서 나는 멈춰 섰다.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지독한 공포가 엄습한 순간, 구원투수처럼 오랜 친구이자 <보그>의 멘토였던 샐리 싱어(Sally Singer)가 내 손을 잡았다. “꽉 잡아요. 같이 내려가면 돼요.” 그녀의 온기에 의지해 나는 한 걸음씩 내디뎠다. (자유롭게 걷게 된 지금, 머뭇거리던 그 순간이 이토록 생생하게 떠오르다니 기이한 일이다.)
쇼장에 들어서자 1930년대 파리 뒷골목, 허름하고 은밀한 어느 선술집에 발을 들인 듯한 착각이 일었다. 모자 디자이너 스티븐 존스와 로열 발레단의 매혹적인 프란체스카 헤이워드, 릴라 모스까지 우리 테이블에 모인 이들은 그 시절 퇴폐미 가득한 바의 단골손님처럼 완벽하게 그 풍경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쇼는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시작했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어떤 것도 상관없었다. 그 쇼는 내가 그토록 갈망해온 패션의 정점, 그 자체였으니까.
쇼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전설적인 사진가 브라사이(Brassaï)의 사진 속 한 장면처럼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한때 패션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존 갈리아노는 보란 듯이 완벽한 마법을 부렸다. 전설적인 ‘레 앵크루아야블(Les Incroyables)’ 컬렉션으로 세상을 뒤흔든 지 40년이 흘렀지만, 그는 지금도 대체 불가능한 판타지를 직조해낸다. 최근 마르지엘라를 떠난 그가 스페인의 하이 스트리트 브랜드 자라(Zara)에 합류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이 낯선 패스트 패션 세계에서 그가 무엇을 보여줄지 모두가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병원에서 고통스러운 재활 훈련을 통해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몸 상태를 확인하며 내가 간절히 기다려온 보상이 바로 여기 있었다. 비 내리는 어두운 밤, 1930년대 선술집을 재현한 몽환적인 공간에서 나는 벅차오르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패션계는 언제나 디자인, 건축, 인테리어 그리고 우리 삶과 연결되어 있었다. VL
- 컨트리뷰팅 에디터
- 유승현
- 글
- Hamish Bowles
- 사진
- François Hal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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